일상의 흔적 123
12월 20일, 추운 공기에도 맑은 날씨 아마도. 셀프 감금이라서 답답한 주말
연이어 확진자가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청정지역의 이미지를 잘 지켰던 제주도라서 그런지 충격이 더 크게 다가온다. 사실 그동안은 주변에 확진자가 없어서 코로나 19가 피부에 와 닿진 않았었다. 그러나 도민부터 시작한 코로나가 점차 주변 지인으로 좁혀 들어오자 불안감이 커졌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감염될지 모른다는 미지의 공포심이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할 줄이야... 이걸 거의 1년째 겪고 있는 수도권분들이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긴장감에 걱정 많던 날들이 길어졌다. 게다가 회사는 제주도 곳곳에 물류가 나가는 곳이라 직원들부터 대표님까지 불안감이 많았다. 각자 알아서 마스크를 단단히 썼고 이젠 내부에서도 마스크를 벗는 직원들이 없었다. 회사 단톡 방에는 각자 외부 모임을 자제해줬으면 하는 당부의 말이 올라왔고, 누구 하나 강요하진 않았지만 알겠다는 대답이 줄을 이었다.
코로나 19의 가장 무서운 점이 이거다. 나 혼자만의 아픔이나 피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칠 수 있고, 나 하나로 인해 엄청난 손실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코로나가 도민들에게 퍼지는 순간부터 어디든 나갈 마음이 없었다. 정말 너무 답답한 날은 차를 타고 훌쩍 바다를 보러 나가긴 해도 카페를 들리거나 하지 않았다. 마스크는 잘 쓰고 있겠지만 정말 혹시나 하는 작은 불안감 때문이다.
혼자 꼼질꼼질 여기저기 잘 돌아다니는 편이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집에서 노는 시간도 좋아하는 집순이라 처음엔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회사-집만을 오가는 날이 길어졌지만 어차피 만날 친구도 없었고 회사에서 에너지를 거의 소모하고 있기 때문에 집에서 충전하는 시간이 더 반가웠다. 엄마와 긴 시간을 붙어있으면서 서로 저녁을 번갈아 만들기도 하고 밥 먹고 나면 가벼운 스트레칭을 했다.
딩굴딩굴,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서 귤 하나씩을 까먹는 저녁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생활이 기약 없는 기다림이라는 사실이다. 나가지 '않'는 것과 나가지 '못'하는 것은 큰 차이였다. 단어 하나의 차이지만 와 닿는 감정은 그 이상이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셀프 격리임에도 불구하고 답답함과 화가 났다. 오히려 분노의 대상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갈 길을 잃은 분노가 더 커졌다.
좋아하던 카페에 가서 마음 편하게 커피 한잔하기도, 맛있게 먹었던 식당에 파스타 먹으러 가기도, 눈치 보이는 이 상황이 끝이 없다는 게 숨이 막혔다. 기분 좋게 친구를 만날 수도 없고, 누군가의 기침소리에 예민해질 때면 이유모를 불쾌함이 올라왔다. 몸살 기운이 있다는 지인의 말에 걱정보다 혹시 코로나인가 싶어 의심부터 드는 생각이 지쳤다. 아픈 사람 걱정보다 코로나 의심이라니...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인간성을 상실하는 기분이었다.
외부 활동을 거의 줄이고 사람을 만나지 않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유도 알 수 없는 '불안감'에서 비롯되는 정신적인 피곤함이다. 주변을 자꾸 의심하게 되고 작은 증상에도 불안하고 집에서 조차 반갑고 마음 편하게 지인을 맞이하기 힘든 현실이 스스로를 지치게 만드는 것 같다. 작은 행동이 어떤 파장이 될지 몰라 스스로를 가두고 작게 만드는 이 모든 순간의 감정과 생각이 스스로를 지치게 만든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힘들 때인데 고작 이런 걸로 우는 소리하는 것도 웃긴 일 아닐까' 하루하루 버티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자영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상황 때문에 직장에서 해고된 것도 아니고, 코로나 19의 가장 근접한 병원에서 일하며 마음 졸이는 것도 아닌데. 너무 편해서 할 수 있는 투정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코로나 19가 더 확산되지 않도록 노력하는데 그저 외부활동을 자제하라는 것쯤이야, 못할 것도 없다. 조금만, 조금만 더 자제하고 참고 견디면 모두가 다시 편해질 그날이 올 텐데. 그때까지 지금의 상황을 견딜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우울한 와중에 친한 언니가 보내준 2021년 달력을 보며 빵 터졌다. 언니와 꼭 닮은 귀여운 캐릭터를 만들어서 보내준 저 달력을 보며 다시 힘을 얻었다. 2021년엔 올해보다 더 행복하자며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내준 언니, 덕분에 웃었다.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