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흔적 20
1월 23일, 조금은 누그러진 추위. 집밥이 먹고 싶은 날이다.
처음 자취하던 20살에는 혼자 살기만 하면 요리왕 장금이가 될 줄 알았다. 이상한 자신감으로 가득해 TV나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멋지게 한상 차리고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하는 상상을 했었다. 자취를 하며 오로지 나만을 위한 집에 내 살림을 채울 수 있다는 것도 나를 설레게 했다. 원룸을 구하고 안에 들일 물건을 사러 가면서도 붕붕 뜬 기분을 숨기지 못해 엄마를 서운하게 만들었다.
마음만 앞서는 딸을 걱정스럽게 보면서도 엄만 본가 못지않게 살림을 챙겨줬다. 밥솥, 냄비부터 소소한 요리 도구, 꼭 필요한 조미료나 각종 요리 밑재료 등 작은 원룸 부엌을 가득 채웠다. 엄마는 다시 제주도로 돌아가는 날까지 불안한 눈빛을 보냈다. 식재료보다 내 손을 써는 일이 더 많을 것 같다며 끝내 시장에서 사 먹으면 안 되겠냐며 나를 설득했다.
어깨너머로 본 세월이 있으니 걱정 말라며 큰소리를 쳤지만, 결국 엄마의 예언이 맞았다. 생각보다 더 요리 과정은 어렵고 복잡했으며 엄마의 '적당히 넣어'를 이해하지 못해 늘 맛은 극단적이었다. 썰어야 할 재료가 많은 날엔 애꿎은 도마에만 상처가 가득 생겼고 손톱을 써는 날도 많았다. 요리에 흥미가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게다가 대학생활이 너무 바빠 집에서 먹는 날이 거의 없었으니 뭘 해놓아도 상해서 버리기 일쑤였다. 결국 자연스럽게 밖에서 사 먹고 배달음식으로 먹곤 했다. 이후에 직장을 구했을 때도 야근을 죽도록 하거나, 밖으로 나돌아 다니면서 취재원을 만나 자연스럽게 식사까지 하다 보니 어떤 달은 가스불 한번 켜보지 않은 적도 많았다. 딱히 이 패턴이 불편하거나 바꿔보려는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을 조금이나마 바꾼 건 미언니 집에 놀러 갔을 때 받은 정갈한 밥상 때문이다. 언니는 내가 오기 전 꾸준히 의견을 물어보더니 내가 올 시간에 맞춰 따뜻한 밥상을 차려줬다. 오로지 나만을 생각하며 신경 쓴 밥상을 받아보니 1인 가구로 살아가면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대접받는 듯한 느낌을 준 적이 있나 생각했다.
미언닌 혼자 먹을 때도 음식에 맞는 식기, 테이블 매트를 골라 분위기를 내고 정갈하게 차린다고 했다. 언닌 오늘 하루도 고생한 나에게 보상을 주는 혹은 잘 버틴 나에게 주는 작은 위로라고 말했다. 집에서 먹는 별거 없는 밥이지만 대접받는 느낌으로 오늘 하루의 피로를 푼다고 했다.
그래서 올해 목표를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은 나를 위한 요리를 하기'로 정했다. 조금 귀찮고 피곤할 수도 있지만 오롯이 나만을 위한 음식을 만들어 나에게 대접하고 싶다. 의욕만 앞선 옛날과 다르게 차근차근 쉬운 레시피를 찾아 도전하고 신선한 재료를 사서 건강한 요리를 만드는 것에 즐거움을 느껴봐야겠다.
언젠가 내가 봐도 뿌듯한 요리를 만들고 고생한 나에게 보상 같은 근사한 음식을 만들어낼 날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