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흔적 7
12월 22일, 햇볕이 따뜻한 겨울. 사진을 둘러보다 막내를 발견했다.
우리 강아지를 처음 만났을 때는 이맘때 겨울이었다. 2001년 12월, 막내를 처음 만났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밖에 내리던 눈보다 더 하얀 털과 까만 콩 세 개, 심장이 쿵한다는 느낌을 막내에게서 처음 느꼈다. 손바닥에도 품어지던 작은 아이를 안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평생 이 아이를 사랑하고 아껴주겠다고 몇 번이나 맹세했다.
막내는 타고난 사랑둥이였다. 사람을 좋아했고 똑똑해서 배변도 잘 가려 우리 가족 모두가 좋아했다. 질색하던 엄마는 말과는 다르게 간식을 잔뜩 사와 입에 넣어주었고, 시큰둥해하던 아빠도 어느새 나와 막내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곤 했다.
작은 생명은 우리 집에 빠르게 뿌리내렸다.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 해 하교 후 나를 맞이하는 건 막내였다. 혼자 잠들던 침대에서도 꼬물거리는 막내의 따뜻한 온기에 안정을 느끼곤 했다. 적막하고 어두운 집이 무서울 때면 막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곤 했다. 내 삶에 스며든 이 아이가 소중하고 소중했다.
평생의 단짝 같던 우리 사이도 늘 같을 수는 없었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공부를 핑계로 전처럼 놀아주지 못했다. 무심한 언니였지만 막내는 늘 반짝이는 눈으로 내 뒤를 쫓았다. 그렇게 시간이 가고 난 집에서 나와 먼 곳에 자리 잡았다. 내 기억 속 막내의 마지막 모습은 여전히 생기발랄하고 건강한, 반짝이는 내 친구였다.
그래서였을까. 그 아이가 같은 자리에 늘 나를 기다려줄 것이라고 여겼던 오만한 마음이 생긴 것이. 강아지의 시간은 우리보다 빠르게 흐른다는 것을 망각했다. 15년, 16년 그 나이답지 않게 총명하고 건강했던 막내는 올해 들어 버틸힘이 사라졌다는 듯이 빨리 노화됐다.
좋아했던 인형을 물 치아가 사라져 갔고, 앞이 보이지 않아 점점 더 가구에 부딪히는 횟수도 늘었다. 귀가 들리지 않아 우리의 목소리도 잊어가고, 가족을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도 많았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냈다. 그러다 문득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면 멀리 도망가거나, 시선이 닿지 않은 곳에 숨어 잠을 잤다. 그렇게 잠든 막내에게 해줄 수 있는거라곤 나를 경계하지 않는 거리에서 그저 가만히 지켜보는 것 뿐이었다.
사진을 많이 찍어주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더 좋은 간식을 사주지 못한 것을 후회했고, 더 자주 시간을 보내주는 다정한 가족이 되어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했다. 여전히 하얗고 작은 이 아이에게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에도 속상해 눈물이 났다.
애정이 고팠던 시절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고, 어느 순간이던 따뜻한 온기를 나눠주던 우리 막내, 영원한 내 친구.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다 내가 웃을 때면, 기쁘다는 듯 짖으며 펄쩍펄쩍 뛰던 우리 집 영원한 사랑둥이 아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지금, 너에게 우리가 좋은 가족이었길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난 동물 털 알레르기가 진짜 심했다. 알고 나서는 약을 먹으며 버텼다. 밤에 더 심해지는 탓에 문을 닫으려 하면 애처롭게 올려다보는 눈빛에 번번이 활짝 열어줬다. 꼭 자면서도 엉덩이를 내 얼굴에 붙이던, 잠결에도 이름을 부르면 꼬리를 흔들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 녀석 때문에 나이가 먹을 대로 먹은 지금도 작은 쿠션을 등에 대고 잔다. 만약 저 멀리 무지개다리를 넘어서면 그땐 어떨지... 벌써 슬픔의 무게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