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흔적 37
3월 21일, 얇아진 외투. 직장동료와 지켜야 하는 적정거리가 참 어렵다.
인간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늘 주위에 친구들이 많았고, 유지하려고 애쓰거나 집착하는 편도 아니었다. 늘 행운처럼 마음 맞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학교생활은 기분 좋은 추억만 가득하다. 낯선 타지에서 시작한 대학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친구, 선배들도 많았고 아르바이트하던 회사에서 역시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주변에 좋은 사람만 있었다고 기억할 수 있었던 건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어서라고 생각한다. 그땐 얕고 넓은 관계를 추구했고 그 사람에 대해 잘 알려고 하지 않았으니 가끔 만나는 사이로서는 딱히 나랑 부딪히는 면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어렸던 나는 그저 모두와 잘 지내고 싶었다.
잠깐이라도 만나는 모든 이와 잘 지낸다는 것 혹은 친하게 지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고민하지 않았다. 두루두루 여러 모임에 끼고 여기저기 인사하고 카톡에 수많은 빨간 알림이 뜨는 것이 재밌었다. 딱히 사회생활이라고 할 수 없는 아르바이트였고 격식 없는 사람들과의 만남이었기에 적정거리라는 것을 몰랐다.
친근하게 대하고 친하게 지내는 것이 사교성이 좋다는 말이 무조건 좋은 건 줄 알았다. 첫 직장에서 차가운 사회생활을 맛보기 전까진. 처음엔 무엇이든 배워보고 싶어 무작정 선배들과 친해지려고 했다. 회사 사람들 모두와 웃으면서 잘 지내고 싶었다. 처음 겪어보는 직급과 사수, 동료라는 사람들에게 어디까지만 다가가야 하는지 적정거리를 몰랐다.
첫 사회생활은 쓴맛과 차가운 맛의 나날이었다. 선배들의 말을 곧이곧대로만 생각했던 난 속뜻까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울면서 배웠다. 아무리 친근하게 대해주는 상사여도 뒤에서 날 어떻게 평가할지는 알 수 없다는 것도 배웠다. 회사에선 죽이 척척 맞는 친한 동료지만 그게 어디까지나 회사 안에서만 이라는 것도 수많은 거절을 통해 깨달았다.
수많은 시행착오 덕분에 사람들마다 지켜야 할 적정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이젠 알 것 같다. 모든 사람들과 친근하고 싶어 하는 욕심도 내려놨다. 그 사람이 생각하는 거리, 내가 생각하는 거리 그즈음까지만 다가간다. 회사에서 수월하게 커뮤니케이션하는 딱 그정도. 혹시 그중 한 발자국 더 다가가고 싶고 더 다가와준다면 조금 더 친근하게 지내면 된다.
사실 적정거리는 모든 사람에게 존재한다. 직장 외에는 딱히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않아 한정적으로 썼지만 새로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칙 아닐까. 어리고 에너지 넘쳤던 그 시절처럼 모두의 마음을 두드리고 열고 다가가기엔 내 사람을 챙길 시간도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