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국수 한 그릇이 어때서

일상의 흔적 45

by 송송

4월 22일, 따뜻함에 대한 방심을 강타하는 세찬 바람. 나만 알고 싶은 단골집

오랜만에 찾아온 야근 없는 월요일이다. 점점 더워지는 날씨처럼 밝은 하늘을 바라보며 걷기 시작했다. 산뜻하고 여유롭게 걸을 줄 알았던 오늘의 여정이 생각보다 고난이다. 눈을 가물가물 뜨게 만들 만큼 세찬 바람이 불어오고 샤랄라 한 상상보다 현실은 춥고 배고팠다.


으슬으슬 추운 몸을 보니 오늘 저녁은 무조건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었다. 집까지 가는 길에 가끔 들리는 국숫집에 들어섰다. 오랜 세월을 자랑하는 맛집처럼 가게 안은 정겨운 풍경이다. 여러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반질반질한 낡은 나무 상과 얇은 방석, 구수한 멸치 육수 냄새가 이곳에 오래 자리 잡고 있는 곳이란 걸 보여준다.


자리에 앉아 늘 먹던 음식을 주문하고 잠시 멍 때리는 순간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뭐하냐는 질문에 가게 사진을 보내주며 힐링 중이라는 답을 보냈다. 사진을 본 친구는 제대로 된 곳에서 좋은 음식을 먹으라며 가벼운 타박을 했다.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내가 있는 곳은 오래 다녔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내 단골집이다.


가게를 다시 둘러봤다. 세월의 흔적이 가득해서 더 푸근해 보이고, 눈 닿는 곳마다 깨끗하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오래되어 보이는 스테인리스 수저도 끈적임 없이 말끔했고 혼자 와서 넓은 자리에 앉았지만 주인은 어떠한 말도 나에게 하지 않았다. 오늘 내 기분에서 이보다 더 좋은 가게가 있을 리 없다.


먼저 나온 김밥을 입안에 넣고 꼭꼭 씹었다. 기본 김밥 맛 그대로 고소했고 별거 없는 재료에도 충분히 그리운 맛이 났다. 뒤이어 나온 멸치 국수도 크게 한입 먹었다. 직접 만든 반죽으로 뽑은 면은 탱글탱글했고 묵묵히 끓여낸 육수는 진하고 가슴 깊이 따뜻했다. 할머니가 주말이면 큰 냄비에 가득 끓여주시던 국수와 비슷한 맛이다.


기본 김밥 한 줄, 구수하고 따뜻한 국수. 다시 사진을 찍어 보내줬건만 맛있는 거 먹지라는 답이 또 돌아왔다. 바람에 여기저기 얼어버린 몸에 이보다 더 맛있고 만족스러운 음식이 있을까. 내가 들어온 이 가게와 먹고 있는 이 음식은 제대로 된 가게에서 먹는 맛있는 저녁이다. 기분이 상하려고 했지만 그냥 깔끔하게 읽씹으로 잊어버렸다.


눈 앞에 음식에 집중했다. 촉촉한 밥알과 꽉 찬 속재료를 느낄 수 있는 기본 김밥, 여타 크게 다른 재료가 들어가진 않지만 단순한 맛으로도 충분히 맛있는 국수. 6000원, 누군가가 보기엔 소박하고 별거 아닌 저녁 일지 몰라도 오늘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 같은 밥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