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복 입고 글 쓰는 캐나다 엄마

두 번째 도전, 나를 향한 스파링

캐나다에서 태권도하면

“토너먼트는 얼마나 자주 있어요?”라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할 거야.

“수도 없이 많아요.”

진짜야.

캐나다 땅덩이가 워낙 넓은데

주마다 토너먼트가 몇 개씩 열리니까

그것만 따라다녀도 1년은 훌쩍 지나갈 것 같아.

문제는—

그 넓은 땅을 이동하려면

장거리 운전을 하거나 비행기 타는 수밖에 없는 현실.

그게 쉽지 않지.

2월에 첫 토너먼트 열기 식기도 전에

4월에 또 다른, 더 큰 규모의 토너먼트가 열렸어.

앨버타, 매니토바에서 오고,

심지어 국경 너머 미국에서도 선수들이 왔대.

그렇게 국경을 넘나드는 태권도 사랑.

참 뜨겁더라.

태극 1장으로 금메달을 받았던 기억 덕분에

품새는 솔직히 큰 걱정 없었어.

그보다 더 긴장됐던 건—스파링.

같은 도장 친구랑은

이번엔 체급이 달라서 경기를 못 하게 되었고,

내 디비전에 배정된 상대들을 보니

고등학생, 혹은 대학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들.

심지어 다들 나보다 벨트도 높고,

젊은 피.

스피드가 다르다는 건

안 봐도 비디오지.

나는 그저 노장의 열정으로 부딪히기로 했어.

노란띠가 뭐 대단한 테크닉이 있겠어.

그저 턴킥, 더블차기,

주먹 지르기에 혼신을 다했지.

그날 경기를 찍은 동영상이 하나 있어.

보면서 느꼈어.

화면 속 나는 느렸다.

그런데 말이지—

그 당시의 나는 날고 있었거든.

진심으로.

내 마음만큼 속도를 내려면

그 영상은 최소 2배속, 아니 4배속은 돌려야 맞아.

상대가 나를 옆차기로 딱 막았을 때

숨이 “헉” 하고 막히더라.

그 느낌 알아?

복부에 바람 빠지는 그 찰나의 순간.

그래도 나는 싸웠어.

40대 초반 아줌마가

진짜 스파링을 했다고.

결과는?

3경기 전패.

그때 한동안 “나 스파링 체질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어.

그런데 고맙게도

관장님이 경기 영상을

잘한 부분만 편집해서 보내주셨거든.

“배운 걸 잘 썼고,

하고 싶은 공격을 해봤으니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경기였어요.”

그 말이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줬어.

경기를 지켜본 신랑은

그날 내 안의 또 다른 사람을 봤대.

“눈빛이랑 기합에서

이기겠다는 의지가 200%였어.

너한테 까불면 안 되겠다고 느꼈어.”

응.

나 알고 보면 무서운 사람이었어.

내 안의 전사가 깨어나는 순간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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