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비자 인터뷰를 보면서, 면접관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너는 엔지니어인데, 왜 MBA를 가려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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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에서도 잠깐 언급하였지만, 멀쩡한 회사를 놔두고, 미국행, 거기다가 MBA로 가기로한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 말을 해볼까 한다.
나는 회사에 꽤나 욕심이 있었다. 성과에 욕심이 있었고, 빨리 인정받고 내가 생각한 포지션까지 높게 올라가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그런 경쟁상태에 놓이는 것을 은근히 즐겼고, 회사에서의 삶의 원동력이었다. 운이 좋게도, 내가 다니던 회사는 실력만 있다면 높게높게 올라갈 수 있는 구조였다. (물론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있겠지만...) 실제로 회사에서 12시간씩 넘게 일할 때가 많았으며, 나름 저녁에 남은 인원들과 얘기하며 같이 일을 하는 것도 정말 재미있었다.
우선 같은 회사를 다니는 아내는 내가 무엇을 하던 나를 항상 전폭적으로 지지를 해준다. 그게 회사든, 뭐든 나를 항상 믿어주었다. 하루는 야근을 하는데 뒤에 계시는 부장님한테 아기가 전화해서 "아빠 언제와?!" 하는 전화를 들었었다. 정말 무뚝뚝해보였지만 애기들이랑 전화할때 목소리가 너무 밝아지는 것을 보고 너무 신기해해서 잠깐 쉴때 아내한테 이런 일이 있었다~ 하면서 전화를 했었다. 정말 잠깐의 순간이었지만 한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일이 가끔씩 곱씹어본다. 그리고 머지않아 나도 지금과 같이 살다간 저렇게 가정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될거라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어느 회사가 그렇듯, 회사에는 정말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내가 다한 노력이 어느정도와는 무관하게 회사에는 항상 삶을 갈아넣는 분들이 계시기에 회사에선 이분들과 비교해서 성과를 내려면, 나도 그에 준하는 시간과 노력을 다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면 분명 가정에 소홀할 수 밖에 없는건 기정 사실이다. 그래서 한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 가정과 회사에서의 성과를 다 챙기는 건 적어도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선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럼 회사를 옮기면 더 괜찮아질까? 회사와 가정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생각을 했을때, 현실적으로 적당한 후보를 찾지 못했다. 어디 회사를 가든, 실상은 똑같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나는 선택을 해야한다. 가정을 챙길 것인가? 회사를 택할 것인가? 사실 정답이 정해져있는 의미 없는 질문이었지만, 애매하게 둘다 선택을 했다간 가정적이지 못하고, 회사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애매한 위치에 놓일 것 같았다. 이도저도 아닌 삶을 살기는 싫기에, 우선순위를 확실히 하고 내가 내린 선택이니 괜히 회사직위 따위에 아쉬워하지말자 라는 다짐을 하였다. 그리고 그때쯤 미국으로 이민을 간 내 친구랑 어떻게 살고있나~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였다.
그 친구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적어도 미국 Tech회사에선 회사보단 가정이 더우선시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게 당연한 문화라며 말을 이어나갔는데, 그 뒤론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여러 매체를 통해서 조금 더 찾아보았었다. 아들 음악발표회에 참석해야해서 먼저 퇴근하겠다는 직원,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항상 5시면 퇴근하는 Manager까지, 물론 이 사람들이 어떤 performance를 내는지, 매번 그런것인진 모르겠으나, 확실한건 회사에서 가정적인 것을 굉장히 호의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시작으로 여러 미국 기업 문화들을 찾아보고, 나도 미국에서 일을 하면 회사와 가정 둘다 챙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럼 나는 미국에서 어떤 포지션으로 직업을 구하는 것이 맞을까? 라는 깊은 생각을 하였다. 우선 현재하고 있는 엔지니어는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엔지니어이지만, 엔지니어 role에 대해서 조금은 회의적인 편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빠르면 2년, 길게는 10년 ChatGPT 및 다른 LLM 들이 agent화 되어 수많은 역할들을 대체하게 될텐데, 엔지니어도 이에 해당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엔지니어는 필요하지만, 한 제품을 만드는데 이렇게까지 많은 엔지니어는 필요없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어떻게 만들까? 에 대한 엔지니어적 관점보단, 어떤 것을 만들까? 의 관점이 훨씬 더 중요한 시대가 올 것이다. 이제 더이상 지식은 인간이 LLM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하지만 다행이도 창의적인건 LLM이 인간을 따라올 수 없다. 즉, ChatGPT는 스스로 ChatGPT만큼 혁신적인 것을 만들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세돌 바둑기사가 알파고에 패하고, 바둑을 잘 두는 것보다 바둑이라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야겠다 라고 말한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에 200% 동의한다.
이렇기 때문에, 단지 엔지니어 지식만으론 반쪽짜리 제품을 만들 수 밖에 없을 거라 생각이 든다.
내가 PhD 대신 MBA를 선택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