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관념을 만들고 거기에 집착합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늘 불행한 것입니다."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에 나오는 문장이다. 나는 이 문장이 마음에 걸렸다. 알듯 말 듯 마주하고 싶지도 그렇다고 너무 큰 사건이 아니어서 누군가에 공감을 받지도 못하는 내 과거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차라리 할것만 딱딱 해내고 과거와 미래는 없는 현재만 사는 로봇이 되고 싶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실외수영장으로 놀러 갔다. 다른 친구들은 물속에서 신나게 놀았다. 나는 백반이라는 피부병이 있어 사복을 입고 모자를 쓴 채 그늘에 앉아 있었다. 친구들은 햇볕이 내려쬐는 맑은 날이었고 나는 먹구름이 잔뜩 낀 날이었다. 나의 먹구름은 친구들과 함께 찍은 단체사진 속에도 남아있다. 성인이 된 지금도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제 꿈에서도 나온다. 맘껏 놀고 싶던 10대의 내가 안쓰러웠고 한편으론 수영장을 보낸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이 잔잔히 남아있던 나는 퇴근 후 소파에 누워 친구가 보내준 법륜 스님 영상을 보았다. 과거에 집착하고 후회하지 말라는 말, 이것도 습관이라고. 어떻게 태어났는지, 어떻게 자라왔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지금이 중요하다, 살아있는 지금이 전부라는 말씀.
습관이었다. 나는 이 과거를 곱씹는 게 습관처럼 남아있었다. 그렇게 나를 괴롭히면서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건 쫄보라 하지 못했다. 그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제주에서 시킨 생갈치를 내일 아침 갖다주고 출근한다고 하셨다. 엄마를 원망하고 탓했던 마음에 다시 죄스러움이 더해졌다. 요 며칠 내게 스며든 생각은 ‘나는 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까?’였다. 더 나은 나를 꿈꾼다는 걸 글을 쓰며 알게 되었다. 더 나은 내가 되려면 지금의 나를 인정하는 일이 우선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머리는 알겠는데 가슴으로 내려오지 않는 이 마음을 어떻게 하면 풀 수 있을지 답답했다. 그때 골디락스 작가의 책이 떠올랐다.
<우리 가족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작년도 브런치 스토리 대상작이었다. 읽어보고 싶었는데 미뤄두었다. 오늘이 이 글을 만날 때다. 그녀의 모든 글을 읽어나갔다. 마지막 이야기는 받아들임이었다. 이 어찌할 수 없는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저자의 말대로 쉽지 않았지만 갑자기 너무 평온하게 이런 마음이 들었다.
-나는 지금 피부병이 없잖아. 햇볕도 마음껏 쬘 수 있잖아. 그런 과거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잖아.
라고.
6학년 사진 속의 나와 상황에 매몰되어 있었음을 알아차렸다. 햇볕을 못 쬐던, 마음껏 야외에서 뛰어놀지 못한 내가 빛을 향해걸어 나오는 거 같았다.
나는 살아있다. 어떤 사실이 살아있음보다 강력하지는 않다. 게다가 그 어린 시절 놀림거리였던 피부병, 나를 움츠려 들게 했던 백납이라는 피부병, 나를 그늘과 교실에 앉아있게 했던 그놈과 작별했다. 완치했다. 그러니 내게 남은 건 그 순간을 떠올리며 우울해하는 게 아니라 지금을 생생하게 느끼며 살아가는 일이다.
엄마와 황톳길 맨발 걷기를 했다. 엄마의 오른발에는 발을 1/3 정도 덮은 큰 점이 있다. 엄마는 아직도 검은 반점이 있고, 나는 얼굴에 흰색 반점이 있었다.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 어렸을 때 백반증, 백납 언제부터 그랬지?
-초등학교 4학년때였잖아.
-중학교 때는 없었지?
-아니, 중고등학교 때까지 약 먹었지.
그렇게 오랜 시간 나는 약을 먹었구나. 엄마의 말에 의하면 초등학교 때까지는 병원을 같이 다녔고, 후로 토요일엔 학교를 가니 일요일에 병원을 같이 다녔고, 더 후로는 엄마가 약만 처방받아 왔다고 했다. 엄마는 백반증 걸린 다른 가족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이 말이 하고 싶었다.
-우리 엄마 고생 많으셨네. 나는 그렇게 오랜 시간 약을 먹었는지 몰랐어. 그거 고쳐주려고 엄마가 얼마나 애쓰셨을지 그려졌어요. 엄마는 그거 말고도 신경 쓰고 살 일이 정말 많았을 텐데.... 고마워요. 엄마. 사실 나는 6학년 때 친구들은 수영복 입고 나만 사복 입고 모자 쓰고 찍었던 단체 사진 속의 나만 기억하고 엄마를 원망하고 미워했어요. 엄마의 사랑으로 지금의 나는 볕을 쐬고 싶을 때 마음껏 쐬고 얼굴에 흰 반점 없이 살아가네요.
사람은 누구에게나 가리고 싶은 기억이나 외상이 있다. 나는 엄마의 반점을 보며 한 번도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그런 것처럼 내 과거는 엄마의 반점 같은 거라 바라보기로 했다. 마음껏 미워하지도 못할 이유라 답답했고, 원망하자니 죄책감에 사로잡혔던 내 과거가 이제 맑게 개인다. 이제 현재를 살아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