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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봄 Aug 25. 2023

부치지 못한 그리움

나의 은사님께

‘감사의 편지를 써서 자신에게 혹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선생님에게 부친다.’

줄리아 카메론 <아티스트 웨이>의 1주차 과제 중 하나였다.

감사를 표현할 선생님이 내게 있을까? 초등학교 졸업식 날 알록달록한 패딩점퍼를 입은 단발머리 13살의 나와 마른 체구에 자주색 정장을 입고 이마가 훤히 보이도록 앞머리를 세운 선생님이 떠올랐다.


김은주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중앙초등학교 5학년 3반 선생님 제자 송지현이에요. 6학년 때 2반이 되어서도 선생님과 저는 다시 만났었죠. 저의 초등생활 2년 연속 선생님! 수많은 제자 중에 저... 기억하실까요?

저희 큰 아이가 오늘부터 5학년 생활을 시작했는데 마침 3반이 되었어요. “엄마도 5학년 때 3반이었어!” 말해주니 피식 웃는 아들이에요. 벌써 30년 전이에요. 그 시절, TV에서 <5학년 3반 청개구리>라는 프로가 방영 중이었잖아요. 어린 마음에 저는 반 편성 소식을 듣고 3반이 된게 마치 연예인이라도 된 것처럼 반가웠답니다. 아름다운 외모와 단정하고 예쁜 손 글씨의 선생님이 저의 선생님이라는 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선생님, 얼마 전 백석동에 있는 한 식당에 갔는데 엄마와 아들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들어왔어요. 여성분을 보고 혹시 선생님 아닐까? 하는 마음이 앞섰어요. 마스크 위로 보였던 선생님의 짙은 쌍꺼풀과 맑은 눈망울이 너무 닮았기 때문이었어요. 옆에 아들처럼 보인 남자를 보며 '선생님의 자제분이 자랐으면 저렇게 성인이 되었겠지.' 싶은 거예요. 테이블로 가서 “혹시 김은주 선생님이세요?” 묻고 싶은 충동까지 느꼈어요. 잠시 후 음식이 나오고 선생님이라고 여긴 그분이 마스크를 벗었는데.... 아니였어요. 선생님이 아니셨어요. 직감이 와르르 깨지자 저의 모든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거에요. 선생님의 자제분은 아들이 아니었던 기억! 유치원생 정도의 공주님들이었죠. 예원이는 정확히 기억나요! 선생님 댁에 갔던 것도, 선생님 당직 날 저를 학교로 부르셨던 것도요. 그때 제가 예원이랑 놀아주었던 기억도요. 또 선생님이 기차표를 예매 심부름 보내셨던 일, 방과 후 남아서 시험지 채점했던 것도요! 반장이 아니어도 선생님은 제게 반장이 하던 역할을 주셨어요. 12살의 저는 선생님의 부름이 너무 좋았답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저는 학교에서 좀 다른 아이였죠. 피부병 때문에 햇볕을 쐬면 안 되는 제가 마음에 쓰이셔서 선생님이 제게 더 심부름도 시키셨던 거 맞죠! 친구들과 어울려 운동회 준비도 못하고 그 시간에 교실에 있던, 야외 수영장에 가서도 그늘에 앉아있던 저였잖아요! 5학년 지현이가 주눅 들까 봐 더 마음 써 주셨던 거. 그때는 제가 선생님 심부름을 단순히 잘해서, 저를 더 예뻐해서라고 여겼지만... 이제는 알거 같아요. 글을 쓰면서 옛일을 더듬어 보니 기억 사이로 선생님과의 추억이 깃들어 있음을, 선생님의 세심한 마음들이 숨어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어요.

학기 초 저의 아이들이 받아온 담임선생님 소개 글을 보니, 더욱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다른 학생들이 하는 것을 참여하지 못해도 '너는 쓸모 있는 아이야. 다른 아이와 다르다고 주눅 들지 마!'라는 마음이 들게 제게도 역할을 주신거라 생각해요. 선생님 뵈면 감사함과 그리움으로 꼭 안아드리고 싶어요. 그 때 제게 주셨던 온기를 이제야 느껴 죄송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꼭 뵙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2021년 새 학년의 출발일에

제자 송지현 올림.     


편지를 쓰고 부치지 못하는 그리움에 음악을 선곡했다.

이소라의 노래 ‘바람이 부네요’에서 ‘세상에 필요없는 사람은 없어 모두.’라는 가사가 귀에 쏙 들어온다. 오늘 저녁 내 마음에도 잔잔한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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