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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봄 Aug 26. 2023

아무튼, 편지

그 일방적인 사랑을 멈출 수 없다

나에게는 노랑 노트가 있다. 책장에 꽂힌 노트를 오랜만에 열어보았다. 내가 지은 동시와 좋은 시를 필사해 둔 것이 적혀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편지다.      


편지글들 대략 이랬다.

첫 번째 수신인은 작년 졸업하는 우리 반 어린이들. 

어린이 각각의 강점과 추억, 초등 입학을 응원해 주는 공통멘트를 넣었다.

두 번째 수신인은 추쌤이었다. 그녀는 결혼 후 십 년 만에 장을 얻어 같이 일했던 동료 교사다. 함께 일한 지 1년 후 그녀의 이직이 결정되어 헤어지는 아쉬움과 새로운 일터에서의 응원을 빌어주었다.

세 번째 수신인은 존경하는 작가 언니. 작가님의 책 출간을 축하해 주려고 예쁜 카드에 마음을 쓰기 전 이 노랑 노트에 마음을 먼저 옮겼다.

네 번째 수신인은 오랜 친구 쑤니였다. 친구는 내 첫 책을 읽고 서운함을 느꼈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이 오해를 풀고 친구와 전처럼 지낼 수 있을까 고민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다섯 번째 수신인은 이웃사촌 언니. 방학을 맞아 자신의 자녀와 친구들에게 베이킹을 해주었던 언니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어떤 선물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백수린 작가의  에세이 <다정한 매일매일>구매했다. 작가의 만 전하기 아쉬워 내 마음도 손으로 적어 보냈다.

마지막 수신인은 둘째 아이의 4학년 담임 선생님이었다. 아이의 즐거운 4학년 생활을 느끼며 담임 선생님께 절로 감사했다. 학부모로서 고마움을 마지막 종업식날 아이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노트 속 적어둔 모의 편지이자 글씨 연습들은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는 내 마음이다. 그 마음을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잘 전할 수 있을지, 좀 더 예쁜 글씨로 적어줄지 고심다. 편지를 쓸 때처럼 받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또 있을까?     


결혼하면서 그동안 받은 편지들을 박스에 모아 담아왔다. 그 안에는 서방의 러브레터, 유치원에 근무할 때 학부모들에게 받은 편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리듯 쓴 어린이들의 편지, 사랑하는 가족의 편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나와 관계를 맺은 친구들의 편지다. 그 추억 차마 버리지 못했다. 결국 어느 날 편지들을 정리하게 되었는데  이유는 이랬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편지를 읽어가며 웃 울던 내 모습이, 나만 상대를 사랑하고 생각하는 듯한 내 마음이, 결국 내가 더 사랑하는 짝사랑 다. 그럼에도 그 일방적인 사랑의 방식을 나는 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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