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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봄 Aug 27. 2023

때론 길을 잃고 헤매지만

그래도 엄마가 된 덕분이다

오랜만에 거울 앞에 앉았다. 평소 바르지 않던 비비크림을 꺼내 얼굴에 두드렸다. 거울을 보고 한번 웃어본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말 끝을 올려야 할까. 내려야 할까?

국공립 유치원에 시간제 기간제 교사 면접 보러 가는 날이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넣 1차 합격 문자를 받았다. 아직 교사로서 전문성과 자격이 유효한 듯했다.

면접 시간 딱 5분 전에 도착했다. 유치원 입구에 두 명의 교사가 나와 안내해 주었다. 신발을 넣고 손 소독, 열 체크를 마치고 2층으로 올라갔다. 놀이 실에 면접자들이 스무 명쯤 되었다. 잠시 후 문을 열고 한 분이 들어오시며 말한다.

“질문에 대해 아주 간단히 1분 이내로 답해주세요. 한 명씩 면접 진행하겠습니다.”

‘간단히’란 말에 쉬운 질문을 하리라 예상했다.

‘다시 일을 시작하려는 이유를 묻겠지.’

그 이유를 생각하며 내 차례가 되기를 기다렸다.

“송지현 선생님!”

드디어 내 차례다. 면접실 앞에 앉아있는데 앞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밖으로 들리는 걸 보니 면접자의 자신감이 전해진다. 무슨 답변을 그리 길게 하는지 모르겠다. 분명 짧게 답해달라고 했는데....

내 차례가 되어 면접실로 들어갔다. 책상 앞에 5명의 면접관이 있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차례로 물었다.

“개정된 유치원 누리과정에서 놀이 중심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놀이 중심에 따른 교사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교사에게 자꾸 고자질하는 아이를 어떻게 지도하실 건가요?”

“학부모가 불만 사항을 이야기할 때 어떻게 대처하시겠습니까?”

......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에 면접관들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진다. 어떤 질문에는 솔직히 모르겠다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내 얼굴은 후끈 달아올랐다. 면접을 마치고 도망치듯 1층으로 내려갔다. 현관문이 열리지 않았다. 침착히 둘러보니 위쪽에 자동문 버튼이 있었다. ‘아이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구나. 아 여긴 유치원이지!’ 문이 열리고 발걸음은 빨라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기억을 되감기 시작했다.

면접 보기 전날 나는 좋아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새벽까지 봤다. 면접 준비라고는 유튜브 영상에서 ‘유치원 교사 면접’, ‘면접 잘하는 법’ 검색해 본 정도였다. 면접 상황을 떠올리면 나는 프라이팬에 올려진 주꾸미 같았다. 볶을수록 작아지는 주꾸미.      


결혼 후 일을 하지 않고 아이 낳고 키웠다. 아이들 어렸을 때는 그냥 엄마만 하고 싶었다. 아이 모두 기관에 보내면서부터 좋아하는 일을 찾아 헤매었다. 지인의 소개 흡연예방교육 강사, 인성교육 강사로도 잠시 활동해 보았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과 성취를 주었지만 일정한 수입이 되지는 못했다. 결국 마지막 카드 유치원 1급 정교사 자격을 꺼내 들었다. 야심 차게 꺼내든 카드는 실패로 돌아갔다.


 20대 시절 나와 함께 근무했던 교사들은 결혼 후 어느 정도 아이를 키우고 대부분 유아교육 기관으로 취직을 했다. 좋아하는 일을 찾겠다고 강사 일을 도전할 때 지인은 말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유치원에서 너 일 잘했잖아.”라고.

매 순간 나는 흔들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좋아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에서. 오롯이 나로서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당당하게 하기 위해 돈을 벌고 싶었고, 엄마인 나로서는 가정에 경제적 보탬이 되기 위해 돈을 벌고 싶었다.

그 돈을 벌기 위해,

4시간 기간제 일이라고 준비 없이 치른 면접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교사로서의 전문성은 교육 현장을 떠나며 함께 떠났음을. 전문성이라는 것은 자격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격이 되는 일이라고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이 아님. 면접은 세상 밖 나의 위치를 알게 해 주었다.


엄마가 되고 난 가끔 길을 잃고 헤맨다.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지도 못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자부한 것도 자만이었다. 하나는 분명히 알았다. 모든 일엔 간절함과 노력이 있어야 했다는 것. 속이 아직 덜 자란 겉만 어른인 내가 조금 더 성장하기 위해 엄마가 되었나 보다. 그래 엄마가 된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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