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시 유치원 교실에 들어서면 양팔을 벌리며 안기는 스트레이트 생머리 아이가 있다. 윤아는 나를 보면
"집에 가지 마."
말한다. 그 말의 뜻은 무엇일까?
보자마자 건네는 말이니 "안녕하세요" 정도로 받아들여야 하나.
태권도 학원으로 하원하는 아이는 집에 갈 때도 집에 가지 마
라고 말한다. 그럼 난 또 "안녕히 계세요"의 다른 말로 이해한다.
어제는 윤아에게 말했다.
"너도 가지 마~~~"
지난달 유치원 놀이 주제가 꿈이었다.
어린이들은 자신들이 관심 있는 다양한 꿈을 소개했다.
많은 것이 되고 싶은 윤아의 눈이 반짝였다.
발레리나, 가수, 아이돌, 선생님...
윤아는 물었다.
"선생님은 어렸을 때 꿈이 뭐였어요?"
"선생님은 간호사선생님이 되고 싶었어."
"근데 왜 선생님이 됐어요?"
"꿈은 바뀔 수 있는 거니까."
"아.. 왜 간호사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어린 시절 병원에 가면 의사보다 간호사를 먼저 만났다. 열이 나면 옷 사이로 겨드랑이에 체온계를 꽂아주었다. 내가 자주 가던 동네 의원은 의사보다 간호사가 더 멋있는 사람이었다. 친절하고 다정했다. 체온을 잴 때뿐 아니라 엉덩이 주사를 맞아야 병원에서의 진료가 끝났다. 내 은밀한 부위를 보여줘야 하는 간호사가 더 믿음이 가고 권위 있어 보였다. 병원놀이를 할 때 나는 간호사역할을 했다.
간호사에 대한 로망은 초등학교 시절 내가 갖던 꿈 세계였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막내삼촌이 결혼을 했다. 가족의 새 식구가 된 작은어머니가 결혼 후 한 달 정도 우리 집에 같이 살았다. 작은 어머니는 14살인 내가 알던 사람 중 가장 다정한 말투를 지닌 분이었다. 작은어머니의 전직은 유치원 교사. 그때 난 유치원 교사는 모두 다정한 말투와 친절을 지닌 줄 알았다. 적당히 아이들을 좋아했고 적당히 친절할 줄 알았던 내가 선택한 꿈은 바로 유치원교사였다.
이것이 윤아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다.
7살 윤아는 나를 가끔 생각하게 한다. 결혼 전 유치원 교사였다가 결혼 후 다른 일도 해보고 10여 년 만에 다시 유치원으로 돌아온 나를 돌아보게 했다. 어쩌면 진짜 꿈을 찾지 못해 방황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품던 꿈은 설레는 미래다. 이제 나의 꿈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