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렐루야! 지름신과 작별하기
몇십만 원 쓰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해하던 일개미 직장인에게는 낯선 일이었다. 결혼 준비로 이것저것 계약할 때마다 몇백이 나갔다. 결혼식 및 혼수를 위해 준비해둔 돈을 이제 신나게 쓰기만 하면 되는데 영 신이 나지 않았다. 플래너가 제시하는 대로 순식간에 선택을 했다. 예물, 혼수 준비도 몇 시간 구경하고 바로바로 몇 백씩 질렀다.
쓰면 쓰는 대로 사라지는 돈, 어디서는 좀 절약하고 어디서는 좀 과감히 질러야 하는지 누가 알려줬으면 하는 마음. 소소한 소비만을 즐기던 나에게 결혼 준비는 첫 소비의 경험이었다. 그것은 도안이 없는 하얀 도화지처럼 막막하게 느껴졌다.
어찌어찌 한고비 넘기니 바로 두 번째 관문이 다가왔다. 임신과 출산. 결혼 준비가 태평양이라면, 출산준비는 듣도보지도 못한 인도양이었다. 육아용품의 세계라는 또 다른 차원의 신세계가 맞딱드렸다. 결혼 준비와 마찬가지로 출산준비에서도 어떤 게 좋은지 알려주는 유튜브 동영상은 수없이 많고, 인스타그램 홍보 게시물은 그렇게 다양했다. SNS의 알고리즘은 또 어찌나 지독한지.. 육아용품을 한번 검색해봤을 뿐인데, 이와 관련된 영상과 자료들을 무한대로 추천해서 쉴새없이 내 피드에 올려댓다.
준비하기도 전부터 벌써 질릴 지경이였다. 나는 왜이렇게 돈쓰는 게 스트레스일까. 남들은 돈쓴다고 재밋다고 하던데... 나는 왜 재미가 없지?
나는 어떻게 돈을 소비해왔던가. 지난날 나의 소비패턴을 생각해보았다.
새벽2시, 몽롱한데 잠이 오지 않는 헛헛한 날의 밤. 무의식적으로 옷가게 앱 '지그재그'에 들어가 본다. 마땅히 살 것도 없으니 베스트에 가서 요즘 뭐가 잘나가나 구경하다가.... '어머 이건 사야 해!' 내적 외침을 마치고 질렐루야! 지름신이 결제까지 한번에 끝내주신다. 7만원인데 뭐.. 이럴려고 돈 버는거지.. 그리고 새벽 동이 틀 때 쯤 잠이든다....
아침 8시, 전날 술을 마셨는데 일찍일어나는 습관때문에 잠에서 일찍 깬 아침. 일어나긴 싫고 침대에 누워 카카오톡 쇼핑을 뒤적뒤적 거린다. 핫딜 새로고침을 여러번.. 문뜩 눈에 띄는 햇밤 3키로에 9,900원! 요즘 밤 먹고 싶었는데! 한번 사볼까? 근데 9,900원이면 싼건가? 모르겟다. 그냥 질러~ 핫딜인데 싸겠지! 질렐루야! 그러다 속이 너무 쓰려 화장실로 뛰어들어간다....
그동안 나는 ‘돈 쓸 줄 모르는 사람’이었던 거다. 돈을 ‘잘’ 쓴다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돈 쓰는 데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다. 몇 백씩 쓸 일도 없었거니와, 오만 원 십만 원의 소비면 행복했기 때문이다. 결혼 준비 당시 돈 쓰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던 것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돈 쓰는 것도 시간 투자를 해야 재미있다는 걸 그땐 몰랐다.
다행히 출산준비는 결혼보다 조금 오래 준비해보았다. 신이 아이 맞을 준비를 하라고 준 열 달이라는 시간 동안 열심히 검색해보고 따져보니 마음가짐이 좀 달랐다. 많이 찾아보고 비교해본 만큼 결제버튼을 당당하게 눌렀다. 이건 어떠어떠한 이유로 꼭 사야 해라는 명분이 생긴 것이다. '이건 우리 아이가 이렇게 저렇게 사용할 거니까 꼭 사야해. 그중에서도 이브랜드가 제일 맘에 들어! 디자인도 너무이뻐! 아이가 쓸 상상만해도 벌써 심장폭행이야! 결제버튼 꾹!' 출산준비물과 육아용품을 사는 동안에는 돈 쓰는 것이 제법 즐겁게 느껴졌다. 내가 고른 이 아이템이 얼마나 괜찮은지 주변에 알려주며 소문내고 싶은 마음이 샘솓았다.
이제 나도 돈 쓸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지름신과 눈물의 작별을 하고 돈 잘 쓰는 법을 천천히 배우는 중이다. 살 것에 대해 많이 공부해야 그 소비가 보람 있다는 것을 돈을 써가며 느끼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