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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뇨 Oct 28. 2024

빅맥 한입

추억을 더듬는 요리, 빅맥

같은 레스토랑에서 한 메뉴만 시키고 매번 수업 때마다 같은 곳만 앉는 자신만의 무언가가 있지 않은가? 어렸을 때부터 영어 시간마다 같은 책상에 앉고 식당에서 같은 메뉴만 시키는 것를 좋아했다. 그것이 지켜지지 않더라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다만 관성처럼 같은 공간에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그렇게 십 년 넘게 맥도날드에서 빅맥만 시키고 있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그 땐 어떤 햄버거도 상관없었다. 그저 누군가가 사준 햄버거와 콜라를 마시며 그저 그런 음식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다 고등학생 때부터 빅맥은 이상하게도 나만의 음식으로 다가왔다. 학교 끝나고 들린 맥도날드에서 항상 빅맥을 시켰고 허기를 때우는 용도로 코 앞으로 다가온 마감일을 맞추기 위해 컴퓨터 앞에서 먹는 햄버거도 항상 빅맥이었다. 그렇게 10년 넘게 빅맥을 먹다 보니 빅맥에 담긴 여러 기억들이 많다. 오늘은 그 추억들을 더듬어 볼까 한다.



빅맥을 먹는 방법?!

4-5시만 되면 학교가 끝났다. 국제학교를 다녀 수업 후 activity를 해도 다섯 시 언저리에 끝났다. 베네수엘라의 교통 체증 어마어마해 그 시간대만 되면 2-3시간이 걸려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다 보니 5시 이후까지 학교에 남아있을 때면 학교 가까이에 사는 친구집에 갔다. 같은 학년이기도 하고 함께하는 숙제도 많아 방과 후 친구네 집으로 갔다. 친구 집 옆 상가에는 큰 백화점이 있었는데 그곳 1층에는 깔끔한 맥도날드가 있었다. 처음으로 내 손으로 빅맥을 시켜본 것도 그 무렵쯤이었다. 그 친구도 꽤나 빅맥쟁이었는데 그 친구만의 빅맥 먹는 방법이 따로 있었다.



베네수엘라는 케찹을 짜는 기계가 따로 있어 직접 케찹을 통에 짜야하는데, 케찹을 3-4통씩 짜 빅맥 사이사이에 뿌렸다. 크게 봤을 때 패티, 고기 순으로 5개로 나뉜 빅맥 층마다 케찹을 듬뿍 바르고 정성스레 포개어 크게 한입을 물었다. 고등학교 때 무슨 생각이 있을까. 친구의 빅맥 먹는 방법이 재밌어 보여 매번 따라 했다. 솔직히 처음엔 짰고 나중엔 물 없인 빅맥을 못 먹을 수준이 되니 나만의 빅맥 먹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출처: Heinz


처음에는 세 칸씩 케찹을 발라 먹다 나중엔 제일 첫 번째 고기 패티가 있는 곳에만 캐찹을 두른 후 먹는 부위에만 소량으로 케찹을 뿌려 먹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한 입 먹고 케찹을 조금 뿌린 후 한 입을 먹고 하는 식으로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먹는 게 나만의 방식이 되어 여전히 그렇게 먹고 있다. 제일 위에 있는 빵을 열어 감자튀김을 붓삼아 케찹을 패티에 슥슥 바르고 다시 빵을 덮고 빅맥을 먹기 시작한다. 시간이 걸려도 사소한 디테일을 넣어 먹는 게 좋다.




감자튀김을 왕창 넣는 재미

우리 학교는 급식이 따로 없었다. 집에서 도시락을 싸 오거나 밖에서 음식을 사 와 학교 안에서 먹는 것이 보통이었다. 내 한 학년 위 이탈리아 친구가 하루는 빅맥을 가져왔다. 가볍게 소파에 걸터앉아 빅맥을 먹기 시작하는데 그 모습이 꽤나 낯설었다. 매번 스파게티를 싸 오는 친구였는데 오늘은 빅맥이라니.. 그러다 친구의 빅맥이 이상해 보였다. 뭔가 비정상적이게 울퉁불퉁한 느낌이라 할까. 자세히 보니 친구는 패티 위에 감자튀김을 왕창 올려 먹는 것이었다.


그 장면은 고등학생인 나로서 꽤 충격적이었다. 케찹을 발라먹는 것만이 햄버거 변형이라 생각했던 난데 거기에 한술 더 떠 감자튀김까지 올려먹다니 신세계를 맞이한 느낌이었다. 이탈리아 친구는 매번 이렇게 먹는다 했다. 빅맥이 생각보다 밍밍해 감자튀김을 올려먹을 때 더 간이 쎄져 맛이다나 뭐라나. 내가 질수 있으랴. 학교 끝나 부리나케 맥도날드로 달려갔다. 맥도날드에서 빅맥을 시켜 케찹도 뿌리지 않고 감자튀김만 넣어 먹었다. 평범한 빅맥보다 맛있겠지 생각했는데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감자튀김이 쉽게 눅눅해지고 한 입에 씹히는게 많아 빅맥의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없었다.  



역시 서로만의 먹는 방법이 있는 것이다. 내 다른 친구는 감자튀김을 밀크쉐이크에 찍어먹기도 하고 빅맥을 밀크쉐이크에 담궈 먹기도 하는데 그것까지는 따라하지 못했다. 어느새 나만의 빅맥론이 정립됐는지, 내가 생각하는 버거에 벗어났다 생각해 시도조차도 해보지 않았다. 독자들은 자신만의 빅맥 먹는 방법이 있는가? 이탈리아 친구처럼 감자튀김을 왕창 넣어 먹어보는건 어떨까?



파리에서 먹는 차가운 빅맥

영국에서의 교환학생이 끝나자마자 파리를 들렸다. 12월쯤이었는데 바람도 쎄고 히피들도 많아 조심하면서 걸은 기억이 있다. 파리는 정말 끝내줬다. 어딜가도 패션니스타들이 넘쳐났고 모든 빵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으며 어떤 요리를 먹어도 맛있었다. 흥청망청 쓰다보니 파리에서 쓸 수 있는 돈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루 뒤면 파리를 떠나야 하는 계획이었기에 돈을 더 쓰지 못하고 하루종일 굶으며 여행지를 다녔다. 그러다 배가 너무 고파 숙소 앞 맥도날드에 들어갔다.



동네분들이 자주 가는 맥도날드였던 것 같다. 낯선 이에 등장에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고 여러 인종이 있었지만 아시아인은 나뿐이었다. 조심히 카운터로 가 빅맥을 시켰고 아무도 없는 자리에 앉아 눈치를 보며 빅맥을 기다렸다. 아무 누구도 해코지를 하지 않았지만 뭔가 주눅드는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날따라 빅맥이 차가웠다. 낯선 곳에 떨어졌다는 느낌과 내가 이곳에 소속되지 않았다는 것이 강렬해 쉽사리 지울 수 없었다. 마치 빵이 물기를 물고 있는 듯 햄버거는 무거웠고 콜라의 탄산은 어느날보다 강하게 쏘아됐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가 소속되지 않았다는 것도 잠시 머물다 간다는 것도 모두 사실이기에 모두 괜찮았다.



그래도 내가 항상 먹던 방식으로 빅맥을 먹고 콜라까지 마무리 한 후 맥도날드를 나섰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지만 이방인이 된 느낌은 베네수엘라 이후 처음 느낀 감정이었다. 그래도 그 이방인이 나쁘지 않았다. 나머지 다른 파리에서의 추억들이 좋았기에 맥도날드에서 밀려오는 감정은 웃으면 넘어갈 수 있었다. 그래도 빅맥은 별로였다. 내 마음이 별로니 빅맥도 마찬가지로 별로일 수 밖에.




음식이란 함께 나눈 좋은 이들과의 대화, 분위기, 셰프의 눈빛, 주방의 에너지, 직원의 말씨, 그리고 나의 감정과 느낌이 모두 뒤섞여 어느 날의 경험으로 저장되기 마련이니까.
- 이민경, 『도쿄 큐레이션』, 진풍경





글을 쓰다보니 빅맥은 일반적인 햄버거를 넘어 나에겐 추억을 담고 있는 요리인 것 같다. 그냥 빠르게 먹고 지나가는 음식이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 교환학생에서 있던 일들 등이 담겨 있는 내 인생 음식이다. 자신만의 인생 음식을 한 번 생각해보는게 어떠할까. 수많은 추억이 담긴 음식이자 특별히 기억나는 사건이 녹아있는 음식말이다. 그런 음식을 생각나는 것만으로도 자기 자신을 더 이해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 자신만의 먹는 방법까지 생겨날 수 있으니말이다. 내일 자신만의 인생 음식을 먹어보는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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