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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Su Jun 11. 2024

은사님을 찾았어요.

여전히 교복입은 여고생입니다.



"여보세요?"

첫 목소리에 바로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이다!
변치않은 목소리가 나를 확 낚아채 열아홉의 나로 데려다 놓는다.
해사한 젊은 선생님들과 푸릇하고 순진한 아이들의 교정 속으로,
여름이면 학교 담장의 빨간 장미넝쿨을 은근 자랑스러워했던,헐렁하게 축 늘어진 교복입은 내 모습으로 .

교육청의 서비스 중  '은사님 찾기' 가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 건 딸아이였다.
 가끔씩  여고시절 잘따랐던 수학 선생님이 보고 싶어 찾고 싶다  말하곤 했는데, 어느 날 메세지로 교육청의 서비스 화면을 캡쳐해 보내왔다.
은근슬쩍 이런걸 신경써주는 아이가 고맙고 예뻤다. 얼른 서비스 신청해보라고 채근하는 아이덕에 용기를 내보았다.



은사님 찾기 서비스는 교육청 담당자에게 내 이름과  찾고싶은 은사님의 존함,과목,당시의 학교  등 몇 가지 사항을 확인한 뒤 신청을 받는다.
담당자가 은사님을 조회하고 연락한 뒤에 행여 거절이라도 당한다면, 그 마음 상할 일이 더 걱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선생님께 나름 애제자였다고 생각해 온 내 마음을 믿으며 연락처와 이름을 남겼다.
하루이틀 사이 연락이 오지 않으면 그분께서 거절하신 것인줄 알라는 담당자의 말에 긴장감이 더해졌다.

서너 시간이 흘러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수업중이라 바로 받지는 못했으나 뭔가 심장으로 반응하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평소 스팸전화에 질색팔색인지라 모르는 번호는 일절 받지도 않았던 내가,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남겨져있는 그 번호로 발신을 한다.

앗! 선생님 목소리다.
수학을 가르치셨던  선생님은 지금  그 학교의 교장으로 계신다.
학교를 떠나지 않으신 것도 좋고,교장이 되어계신다니 더 기쁘다.
단번에 나인줄 알았다는 말씀에 감사했다.
18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제자를 기억하는 스승의 마음에 뭉클하고 놀랍다.



갑작스레 닥쳤던 이틀간의 진한 우울함에 어찌할 바 모르고 있었는데,
선생님의 목소리는 나를 好조의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자꾸만 배시시,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아이처럼 길을 가면서도,밥을 먹다가도,심지어 병원에서 따가운 주사 치료를 받으면서도 나사빠진 웃음이 삐져나온다.

한가해지면 학교로 꼭 찾아오라는 다정한 말씀이, 두 달간 하루종일 몸이 매인 채 해야하는 일들의 수고로움을 견딜만한, 후딱 치러버려야 할 임무로 바꿔버렸다.

오늘도 난 열심히 지낼것이다.
하루 일과에 충실하고도 바지런하게 서른,또 서른의 날을 보내고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날을 두근두근 기다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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