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은 아이의 생일이다.
입학, 개학날이 되기도 하고 삼겹살 데이 이기도 하고, 아이의 생일은 종종 신학기의 분위기에 묻히곤 한다. 그래서 며칠 당겨서부터 생일 기념은 소소하게 이어진다.
때때로 아이에게 미안해진다. 하필 이 때 낳아서 생일 축하받는 일도 어렵게 만들었다. 지난 해의 벗들과 헤어지고 새로운 해의 벗들을 아직 사귀기도 전, 다른 친구들처럼 학기 중에 생일이 있었다면 좀 달라졌을까?
엄마라는 이름으로 별게 다 죄책감이 든다. 늘 엄마의 마음은 무엇이든 ‘부족함’으로 해석하는 필터가 있는 모양이다.
오늘은 아이의 고등학교 입학식 날이었다.
고등학교 입학식은 많이들 참석하지 않는다 들었지만, 극구 부모의 행차를 거부하는 아들이 아니어서 다행인 건가. 자식 딱 하나인데 입학, 졸업식을 참석하는 것도 부모 되어야 누릴 수 있는 감사한 일이니 놓칠 수는 없다.
간만에 국기에 대한 경례도 하고 애국가도 부르고. 평소 하기 힘든 이런 일도 이벤트라면 이벤트이니 그것도 좋았다.
안고 얼러가며 키웠던 꼬꼬마가 이제는 나보다 키 큰 숙녀가 되었다. 고작 3년 뒤면 성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저 너른 세상에 성큼 혼자 서는 날이 올 것이다. 품 안에서 고이고이 보호받는 아이를 세상에 건강하게 내보내기 위해 지금 연습과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의 탄생과 함께 우리는 늘 ‘처음’을 함께 하며 배워가며 동시에 자랐다. 눈물을 주고받고, 싸움도 주고받고, 상처도 주고받고… 그러면서 서로를 인정해가고 이해해가는 과정에 있다.
때때로 우리는 다른 언어를 쓰기에 오해를 쌓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의 마음의 본질이 어떠한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불안하지는 않다. 늘 곁에 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마음, 불안하지 않은 보호받는 느낌. 그것은 비단 아이의 입장에서뿐 아니라 부모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우리의 그늘 아래 따가운 볕을 가려주고, 우리의 품으로 모진 비바람을 막아줘 가며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아이 역시 마찬가지다. 존재 그 이유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세상의 모든 것을 만끽하게 하는 것이 아이다.
아이가 절로 이 마음을 알아줬으면 싶지만, 표현을 더 많이 늘려가겠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나 대화의 주제가 공부로 빠지기 쉬운 중고등학교 시절, 아가 적 보다 사랑의 표현 분량이 훨씬 많이 줄어들기 쉬운게 사실이니까.
염려의 마음보다 지지의 마음을 더 많이 보여줘야겠다 생각한다. 험난한 고등 3년의 시기를 외롭지 않게, 너무 불안하지 않게 건강히 잘 자라게 하고 픈 마음이다.
그러나 이런 마음에도 공부 잔소리를 일절 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양심상 섣불리 하기 어려울 것 같다. 분명 나는 꽥꽥 대고 있는 어느 날들이 많아질 테니까. 하나 약속할 것은 아이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말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새로운 다짐.
지난 '말의 실책' 따윈 흘려보내고 앞으로의 3년을 꿀 먹은 벙어리, 활짝 열린 귀, 늘 따뜻한 품을 가진 엄마로서 한 자리에 있어주겠다고.
함께 하는 사람, 너를 비추는 가로등 같은 존재로 너의 방문 바로 앞에 있을 거라고.
이제 고등학생의 삶 1일차.
새벽, 아침, 점심, 저녁, 밤의 추억으로 가득 쌓일, 깔깔깔 여고생들의 웃음소리 찬란할 고교시절을 지지하고 또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