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잠들고 나면 헛짓하지 말고 일찍 자라. 쓸데없이 라면 같은 거 먹지 말고 밥 꼬박 챙겨 먹어라.
잔소리 폭탄과 함께 혹여 아프기라도 할까 나보다 날 더 걱정해주는 엄마 말이다.
시어머니는 요양병원에서 삶을 보내고 계신다.
결혼할 때 병원으로 첫인사를 갔었고 그 뒤로 10년이 넘는 시간을 그 자리에서 우릴 기다렸고 반기셨다.
처음 인사 갈 때만 해도 시장 나들이도 가끔 다니시고 병원 내 산책도 가능하셨는데 얼마 전부터는 거동이 힘드셔서 많은 시간을 침대에서 보내신다. 온갖 통증과 싸우는 와중에도 손주들과 영상통화를 할 때면 어김없이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가끔 아이들의 이름을 바꿔 부르는 귀여운 실수도 빼먹지 않으신다.
우리 집과 요양병원의 거리는 3시간이었는데 얼마 전 1시간 거리로 이사를 오게 됐고 나만의 루틴을 정했다.
남편 월급날 = 어머니께 가는 날
귀한 음식 생긴 날 = 어머니께 가는 날
물론 간다고 어머니 얼굴을 뵐 수 있는 건 아니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 면회는 따로 예약절차가 있기 때문에
과일과 간식거리를 한 아름 사들고 가서 원무과에 전달을 부탁드릴 뿐이다.
병원에서는 잘 나오지 않는 멜론, 파인애플, 수박등 먹기 좋게 자른 컷팅 팩을 주로 가져간다.
매번 원무과까지 내려와 무거운 박스를 가지고 가실 간호사님을 위한 컵과일도 잊지 않고 넣는다.
안녕하세요. 김 oo 환자분께 전달 부탁드립니다. 막내며느리예요.
임무 완수 후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면 웬만해선 잘 안 받으신다.
1시간 후쯤 전화가 온다.
"니가 또 이래 보냈나 고맙다 마이도 보냈다야야! 근데 어째 이래 잘해 보냈노 간호사들도 잘 먹겠다고 내한테 와서 다 인사하고 갔데이. 니는 이쁜 짓만 골라서 하노. 막내며느리 고맙고 사랑한데이."
남편이 막내에 늦둥이라 나이가 많으시지만 신식 할머니다. 며느리에게 먼저 사랑고백도 해주시고 말이다.
그런 시어머니에게도 엄마가 있다. 올해 96세이신 남편의 외할머니 말이다.
외할머니는 잘 안 들리시기 때문에 입도 크게 목소리도 크게 해야 된다.
"할머니 저 왔어요!!!!! 상태네 왔어요!!!!!!"
주방 서랍에서 김장봉투 2개를 꺼내라고 하시더니 들고 따라오라며 앞장서신다.
따라간 옆방에는 달콤함을 잔뜩 머금고 있는 부사가 노란 플라스틱 박스에 가득 들어 있었다.
김장봉투에 하나는 많이 담고 하나는 적게 담으라하시며 너거는 저번에도 가져갔고 사 먹을 수도 있지만
너거 시어매는 병원에서 나갈 수가 있나 사 먹을 수도 없잖아 라며 이유를 설명하셨다.
"너거 시어매 마이 갖다 줘 알았지 꼭 많은 거 너거 시어매 갖다 줘"
"근데 할머니 이렇게 많이요? 제가 과일은 자주 사다 드리기도 하고 이 많은 걸 어머니가 어떻게 다 드세요?"
"옆에 사람들한테 얻어먹기도 하잖아. 그만큼 다 나눠주고 해야지. 안 많아. 다 갖다 줘. 집에 사과농사를 지어도 내가 갖다 줄 수가 있나 가슴이 아파 내가. 가가(그 아이가) 자식 중에 인물도 그래 좋고 했는데 이래 힘드니 내가 가슴이 너무 아파. 꼭 너거 시어매 마이 갖다 줘 알았지"
아침부터 일찍 나서 줘서 고맙다며 연신 내 손을 잡고 손등을 쓸어주셨다.
사과며 무며 어찌나 많이 주셨는지 주차장에서 내려 원무과까지 가는데도 짐가방을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쉬면서 갔는지 모른다. 아픈 딸에게 더 주지 못해 꼭꼭 눌러 담은 엄마의 사랑이라는 걸 나는 안다.
진짜 무겁다는 나의 당부에도 아랑곳 않고 건네받던 원무과 직원은 헉! 소리와 함께 눈이 옆으로 길어졌다.
일그러지는 표정을 보니 다음엔 원무과 직원의 뇌물(컵과일)도 함께 챙기는 게 좋겠다.
우린 원만하게 지내야 되는 사이니까.
1시간 뒤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니가 가까이 와서 참 좋다. 아침부터 갔다 온다고 고생 많았데이. 운전 조심해서 가그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