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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Dec 15. 2022

지푸라기 값은 330만 원

 

속담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움켜쥔다]
위급한 때를 당하면 무엇이나 닥치는 대로 잡고 늘어지게 됨을 이르는 말.





남편은 내 절친이다. 도서관도 마트도 항상 같이 가주는 기사고 보디가드다. 그런 그가 이직을 하게 됐고

우린 이사를 가야만 했다. 곧장 아파트 상가 부동산으로 갔다.

남편은 "소장님 6억 2천 받아주시죠" 호기롭게 말했고 "삼촌 요새 손님 없다! 그 금액 안될 낀데?

일단 그래 올려놔보께!" 소장님은 어정쩡하게 대답했다.

당장 출근을 해야 되는 남편은 회사 앞 월세 50만 원짜리 원룸을 단기 계약했다.



짧게 끝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주말부부 생활이 시작되었다. 3대가 덕을 쌓아야 할 수 있다는 주말부부 생활은 우리에겐 생이별인 것만 같았다. 그는 어둡고 텅 빈 집에 외로이 있는 게 힘들었고 나는 각종 쓰레기 처리가 내 몫이 된 것과 도서관과 마트를 동행할 수 없음에 너무나도 슬펐다. 그 와중에 우리 집은 내놓기만 하면 한 달 안에 뚝딱 팔릴 수 있을 거라 철석같이 믿었다. 이 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남편과 내가 3년 전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버린 집이다. 그렇기에 누가 봐도 맘에 안 들긴 힘들 거라는 얼토당토않은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퇴직금까지 정산받아 산 집)


한눈에 반해버린 여름
 두 번 반한 가을



한 달 안에는 팔리겠지?(지금 와서 보니 미친년 널뛰는 소리)

애들은 겨울방학 동안 전학시키고 새 학기에 등교하면 학교 적응에도 무리가 없겠다며 안심도 했다.

집을 보러 가겠다는 소장님의 연락을 받으면 외출했다가도 쏜살같이 집으로 돌아와 깔끔하게 다시 한번 정리 후 생글생글 웃으며 맞이했다. 겨울이니 거실 앞 뷰는 앙상해진 나뭇가지들뿐이라 사진도 보여줬다. 아래층엔 기사까지 있는 기업체 사장님이 사시는데 일 년에 서너 번 출장 올 때만 들리실 뿐 그 외엔 빈집이라 층간소음에서 보다 자유로울 거라는 고급 정보도 덧붙였다.



예상했던 한 달이 지났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 집을 보고도 안 살 수가 있지? 가격이 안 맞나?

좀 낮출까? 그래 요즘 부동산 상황도 안 좋게 돌아가는데 우리가 너무 갔네. 21년에서 22년으로 해가 바뀌어 11월에서 2월이 되었고 집을 보고 간 횟수가 15번을 넘긴 시점에 우리 집 호가는 5억 8천5백까지 내려가 있었다. 호가와 함께 집을 보여주는 나의 자세도 변했다. 소장님께 전화가 오면 "저 지금 집에 없어요. 소장님께서 보여주시고 문단속 잘 부탁드립니다." 이게 내 대답이었다. 비번을 알려준다고? 상상도 못 할 일이었는데 하다 하다 지치니 그렇게도 되더라.



뉴스에는 이제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일만 남았다는 기사들이 도배가 되고 대출금리는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층 조급해진 우리는 집만 팔 수 있다면 뭐든지 할 기세였다. 점집도 몇 번 찾아갔었고 마지막엔 부적까지 받아와 색이 고운 복주머니에 넣어 앞, 뒷베란다에 야무지게 걸어놓고 간절하게 바랬다.



최근 들어 부모님께서 다니시는 절이 있었는데 주말이라 함께 있던 남편과 들르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 저희 집은 언제 팔릴까요?"라는 하소연에  스님은 답하셨다.

"빨리 팔아야지. 내가 빨리 팔 수 있게 해 줄게"라는 말을 뱉으며 나의 두 귀를 팔랑거리게 했고

"얼른 합쳐서 살아야지"라고 쐐기도 박으셨다. 엄마가 천도재를 올리는 것을 본 적이 있었던지라 크게 거부감도 없었고 이것만 하면 집이 꼭 팔릴 것만 같아서 5분도 고민하지 않고 "저 할래요 근데 얼마예요?" 묻고 말았다. 나의 행복이 본인의 행복이라는 내 절친은 나를 말리지 않았다. 아뿔싸.




우리는 지푸라기 중에서도 아주 상지푸라기를 제대로 움켜쥐고 말았다.





덧붙임.  7개월 동안  27번의 매수 예정자를 맞이하였으나 모조리 매도에 실패했다. 부처님이 인도 하신길은 이 길이었을까. 전세로 바꿨더니 이틀 만에 계약이 성사되었고 아이들은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 무사히 전학을 마쳤으며 그토록 바라던 절친과 나의 합가도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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