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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함존중 Jul 12. 2020

멘탈 강화를 위한 특급 영화 추천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어젯밤에 누워서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하 김복남)을 보았다. 아 좋은 영화라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스릴러 마니아인 나에게는 뭔가 직접적인 제목과 복남이라는 촌스러운 이름이 땡기지 않았고 섬을 배경으로 한다기에 괜히 <이끼> 류일 것 같아 미뤄두고 있었는데 갓띵작을 영접하고 처음으로 영화 브런치하기에 이르렀다.


일단 시간과 돈을 들여 영화라는 장르에 소비할 때, 비교적 만족도 역치가 낮은 내 기준에서는 다음 3가지 중 1가지 정도만 만족하면 된다. 3중 1도 안 된다 싶으면 나 같은 경우엔 끝까지 안 보고 종료 ㄱㄱ (아 넷플릭스와 왓챠가 있어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3중 2만 되어도 호평해 주는 관대한 나인데 이 영화는 무려 3가지를 다 충족시켜 주더라. 특히 손정우 사건부터 박원순 시장까지 여성 문제가 걸린 일련의 불편한 최근 세태에 멘탈을 제대로 강화시켜 주는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매우 시의적절한 영화보기 선택이어서 혹시나 저처럼 뻔한 스토리, 촌스러운 네이밍, 익숙지 않은 배우나 감독 때문에 망설이는 분들이 계시다면 주말에 끝나기 전 혼란스런 세상 속 오늘 밤 술 한잔에 즐겨 보시길.   



1. 카타르시스


영화가 주는 순수한 쾌락, 그 어떤 장르나 종류가 되었건 공포영화라면 공포를, 판타지라면 상상을, 로맨스라면 사랑을 선사할 수 있는 예술 작품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카타르시스라는 미학.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완벽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우도라는 육지와 동떨어진 섬에서 일어난 단체 살인의 전말을 따라가는 서사의 스릴을, 복남이라는 주인공의 감정에 동화되어 함께 복수하며 피 흘리는 동질감을, 고어물에 준하는 장면에서마저도 눈 돌리지 않게 하는 극한의 통쾌함을 아낌없이 퍼붓는다. 2시간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간다. 숨 가쁘게 빠르고 눈 돌릴 틈 없이 꽉 짜여져 있다. 근래 만난 어떤 스릴러나 미스터리를 통틀어 가장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최근 6개월 간 본 스릴러/미스터리/공포: 더 덴, 두 개의 달, 대최면술사, 살인소설, 헝거게임 시리즈 4편, 범죄의 여왕, 기묘한 가족, 우상, 어느날 갑자기 시리즈 4편, 완벽한 타인, 더 콜러, 패션위험한열정,  레이디스 나잇 (아놔 나 왤케 스릴러만 죽도록 본 거지 ;;;)   


스릴러나 미스터리는 대체로 등장인물의 감정이나 서사를 관객이 따라가게 되어있다. 함께 추리하고 파헤치고 무서움과 섬뜩함을 느끼고 막판 즈음 터뜨려지는 반전에 어쩔 줄 몰라하고, 때론 실망한다. 우리는 복남이 낫 한자루를 들고 거침없이 휘두르게 될 때 그 어떤 순간보다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폭발시키게 된다. 마지막 순간 서울 친구 해원과 사투를 벌이는 장면에서 까지 이 극한의 살인귀에게 한치의 의심이나 주저함없이 내려치라는 응원을 보내게 된다. 어느 새 관객들은 복남의 세포 하나, 피 한방울이 되어 그녀에게 동화되고 만다. 마치 아무도 겪어 보지 못했을 법한 극한의 고통으로 점철된 그녀의 기구한 삶이란 게, 사실 대한민국 여성들은 직간접적으로 겪어 보았을 법한 너무 흔하고 사소한 일들을 다만 총체적으로 모아놓았기 때문이리라.


수적으로 여성 등장인물이 많은 이 영화는 때론 동지로, 때론 적으로 작용하는 여성 간의 연대에 대해서도 복잡계의 인간 세상을 비교적 잘 반영했다. 여적여다, 자매애다, 뭐다 하는데 사실 어느 쪽이든 완전히 옳은 건 없지 않은가? 하나의 플롯을 따라가는데 필요한 영화적 재미를 수평적으로, 수직적으로 상당히 잘, 그리고 교묘하게 배치하고 있다.



2. 캐릭터


주인공 뿐만 아니라 조연에 엑스트라까지 전부 살아움직이는 영화는 잘 없다. 대부분의 영화들은 끝나고 나면 어떤 등장인물들은 얼굴이나 행동, 일으킨 사건 등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심지어 투톱 주인공 중 하나가 그럴 때도 왕왕 있다.


김복남은 주연을 맡은 서영희씨의 연기력은 물론이고 하나같이 악역 포지셔닝된 섬할매, 섬남자들과 비교적 방관자이자 대척점에서 주인공의 처지를 더욱 돋보이게 해 주는 서울 친구역의 지성원, 눈빛 하나까지 살아있는 새까맣게 탄 얼굴의 아역까지 어느 하나 버릴 게 없는 연기를 하고 입체적 캐릭터성을 지니고 있다. 심지어 다방 레지역을 맡은 단역들까지 주인공의 편에서, 혹은 대척점에서 철저히 주인공의 캐릭터를 부각시키거나 상황을 필연적으로 만들어가는 역할을 빈틈없이 수행한다.


김기덕 감독의 섬, 강우석 감독의 이끼,  극락도 살인사건, 마파도에 이르기까지 섬은 종종 고립과 미지의 공간으로써 영화의 배경으로 종종 활용된다. 특히 섬이 가진 특유의 미신적이고 음기가 쎈, 신비로운 이미지 덕분일까? 할머니, 여성이 주가 된 경우가 꽤나 많았어도 이렇게 한 여성을 전면에 내세워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갖는 불평등과 부당함을 직면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한까지 담아낸 영화는 없었다.  


주인공 복남은 생부가 누군지도 모르는 열살짜리 딸아이 연희와 농촌에서 종종 그려지는(특히 제주도) 하릴없이 노닐며 마누라 패는 놈팽이 만종을 남편으로 두고 살아간다. 그는 만종과 연년배로 보이는 시동생 철종과 시가의 유일한 핏줄인 시고모를 부양하고 있는데 남편놈은 뭍(육지)에서 다방 레지를 따따블로 불러들여 마누라가 있건 없건 온동네가 떠나라 성관계를 하고 심지어 (비록 친자는 아니나)딸까지 건드리기 시작한다. 마치 짜고친 듯 연희를 데리고 밤낚시를 가는 날에는 시동생인 철종이 어김없이 복남을 급습하여 강간한다. 섬의 다른 여자들은 이를 모두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 시고모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있다. 딸 연희가 죽어가는 장면에서 친부를 모르는 이유에 대해 절규할 때 이 땅의 모든 여성들은 함께 울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단 한명도 버려지는 인물이 없다. 모두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복남과 해원의 어린 시절 회상씬까지 각각의 캐릭터가 형성된 연원마저 납득이 간다. 비쩍 마른, 대사 하나 없이 약간은 정신나간 듯 보이는 정체모를 할아버지의 사연까지도 이 영화는 허투루 쓰지 않는다. 완벽한 하나의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3. 완결성


영화의 끝부분에야 나오는 '이 섬에 남은 인물들의 연유'는 영화적 완결성을 한층 돋보이게 해 준다.

사실 영화를 보다 보면


아니, 다른 남자들은 다 어디에 간 거야?
다른 할머니들(시고모 외)은 자식이 없어?
이 섬에 젊은 여자는 복남이랑 해원이 뿐인가?


라는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는데 던진 떡밥을 이토록 충실히 회수하는 영화가 근래 잘 있던가? 이 영화 조차도 10년 전 개봉 되었으니 앞뒤 10년을 다 따져도 이토록 잘 만들어진 하드코어 웰메이드 스릴러가 잘 없다. 대부분은 용미사미격으로 초반에 궁금증 유발했던 장면이나 인물을 10~30% 이상 놓치고 결말을 맺는다.


한 여성을 전면에 내세워 부조리를 고발하는 듯 하지만 마지막 머슴 할배의 스토리 20초만으로 이 영화는 섬이라는 장소의 특수성과 시대성, 성별을 전복하여 페미니즘이 가질 수 있는 최상의 미덕(성별이 아닌 약자를 생각하는)으로 끝을 낸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 하나의 공간, 시간, 그리고 시대를 아우르는 훌륭한 영화가 몇이나 되던가.




이 글을 쓴 이유는 단 하나다.

안 본 사람이 있다면 꼭 봤으면 좋겠다.

내 주변에 김복남 안 본 사람 없게 해야지.



* 사진 출처: 네이버 김복남 영화 홈 공식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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