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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함존중 Aug 19. 2021

욕구와 욕망과 욕심에 대하여

도무지 몇편 째인지는 알 수 없는 지구의 비밀 시리즈


이 시리즈가 의외로 인기좋은 걸 보면 우리나라도 영혼의 수준이 조금은 상승했나 보다.


안녕? 오늘은 지구의 비밀 중에 가장 강력한 걸 갖고 왔지! 원랜 글쓰고 밥 먹는데 오늘은 밥 부터 먹고 일요일 새벽 6시부터 썼다. 내가 우리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항상 바쁜 와중에도 나 밥 못 먹을까봐 울엄마도 안 보내주는 국이랑 반찬 바리바리 택배로 보내주시는 도반님, 감사해요. 





배가 고파서 먹고자 하는 건 욕구, 더 맛있는 걸 많이 먹으려는 건 욕망, 이미 배가 부른데도 더 먹으려는 건 욕심이다.



“왜 흥할까?”에는 비슷한 이유들이 존재하지만 “왜 망할까?”에는 망한 수 만큼의 다양한 원인들이 열거된다.



욕구없이는 사업이란 걸 할 수도, 시작할 수도 없고 욕망없이는 사업해서 돈 벌기 힘들지만 욕심내기 시작하면 한 순간에 망한다. 망한 이유가 다 다른 것 같아도 본질은 결국 욕심이다. 남들한테 베푸는 게 무조건 선해 보여도 집에 있는 내 식구가 굶고 있다면 그건 욕심이다. 



최근에 내가 전혀 서로 관계없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종종 듣는 얘기들이 데칼코마니 처럼 같아서 깜짝 놀랄 때가 있는데 “돌아보니 나랑 비슷한 사람을 내가 컨설팅/멘토링/코칭/교육하고 있더라, 하게 되더라”는 말. 



왜 내 귀에 같은 말이 계속 들릴까?


그건 바로


 네가 그렇게 하고 있으니 널 돌아봐라


는 일종의 메시지와도 같은 것. 신은 항상 이렇게 여러가지 방식으로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귀띔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마음의 관성에 의해 기존의 습(samskara)을 버리기를 두려워하고 그러한 상황을 뒤바꿀 기회가 오면 피하려 한다. 로또와 같은 행운 대신 더 많은 기회를 신은 제공한다. 로또는 대체로 행운의 결과가 아니라 기회의 시작이다. ‘너 이제 이 돈 어떻게 쓸래?’라는 테스트의 시작이지 운의 결과가 아니다.



똑같은 책을 읽어도, 다같이 배구 경기를 봐도 메시지에 감흥을 받는 포인트는 다 다르고 한편으로 사람들이 꽂히는 장면이 놀랍도록 똑같기도 하다. 마치 개인의 우주와 집단무의식의 교집합처럼.



나와 타인의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학문 혹은 방법은 빅뱅 이래 지속되어 왔다. 점성학이 개인의 운명을 보는 거라면 타로는 문제 해결이고 제갈공명 같은 도인들이 쓰던 기을임 3식 계열은 말타고 총칼들어 전쟁하던 시절과 1층으로만 건물을 짓던 시대에나 유용했다. 지금은 지구태양인간계의 복잡도가 높아져서 2-3가지를 결합해야 적중도가 높아진다.



보통 점쟁이들이 시기는 다 맞추는데 그릇은 못 맞춘다. 더해빙이란 책이 마케팅의 진수이긴 하지만 그 책이 던지는 메시지 중 사람들의 욕망을 가장 자극하는 건 “누구나 50~60억 부자는 될 수 있다”는 문구다. 



내 그릇에 똥물이 찼는지 맑은 물이 찼는지, 물이 얼마나 찼는지 물이 흘러넘치지는 않는지 점쟁이는 모른다. 오로지 자기자신만이 안다. 



내가 아는 가장 비싼 점값을 받는 분들은 대체로 기업이나 정치 쪽을 상담하는데 일단 상담료 단위가 다르고 세계 정세 자체를 미리 짚어준다. 결과를 알려주는 게 아니라 바뀔 세상의 사건을 앞서 분석해 준달까? 어떻게 의사결정하는지는 내담자의 몫이다. 점을 잘 보는 게 아니라 누구보다 트렌드와 경제경영, 과학기술에 빠르다. 물론 글로벌 뉴스를 먼저 탐색하고. 무엇보다 이런 분들은 전문직인 자기 직업이 따로 있어서 그냥 자기 일만 해도 남들보단 더 번다. 



최근에 답답한 일이 몇가지 있어서 타로를 봤는데 결과가 하나같이 다 틀린 것이다. 중이 제머리 못 깎기 때문에 평소에 믿는 도반들에게 요청하여 잠깐 상담받은 것. 단시간에 결과가 나오는 문제는 트랜짓+타로+육임이나 구성학, 주역육효 중 2개 정도 결합하면 거의 결과가 정확하다. 



그리고 보통은 진짜 결정을 못 해서가 아니라 확인사살용 무의식 점검이자 ‘이런 일이 왜 생겼나’에 대한 메시지 확인이라 약간 답정너 상태로 선택 이후의 결과를 추론하기 위함인데 하나같이 다 틀렸다. 최근 2년 간의 데이터를 돌아보면 50:50 확률로 틀리거나 결과가 비껴가는데 최근 타율은 놀라우리만치 꽝이다. 



그래봐야 1년에 한두번 보는 건데 50:50으로 타율이 나올 때도 단순히 ‘틀렸구나’가 아니라 어디서 부터 매트릭스가 비껴 간 건지를 나름 많이 분석했다. 이것도 쌓이면 결국 빅데이터고 다음 결정에서 높은 확률로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을 트레이닝 시킬 수 있다. 특히 불확실한 상황에서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사업가들이 관상가끼고 면접 본다는 건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왜일까?
반타작은 하던 예측치가 왜 자꾸 어긋날까?




나의 북쪽 노트가 위치한 사자자리 뉴문 포털이 열린 날 결론내리 건데, 더이상 예측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왜?



나의 운명책에 쓰인 글자를 짚어 보자면 무인성으로 태어나서 축-자-해 역행 대운으로 27년 간 인성운을 살았고 앞으로 3년 후엔 30년이 채워진다. 그리고 10년을 무인성으로 살고 나면 다시 천간 인성 대운 20년을 더 살아야 한다. 



어긋난 욕구와 욕망의 비틀린 12년의 마무리를 하는데 기해-경자-신축 해자축 3년이 걸렸다. 합하고 충맞고 입고된 3년에 종지부를 찍고 인묘진 3년을 살고 나면 30년을 괴롭히던(인성이 나빠서가 아니라 타고난 팔자에 없는 게 운에서 들어오면 원래 성장통을 앓는다 무관 무재 무식상 전부 그러하다) 인성이 싹 사라지고 군비쟁재 대운이 온다. 



무인성으로 태어난 사람이 인성 대운 50년을 살고 나면 원국에 인성을 지닌 사람 보다 더 인성스러워 지는 법. 결국 쟁재할 때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를 인성운 30년 동안 피나는 노력(혹은 끝없이 밀어닥치는 ㅈ같은 상황)으로 학습한 것이다. 대부분의 돌팔이들이 군겁쟁재나 군비쟁재하면 자기걸 뺏긴다고 보는데 들을 필요없다. 운명에는 좋고 나쁜 게 없다. ‘체가 어떻게 용 할 것인가’의 문제다. 



먼저 나누고 퍼 주면 반드시 군비군겁은 적이 아닌 아군으로 변한다. 이게 바로 군비쟁재 군겁쟁재의 비밀이다.  타고난 인성없는 내게 그간 순수하게 많이 베풀어준 당신들 덕에 굶지 않고 잘 살았다. 받기만 하다가 돌려주는 방법을 배우고 학습하는 데 오래 걸렸다. 심지어 무인성이라 받는 걸 연습하는데도 이리 시간이 걸린 걸 이제 알겠다. 



인생 60년 동안 무인성으로 태어나 인성 지지에서 학습한 걸 천간에서 드러내도록 정교하게 짜맞춰져 있고 30년 인성운 막바지에 이르러 내 인생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매우 강력한 자유의지가 주어져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



운명학, 우주의 근본 이치를 공부하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간’의 자유의지 유무를 놓고 끝없이 고민하게 된다. 인문학자인 나의 반쪽과도 종종 토론 주제로 올리는 인간의 운명과 자유의지, 2015년 가설을 세우고 지금까지 데이터에 기반한 내 결론은 ‘모든 인간이 똑같은 자유의지(의 정도)를 가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자유의지는 있고 없고로 논할 문제가 아니다. 마치 우로보로스와 같은 운명과 자유의지의 관계, 관련하여 내게 가장 강렬한 이미지로 남은 영화는 인터스텔라와 콘택트다. 



자유의지 정도가 낮게 태어난 운명의 글자를 지닌 사람들은 계속 같은 장애물(사건이 아니다. 상징이다.)에 부닥치게 된다. 그러면서 신세한탄을 하고 피해의식에 휩싸이게 되는데 이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상황과 장애물을 인정하는 것 뿐이다. 인정하는 순간, 그리고 쇠사슬처럼 자신을 결박하는 선택의 알고리듬을 파괴하는 순간, 그 장애물은 누군가의 인생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물론 다음 장애물이 찾아오겠지만 또 격파하길. 안 그럼 내생으로 넘어간다. 최대한 빨리 깨고 지구를 탈출하자. 이게 바로 해탈이다. 



한번 이혼한 사람이 재혼에 또 실패하는 것,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자기 몸에 병이나 사고로 나타나는 것, 가족 포함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히는 것, 계속 반복되는 문제들이 있는 사람들은 필시 이유가 있고 이미 자신의 그릇 안에 아로 새겨져 있다. 자신의 그릇을 탁한 물로 채운 자에게 그 글씨가 보일 리가 없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이생망’이다. 어차피 이번 생에 망했으면 다음 생엔 더 망한다. 리셋하면 더 나은 상황에 당신의 영혼이 놓이게 될 것 같은가? 



어제 함께 밥을 먹은 분께 “당신의 운명이 주는 메시지는 매우 명확하다. 지금 당신이 겪어왔고 깨달은 것을 20년 정도가 더 지나서 5말6초가 되면 반드시 시험당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껏 살아온 이전 10년 후 지금의 각성, 지금 각성한 상태로 살아갈 앞으로 20년 간의 마음, 그 속세와 비세속의 극단을 선택해야 하는 여러 상황에 맞닥뜨려 질 것이다. 다시 그때 반드시 지금 나눈 얘기들을 기억하고 지금의 마음으로 선택하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게 남얘기가 아니다. 내가 앞으로 13년 후에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차트에 이미 나와있고 인지했지만 마음깊이 받아들이고 행동으로 옮기는 데까지 5년이 더 걸렸다. 



자기 운명의 글자가, 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것임을 인간들이 각성할 때가 왔다.



안녕 � 그래서 내가 왔지 ❤️



당신의 순수한 욕망을 받아들이고 욕심내지 않는 것, 지구의 욕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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