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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함존중 Oct 24. 2021


전통주의 오래된 미래(下)

재생과 상생의 관점에서 바라본 협력의 매개


1편 먼저 보고 오기

전통주의 오래된 미래(下)

https://brunch.co.kr/@ssoojeenlee/70





주류산업지 2018년 겨울호에 기고한 글
'재생과 상생의 관점에서 바라본 협력의 매개 사람과 우리술을 연결하다' 의 원문입니다.





우리술라이프스타일에 스며들다

다양한 지자체 지역 재생 사업들과 더불어 2016년부터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자체 프로젝트가 있었으니 이름 하여 ‘우리술 스토리텔러 주령사’라는 일종의 실습 중심 우리술 콘텐츠 마케팅 교육 프로그램이다. 2014년 10월, 술펀이 법인을 설립하기도 전에 실행했던 일종의 써포터즈 프로그램으로 전통주에 관심 있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교육 실시 후 지역 양조장을 탐방하고 블로그 리뷰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과정이었다. 


애당초 문제의식의 출발이 사회적경제였고 연일 높아지는 청년실업에 대한 문제가 뉴스마다 거론될 때라 일자리 창출로 연계할 수 있도록 확장해 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투입되는 자원에 비해 결과물의 질은 좋지 않았기에 지속가능성에 회의감이 들었다. 1년 이상의 고심 끝에 주령사 2기는 사회적기업 사업개발비 지원사업으로 좀 더 많은 사람에게 확실한 전통주 교육과 홍보 과정을 지원하고 양조장 역시 실제 마케팅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팀을 정해 지역의 양조장 세 군데를 섭외하여 매칭하였다. 여기서도 문제는 있었다. 팀마다 실력 격차가 컸고 양조장의 지원 폭도 달랐으며 이 과정에서 크진 않았지만 사소한 문제들이 생겨났다. 내부에서는 아마추어들이 상품을 홍보한다는 것이 다소 위험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주령사 2기가 끝나갈 무렵인 2016년 중순, 동사업으로 서울산업진흥원에서 실시하는 미래형 신직업군 양성사업 주관기관에 선정되었다. 주령사 교육 과정의 가장 큰 특징은 술의 제조나 만들어지는 과정 보다는 3차 산업인 마케팅, 콘텐츠, 유통 등에 걸친 지식서비스 산업을 기반으로 한 커리큘럼, 양조장 탐방, 우리술과 한식의 음식궁합 등 실습 및 현장학습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술펀의 창업자로서 함께 일할 사람을 찾기가 너무나 힘들었던 필자로서는 이러한 지식을 갖춘 사람이 구직시장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직접 키우겠다는 각오와 의지의 발로이기도 했다. 실제로 현재 술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주령사 양성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한명도 없고 혹여 타이밍이 맞지 않을 때 입사한 경우엔 다음 회차 과정을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


주령사 3기부터 시작된 신직업 양성사업은 이렇게 3년이 흘러 7기까지 150명 이상의 인원이 무사히 수료하였다.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게 되면서 주령사 프로젝트는 좀 더 탄탄한 지지기반을 갖게 되었고 실제 취업하는 청년들이 생기고 1~2년이 흐른 후에는 우리술 공방, 전통주를 메인으로 판매하는 일반음식점 및 주점 등을 창업하는 주령사들이 하나둘 늘어가면서 자체적인 선순환이 가능해진 커뮤니티가 되어가고 있다. 자체적으로도 술펀 홈페이지 등에 에디터로 기고를 한다든지 술펀크리에이티브랩에서 클래스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우리술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대학 뿐 아니라 석박사를 전공하고도 취업하기 어려운 시대, 고작 6~12주 과정의 단기 수료 프로그램이 취업률을 획기적으로 달성시켜 주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술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무엇보다 새롭고 젊은 소비층을 신규로 양산해 내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주목할 만하다. 실제로 주류 제조나 가양주 양조법 정도를 가르치던 기관들이 마케팅이나 디자인, 콘텐츠에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최근 식품 관련 박람회에선 눈에 띄게 개선된 전통주 라벨이나 마케팅 시도가 엿보이기도 했다.


특히 독일이나 프랑스 농가에서는 맥주나 포도주를 집에서 빚어 나누어 먹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러한 가양주 문화의 발전은 로컬 푸드인 전통주 시장의 확대와 소비에 직결된다. 소위 핸드메이드로 일컬어지는 수공예 제품들은 대부분 가격이 기성품에 비해 두세 배 이상 비싸기 마련인데 우리술 역시 대량생산되는 희석식 소주나 맥주에 비해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가양주를 직접 빚어 보았거나, 양조장인의 스토리를 직접 들었거나 우리술이 시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상황을 인지하게 된 사람들은 대부분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지불용의를 가지게 된다. 주령사 양성과정은 취창업인들을 양성하고 취약계층에서 우선권을 주는 교육 목적 상 평일 한 나절을 전부 투자해야 하기에  구직자가 아닌 현직자들이나 학생들은 이수하기 힘들지만  홍보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기에 직간접적 홍보 효과는 수료생 수의 몇 배로 크다고 볼 수 있다. 


2014년 사업 시작 당시로부터 약 2년 동안은 지원금과 공모사업에 의존했지만 우리는 서서히 자립할 방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만 3년이 지나자 우리가 개발한 제품들이 시장에 출시되기 시작했고 브랜딩 했던 회사들도 함께 성장하기 시작했다. 전통주를 넘어 농촌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로컬푸드 제품들과도 협력할 기회들이 생겼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한국형 식재료에 대한 학습이 이루어지고 술과 콜라보 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다방면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술펀에서 직접 개발한 전통주 칵테일 해랑사(좌), 뽕(우)



그리고 지난 9월 우리는 을지로 낡은 건물 2층에 ‘술다방’이라는 레트로풍의 전통주 바(Bar)를 열었다. 20년 이상 커피와 쌍화탕, 저녁엔 맥주를 팔던 오래된 다방이 있던 곳인데 연로한 주인 할머니의 건강이 쇠해지며 더 이상 운영할 여력이 없어 나온 자리란다. ‘술과 문화가 있는 곳’이라는 쉽고 간단한 슬로건에 제대로 된 간판조차 없는 을지로 갬성의 술다방에서는 한국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술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술다방에서 술을 ‘판다’고 하지 않는다. 대신 ‘경험한다’는 말을 쓴다(Experience New Alcoholism). 


술다방은 칵테일이나 전통주 제품 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에 스며든 다양한 술 문화 콘텐츠를 연구개발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11월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선보인 한의사와의 콜라보 프로그램인 야한술방은 12월 여성 한의사와 함께 ‘여우들의 야한술방’으로 여성들을 위한 술과 성에 관한 고민상담소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아로마테라피스트와 함께 우리술을 베이스로 맞춤형 향수를 만드는 프로그램도 예정되어 있다. 이 외에도 막걸리 판나코타, 무알콜 모주, 숙성 식초 및 발효액 등 온가족이 즐길 수 있는 술 문화를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사라진 커뮤니티, 주막의 새로운 부활

술다방은 다방이라 불릴 때도 있고 술방이라 불릴 때도 있으며 바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주막이다. 필자는 2017년 9월 서울변호사협회지에 <인공지능의 시대, 주막의 부활을 꿈꾸다>는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그 중 한 단락을 옮겨와 본다.


세계 어느 나라나 여행객에게 돈을 받고 밥과 술, 잠자리를 제공하는 장소가 존재한다. 게임이나 미드나 영드 등 서양 사극에서 종종 등장하는 여관이 서양 문화권에서는 대표적인 곳이며 우리나라 주막과 역할이 비슷하다. 문화권이 비슷한 동아시아 3국에서 중국은 이를 반점(밥 반 飯, 가게 점 店)이라 불렀고 일본은 숙옥(잠잘 숙 宿, 집 옥 屋)이라 불렀다.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중국인들은 음식과 먹거리를, 일본 사람들은 잠자리에 초점을 둔 문화를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이곳을 주막(술 酒, 장막 幕)이라 불렀으니 이 얼마나 풍류 민족이란 말인가.


주막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면서 나름대로 상상해 본 모습은 확실히 매우 서민적이고 소박한 공간이란 것이다. 주로 양반들이 드나들었던 기방과는 달리 보부상, 장터 방문객, 여행객들이 주된 고객이었고 걔 중에는 신분을 숨긴 임금이나 벼슬아치들도 있었으나 혼밥혼술하기에 이 보다 더 편한 공간은 없다는 것이다. 물론 폐쇄적인 한반도 특성과 15세기까지 상업이 발달하지 못한 탓도 있겠다.


안타깝게도 지친 보부상에게는 따스한 국밥 한 그릇과 막걸리 한 사발을, 먼 길 떠나던 나그네에게는 잠 잘 곳 한켠을 제공하던 주막은 일제강점기 술의 제조와 판매를 분리하라는 주세령의 시행으로 1910년대 20만 곳에 달했던 곳이 1930년 대 말에는 5천여 곳 이하로 줄어들었다. 양조장이라는 곳은 바로 이 시기에 생겨난 새로운 전통이다. 술을 만들어 팔던 주막이 사라지고 가양주가 불법이 되어 서서히 쇠퇴하면서 각 지역에는 술의 제조만을 전문으로 하는 양조장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며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한 이자카야, 혹은 이자까야(いざかや)라 불리는 일본식 선술집은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술집 중 하나다. 당시 젊은이들은 따뜻한 사케 한잔에 오뎅탕이나 꼬치구이를 먹는 걸 세련되게 생각했다. 각 대학 주변 하나둘씩은 꼭 존재했던 전통주점이라 불리는 곳들은 대부분 막걸리를 뚝배기나 놋쇠 주전자에 담아 팔며 초가집을 연상시키는 황토방 인테리어에 플라스틱 그릇에 담겨 나오는 전이나 무침 등을 팔았다. 이러한 모습은 사극에서 보던 마당 한 복판에 평상이 놓인 초가집 형태의 주막과 매우 흡사하다. 영국의 지리학자이자 여행가였던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백년 전 한국의 모든 것,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이라는 책에서 서울과 주막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나는 베이찡을 보기 전까지는 서울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도시가 아닐까 생각했고 사오싱(Shao-shing, 중국 절강성 소흥현)의 냄새를 맡기 전까지는 서울이 세상에서 가장 냄새나는 도시가 아닐까 생각했다. 거대 도시이자 수도로서 서울의 위엄을 생각할 때 그 불결함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중략) 무섭게 생긴 검은 돼지와 서로 으르렁거리는 두 마리의 묶여 있는 누런 개가 우리에서 어슬렁거리고 있고 닭들, 아이들, 조랑말들, 마부들, 식객들, 나그네의 짐들 등으로 여관은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다. (중략) 한국의 여관은 손님들이 술이 거나해지지 않으면 소란이 없고, 설사 소란이 일어나도 곧 가라 앉는다. 조랑말들이 싸우고 그 소란을 가라 앉히려고 마부들이 후려치고 욕하는 소리가 새벽이 오고 나그네들이 움직이기 전까지의 주요한 소동이다.


필자는 묻고 싶다. 만약 20세기 초에 주막이 사라지지 않고 지금껏 남아 있었더라도 그러한 모습과 형태일지를. 분명 산업의 발전, 문화의 융복합, 식문화의 개선과 함께 세련되고 현대적인 모습으로 발전하였을 것이다. 타임머신도 없고 역사를 바꿀 수도 없으니 어떤 형태로 발전하였을지 꼬집어 말할 순 없어도 최소한 사극에 나오는 헙수룩하고 지저분한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한국인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주막’이란 말에서 오는 따스함과 정겨움은 아마 사람에서 나오는 것일 게다. 주막은 밥과 술, 잠자리를 제공하는 외에도 마을의 가장 친근한 커뮤니티였다. 주막을 중심으로 장터가 열렸고 사람들이 지나는 곳에는 어김없이 주막이 있었다. 마을의 대소사와 소문이 주막을 중심으로 퍼져나갔고 경사든 조사든 함께 모여 의논하기 좋은 사랑방이 되기도 했다. 


술다방은 기능적 측면에서 우리술로 만드는 새로운 메뉴와 콘텐츠의 연구개발 장소이면서 정서적 측면에서 현대의 주막으로 자리매김 되었으면 한다. 온라인 정보 플랫폼에서 시작한 술펀은 이제 오프라인에서 직접 고객들과 소비자를 대면할 준비가 되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우리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늘고 응원하는 많은 분들 덕택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만 4년을 앞둔 우리의 고민은 어쩌면 초심으로 돌아간 것일지도 모른다. 양조장인들의 고민해결은 점점 커지고 있는 시장이 알아서 해 줄 수 있는 시기에 온 듯하다. 소비자들은 좋은 술을 알아보고 소비할 것이며 맛있는 콘텐츠가 있으면 알아서 소문내 줄 것이다. 


술펀은 지금껏 고민해 온 것처럼 앞으로도 고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전통과 현대의 경계에서 좋은 술을 찾아내고자 애쓸 것이며 진정성 있는 양조장들이 단순히 마케팅이 어려워 문을 닫는 일은 없도록 항상 귀 기울일 것이다. 초창기 술펀 인터뷰를 할 때 필자는 당시 주류시장에서 5% 남짓 하던 막걸리 포함 전통주 규모가 2020년까지 20% 이상 차지할 수 있다고, 그것이 향후 5년 간 필자의 목표이며 예측이라고 했었다. 2020년이 왔을 때 그때 그 인터뷰들이 성지순례가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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