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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함존중 Jan 08. 2019

전통주의 오래된 미래(上)

재생과 상생의 관점에서 바라본 협력의 매개


주류산업지 2018년 겨울호에 기고한 글
'재생과 상생의 관점에서 바라본 협력의 매개 사람과 우리술을 연결하다' 의 원문입니다.


      

전통에 대한 논의 없이 전통주를 논하기란 누룩 없이 술 빚기와 같다. 전통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지난 시대에 이미 이루어져 계통을 이루며 전하여 내려오는 사상ㆍ관습ㆍ행동 따위의 양식‘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공시성과 통시성의 성격을 동시에 가진다.  시대가 변하면 지금 것이 옛 것이 되고 500년 전 당시의 최신 유행 복식도 지금은 전통한복일 뿐이다. 특히 농경 사회에서 매일 먹고 마시는 음식이란 날씨, 기후, 기술, 정책 등 당시의 상황과 주변국과의 교류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기록에 의하면 1592년 임진왜란 즈음 일본으로부터 고추가 전해졌으나 당시만 해도 독성 물질로 여겨 이후 200여 년 간 식품으로 활용되지 못했다. 향신료나 소금물에 절이던 팀채(혹은 딤채, 김치의 옛이름)는 19세기에 들어서서야 고춧가루와 젓갈이 쓰이는 지금의 김치형태가 되었다. 


과연 우리에게 전통이란 무엇일까? 언제부터가 전통일까? 고려 시대의 술이 전통주인가? 50년 대 먹던 막걸리는 전통이 아니고? 전통주 이전에 전통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정립하지 않으면 술펀의 미션과 비전은 아무리 위대한 가치를 주창한다 해도 가닿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술펀의 초기 브랜드를 고민하며 한복 입은 캐릭터를 술병과 함께 내세운 것은 이러한 고민의 발로이기도 했다. 세 캐릭터가 입은 한복은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 후기까지 다양한 복식을 나타내게 했고 안경이랑 스마트폰을 악세서리로 사용했다. 그러면서도 전통적인 술병 중 하나인 호리병의 형태를 브랜드명과 함께 재현했다. 너무 촌스럽지도 모던하지도 않길 바랐다. 그래서 일부러 당시 캐릭터 디자인 트렌드로는 다소 유행에 뒤처진 먹선을 굵게 썼다(당시 앱 디자인이나 브랜드에선 배달의 민족 초기 형태와 같이 납작하고 단순화된 캐릭터를 주로 썼다).


2014년 창업 당시 술펀의 브랜드 아이덴티티



전통주의 오래된 미래

2018년 현재 대한민국 주세법 제3조 1의 2에 근거하면 ‘전통주’라 함은 문화재청 및 각 지자체에서 인정한 무형문화재,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지정된 식품 분야 명인, 각 지역 농산물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하여 만든 지역특산주를 포함한다. 최근 막걸리나 탁약주 외 급부상하기 시작한 한국의 다양한 과실과 열매들을 활용한 와인 방식의 술들 역시 지역특산주, 즉 전통주에 속하게 되는데 이를 두고 우리는 타국의 양조법이며 현대의 술이니 전통주라 부르지 말아야 하는가? 혹은 와인이란 용어 대신 전통주라 지칭해야 하는가? 최근에는 해외 막걸리 행사에 공관에서 한국 와인을 가져와 막걸리협회 측에서 울분을 토하는 글을 보았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함께 나아갈 수 있을까? 여전히 수치로는 작은 시장에서 상생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아직은 파이를 나눌 때가 아니라 키울 때가 아닌가 말이다.



주세법상 주류 및 전통주의 정의



술펀 창업자로서 4년, 문화재청 지정 예비사회적기업으로 3년, 문화재형사회적기업협의회 이사로서 2년을 보내며 많은 공부를 했고 술펀 이외에 다양한 분야의 전통문화 기업들과 인재들을 만났다. 필자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몸으로 마음으로 경험한 전통이란 과거의 복원을 넘어 결국 현재이며 다가올 미래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통주란 술의 주종이 아닌 문화의 한 형태, 전통문화 회복 운동의 일부로서 기능할 뿐 그 자체로 어떤 술을 지칭하는 것은 부족하며, 동시에 위험하기도 하다. 오히려 전통이라는 틀 안에 갇혀 전통주의 미래를 가로막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때가 온 것이다.




양조장인들의 고민해결사에서 취함존중'으로

2014년 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이하 육성사업)에 선정되어 막 사업 구상을 시작할 당시, 1인 창업자였던 필자의 문제의식은 취미로 시작했던 양조교육 기관에서 만난 연로하고 영세한 양조장인, 쉽게 말해 제조업체 및 제조자들을 돕고 대기업 소주나  맥주, 수입주류인 와인 외에 ‘우리나라에도 이토록 좋은 식문화 콘텐츠가 있음’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데서부터 시작했다. 육성사업에서 받은 지원금의 대부분을 전통주 온라인 정보 포털을 만드는 데 투자했고 부족한 자금 탓에 내부에서 개발자를 채용하는 방식이 아닌 외부 업체와 파트너십을 맺어 공동 개발하는 방식을 택했다. 2015년 상반기, 서비스가 출시되고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 중에는 정부기관도 있었고 정부 산하 전통주 지원 단체들도 있었다. 그리고 1년쯤 지나자 정부에서 술펀1.0 플랫폼의 카테고리까지 똑같은 우리술 정보 제공 서비스를 내 놓았다. 만드는 데까지는 어찌어찌 겨우 해냈지만 홍보마케팅에 쓸 돈이 없었던 우리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기 보다는 시행착오 속에서 깨달은 다음 서비스 모델을 새로 출시하기로 사업방향을 바꾸었다.


1년 뒤에는 술펀2.0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형태와 접목하여 커뮤니티와 지도정보 서비스를 결합한 플랫폼을 완성했다. 아니, 공개했다고 하는 쪽이 맞을 것이다. 이번에는 내부에 개발자랑 디자이너도 있었고 경험 있는 마케팅 담당자도 함께 했다. 시장의 흐름과도 맞물려 사용자가 확대될 거라 기대했다. 그 사이 우리의 노력과 의지를 인정받아 부족한 매출과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비즈니스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청으로부터 예비사회적기업 지정을 받았다. 얼마간의 자금지원과 함께 조금 더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고 술을 상품으로서가 아닌 문화의 일부, 한식의 명맥을 잊는 전통이면서 무형문화재로서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2015년 당시만 해도 우리술이 무형문화재의 일부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여차저차 약간의 오류와 미완의 기능을 안고 출시한 서비스는 생각만큼 효과적이지 않았고 자금이 고갈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법인 설립 후 만 2년이 지나면서 내부에는 새로운 고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실 팀 내 그 누구보다 술펀의 창업자인 필자 스스로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특히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직접 발로 뛰며 돌아본 농촌 양조장들의 실태, 명인 혹은 장인이란 허울 좋은 이름하에 감춰진 민낯들, ‘전통주’란 용어 안에 갇힌 보수성과 폐쇄성, ‘나는, 술펀은 진정 무엇을 위해 달려온 걸까? 앞으로 우리는 왜, 그리고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까?’  


정신없이 달려오던 지난 2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보낼 틈도 없이 마침 몇 군데 지자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들을 의뢰해 오기 시작했다. 한산소곡주 마을 관련 사업과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하며 우리는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다음 한발을 위한 과정일 뿐 정답도, 결론도 아닐 것이다. 고갈되어 가던 자금과 시행착오 속에서 좌절해 가던 우리에게 내린 단비이면서 채찍이기도 했다. 전통주를 생산하는 주체를 넘어 정부-생산자-마을(농촌)을 넘나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직접 겪어보고 비전을 찾기 위한 새로운 기회가 되었다. 



to be continued


2편 이어서 보기

https://brunch.co.kr/@ssoojeenlee/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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