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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함존중 Dec 16. 2021

못 버리는 병을 버려야 대표가 된다

창업생활백서 1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보통 창업 기업 대표들 비즈니스 컨설팅이나 코칭하면 제일 안 되는 게


1. 우선순위 설정

2. 목표 뾰족화

3. 권한 위임


 

세 가지 공통점이 뭘까?


결국 "선택과 집중"으로 귀결된다는 점, 그리고 그 원인 역시 "못 버리는 병"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대개 욕심많은 사람들이 대표를 하고 대표를 하면 욕심이 많아진다. 욕심없는 사람은 대표를 해선 안 된다. 범죄다. 물론 그 욕심이 타인의 권리를 침범하면 그 또한 범죄가 되겠지만.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일은 끝없이 밀려 들어오고 사고는 언제나 터진다. 직원들은 자신의 역할만 잘 하면 되지만 대표는 실무에서 관리, 비전 심어주기에 영업까지 너무도 일이 많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하다 보면 무엇이 진짜 목표였는지, 뭣이 중헌지, 신경은 또 엄청 예민해져서 안 하려고 마음 먹었던 마이크로매니징을 하기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자신을 컨트롤할 수 없게 될 정도로 번아웃 상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렇게 쓰고 있는 나 조차도 내가 남의 회사 컨설팅 해 줄 때랑 내 회사 대표일 때랑 언행불일치인 경우가 너무도 많다. 그래서 올해는 굳게 맘 먹고 이러한 인지부조화를 자각한 후 나 역시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 절치부심 중이다.


예전에는 내가 하는 컨설팅을 내 복제인간이 있어야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올해 나름의 구조화를 만들며 진행해 보니 뭔가 나의 후계자들을 양성하는 게 영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이 정도 공력이면  술펀을 하면서 부업(?)으로 하기에 딱 좋은 수준인 것 같다. 사실 "컨설팅=영업"일 정도로 나와 클라이언트 모두에게 좋은 작업이기도 하다. 


컨설팅 후 어느 정도 합과 핏이 맞으면 바로 착수할 수 있고 훨씬 빠른 기간과 저렴한 비용에 브랜딩, 제품기획, 마케팅, 운영 대행 등 플랜을 짜기가 쉽다. 게다가 우리 회사 역량 밖인 일들은 더 좋은 회사나 전문가를 소개해 줄 수 있어 효과와 효율 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다. 감사하게도 별도로 광고할 필요없이 소개와 바이럴로 적당한 타이밍에 컨설팅 의뢰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나도 다른 분들께 비즈니스 코칭을 받아 봤고 예전 직장 생활 때나 지금 술펀을 하면서 몇 번의 회사 차원 전문 컨설팅을 받아 봤지만 컨설팅이란 게 실행되지 않으면 종이조각에 불과한 경우가 많아 실제로 효과를 내고 드라이브를 걸어 빠른 실행까지 가려면 결국 클라이언트에게 동기부여가 제대로 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동기부여는 타인이 아니라 스스로 해야 제대로 실천된다는 것.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면 모르는 부분도, 험난한 가시밭길도 헤쳐나갈 용기와 동력이 생긴다. 


12월에 재밌게도 다른 듯 비슷한 규모의 회사 3군데가 1-2달 간격으로 비슷한 시기에 들어와서 1회성 멘토링부터 단기 컨설팅까지 맞춤형으로 진행했는데 각각이 철수 - 오픈 - 신사업 등 복잡한 여러 문제를 겹쳐서 갖고 있어 케이스 스터디를 해 보기에 적합했다.  


A사
업태/업종 서비스 / 외식업, 외주용역, 커뮤니티 등
매출 5-6억
직원수 15-20명
B사
업태/업종 서비스 / 마케팅, 광고, 플랫폼
매출 25-30억
직원수 10-15명
C사
업태/업종 도소매, 서비스 / 마케팅, 디자인, 플랫폼
매출 7-10억
직원수 10-15명


보시면 알겠지만 매출과 직원수는 별 관계가 없다. 어떤 회사는 1000억 매출을 하면서도 직원 100명이 안 되고 매출 꼴랑 몇억을 하면서 직원수가 많은 실속없는 회사가 수두룩하다. 과거의 나여;;; 그런데 매출이 높다고 수익구조가 좋으냐? 쿠팡만 봐도 알겠지만 꼭 그렇지가 않다. 


특히 비즈니스를 오래 굴리다 보면 처음에 잘 나가던 사업부도 언젠가는 시들고 고객은 항상 더 낮은 비용에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 빠져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법이다.


보통 컨설팅의 큰 아젠다는 다음 3개로 요약될 수 있다.


어떻게 철수 할 것인가?

어떻게 시작 할 것인가?

어떻게 고도화 할 것인가? 


가끔 3가지를 짬뽕한 M&A가 이슈로 부상하기도 한다. 프로세스 역시


애로사항 파악 -> 현재 (핵심/보유) 자원 분석 -> 결과 도출(액션 플랜, 솔루션 제공)


정도로 요약된다. 물론 이 하부 단위와 사이사이에는 여러 잡다한 분석과 실행 방안이 병 안에 든 자갈 사이 모래처럼 껴 있겠지만 큰 범주에서는 이를 넘어서지 않는다.

 

그 중 케이스로 업로드를 허락해 주신 한 회사의 내용을 한번 같이 살펴보고자 한다.


대표의 멘붕은 보통 비즈니스가 잘 안 돌아가고 더불어 사람에게 부침을 당할 때 많이 오기 때문에 일단 다음 세가지에서 완전 길잃은 양처럼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심하면 공황 장애가 오거나 장기 하나 떼어지는 수가 있지. 내가 아는 100억대 사업가들 대부분이 장기 하나 없거나 공황 장애를 앓았거나 앓고 있다.


대표님께 양해를 구한 후 민감정보를 가리고 진단서와 보고서의 일부를 공유해 본다. 글로 아무리 서술해도 직접 보는 것만 못할 듯 하여 좋은 일도 아닌 힘든 부분이지만 다른 분들께 도움될 것 같아 어렵게 부탁드렸는데 흔쾌히 응해 주셨다.



멘토링 전 대표님이 직접 작성한 사전진단서



주요이슈가 이렇게 많다니... 보통은 2-3가지 정도 가져 온다 oTL




타인에게 실망했을 뿐 더러 자책과 자기검열, 자괴감에 시달리는 모습이 안 봐도 뻔하다.




분명 3가지 써 오라고 빨간색으로 적혀 있는데 얼마나 정신이 없었을꼬...





1. 사람, 사업, 육아까지 모든 것에 지쳐 다 놓아 버리고 싶어진 대표님의 멘탈부터 케어가 필요하다. 편하게 자기 얘기를 할 수 없으면 일과 사업 얘기도 할 수 없다. 

2. 작성한 애로사항 부분을 보면 전부 자책으로 가득차 있다. 자기 탓이 없을 순 없다. 그러나 "나 자신의 문제"와 회사 및 타인, 환경에서 비롯된 문제를 분리해서 생각하고 재정의 해야 한다. 

3. 대표님이 직접 작성한 해결하고 싶은 방향 3가지는 현재 해결할 수 없다. 같은 터에 새 집을 지으려면 헌 집을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한다. 완전 철거 후 새로 신축할 건지, 증축 할 건지, 리모델링 수준에서 인테리어만 진행 할 건지. 


지금 단계에서 가장 필요한 건 

1. 철수할 것인가?
- YES or NO가 아닌 철수 여부에 대한 스펙트럼 분석 및 범위 설정
2. 얼마나 철수할 것인가?
- 각각의 비즈니스 분석 후 휴업, 폐업, 유지 여부 정리, 요구 사항 및 비용 범위 분석
3. 어떻게 철수 할 것인가?
- 인력 구조(구조조정 포함), 선택과 집중, 비용 및 예산, 진행 후 수익 구조 분석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게 되면 두뇌와 머리가 상당히 맑아진다. 얼굴 표정과 기색도 함께 변한다. 


문제를 잘 정의하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이 필수다. 질문에 답변을 이어가다 보면 "내 안에 있는 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다. 답을 컨설턴트인 내가 주는 게 아니다.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좋은 질문을 해야 한다.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상당히 집중하고 날카롭게 이면을 파고 들 수 있어야 한다.




줌 미팅 후 정리된 보고서(일부)


원래 현장에 직접 가거나 대면을 선호하지만 의뢰 후 3일 이내에 진행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과 거리의 문제, 그리고 현재 심신이 많이 힘든 상태인 대표님의 사정 때문에 줌으로 대신하고 시간을 넉넉하게 잡았다. 오랜만에 뵙는 거라 30분 정도 티타임을 가지며 일 얘기가 아닌 사적인 고민과 근황들로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고 라포를 쌓았다.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사전진단서만 봤을 때는 단순히 철수를 "검토 중"인 상태거나 일부 사업부 정리만을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전체 매장 철수를 생각 중이어서 우선순위를 다시 잡고 비즈니스 설계를 고도화하기 시작했다.


약 2시간의 줌미팅을 진행하면서 육아와 창업으로 심신이 피폐해진 여러 여성 대표들, 직장인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시간 좀 걸려도 티타임을 하며 여러 사적인 고민들을 들어주며 줌의 단점을 상쇄하고 나니 생각보다 빠르게 사업 철수에 대한 해결책이 도출되었고 스피디하게 다음 단계로의 진입이 가능했다.


목표 설정이나 장기 플랜은 사실 보고서를 급하게 제공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번 경우는 대표님이 워낙 지친 상태라 빠르게 행동에 돌입하지 않으면 다시 잡생각과 우울함이 엄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끝나자마자 바로 멘토링 내용을 정리해 드렸다. 빠르고 정확한 액션을 위해서 대표들은 언제나 자기 마음을 수성해야 한다.


인간의 불안은 실패가 아닌 미지에서 온다



1달 이내, 6개월 내 실행할 구체적인 액션 플랜 정리

회색 부분은 민감 정보라 가릴 수 밖에 없는 점 양해 바란다. 위의 이미지는 정의된 문제인 "철수 여부"를 해결 한 후 진행할 액션 플랜이다. 대략 비즈니스 모델 분석-마케팅 및 CX경험 세팅-HR모델링정도로 요약된다. 또한 "철수"라는 문제를 해결하고도 3개월 정도 시간이 추가 소요될 것이라 사료된다. 하지만 현재의 문제와 해결 방안이 정확히 도출되었기 때문에 다음 스탭으로 방향이 설정되면 훨씬 생기있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 





초기 단계에서 컨설턴트는 정확한 현장진단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의 고통은 언제나 제대로 된 "문제를 정의하지 못함"에서 출발한다. 문제만 올바르게 정의할 수 있다면 컨설턴트는 길잡이 역할만을 할 뿐이고 실제 실행하는 것은 클라이언트의 몫으로 충분하다. 에너지와 역량이 충분하다면 생각을 정리하고 문제를 제대로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다음 단계로 충분히 성장하며 나아갈 수 있다. 


다만 번아웃 상황이 심각하거나 대표이사의 경력, 경험이 부족하여 실행 과정까지도 도와줄 사람이나 문서, 체계화된 시스템이 필요하면 매출과 투입률, 기간 대비하여 별도 견적을 내고 진행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창업 생태계가 워낙 청년, 취준생이나 경력단절여성 등 사회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지원이 집중되다 보니 의외로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혹은 못 하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회생활 10년을 넘게 했던 나도 창업해 보니 모르는 것 투성인데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이를 실행하고 체계화하지 못 한다면 금새 경쟁자에게 추월당해 시장에서 도태되기 십상이다. 특히 지원금과 투자금이 굴러다니는 요즘같은 시대에는 동네 소꿉놀이 하듯이 '장난으로 창업 했나'싶은 모습을 너무 많이 보게 된다.


경험이 많은 사람들 조차 초기 창업 단계의 대표들은 회사가 곧 자기자신이기 때문에 객관화하기가 어렵다. 특히 다 하고 싶고, 다 좋아보이기 때문에 잘 버리거나 놓지 못 한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위기가 닥쳐오기 전까지는 무조건 밀어부친다.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스타트업 대표님들은 단순히 스마트스토어를 굴려서 안정적 자산을 획득하겠다는 사람들이 아니다. 돈도 벌고 싶고 세상도 바꾸고 싶은 야심가, 몽상가들이다. 그래서 더 어렵다. 자기자신이 가루가 되는지도 모르고 갈아 넣는다. 그 사이에 곁에 있던 사람들이 떠나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 아닌 배신을 당하면서 마음이 피폐해 진다. 그리거면 탈진과 번아웃이 동시에 오고 심각하면 우울증이나 공황장애가 오기도 한다. 신체화가 되어 암이나 병증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부디 이 지경까지 가기 전에 반드시 자기자신을 먼저 지키길 바란다. 





올해 구조화 된 컨설팅 시스템을 구축하고 솔루션을 제시하는 스타일에서 코칭 스타일로 전환하면서 내 스스로 많이 배우고 성장한 부분이 있다. 극 T형의 사람이라 빠르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상당히 답답해 하는 사람이었는데 (1)끝까지 경청하는 법 (2)상대방이 답을 찾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법 (3)영혼을 담아 공감하는 법을 익혔다.


이렇게 되기까지 나에게도 피눈물 나는 시간이 필요했다. 만족도 역시 10배 이상 높아졌다. 내가 할 수 있다면 당신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 역시 예전에는 절대 내가 할 수 없는 스타일, 아니 이렇게 해야겠다고 마음 조차 먹어본 적 없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돌아보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나처럼 어렵고 힘든 시기를 겪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공감하고 들어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으면 너도 할 수 있고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마음을 먹지 못 했거나 그 방법을 모를 뿐인 거지. 낚싯대와 미끼처럼 툴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사용법은 나같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받으면 된다. 


무엇을 버려야 할지, 어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지는 그 길을 먼저 가 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나의 도움을 거절하는 선배 창업가들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후배들에게 그러하듯이. 


돈을 잘 벌려면 잘 쓸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선택에 기로에 있을 때는 내가 빚을 지더라도 돈을 가장 먼저 버리고 사람을 남겨라. 상대가 고마워하는지 안 하는지는 당신이 신경쓸 일이 아니다. 사업을 선택한 우리는 혹시 어떤 일이 잘 되지 않았을 때 우리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정말 힘들 때 마지막까지 지킨 당신의 책임이 결국 당신을 구원할 것이다.



오늘 저의 띵언


말은 돈이 있어야 힘이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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