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단편 소설
오랜만에 1인칭 관찰자 시점의 SNS소설 하나 발표한다.
내가 최근에 지나는 말로 빙의 케이스를 언급한 적 있는데 어차피 우리가 사는 세계는 죽은 영혼들이 보이진 않지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예민하고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 조차 어둡고 차갑고 축축한 곳에서 으스스한 공포를 느끼는 것도 바로 이런 기운들 때문이다. 내가 지하로 들어가야 하는 전철 보다 버스를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나는 미처 말할 수 없는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지만 말하지 않고 꾸준히 지켜 보았다. 세상 여성스럽게 화장하고 드레스를 입은 순간에도 그녀의 얼굴은 가끔 남자처럼 일그러졌고 나는 내 앞에 앉은 그녀의 표정에 언뜻 남성 특유의 선 굵은 모습이 스쳐 지나가 당황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처음에 나는 빙의된 영이 어쩌면 중년 여자라고 생각했다.
사백안에 되어 유난히 큰 눈을 가진 그녀의 눈동자가 한층 더 확대된 흰자위를 마치 룰렛의 바퀴처럼 떼구르르 사방을 굴러다닐 때, 굳이 그렇게까지 노력할 필요도 없는 중년 남성을 유혹하고자 애쓸 때(왜냐하면 그들은 굳이 유혹하지 않아도 너무도 쉽게 유혹될 것 같은 사람들이었기에), 코맹맹이 소리와 연습한 듯한 표정, 계획된 몸짓으로 남성들의 몸을 터치하고 교태를 흘릴 때, 나는 그 행위들이 전부 그녀의 본령일 거라 여겼다. 하지만 그러기엔 고급스러움을 지향하는 평소 그녀의 생각과 180도 다른 행위들이 너무도 싼티나고 저급하며 내게는 연민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과도한 노력이었기에 빙의라 믿고 싶었던 걸까.
그러다 그녀의 집에 가게 되었을 때 나는 그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녀에게 빙의된 귀신의 정체를.
그녀의 본래 혼백은(원몸주라 부르겠다) 내게 구원을 요청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지만 이미 오래동안 자살한 게이 귀신과 동거 아닌 동거를 해 버린 그녀의 몸은 이미 그 생활에 안주해 버린 것 같았다. 집안 곳곳에는 게이 귀신의 흔적들이 역력했다. 벽에 걸린 수십억대의 호화로운 장식품이 무색하리만치 집안 곳곳에는 검고 푸른 곰팡이가 서식하고 있었다.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곳곳에 뿌옇고 흐리고 탁한 기운들이 잡동사니와 함께 구석구석 쳐박혀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나를 벗어나고 싶게 만든 건 집안의 냄새와 위생상태가 아니었다. 악취나고 습기찬 곳은 언제나 그렇 듯 자신이 죽은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 생에서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도 많았던, 살아 있었다면 꿈이고 욕망이었겠지만 이제는 원한이 되어버린 불쌍하고 형체없는 탁한 영들의 서식처였다. 정체 모를 원귀들이 형태를 흐트러뜨린 채 집안곳곳에 숨어있었다. 그것을 알아차린 즉시, 나는 한시바삐 그곳을 떠나고 싶었지만 원몸주가 여기까지 나를 부른 이유가 있을 거라 여겼다.
소파에 앉은 그녀의 얼굴에서 선이 굵고 우울한 남자의 모습이 더욱 확연히 드러났다. 내가 바깥에서 그녀를 만날 때 얼핏 스치듯 보였던 모습이 지박령의 서식지에 오자 완전히 또아리를 튼 것이다. 지박령들은 대개 그 터를 떠나려 하지 않기 때문에 터를 벗어날수록 흔적이 옅어진다. 그녀가 불쌍한 게이 귀신에서 벗어나려면 이 곳을 떠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어 보였다.
내가 신부님이나 무당이거나 스님이라면 진혼제라도 지내보라 권하겠지만 이미 그녀는 게이 귀신과의 동거에 익숙해 보였다. 게다가 이미 그녀 스스로 자기는 귀신을 볼 수 있고 거기에 개의치 않는다며 내 앞에서 못을 박는 것으로 자신에게서 빙의를 떼어내려는 외부의 자극에 결계를 치고 있었다. 이쯤되면 원몸주와 게이 귀신의 영이 매우 잘 맞는 궁합이라 보여진다.
그녀가 선택하는 남자들이 한결같은 이유를 나는 완전히 깨달았다. 2020년에 나를 가장 괴롭혔던 인물이 바로 커밍아웃 하지 못한, 카트만 하지 않은 트랜드젠더로 보일 만큼 여성이라기엔 보이시하고 대부분 남성이라 생각지는 않을 만큼 체구가 작고 가녀린 게이였는데 그는 아주 어릴 적 엄마를 잃은 후 매우 엄격한 새어머니와 냉정한 친아버지 아래서 엄혹한 양육을 받으며 억압 속에 자신을 드러내지 못 하고 자랐다. 가장 사랑이 필요한 나이에 보통의 사람들 보다 더 사랑을 갈구할 만한 캐릭터를 가진 그에게 이러한 환경은 가혹했다.
동일시 할 남성상을 찾지 못한 그는 성인이 되어 성지향성을 깨달은 후 20년도 더 지나 중년이 된 지금까지 자신과 같은 남성동성향 성지향성을 가진 남자가 아닌 이성애자 남자, 특히 유부남만을 유혹하다 그들 당사자 뿐만 아니라 주변인들과 사회에서 거부당한 채 더욱 망가지고 말았다.
일련의 사건으로 직전 회사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그는 귀신보다 더 귀신같은 나에게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모조리 털어 놓았고 나는 안전하게 회사를 다닐 수 있게 해 주마 약속했다. 나야 애시당초 경계 따윈 없는 "경험으로 성지향성을 결정한다"는 급진적인 사람이었고 당시 우리 회사에는 양성애자, 레즈비언 등 다양한 LGBTQIA들이 이미 존재했기에 큰 문제가 없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애정결핍에서 쏟아진 집착은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에게까지 악영향을 주었다. 게다가 주요 클라이언트가 될 뻔한 사장님과의 술자리에서 술 취한 유부남 사장을 유혹 아닌 유혹하는 사건이 연달아 터지며 나는 굉장히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아웃팅을 조심하던 내가 무색할 정도로 그는 남성 사장들에게 스킨십을 허락했고 맘껏 끼를 발산했으면 때때로 히스테리를 부렸다.
결국 6개월도 되지 않아 그는 우리 회사에서도 퇴사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내가 그 일을 겪지 않았다면 이태원에서 가끔 놀던 쿨한 게이나 트랜스 친구들, 유튜브 강학두 정도로나 게이 친구를 이해했을 텐데 이 분을 지척에 두고 하루 1/2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여러 사건을 겪으며 그들 영혼의 특징을 여러모로 분석하게 되었다. 특히 나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은 직원들과의 관계를 산산히 망가뜨려 놓았다. 마치 여중고교 시절 사춘기 여자애들이 흔하게 겪는 편 가르기, 이간질, 뒷담화의 총체적 난국이었달까.
그래서 나는 그녀의 이상한 모습과 행위들이 바로 자살한 게이 귀신에서 온 거라는 걸, 그 집에 들어가서 30분 정도 앉아 그녀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금새 알아차리게 되었다. 지박령이 된 자살한 원귀는 아마 살아 생전 자신의 성지향성을 부모에게도 친구에게도 쉽사리 털어놓지 못 했을 것이며 어쩌면 털어놓자마자 학구열 높기로 소문난 동네에서 남 부끄러운 집안의 원수가 되어 거부당하고 자살한 걸지도 모른다. 대개 자신에게 의미있는 단 한 사람만 믿고 지지하고 응원해 줘도 그들은 살아갈 힘을 얻으니까.
살아 생전 자신이 사랑하고픈 사람들을 마음대로 사랑해 보지 못한 그(게이귀신)는 그녀를 통해 마구 욕망을 충족하고 있었다. 그녀가 여성으로 30대 후반이면 꽤 많은 나이임에도 어리게 보이는 건 남성의 향취 때문이었다. 키가 매우 작고 덩치도 작으며 무턱일 정도로 큰눈에 동글하기만 한 얼굴에 그려진 여자치고는 선이 굵은, 하지만 남성이라면 오히려 여성적으로 보일 어떤 선들이 그녀의 콧소리 나는 교태와 함께 굉장히 그로테스크 하게 보였다.
그녀에게 유혹되는 남성들은 전형적인 게이 취향의 남성들이었다. 몸과 얼굴에 돈을 아끼지 않고 시술과 수술까지 감행하며 동안에 집착하고 언제나 헬스장에서 프로틴과 함께 근육에 집착하며 커다란 몸과는 다르게 어딘지 모르게 끼순이의 향취가 느껴지는 반들반들한 눈동자. 키크고 훤칠하게 잘 생겼지만 진짜 여성기가 달린 여성에게는 유혹당하지 않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들만의 무언가가 있다.
이 집을 떠나라는 조언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그녀를 위해 퇴마를 해 줄 수도 진혼제를 올려 줄 수도 없었다. 그것은 직업으로 종교와 퇴마를 일삼는 사람들의 몫이다. 아무리 예민하고 민감하다고 해서 나처럼 수행하는 일반인들이 할일이 아니다. 퇴마를 하게 되면 엄청난 기가 소모되고 탁기를 털어내고 회복하려면 자연에서 다시 오랜 기간 기도하고 수련해야 한다.
수련 조금 했다고 섣불리 나서는 사람들이 그래서 쉽게 빙의되고 상단전(정수리라 생각하면 됨)부터 열었다 원귀들의 집(자신의 몸이 귀신들이 거주하는 육신이 되어 그들에게 움직일 수 있는 힘을 빌어주는 것)이 되어 인생 조지는 것이다. 유튜브에 나와 신선같은 외모를 하고 헛소리하는 사람들의 망상이 대개 여기서 비롯되는 잡귀들의 짓이다.
내가 겪은 디나이얼 게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점점 삐뚫어져 갔다. 허언증과 과대망상 증상이 때때로 보였고 유혹하는 행위는 점점 과도해져 갔다. 종국에는 같이 있는 사람들을 모두 불편하게 만들 정도로 같은 모임의 남자들에게 불쾌감을 안겼다.
그녀가 평소에 말하는 이상형과 전혀 다른 남자들에게 그녀는 유혹당하거나 유혹의 행위를 적극 선사했으며 “영원한 바텀은 있어도 영원한 탑은 없다”는 게이 사회의 명언처럼 바텀 게이로서 그녀는 적극적으로 탑이 되어주길 바라는 남성들을 유혹했다.
귀신은 전설의 고향이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개별 덩어리가 아니다. 그것은 형태없이 뭉쳐진 연기같은 것이어서 제 아무리 지박령일지라도 함께 거주하다 보면 조금씩 원몸주에 붙기 시작해서 조금씩 묻어나온다. 지박령으로 존재하던 게이 귀신은 이제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탑남들을 만나러. 살아 생전 못 다 이룬 욕망을 그녀를 통해 실현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동정으로 죽은 게이 귀신이 겁이 나서 막상 결정적으로 금단의 문을 열고 들어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뭐든 처음이 어렵지 않겠는가.
이제 내가 그녀를 멀리할 때가 왔다. 나는 그녀를 비난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게이 귀신이라면, 그래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얼마나 한이 맺혔을까.
내가 2020년에 게이 사건을 겪지 않았다면 과연 게이 귀신을 알아볼 수 있었늘까? 여전히 한 맺힌 중년 과부 정도로 인식하지 않았을지. 인사이트라는 것이 결국은 직접적인 경험에서 밖에 비롯될 수 없기에 귀신들이 그토록 육체를 탐하는지 모른다.
나는 다만 조용히 그들의 평화로운 공존을 기도할 뿐, 더 이상 생각도 않으려 한다. 생각하면 끌어당겨 진다. 싸우거나 얼굴 붉히는 일을 만들어 감정의 기복을 만들지 않고 조용히 멀어져야 한다. 내가 멀어지는 지도 모르게. 귀신들은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린 인간을 귀신같이 알아본다. 그들을 떼어내려는 의도를 들키면 원몸주로 하여금 강하게 저항하게 하거나 자신을 알아본 상대의 기가 약하면 옮겨 타기도 한다.
게이에게 받는 미움은 인생에 한번으로 족하지 않은가 말이다. 어쩌면 그 미움은 결핍에서 온 사랑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들의 특이한 사랑의 방식이 나와는 결이 다르다면 굳이 내가 감당할 필요도 의무도 없지 않겠나. 내게 그 결핍을 충족시켜줄 만큼의 육체적 조건과 심장의 사랑이 충분치 않을 뿐, 그녀에겐 죄가 없다. 그녀의 몸과 혼백을 빌어 쓰는 게이 귀신에게도.
이글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묻어있다고 생각하신다면 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제가 어디 공개한 것도 아니고 친공이니까 재밌으면 그냥 읽으시고 싫으시면 내뇌망상이라 여기고 나가시면 됩니다. 이글의 일부는 실제로 2020년에 게이한테 호되게 당하고 트라우마 수준에서 정신과까진 아니어도 짧게 멘탈 코칭까지 받았던 제 얘기니까요. 지척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했고 그 이후에도 상당히 공부했습니다. 이제는 오랜 시간이 지났고 글쓰면서 묵혀두었던 내면의 어둠을 꺼내어 저를 치유하기 위한 글입니다.
삼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