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기록 (3)
인생에 첫경험이란 참으로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번 입원 경험이 좋았기에 병원에 대한 부정적이고 두려운 감정이 많이 사라졌다. 누구나 병원 경찰서 법원은 피하고 싶은 곳이니까.
1. 요즘은 한번 퇴원하고 나면 같은 병원 재입원 불가, 다른 병원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까 최대한 길게 입원하는 게 좋은데 이미 연말이라 밀린 일정들이 나를 압박하고 다음 주 금요일 사무실 이사 땜에 그럴 수가 없다.
술다방을 팔았기 때문에 매우 홀가분한 심정으로 이번에 완공한 새건물 시청 로컬스티치 소공2호점으로 이전한다. 4년차 사용했던 패스트파이브 안녕!
다음 번 이사는 건물사서 갔으면 좋겠다♥
2. 퇴원하자마자 크립토 워크샵 간다고 신메이 차 타고 다들 룰루랄라 포천으로 가는 길에 맛집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우리가 어쩌다 왜 이렇게 친해져 버린지 모르겠지만 세상엔 다정한 사람들이 많다.
우리 엄마는 참 다정하고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는데 나는 아주 어렸을 때 부터 그 점이 매우 어색했다. 한편으로는 나는 죽어도 우리 엄마처럼 사랑스러운 사람은 못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진짜 타고난 게 무인성(목화 통명 사주에 수 인성 없음)의 표본에 불 잘 타는 마른 장작 같은 나는 남들한테 퍼 줄 줄만 알았지 신세지는 걸 너무 못 해서 오히려 뭘 주고도 욕만 먹는 사람이었다.
이게 사업하면서 크게 마이너스 된 적이 많았다. 깎아줄 때 생색 내고 서비스 제공할 때 쥐꼬리 마냥 야금야금 줘야 하는데 반의 반값만 받고 8배의 결과물을 만들어 주고도 마지막에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 건 영악하지 못한 내탓이다. 결국 내 진심을 무시당하게 만드는 건 정작 나 자신이었다.
한편으로 내가 인성이란 무기를 학습하고 보니 무식상에 수다자 인성다자들이 눈에 확확 띄었다. 그 사람들은 옆에서 가만 관찰해 보면 자기들은 정말 받기만 하는 것에 익숙한데 막상 스스로는 남들한테 퍼 준다고 생각하고 있더라.
결국 나같은 무인성들은 남들 도움 받는 걸 익숙하게 만드는 사건들이 계속 생기고 인성다자+무식상들에게는 남들에게 퍼줘야 하는 일들이 계속 생긴다. 물론 대운을 함께 봐야 더 정확하겠지만 대략 이러하다.
병원에 입원할 정도의 사고를 겪고 나니 일단 병상에 누워 간호사들 친절과 도움 받게 되고 어디가서도 남들 챙김받게 되는 상황이 너무 자연스러워졌다. 사람들이 까는 '인성 많은 사람들의 얄미움'을 본 받아야지.
'안 주고 안 받자'에서 '잘 주고 잘 받자!'로의 후룸라이드.
3. 선경험자들의 말은 무시할 게 못 되는 게 병원에 그렇게 누워있다 나왔는데 어제 워크샵에서 2-3시간 바닥에 불편하게 앉아 있었더니 뒷풀이도 없이 집에 와서 편하게 잤는데도 오른쪽이 전반적으로 결리기 시작한다.
뇌과학자 조디스펜자 박사의 명상치료법을 스스로에게 실험해 볼 때가 왔구먼.
4. 마지막으로 정말 울고 싶은 게 있는데 치과 ㅅㅂ ㅠㅠ
임플란트를 안 하는 대신 부러진 앞니 만큼 치아 뿌리를 교정으로 끌어당겨 아래로 내리게 한 다음 크라운 씌우는 작업을 거의 반년에 걸쳐 하기로 결정했다.
일단 내 치아를 쓰도록 가이드 했다는 점에서 +100점이지만 나는 앞으로 3-4개월을 앞니 6개에 교정기를 부착한 영구(그래, 심형래의 영구없다! 바로 그 영구가 맞다)로 살아야 한다!
템포러리라고 불리우는 임시치아가 치아뿌리를 끌어내리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앞니의 70%는 빈공간인 영구 상태로 살아야 한다. 섹시캐에서 개그캐로 거듭났다.
미팅이야 미스크 쓰고 하면 된다 쳐도 이제 식사 미팅 자리는 전부 안녕이다. 아시다시피 제가 훌륭한 하관과 입술로 인해 마스크 벗고 미모가 업그레이드 되는 몇 안 되는 사람인데 패널티를 안고 협상 테이블에 임해야 하나?
게다가 앞니의 빈공간으로 발음이 샌다. 물론 이건 나만 느끼는 거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겠다고 하던데 나 자신은 평소보다 말하는데 힘이 20%정도 더 들어간다. 말을 더 하지 말고 경청하고 글 쓰는 데 에너지를 비축하라는 좋은 경험의 기회로 삼아야겠다.
5. 이번에 치과 2군데에서 진단 받고 최종 선택한 곳이 강남 루센트치과인데 여긴 완전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엄청난 곳이더라.
다행히 2곳 모두 내 이빨 빼자고는 안 하는 정직한 분들이어서 좋았지만 한곳은 원장님 단독 진료고 워낙 연로하신 데다 무엇보다 사진 촬영 등 기계가 너무 후져서 내 상태를 정확히 판별하기 힘들어 보였다. 2017년 내 치아를 상당히 잘 치료해 준 곳이었고 원장님도 좋은 분이었지만 이번 내 상태는 다소 심각해서 조용히 다른 곳도 찾아보았다.
그래서 지인분께 소개받은 곳이 루센트인데 이 곳은 의사가 일단 5명이고 치료-교정-보철 전문이 한병원에 있어서 다행히 내 상태를 2명의 의사가 동시에 진단 및 치료하게 되었다.
그래서 첫번째 병원에서는 임플란트까진 아니었지만 심하게 훼손된 오른쪽 치아부리에 지지대를 세우고 크라운을 씌우자 했었다. 하지만 여러 의사가 협력하는 병원에서는 남은 치아뼈로 교정을 한 다음 보철을 하는 완전히 새로운 솔루션을 주셨다.
역시 협력없이 사업하기 힘든 세상이다.
6. 남은 단 하나의 문제는 교정은 자동차보험에서 지원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치과에서 직접 심평원에 문의를 넣어야 한다는 거였는데 임플란트 박는 것 보다 훨씬 가격도 싸고 내 입장에서는 내 치아를 살릴 수 있는 길인데도 현재 법과 보험 정책이 이러하다는 것이다. 일단 병원에서 심평원 질의를 넣기로 했다.
100만원 넘는 돈을 우선 내 돈으로 결제했는데 심평원에서 만에 하나 거절될 경우, 나중에 가해자에게 따로 보상 받는 방법은 없나요?
대인 보상 대리인 설정하라는 여러 페친님과 실친님의 조언이 있어 그 방법을 채택할 예정인데 연말까지 술은 커녕 자유롭게 사람 만날 가능성도 차단된 나에게 정신적 피해보상은 못 해줄 망정 이 무슨 ㅠ_ㅠ
개그캐라며 웃고 있지만 원래 알던 사람 날고 초면인 사람에게 어떻게 이 몰골을 보여준단 말인가? 예의가 아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