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취함존중 Aug 24. 2024

끝사랑은 없다

간만에 73% 이상 시청한 JTBC 신작 예능

예능은 아예 안 보고 드라마도 잘 보지 않는다.


SF, 스릴러, 실화 기반, 옴니버스, 내 취향을 잘 아는 주변의 엄청난 추천 등 몇 가지 키워드가 겹쳐야 겨우 본달까?


그래서 블랙미러, 셜록, 비밀의 숲1 정도를 100% 완결로 본 것 같다.



요며칠 타임라인에 끝사랑이라는 프로가 엄청 뜨길래 밥 먹으면서 유튜브 잠깐 보려다가 몇개를 훅 봐 버렸는데


댓글이 막혀 있더라. 아마도 자녀도 있고 연세가 꽤 있는 일반인들이라 제작진들이 일부러 악플 방지하려고 한 것 같다.


확인은 안 해 봤지만 JTBC로 댓글 열어달라는 민원 엄청 들어올 것 같은 예감?


아이돌 영상 보면서 코멘터리 하는 것처럼 본프로 보면서 관상, 궁합, 성형, 뷰티, 패션 고나리질 하면 꾸르잼일 거 같던데


실제 생년월일로 보는 게 아니라 예를 들어


"젊어 보이려고 청바지 입었는데 우아하게 입은 은주님, 돋보이네요 ^^ " 
"얼굴에 필러넣은 거 너무 티나네요~웃을 때 어색해요~"
"오 이 분들 커플되시겄어요. (몇 분 후) 역시~~ 감기와 가난과 사랑은 숨길 수가 없네요~~"
"이햐~ 젊었을 때 가식 떨던 거 나이든다고 어디 안 가네요 ㅋ"
"아 화면에 자동 뽀샵 처리 했네요. 실사는 달라요 ㅎ"
"어머 이 아저씨 백타 가부장일 거에요?"

등등


연애 프로그램은 90년대 <사랑의 짝대기> 이후 처음 봤는데 격세지감 느껴진다. 


구매 파워, 인구구조가 재편되며 유재석&강호동이 20년 넘게 TV를 주름잡는 것과 광고/예능 메인스트림이 가족, 실버 중심으로 옮겨가는 정점에 <끝사랑>이 있다. 


앞으로 다양한 클리셰와 메인스토리가 남녀 롤을 뒤바꾸거나 연령을 +20~30하며 변형될 것이다.


프로그램 종방하면 몇몇 분들은 솔로나 커플로 건기식이나 뷰티광고 꽤 나올 것 같은 예감. 


외모나 건강이나 마음이나 아직 창창들 하신데

사실 이렇게 말하기도 부끄러운 게 내가 연애를 해도 상대남자들이 저쯤 될 수 있지 않나 

끝사랑이라기엔 너무도 풋풋한 거 아닌지.


사랑이란 게 항상 첫사랑 아닌가 말이다.


지금의 2030들은 이 프로보면 


"와, 나이들어도 다를 게 없구나"할지,


"늙어서 주책이다!"할지 궁금하네.


타임라인 구성이나 자녀들 편지, 손편지로 커플 정하기, 그 옛날 사랑의 짝대기처럼 줄긋는 방식 노출 등이 넘나 아날로그틱하면서 섬세해서 피디나 기획자 100%여자다 했는데 역시나~ 기획자 김은정.


지인 중 한명은 "최근 봤던 드라마나 프로그램들 중 젤 흥미롭고 쌈빡하다"던데 그 전까지 굿파트너 열심히 보더구만.


난 굿파트너 유튜브 요약 보면서 너무 구질구질하고 불륜스토리에 항상 나오는 '예쁘고 성격좋고 인간관계도 좋은, 전부 다 잘 하고 일도 똑부러지게 하는 여자가 사랑만은 실패하는(최사라)' 클리셰 캐릭터가 너무 별로더라고. 부부의 세계도 그렇고 끝이 너무 뻔하잖아.


그리고 본처랑 이혼한 남자가 이혼 후 바로 내연녀랑 결혼해 같이 살게 되는 걸 꺼리는 건 너무 당연하지 않나? 지긋지긋한 결혼 생활을 이제 막 끝냈는데 다시 또 그 지리멸렬한 일상을 다시 시작하고 싶겠냐고. 


내연녀와의 관계나 사랑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가 싫은 거라고. 누구랑 같이 살기 싫고 혼자 있고 싶은 거라고. 근데 내연녀들 입장에선 조바심 나서 남자를 가만두지 않겠지. 


국가주의를 근간으로 한 남녀간 결혼 제도의 한계는 백만년의 DNA(남자는 번식, 여자는 안전)와 맞물려 AI와 로봇이 상용화되면 매트릭스의 세상도 그리 머지 않은 미래에 다가올 것이다.


내가 창업을 해서 그런지 2030대에 비해 연애상담 하는 횟수가 1/100로 줄었는데 요즘 청춘들 얘기하는 거 들어보면 '이렇게 하나하나 따져서 어떻게 연애하지?'라는 생각만 든다. 


재산, 돈, 소득, 직업, 명예, 부모, 이딴 거 안 따지고 상대 하나 보고 그냥 올인해도 몇달, 몇년 지나면 시들시들하니 세상 나자빠지는 게 사랑의 끝 아닌가. 


<끝사랑>대화 중에 "우리가 2030도 아니고..."이런 말이 나오는데 이 분들이 지금 2030보다 훨씬 빠르고 급진적으로 사랑에 빠질 것 같은데 뭘.


이 프로그램 보면서 2030들이 역으로 아날로그 향수에 젖을 수도 있겠다.


사랑에도 이제 레트로 트렌드가 자리할 것 같다.


너희들이 공중전화 시대의 사랑을 아니?


짐 자무시 감독, 틸다스윈튼이랑 톰히들스턴이 뱀파이어로 나왔던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Only Lovers Left Alive)>는 영화가 떠오르는 밤이다.



2000년대에 20대를 보낸 꼰대로 태어난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다. 그때 그 10년 간의 시대엔 사랑 밖에 없었다. 그때 그 시절, 죽도록 사랑하고 연애해 본 사람들이 지금 이 나이에 죽어라 일하고 사업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뭐, 저는 그래요.


끝사랑은 없어요. 언제나 첫사랑이죠.

매거진의 이전글 계획된 우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