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같은 소리 하고 있네(2)
요즘 아침 주식은 한국에 편의점이 생긴 이래 22년 만에 처음으로 주류, 바나나우유 등 기존 판매 1위 품목들을 앞질렀다는 '편의점 도시락'이다. 나로서는 우리 엄마의 요리법과 음식을 기억하는, 그리고 내 스스로 밥을 사 먹거나 해 먹기 시작한 세월 이래, 22년 만에 처음으로 가장 자주, 그리고 연달아 가공 식품을 소비하는 중이다.
https://www.hankookilbo.com/v_print.aspx?id=20350ae97d3380ae78f158aca7089b23
너무 덥다. 뭐 여기에 대해서는 두말할 여지가 없으리라. 연이은 폭염으로 전기밥솥의 열기조차 부담스러운 데다 더운 음식이건 찬 음식이건 입에 넣고 싶은 의욕 조차 없는 요즘, 2+1 음료나 사 볼까 하고 들렀던 편의점의 도시락 광고는 꽤나 유혹적이었다.
놀랍게도 처음 두어번은 실패했다. 야근 후 퇴근길에 들렀더니 글쎄 도시락들이 전부 매진인 거다. 나 같은 사람들이 생각 보다 많은가 보다. 나중엔 오기가 생겨 남은 도시락을 찾을 때까지 편의점이 보일 때 마다 차를 세웠다. 유난히 더운 8월 2주 동안 우리 동네에 유난히 없는 GS브랜드의 혜자 도시락만 빼곤 혜리 시리즈, 백종원 시리즈 두세가지 씩은 먹어 본 것 같다. 전자렌지에 2분 정도 돌려 먹어야 한다는 사실도 이번에 배웠다. 그렇다고 내가 무지 럭셔리한 식생활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밥에 김치만 놓고도 한 그릇 뚝딱 하는, 집밥 먹는 습관에 너무도 오래 길들여져 있었고 전자렌지 같은 편의성 가전의 각종 유해성을 전지구적인 관점에서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지구에 나쁜 게 내 몸에 좋을 리 없고 내 몸에 나쁜 게 지구에 좋을 리 없다. 참, 똥만 빼고. 매일 싸지르는 똥 때문에 지구에 미안할 뿐이다.
내가 사회적경제에 깊숙이 발을 담그면 담글수록 나의 현실 삶은 사회적경제에서 말하는 자연에 가까운 삶의 방식,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삶과 멀어지고 있다. 바빠서 집밥 대신 인스턴트 반조리 식품으로 식사를 때우기 일쑤고 정신없이 보내는 일과 사이, 기르던 식물들은 전부 다시 흙으로 돌아갔다. 그나마 철저히 하려는 분리수거 때 마다 확인하는 플라스틱, 폐비닐, 통조림 캔 같은 일회용품의 양만 늘어갈 뿐이다.
얼마 전에 ㄱ은행 사보와 인터뷰를 하는데
"좀 뻔한 질문일지도 모르지만...언제 가장 뿌듯하셨는지?"
내가 뭐라고 했게?
혹은 어떤 답을 당신은 기대하고 있는지?
대부분의 창업가들이 여러 수식어들로 그럴 듯한 성과들을 늘어놓는 동안 나는 그래, 너무도 솔직하게 답했다.
"아직 없어요."
라고.
그리고
"아마 저희 법인 통장에 10억쯤 꽂히는 날이 오면 뿌듯할 것 같네요."
약간 벙 쪄 있던 인터뷰어에게 연달아 한 얘기,
"다소 모순적이게도 돈을 잘 벌고 이 바닥이 돈이 좀 된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뻔하지 않은 방식, 한국 사회가 헬조선인 이유는 누군가를 착취하지 않고는 돈을 벌 수 없는 구조로 돌아가기 때문인데 이 순환 구조를 깨뜨리지 않으면 답이 없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불안하고 실업률은 치솟는데 대기업이나 공무원만 하려 들지 말고 모험을 하라고 말하려면 제가 하는 이 시도가 돈이 돼야 하지 않겠어요? '이거 해도, 이렇게 해도 먹고 살 수 있겠다'는 사람들이 늘어야 생태계를 조성하고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되겠죠."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여유롭게 살며 사회적 삶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돈이 있어야 한다. NGO들도 마찬가지다. 자본력 빠방한 언론, 대기업에서 출자해서 만든 곳들은 웬만한 중소기업들보다 훨씬 여유롭고 풍요로운 물리적 환경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돈이 있어야 남도 돕고 여유도 찾는다니, 여전히 이 곳은 너무도 자본적이다.
개돼지 발언부터 청소 노동자 삭발까지 나는 이 사회가 더 이상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상식이란 건 사람들 사이의 불문율 같은 건데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선 돈의 지배가 다른 종류의 상식이 된다.
돈이면 단가?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하는 대사는 그나마 세울 가오라도 있을 때나 먹히는 소리지, 돈 없고 권력 없고 폼까지 못 잡는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헬(Hell, 지옥)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122153005
나는 굉장히 상식적으로 일하는 중이다. 내가 하는 일이 엄청나게 도덕적이라거나 청렴하다거나 뭐 그런 건지 는 잘 모르겠으나 최소한 비상식적이진 않다고 생각하며, 상식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정도다.
이를 테면 1억짜리 정부 사업 계획서를 1~2천만 원 받고 써 주지 않는다. 보통 1억에 2천만 원의 자기자금을 보태어 1억 2천만 원짜리 사업을 하게 되거나 혹은 9천에 1천 정도 보태서 총사업비 1억을 굴려야 하는 공모 사업이 대부분인데 이렇게 사업계획서를 쓰고 나면 업체(나에게는 이 업체들이 대부분 양조장이다, 양조장 외에도 많은 농촌의 기업들이 아래 서술하는 방식을 택한다)에서는 사업계획서를 쓰기 위해 낸 돈을 회수하기 위해 정부 지원금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선지불한 금액을 보충한다. 농촌을 다니며 이런 식으로 사업하는 컨설팅 회사 혹은 컨설턴트의 대다수는 이러한 프로세스에 매우 익숙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1억 받으면 2천 후불로 (합법적으로) 처리해 주겠다'고 처음부터 페이백을 약속하고 착수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반대로 공짜로 일해 주지도 않는다. 이게 상당히 모순적인 건데 양복 입은 양아치들이 1천만 원 선불로 받고 붙건 떨어지건 무관하게 돈을 버는 동안, 사업계획서 통과 백전백패의 나님께서 진심을 다해 컨설팅+부분 작성을 너무도 당연히 무료로 생각하는 것이다. 똑같은 시간에 입을 닥치고 뻔한 계획서를 써 주면 더 많은 돈을 받겠지만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보조금을 잘 유용하려면 지금 우리 사업장에 무엇이 필요한지, 양조장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를 업체 측에서 먼저, 더 깊이, 진심을 다해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올해 초에 우리 회사에 벌어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3억 사건, 너무도 갖은 방법으로 더러운 일들을 요구하는 모양조장에 '그깟 돈 몇천(만원) 안 받고 말지. 지금까지 일한 거 다 손해 볼 테니 내 당신과는 일 못 하겠소'라고 뒤도 안 돌아보고 진행을 포기했다. 나라고 왜 아깝지 않겠는가? 현재의 술펀을 1년 정도 운영할 수 있는 최소한의 비용이 보장되는 일인데,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어느 스타트업이 이런 꿀팁을 버리고 싶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이렇게는 돈 따위 안 벌고 말지, 퉤!"라는 우리의 곤조 때문인 것을.
이 일이 있은 후에 나는 더 이상 '좋은 게 좋은 거다' 식의 방식은 취하지 않는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 나올 때 다르다는 말 100% 신뢰한다. 특히 돈 문제에 있어서는 더더욱. 계약서 도장까지 찍고도 대금 지불을 몇 달씩 미루는 경우를 그 얼마나 많이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던가? 제품 소중한 줄 알면 서비스 귀한 줄도 알아야지, 우리나라는 사람의 노동이 너무도 대접받지 못하는 사회다. 온디맨드 기반의 스타트업을 내가 공유경제라 생각하지 않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개인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구조는 또 다른 빈곤을 낳을 뿐, 진정한 의미의 공유 경제가 아니다.
남들 다 그렇게 사업하니까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다.
남들 다 그렇게 사니까 나도 어쩔 수 없지 뭐.
이 말이 싫은 것과 같은 맥락 아닌가?
더 우스운 게 뭐게?
지자체나 정부에서도 이러한 프로세스를 다 알고, 뻔히 보면서도 눈 감아 준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렇게 돈이라도 주고 깔끔하게 써 오면 다행이지 - 라는 생각. 딱 이 문장만 놓고 보면 나 역시 동의하는 바, 내 사업하는데 내 돈 주고 내가 잘 못 하는 일, 잘 하는 사람한테 맡기겠다는데 누가 뭐래? 핵심은 합목적적이지 않은 정부지원금을 내 몫으로 유용하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1천만 원 들여 1억의 지원금을 받아 시설투자도 하고 홍보마케팅하며 경상비로도 쓰고 디자인도 업그레이드하면 얼마나 좋아? 그럴듯한 보고서, 증빙서류들 만들어 현금성으로 다시 내 주머니에 넣으니 이렇게 줄줄 새어 나가는 국민 세금은 다 어쩔 것인가? 오호, 통재라.
1억을 이해하기 쉽게 예로 들었을 뿐, 금액이 3억, 10억 점점 커질수록 불법적으로 빠져나가는 금액도 비례하여 커진다. 고민은 없고 명분만 남는다. 이런 식으로는 우리술 업계, 시장 자체가 잘 될 리 없다.
모든 게 그러한 사회에서 그렇지 않게 살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벌 수 있는 돈과는 멀어져 가는 현상, 사회적기업가의 역행하는 삶은 언제쯤 순행하게 될 것인가?
자문자답하자면 -
지금껏 부려왔던 오기처럼, 이렇게 사업해서 망한다면 대한민국이 쫄딱 망하는 게 정상이다 정신으로 하반기도 달려 봐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