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동 잔혹사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그녀를 추모하며

by 취함존중


2016년 6월 21일에 썼던 글, 벌써 2달, 산 자에게 시간은 여전히 빠르다.




어젯밤 10시에 부고 문자가 왔다. 지인의 부모가 돌아가셨나 했더니 문자 온 핸드폰의 주인공, 나의 지인, 당사자가 죽어 남편이 문자를 보낸 듯 했다.


2012년 S교육기관에서 처음 술을 배울 때 마스터 코스까지 수료하는 동안 나랑 동기였고, 과정이 끝난 후에도 종종 연락하며 계속 친분을 유지하며 지냈던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름의 상처를 입고 이 바닥을 떠났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본업을 가지고 가끔 순수한 즐거움을 위해 언변에 능숙하던 재능을 강의로 펼쳐보이기도 하는 조력자이기도 했고.


홈쇼핑에서 쇼게스트로 일하던 고인은 개인생활이 보장되지 않고 특히 은퇴가 짧은 방송 쪽 일에 회의를 느끼던 중 취미로 술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미모도 단정하고 말도 청산유수 같아 이 바닥에서 강의하면 스타강사는 불 보듯 뻔한 일, 올해 초 연락해서도 강의 좀 본격적으로 해 보라고 농담 반 진담 반 권유했었다. 근데 마침 삼성동에 해외 무역 관련 회사에 새로 취직을 했다며 마케팅 강의 조언을 구하길래 괜찮은 커리큘럼 소개해 주기도 했었다.


딱히 지병도 없고, 너무 젊은 나이에 어찌된 일인가? 이런저런 걱정을 안고 오후에 장례식장에 갔더니 마침 낮 시간이라 그런지 조문객이 뜸해 맨날 말만 듣다 처음 뵙는 고인의 부군되시는 분과 잠깐 앉아 얘기를 하는데...


세상에! 오 마이 갓! 하느님부처님알라신이시여!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06201617001&code=940202


잠깐 음료수라도 한잔 하고 갈까 하고 앉았던 자리에서 아무 것도 넘기질 못 했다. 워낙 개인의 사생활에 이러쿵 저러쿵 하는 걸 의식적으로라도 안 하려는 성격이라(나이나 혼인 유무 등 특별한 경우 아니면 공적이건 사적이건 잘 안 물어 봄) SNS 따위에 떠벌릴 생각이 없었으나 사건이 워낙 충격적인데다 세월호 이후 부각되는 한국의 총체적 안전 불감증이 여러 겹 오버랩되는지라, 분노와 슬픔에 넘겨 짚고 아니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마침 부군되시는 분의 '부인을 아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넘어갔으면 한다'는 부고 통지에 대한 이유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남'에 대한 울분 역시 너무도 공감되는지라 나도 모르게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 꼭 보상을 받으셔야 한다고 주먹을 불끈 쥘 수 밖에 없었다. 제 아무리 큰 돈이라도 사람 생명을 대체 하겠냐만, 우리나라는 그렇게 천박하게 돈을 쫓으면서 막상 성폭행 피해자들이 피해보상 청구하면 꽃뱀이라 하고 세월호 유족들이 주장하면 자식 담보로 돈 뜯는다 한다. 억만금이 그들의 잃어버린 시간과 가족과 자존을 얼마 만큼 돌려 주겠는가? 돈과 금전은 정말, 아주아주 최소한의 보상이고 위안일 뿐이다. 내 식대로 정의하자면 - 자기 자신, 자존을 포함해- 소중한 이를 잃고 마음껏 슬퍼할 시간동안 최소한의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딱 그만큼의 보상.


음식은 커녕 물도 잘 안 넘어가고 평소엔 입에도 대지 않는 달디 단 탄산음료 반캔쯤 마시고 나오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실감이 나지 않던 마음에 누군가 빠앙- 누르는 경적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이 번쩍 든다. 그리고 뉴스에 보도 되었다는 그 사건을 뒤적인다. 적나라하게 뒤집힌 신문기사의 자동차 사진이 가슴에 사무친다. 고인의 차는 소형 승용차였는데 입구로 들어가면서 앞 부분부터 고꾸라졌을 것이고 위치 에너지를 받아 반 바퀴 회전 후 뒤집혀 떨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는 기사에 나온 대로...


운전을 해서 다음 미팅 장소로 이동하는데 그때서야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게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것이다.


뭣이 중헌디?


처음 간 곳도 아니고 매일 출근하던 빌딩, 그렇게 아주 여러 날, 여러 달을 주차해 왔던 곳, 기계식 주차타워에는 당연히 센서가 부착되어야 할 텐데 그것도 없었다고 한다. 이게 얼마나 비싼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게 과연 사람 목숨보다 중하고 비싼가? 매너리즘에 빠진 관리인은 여느 때와 같이 으례 지금쯤 올라 왔겠지 하곤 문을 열었을 테고...


나도 모르게 리와인드처럼 그 장면들이 연속 상상이 되어서 상당히 괴롭다. 돈 몇 푼 보다 사람 목숨 값이 하찮은 사회가 한국이다. 저신뢰사회 정도가 아니라 신뢰라곤 없는 나라가 한국이고, 공무원이고 기업이고, 멋 모르는 어린 아이들까지 장기적인 믿음과 신뢰가 아닌 숫자로, 지금 당장의 이득과 금전으로만 일하고 판단하는 천박하기 짝이 없는 천민 자본주의의 나라, 진심으로 신물이 난다. 구역질 난다.


삼풍백화점 이후 30년, 세월호 3년, 이 나라는 답이 없다. 앞으로도 답이 있을지 모르겠다. 최근 내게 일어난 인간 영혼의 탁함과 더러움을 증명하는 일련의 사건들에 종지부를 찍는 최악의 사건. 오늘도 골백번 되뇌이는 말,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지 말자, 분노하고 또 분노 하더라도 그 분노에 매몰되지 말자.





이후 장례식에 와 준 데 대한 감사 인사와 유해를 모신 납골당 소식 등이 담긴 단체 문자가 그녀의 남겨진 반쪽으로 부터 두어차례 더 온 것 같다. 말이 마흔여섯이지, 유난히 동안에 에너지 넘쳤던 그녀는 아이도 없이 반쪽만 덩그러니 남겨 두고 그렇게 허망하게 떠났다.


얼마나 답답하고 또 억울했을까? 처음 만난 내가, 생전의 아내를 안다는 이유만으로 "XX는 나에게 참 과분한 여자였다"며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내쉬던 초점 잃은 눈빛이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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