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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함존중 Apr 11. 2017

자부심이 자부심 있는 술을 만든다

안산 대부도 그랑꼬또 와이너리

거의 완성된 글이 한번 날아가고 나니 의욕이 안 생기는군요. 이틀간 좌절좌절 ㅠ 
그러나 꾸역꾸역 써 보렵니다. 브런치에 옮기기 좋은 오프라인 에디터 툴 좋은 거 있으면 공유합시다 :)
그나저나 처음 썼던 글에 비해 길이도 짧아지고 전혀 다른 분위기의 글이 되어 버렸다는...


옥로주편이 다소 길어질 듯하여 잠깐 와이너리로 옆길 좀 샜다 가겠습니다 :)


서울에서 오이도를 지나 시화방조제로 이어진 다리를 건너면 대부도가 나온다. 인천과 더불어 근교 바다라 그런지 주말엔 제법 차도 밀리고 사람이 꽤 많다. 운전하던 김피디가 동남부엔 미사리가 있듯이 서남부엔 대부도도가 있다며 수도권 대표 불륜 관광지라며 귀띔해 준다. 일단 선입견 장착.



서울 방면에서 시화방조제를 지나는 다리를 건너면 바로 방아머리 해변이란 곳을 지나게 된다. 계획도, 대책도 없는 주막특공대는 일단 방아머리 해변에 차를 세워 본다. 얼핏 보니 대부도 관광 안내소도 근처에 있는 것 같다 (예상과는 달리 관광 안내소는 해변이 아니라 지나는 길 큰 길 가에 있었음).


 

낚시꾼들이 즐비하다. 길가에는 사람 수만큼 차림비를 받고 회나 조개구이를 먹을 수 있는 여느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식당들이 대여섯 군데쯤 있는데 해산물들의 출처는 잘 모르겠다. 아니 믿을 수 없다고 해야 할까? 지나가며 기웃거려도 보고 가격도 물어봤지만 대부분의 식당이 텅텅 비어 있어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해도 없고 슬쩍 구름 낀 날씨라 그런지 아직 봄이 닿기 전의 바다는 다소 을씨년스러웠다. 더 볼 것도 없이 다시 차에 올라 옆동네 구봉도 낙조대로 향했다.


살짝 비포장에 가까운 구불구불한 도로가에 과연 유지나 될까 싶은 펜션이 즐비하다. 디즈니 대표작 알라딘의 두 주인공이 간판에 떠억 하니 그려진 '알라딘 펜션'을 보고 우리 셋은 저작권에 대해 떠들었다. 아, 직업병이란...


오 신이시여, 구봉도 낙조대!

이 곳은 진정 불륜인의 성지 더이다.

선글라스 남녀 둘 중 하나가 꼈을 땐 불륜 확률 50%
둘 다 꼈을 땐 100%

...라고 저 혼자 생각해 보았습니다 -_- ;;;

사실 가족끼리 온 사람들도 많고 연인들도 많아 보였는데 왠지 불륜 커플들만 보인 건 그들이 너무 티 나기 때문이었을까, 아님 세상 최고 머리카락 빨리 길어 버리는 내가 너무 불순해서? 뭐, 둘 다일 수 있겠다.


이 짤 하나가 구봉도의 전부입니다, 녀러분. 딱히 불륜이 아니라면 안 가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낙조대라 하여 저 높은 곳에 정자라도 하나 있을 줄 알았는데 3평 남짓한 공간은 사람들로 가득 차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갈매기 하나만은 원 없이 볼 수 있는 곳이니 갈매기 끼룩끼룩 그리운 분이라면 추천할 만하다.



개성도 맛집도 없는 대부도에는 대부도를 비로소 대부도답게 만들어 주는 두 곳의 양조장이 있다. 한 곳은 지난주 소개했던 옥로주 양조장, 다른 한 곳은 100% 대부도 포도로 와인을 빚는 그랑꼬또 와이너리이다. 나를 포함해 아무도 입 밖에 내진 않았지만 1박 2일 일정이 무색할 정도였다. 이 곳은 관광지도, 맛집도, 콘텐츠도 뭐도 없었다. 양조장이 없었다면 나는, 두 번 다시 이런 곳에 오지 않을 것이다.  대부도에 실망해 마지않은 두 김씨를 데리고 그랑꼬또로 향했다. 


작년 주령사 2기의 경우 현장탐방을 이 곳으로 왔었다. 마침 제주 출장이 미리 잡혀 있던지라 참석을 못 했는데 이제야 방문하게 되었다. 주막특공대는 신분(?)을 숨기고 방문객인 양, 여기저기 둘러보았지만 낮선 여자(나)에게서 음~ 스멜~을 맡았던 건지 뭔가 술과 관계되는 인간들이라는 것을 들켜 버리고야 말았다. 이번엔 김지원 대표가 제주 출장 중이라 우리는 그 후계자이자 이사인 김한식 청년과 함께 그랑꼬또 대표 와인들을 맛보게 되었다.


일단 2층부터 살짝 둘러보자.


60명 정도는 너끈히 수용할 만한 중대형 강의장을 갖추고 있어 기업이나 단체 연수 및 대관도 가능할 듯하다. 물론 빔프로젝터와 마이크 등 필요한 장비도 모두 설치되어 있고 이 곳에서 와인 관련 강의 및 시음 체험 역시 진행된다고 한다. 체험 가격은 1시간에 2~3만 원 정도로 알고 있는데 인원수 및 시음 와인 종류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다. 기본 시음 프로그램 외 맞춤형도 가능하니 올해 단체 워크샵은 서울 근교의 와이너리 어떨까? 오전엔 연수받고 오후엔 와인 체험으로 팀웍도 다지고 저녁 식사 시간엔 마리아주(음식궁합)도 살펴보고 말이지.


오, 청년의 열정터지는 설명을 보라 -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시음을 시작했다. 사전 연락도 없이 불쑥 들이닥친 터라 사실 큰 기대는 없었지만 즉석에서 이루어진 김한식 후계자의 열정적인 시음회는 실망한 두 김씨들을 감탄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으리라.


(나도 이제 늙은 건가? 농촌의 청년들을 보면 왜 이다지도 므흣하고 기분이 좋단 말인가!)


아, 양조장이여! 

세계 어느 곳을 가도 내 방 안과 다를 바 없다 생각하는, 

이제는 나다니는데 지친, 

지구가 좁다 여기는 이 누님을 특색 하나 없는 한반도 어느 작은 시골 마을로 끌어들이는 매력이여! 


그랑꼬또의 대표 와인부터 열었다. 조명 때문에 실제 색상과 다소 다르게 느껴지겠지만 참고로 살펴보자. 한국에서 레드 와인을 만드는 대표 품종은 우리가 여름 내내 슈퍼에서 흔히 사 먹을 수 있는 캠벨 얼리다. 지중해성 기후에 석회질 토양인 유럽과는 달리 포도의 당도가 떨어져 보당이 필수다. 설탕을 첨가하는 이유는 단맛을 내기 위해서라기 보다 알코올 도수를 맞추기 위해서다. 당은 효모를 만나 알코올로 분해되는데 24~25 브릭스(Brix)의 당도가 나와야 마트의 수입 와인들처럼 12.5% 안팎의 도수가 나올 텐데 캠벨 얼리는 그 절반 정도의 당도 밖에 나오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캠벨 얼리는 화이트 와인 양조에 더 깔끔하고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기름진 삼겹살이나 간이 센 볶음류, 비빔밥과도 두루두루 잘 맞고 보당 정도에 따라 드라이 - 스위트 조정하기도 쉬워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다.


M56은 좀 더 단맛이 강한 레드와인이다. 둘 다 라벨에 로제 와인이라 적혀 있긴 한데 캠벨 얼리로 빚으면 아무래도 서양의 레드와인처럼 핏빛의 걸쭉(?)한 질감은 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레드보다는 로제로 상품화하는 경우가 많다. 제조 방식은 서양의 레드 와인과 오히려 비슷한 경우가 많아 양조장 방문 시 상세하게 물어보는 편이기도 하다. 네이밍이 특이해 여쭤 보았더니 상품 기획 시 원료를 산등성이에 있는 밭에서 시험 재배했는데 그곳이 마침 해발 56m라 마운틴(Mountain)의 이니셜을 따 M56이라는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그랑꼬또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와인은 2년 정도 숙성 후 병입을 한다는데 병입 후에는 급하지 않은 이상 수개월 정도 더 숙성되어 출시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1년에 십만 병 정도를 생산하는데 출하 시기에 따라 주문량이 일정치는 않기 때문에 가끔 병입 하자마자 판매되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현재 그린영농조합의 대표를 맡고 있는 김지원 장인은 30대 중반 포도로 유명한 이 곳 대부도에 귀향하여 당시 포도로 와인을 빚고자 했던 농부들의 사업 기획을 도와 드리게 되었다 한다. 예나 지금이나 1차 생산물로는 부가가치를 높이기 어려웠던 포도 농장주들은 영농조합을 만들어 와인을 사업화하기로 했는데 다들 실무 경험뿐 아니라 서류 작업마저 익숙지 않다 보니 당시 마을에서 가장 젊은 청년이었던 김지원 대표가 일을 거들게 된다. 영동처럼 지자체에서 대대적으로 농가 와인을 양성하지도 않던 시대라 몸으로 부딪히며 물어물어 시작하게 된 것이다. 오, 그는 당시의 농촌 청년 창업가이기도 한 것이다. 1996년 법인을 설립하고 4년 후인 2000년, 우여곡절 끝에 주류 제조 면허를 취득하고 3년을 더 고생하고서야 제품까지 출시하게 되었단다. 김지원 대표를 아직 직접 뵙진 못 했으나 한국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뚜렷한 주관이 있다 익히 들어 왔다. 한국 와인의 1세대 격이면서 척박한 세월을 몸소 일구어 왔으니 충분히 가질 법한 자부심이고 또 역사이지 않은가. 프랑스 와인 산업이 벌써 반 세기를 훨씬 지나왔다면 한국 와인은 이제 겨우 걸음마, 아니 옹알이 수준이니 이 정도 속도라면 유럽은 몰라도 일본은 어느 정도 따라잡지 않을까? 



그랑꼬또 와이너리에서 생산 중인 양조용 포도의 대부분은 조합원들의 농장에서 수급하는데 너덜 포도를 쓴다고 한다. 너덜 포도는 말 그대로 '너덜너덜거린다'에서 따 온 말이다. 상품성이 높은 포도는 식용으로 판매하고 살짝 긁히거나 낱알이 일정치 않은 포도를 와인용으로 수매한다. 지역 사회와 상생하기 좋은 모델이다. 한국 와인 산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지자체의 투자 덕도 있었겠지만 이렇게 지역 경제를 함께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곡주를 양조하는 탁약주 업계에서도 이러한 방향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할 텐데 많이 아쉽다. 내가 소리 높여 떠든다고만 될 일도 아니고 지금 당장 먹고살기 힘들지 않으니 장래를 생각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더 늦어진다. 이런 종류의 의견이 어떤 식으로든 글마다 개진되는 것 같은데 그만큼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부친의 고생과 즐거움을 모두 보고 자랐을 청년 김한식. 나는 왠지 본 적도 없는 아이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지는 것 같다. 와인이란 술이 뭔지도 모를 때부터 이 곳에서 나고 자라 아버지를 이어받겠다며 농수산대학에 진학하여 졸업을 앞둔 청년은 이 일을 선택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술을 마시지도 못 하던 나이였지만
저희 와이너리에 들러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 웃음소리, 감사,
그리고 다시 방문하신 분들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자랐어요.
저도 술을 많이 마시진 못 하지만
저희가 만드는 술이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는 게 다시 저를 기쁘게 합니다. 

 



청수는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청포도 품종으로 당도가 높고 산이 낮아 양조에 적합하다. 우리나라에도 지금은 청수로 빚은 화이트 와인류가 꽤 많은 것으로 안다. 그랑꼬또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드라이 한 버전의 청수 와인, 라벨도 마음에 든다. 


일에 있어서는 세상 까칠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지만 이런 라벨 디자인은 상당히 성공적이라 감히 평가한다. 한글이 가진 미학을 가늘고 긴 타이포그래피로 잘 살려냈고 이러한 디자인은 청수 와인 자체가 가지고 있는 깔끔하고 청량한 맛과 매우 잘 매칭 된다. 쓸데없는 설명이나 정보를 꾸역꾸역 채워 넣지 않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배경도 욕심을 버린, 좋은 선택이다. 풀색의 캡도 술의 빛깔, 라벨의 미색과 함께 전체적인 조화를 이룬다. 다만 뒷면 라벨의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세로로 적힌 설명은 좀 더 다듬었으면 좋겠지만 이건 디자인이 아닌 오너의 지령이었을 테니 아쉽지만 접어 두자. 


2012년에 처음 한국 와인을 마셨을 때 '아, 누가 이걸 돈 주고 사 먹나?' 했었지만 2년이 지나고 '어, 괜찮은 애들이 하나둘씩 나오는데?' 싶더니 이제는 외국 와인 대신 추천할 수 있는 와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이나 새로운 콘텐츠, 독특한 취향을 가진 특별한 손님을 대접할 때 모른 척 같이 마시다가


이거 한국 와인임 
뿌잉뿌잉  ლ( ╹ ◡ ╹ ლ)


해 볼만 하다.


우리나라 기후 상 아이스 와인을 천연에서 생산하는 건 어렵고 대부분의 제조장에서 인공적으로 얼렸다 녹이는 방법을 쓰고 있는데 그랑꼬또 와인의 단맛은 상당히 균형감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단맛을 비선호하는 취향이라(쓴맛 선호자, 독주 킬러임) 아이스바인류는 거의 맛만 보고 마는 편인데 샴페인 잔에 반 이상 잘 마시지 않는 나도 한잔 정도를 부담 없이 마실 정도로 단맛이 너무 강해서 미각 세포 전부를 죽일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단맛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다른 미각 기능들을 너무 죽여버리고 식욕마저 떨어뜨리기 때문인데 아페리티프나 샐러드와 가볍게 한잔 하기에도 괜찮다고 본다. 와인 양조 20년 내공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역시 돈은 사람을 속이지만 세월은 술을 속이지 않는다. 


이때쯤 내가 한잔 하고 알딸딸해져서 더 이상 술 사진이 없는 것 같다 -_-;;;

자 이제 아시겠죠? 주막특공대는 여러분이 아닌 날 위해 다니고 있는 거야. 나님은 나쁜 녀자임. 흠냐흠냐~


그리고 마지막으로 브랜디!

도장 깨기 대신 양조장 깨기에 특화된 나는 브랜디 강짜를 부렸다. 쨔쟌~


증류한 거 있죠?
에이~ 
있는 거 다 알아요~
맛 좀 봐요~


어허! 아무나 따라 하면 안 된다. 특히 어린이, 노약자, 임산부는 절대 따라 하지 마시라.

양조의 끝판 대장은 역시 증류지. 탄성과 점도가 느껴지는 브랜디까지 마시니 어느덧 시간은 1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후계자 청년과 점심이라도 한 끼 하고 싶었지만 첫 취재라 일정이 다소 불안하여 다음을 기약했다.


1층 와인샵에서는 그동안 출시된 그랑꼬또의 다양한 와인이 전부 진열되어 있어 라벨 변천사를 보는 것도 재미있다. 리미티드 에디션처럼 행사용으로 만든 와인들도 간혹 눈에 띈다. 물론 전부 판매하지는 않는다. 



조합과 지역에서 만든 견과류와 와인 초콜릿을 함께 판매하고 있다. 와인초콜릿 살까 하다가 말았다. 살 걸 그랬나? 다음에 또 가지 뭐.


글이 날아간 덕택에 이틀이나 늦게 완성하게 됐고 글의 분위기도 너무 급조한 티가 난다. 길이도 2/3 정도로 줄었다. 주말에 혼자 사무실에서 술술 써 내려갔던 내용이 생각보다 잘 떠오르지 않는다. 다음번엔 불편을 끼치지 않기 위해 에디터를 이용해 보기로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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