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좁고 당신은 넓다
주령사 지원서를 검토하면서 다들 너무도 스펙들이 화려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대학교 때 뭐했나? 돌아보면 참 열심히 살았다. 열심히 연애하고, 알바도 하고, 공부도 했다. 나는 그때 3개월 이내 만나고도 평생을 함께 하고 싶다는 확신이 안 들면 바로 안녕하고 헤어지는(금사빠 끝판대장) 강단(?)의 소유자였고 평생 후회없을 만큼 연애를 했다. 이건 숫자로 환산이 불가하다. 애인 숫자가 손가락, 발가락 넘어가면 이름 기억 안 난다. (다들 이 정도는 공감하시죠? 아님 말고~) 근로장학생은 물론이거니와 주말 호프집 알바부터 바텐, 텔레마케팅, 초중고 과외까지 족히 열가지 넘는 일을 해본 것 같다. 경영학부로 들어가서 경영학 전공하고 심리학 복수전공에 영어영문학 부전공했으니 공부도 원없이 했다. 학교 공부 외에도 이때 이미 독학으로 사주랑 손금, 관상, 타로 등 동서양철학(?)을 기본 수준 정도는 마스터했다.
그런데, 자격증? 없다. 그 흔한 워드 자격증이나 MS오피스 관련 자격증도 없다. 운전면허증 하나 있다. 석사? 음 그땐 정말 치열하게 상담심리, 임상심리 고민하다 발달심리 들어가서 플젝 하나 멋지게 완수하고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다며 접었다. 그리고 친구들 대리 달 나이에 뒤늦게 외국계 회사 신입으로 입사했다. 공채 들어갔는데 여자 중에 서열 2위로 나이가 많았다. 나처럼 훌륭한 인재를 알아봐 준 한국화이자제약은 앞으로도 글로벌리 흥할 것 같다.
나는 대학생활 내내 치열하게 살았지만 대부분 돈이나 명예가 되는 일들을 중심으로 했다. 갑자기 돈 안 되는 활동으로 완전 돌아선 계기는 휴학하고 혼자 인도에 장기배낭여행을 다녀온 뒤부터인 것 같다. 나는 아직도 더운 바람과 특유의 암모니아 비스무레한 향이 훅 불어와 숨을 멎게 하던 한밤중의 뭄바이 공항에 첫발을 내딛던 때를 기억한다. 벌써 16년 전이다. 나의 첫 해외여행이기도 했다. 가는 길에 잠깐 홍콩을 스쳤지만 인도의 첫인상에 비하면 침사추이의 조그만 방 한칸은 천국이었지.
처음에 음식을 입에 못 대서 사흘 내내 환타만 마셨는데 5일째 되던 날 처음으로 샌드위치처럼 생긴 햄버거를 먹고 정신을 차렸다. 인도 여행 2달을 통틀어 가장 비싼 호텔 방에서 지내는 동안 도마뱀과 바퀴벌레에 시달리고 티비를 켜놓고 잠들었다. 귀국행 비행기표를 끊어야 하나 수없이 고민했다.
요즘 에어비앤비가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며 광고하던데 나는 첫여행부터 그랬었다. 많은 거리를 이동하지 않고 꽂히면 내리 일주일에서 열흘을 머물렀다. 인도 하나 왔을 뿐인데 세상은 너무 넓었고 동시에 사람 사는 곳 어딜가나 똑같고 지구가 참으로 좁다고 생각했다. 이후로 지금까지 세번의 외국에 머물 기회를 버리거나 혹은 놓치고 "왜 내가 지금 여기 태어났을까?"에서 시작되는 매우 근본적인 고민을 하다 이 지경에 이르렀다.
인도에서 돌아와서 학교 졸업을 1년 앞두고 두 가지 봉사활동을 시작했는데 하나는 왕따로 인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만든 봉천동 대안학교 교사였고, 나머지 하나는 신생 여성 단체였던 성폭력 위기센터 상담원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발달심리 연구실 왕따 예방 프로그램 개발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게 된 것이고. 그리고 대학원 입학을 목전에 두고 뛰쳐나와 잠수를 타 버린 지금 생각하면 철딱서니 없는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만둔 거 말고 잠수 말이다.
지금 주령사들의 몇몇 지원서에 비교해도 나에게는 화려한 스펙이 없고 직장경력만 봐도 헤드헌터들이 꺼리는 매우 이직과 업종 변동이 심한 이력을 갖추고 있다. 헤드헌터 하던 시절에 내 이력서가 얼마나 한국 기업들에 맞지 않는지 처절히 깨달았고 여러 기업 문화를 접하며 오히려 나를 채용해 주지 않아 감사하게 되었다. 나는 여성이 우대받지 못 하고 성희롱이 일반화된 곳에서 직장생활을 해 본 적이 없다. 창업을 하고 나이가 들어 보니 여성으로서 이건 정말 한국 사회에서 매우 드물게 얻은 운이란 생각이 들었다. 두 차례의 사전설명회 중 질문이 폭풍처럼 쏟아졌던 2회차에 누군가 물었다. 민간자격증은 어떤 것이냐고?
솔직히 저는 자격증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거 어차피 교육기관들이 수강료랑 책 장사 하려고 만든 거고 진짜 실력을 판가름 할 순 없습니다. 다만 아직은 이 사회와 기존에 수료하신 분들이 원해서 제가 서포트할 뿐입니다. 자격 이수 한다고 달라지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건 내가 얼마나 노력해서 좋은 성과를 내고 결과물을 만드는가이지 성적 몇 점 좋게 받았다고 없던 취업 기회가 굴러오진 않아요. 자격증은 수단에 불과할 뿐, 스스로 노력해서 멋진 스토리텔러가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도 이 부분에서 내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백만년 전부터 -나무가 무슨 죄니, 자기를 계발한다면서 왜 남의 성공담을 읽고 있니?- 쓸데없는 자기계발서 대신 자기파괴서 쓰겠다고 했는데 요즘 보면 정말 필요한 거 같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였는데 육로 국경마저 분단되어 있어 마치 섬 아닌 섬처럼 고립된 이 나라는 자아가 산산히 파괴되는 경험을 하지 않고는 끝없이 타인의 시선 속에 평생을 허비하는 사람들이 좀비처럼 남의 인생까지 갉아먹게 될 것이다.
도량은 타고난다. 다만 도량 그릇에 얼마만큼을 채우는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주령사 선발 과정이 헉 소리나게 까다로운 것은 이런 사람들이 모이길 원하기 때문이다. 더 노력하고 함께 잘 되려하고 좋은 것이 있으면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들. 이런 우주의 기운이 내게 인연을 주고 이런 격을 갖춘 사람들만이 내 주변에 모인다는 것을 나는 이미 경험칙으로 알고 있다. 온 힘을 다해 원하면 우주의 기운이 들어준다는데 우주에는 선악이 없고 호오도 없다. 똑같이 -70을 줘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누구는 -200으로 누구는 -50으로 느낄 뿐이다.
ODA나 CSR보면 문화 상대주의나 결과 따위는 생각지 않고 그럴 듯 해 보이는 아이디어, 트렌디한 제품을 사다 지원하는데(탐스 슈즈 ㅅㅂㄻ) 이게 현재의 전지구적, 아니 대한민국 영성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한참 멀은 것이지 -_-) 내가 처음에 술펀을 시작할 때 사람들이, 특히 어딜가나 심사위원들이 내 말을 못 알아 들었다. 그리고 끝없이 교육 사업이나 오프라인 유통 사업, 제조업 등으로 규정지으려 했다. 가끔은 내가 정말 잘못된 건가 하고 밤을 지새우며 고민했지만 그깟 유통마진(유통 자체를 폄하하는 게 아님. 도매가 망한 전통주 유통 생태계를 알게 되면 이해 될 거임)과 내 스스로 규정한 일정 기준없이 정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정의되지 못한 전통주 가져다 들이미는 행위에서 WHY를 찾아내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1급발암물질이면서 환경에도, 몸에도 좋을 리 없는 술을, 이미 몇 백개 양조장에서 팔기 힘든 만큼 만들어 내고 있는 술을 이 사회에 더 생산해 내어 공급한다는 건 더더욱 거리가 멀었다. 내 자신을 납득시킬 수 없는데 어떻게 타인을 설득한단 말인가? 우리가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어느 단체가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5년 전에, 3년 전에 아무도 전통주를 모르고 양조장을 모를 때, 왜 우리가 이 일을 해야 하는지를 목적으로 설파했고 이제는 우리가 정말 원하는 일을 하면서 전통주를 수단으로 끌고 올 수 있는 단계가 되었다.
스펙 따위 인공지능에게나 줘 버려!
라고 당신들이 당당히 외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스펙과 자격증 보다 더 중요한 게 이 세상엔 많다는 것을 최소한 나와 연이 닿는 사람들만이라도 느끼고 스쳐갔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들이 타인의 인정 이전에 자기 자신에게 양심적이고 솔직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길 원하고 이러한 안목이 역시 같은 수준의 상대를 판별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내가 하는 모든 선택과 결정은 결국 지천명에 기반한다. 아니 하고자 노력한다.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은 개인이고 개인이 하나둘 변하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사회가 변한다. 더 많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입안자, 정책기획자들이 변하면 더 빠르게 많이 바뀌겠지.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낸 사람에게 죽음은 두려운 존재가 아닌 옆자리 절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