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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함존중 Sep 11. 2017

인공지능의 시대, 주막의 부활을 꿈꾸다.

인간됨을 지켜가는 사회를 향하여


사극에 빠지면 섭섭한 주막씬(Scene), 그토록 흔하고 대중적이던 주막은 언제부터 사라지게 되었을까? 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9년 일제의 주세법 발효 이후 1916년 강화된 주세령이 시행되며 일본은 본격적으로 전쟁 자금 확보를 위한 주세의 활용을 계획한다. 먼저 제조와 판매를 분리하고 두 과정 모두에 세금을 부여한다. 원래 한국의 술은 가양주(家釀酒) 형태로 장(醬)이나 김치와 같이 집집마다, 지역마다 고유의 방법과 재료로 빚어 마셨으며 각 마을의 중심지나 교통의 요지, 장터가 열릴 때마다 주막이 들어서서 주모의 손맛으로 빚어진 술을 팔기도 하고 국밥 한 그릇과 함께 마시고 가기도 하는 것이 일반적인 문화였다.

    

세계 어느 나라나 여행객에게 돈을 받고 밥과 술, 잠자리를 제공하는 장소가 존재한다. 게임이나 미드나 영드 등 서양 사극에서 종종 등장하는 여관이 서양 문화권에서는 대표적인 곳이며 우리나라 주막과 역할이 비슷하다. 문화권이 비슷한 동아시아 3국에서 중국은 이를 반점(밥 반 飯, 가게 점 店)이라 불렀고 일본은 숙옥(잠잘 숙 宿, 집 옥 屋)이라 불렀다.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중국인들은 음식과 먹거리를, 일본 사람들은 잠자리에 초점을 둔 문화를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이곳을 주막(술 酒, 장막 幕)이라 불렀으니 이 얼마나 풍류 민족이란 말인가.


지금도 고속도로를 장시간 운전하다 보면 들르게 되는 이름난 휴게소들이 있는 조치원, 문경새재, 천안삼거리와 같은 교통의 요지들은 오래 전부터 장돌뱅이와 여행객들이 거쳐 가던 곳이었고 어김없이 적게는 십 수 곳, 많게는 백여 군데 이상의 주막 터들이 존재했다고 한다. 마을 커뮤니티의 중심이었고 여행객들의 쉼터였으며 신분을 숨긴 벼슬아치나 암행어사에게는 가장 가까이서 민심을 접할 수 있던 곳, 밥값과 술값은 받았지만 잠값은 받지 않던 조선의 커뮤니티, 주막. 1910년대 20만 곳에 달했던 주막들은 양조장이라는 술 제조장들이 생겨나며 서서히 대체되었고 일제의 단속과 폐업으로 1930년 대 말에는 5천여 곳 이하로 줄어들었다.  


한식은 오백년 전에도 한식이었을까?


한식뿐 아니다. 한옥, 한복도 마찬가지다. 오백 년 전, 천 년 전에는 다만 집이고, 옷이고, 음식이었으리라. 19세기 중후반에서 20세기 초까지 격변의 개화기를 지나며 급속도로 밀어닥친 신문물의 틈바구니에서 우리의 전통 문화는 모던보이, 신여성들에게 오래된 것, 낡은 것 취급을 당했고 미국, 유럽 일본을 통해 들어온 최신식 스타일 양복을 입고 곰방대 대신 하얀 종이에 말린 양담배를 피우는 것이 세련되고 멋들어진 행위로 치부되었다. 최근 자주 들리는 전통주에 대한 이슈들도 마찬가지다. 주막과 같이 일제 강점기, 일제의 주세령에 의해 사라진 문화들도 있지만 맥주나 위스키의 등장은 그 시대 얼리어답터, 트렌드 세터들의 선택에 의해 널리 퍼지기도 한 것이다.


근대문학을 살펴보면 문화예술인들이 선호하던 당시의 경성 생활상이 드러난다. 그 시대, 그 시절 모던보이들은 더럽고 지저분한 초가집 주막 대신 현대식 인테리어에 중절모와 양복을 빼입고 재즈가 흘러나오는 까페나 바에서 커피와 맥주를 마시는 걸 즐겼을 테다. 매우 오랜 시간, 우리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터부시하고 자연스러운 현대화의 계기를 잃은 채 역사의 장막 속으로 사라져버린 시간들을 외면해 왔다.


비록 일제에 의한 강압적인 도입이었을지라도 주세는 새로운 체제가 도입되는 근대화 과정에서 필수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한국 전통 문화가 빠진 요즘의 딜레마처럼 20세기 절반에 달하는 잃어버린 시대를 향한 향수, 갈망, 역사적 가설(만약 일제강점기 없이 자발적인 근대화가 이루어졌다면?)은 놓아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백년 후의 전통을 생각한다.

우리의 국력이 좀 더 강했고 일제에 의한 근대화가 아닌 자발적인 움직임에 의해 신문물을 받아 들였다면 지금쯤 이자까야 보다 더 깔끔하고 현대적인 한국의 술집이, 프랑스의 살롱 못지않은 문화예술 커뮤니티가 우리 고유의 문화로, 핫플레이스로 존재하지 않았을까? 굳이 그 옛날의 주막처럼 초가집일 필요도, 어둡고 누추할 필요도, 그 이름이 주막일 필요도 없다. 다만 고도의 기술이 발달하고 머지않은 미래, 인공지능에게 일자리를 빼앗길까 걱정하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그 무엇보다 인간성 회복의 계기, 공동체 회복의 공간에 사람들은 목마르다. 이러한 갈망을 그 옛날, 주막에서 발견한다.


현재 한국에는 1,000여 개가 넘는 술 제조면허가 등록되어 있고 그 중 휴폐업 중인 곳을 제외해도 절반 이상은 시판 중일 것이다. 주류 시장은 독과점이 특징이며 전체 8조원 시장에서 주세법상 전통주 점유율은 1%가 채 되지 않고 막걸리 등을 포함하여도 5% 안팎에 불과하다. 하우스 맥주처럼 하우스 막걸리(소규모 주류 제조 면허, 주막처럼 일반음식점과 탁약주 제조·판매를 동시에 할 수 있음.) 제도를 2016년부터 시행 중이지만 아직 일반음식점과 제조장을 넘어 커뮤니티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는 곳은 거의 없다. 또한 주류 제조와 음식점 각각을 하나씩만 운영하기에도 꽤나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에서 두 가지를 동시에 ‘소규모’ 업장 형태로 지속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옥이나 한복처럼 한식과 전통주도 여전히 ‘전통’의 선을 놓고 각계에서 고민 중이다. 비록 우리가 백년 전의 전통은 타의에 의해 변형되고 단절되었으나 백년 후 후손들에게 물려줄 전통은 지금부터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살고 있는 2017년도 백년 후에는 전통이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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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2017년 9월 서울변호사협회 회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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