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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함존중 Nov 14. 2017

창업자가 직접 써 본 면접 뒷담화 3

면접이 끝나고 난 후 - 일잘알의 공통점은?


구독자들의 열렬한 응원(?)에 의해 "그렇다면 과연 누가 합격하는가?"에 대한 글을 최대한 빨리 써서 업로드 하려 했지만 고백하자면 벌써 몇번이고 썼다 지웠다 했다. 사실 막상 지우긴 아까워 메모장에 백업해 두긴 했지만. 불합격 한 케이스는 최소한의 고위험성 원인요소를 가진 사람을 피해가자는 취지임에 반해 합격자들에 관해서는 셀 수 없이 많은 변칙적인 요소들, 그리고 회사나 업무, 직급마다 천차만별로 다른 요소들이 상응하기 때문에 도저히 공통점을 나열하기가 힘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회사에 떨어진 A씨가 B사에 채용될 수도 있고 반대로 B사에 떨어진 C씨가 우리 회사에는 덜컥 합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채용이란 연애와도 같아서 두 사람이 눈 맞는 케이스가 도저히 제 3자, 타인들의 입장에서는 이해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여러 이성에게 인기 좋은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그때는 "인기 좋은 그 사람"에게 선택권이 가는 거지. 그래서 일과 사랑은 진정 인생의 양대 축이면서 흡사한 면모가 너무도 많은 것이다.


대학 입시와 마찬가지로 회사 입사는 끝이 아니다. 말 그대로 새로운 시작이지. 썸만 타다가 "오늘부터 1일"하는 순간이 연애의 새로운 국면인 것처럼 합격을 하면 그때부터 "XX 회사원 1일"이 되는데 1일이 1000일이 될지 10일 안에 장대한 서막을 내릴지는 피차 예측불허. 양측이 채용에 합의한 후에도 실제 인턴, 수습, 시용 기간 중 바이바이(Bye Bye~)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합격한 케이스의 공통점을 나열하기엔 지구에 존재하는 회사 갯수 만큼의 경우의 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별 수 없이 내가 겪은 시행착오와 써치펌에서 실제 겪은 일들을 조금 각색해서 솔직히 써 보는 정도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다. 다만 합격한 사람들의 케이스라기 보다는 "인기 좋은 그 사람", 어느 회사에서나 선호하는 일잘알 유형, 수습/인턴 기간이 지나서도 계속 합류하여 좋은 성과를 내는 사람들, 술펀 뿐만 아니라 여러 회사에서 찾는 바로 그 사람(Right Person)의 특징에 대해 몇 가지 공통점을 나열해 보고자 한다.






1.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알게 하는 사람


팀웍이 중요한 스타트업에서 자신의 업무를 효.과.적.으로 공유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 중인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업무 계획을 수립하고 결과를 완성할 수 있다. 혼자서 자기 일을 잘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일의 진행 속도와 상황, 문제점에 대해 공유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특히 직원들이 1~3가지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을 때 동시에 10개 정도를 진행하고 있으며 3개쯤 더 신사업 계획을 세우고 있는, 상시 주말근무와 야근에 시달리는(나만 그런 건 아닐 거야!!!) 대표라 쓰고 대표 로동자라 읽는다들의 입장에서는 먼저 업무 상태를 공유해 주는 직원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본의 아니게 먼저 챙길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 항상 터지는 사고를 막기에도 급급하기 때문이다(여기서 잠시 묵념 ㅠㅠ). 스타트업에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사람은 스스로 업무를 계획하고 마무리하고 공유할 줄 아는 사람이다. 경력직인 경우 업무 능력과 직무 역량을 떠나 바로 이 부분-업무를 절차와 형식에 맞게 공유할 줄 아는 스킬이 상당히 향상되어 있고 몸에 배인 경우가 많은데 내가 이걸 깨달은 게 술펀 법인을 설립하고도 만 2년이 지나서다. 그전까진 신입들을 뽑아도 일에 부닥쳐 하다 보면 자연스레 실력이 늘 줄 알았다. 나의 첫 직장이 한국화이자제약이었는데 이 회사는 경력직보다 신입 공채를 선호하는 편이고 다른 회사의 타성에 젖은 어설픈 경력자들 보다 화이자 문화가 몸에 밴 신입들이 훨씬 적합한 인재라는 걸 공채 후 2달 간 지속된 연수 기간 내내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너희들은 뛰어난 인재들이며 잘 할 수 있다고 격려했고 매일 반복된 시험으로 이를 증명하게 했다. 나 역시 신입 공채로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으며 입사 후 만 2년은 전공 불문 MR이라는 영업직에 종사하며 대학 동기나 선후배들이 입사한 다른 한국 대기업과 달리 상사 눈치나 사내 정치 보다 성과 달성 및 개인 의견을 존중해 주는 외국계 기업 문화를 먼저 익히게 되었다. 그런데 내 사회생활의 7할을 완성해 준 이 회사는 업계 세계 1위의 회사답게 거의 완벽에 가까운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고 퇴사를 하고 10년이 지났는데도 이때 강화된 패기 덕택에 나 역시 대표가 되면 신입을 잘 적응시킬 수 있을 줄 알았지 -_-;;;


나에게는 효과적인 ERP도 전산이나 서버 시스템도, 신입사원 연수 프로그램 및 이를 시행할 수 있는 돈도 턱없이 부족했는데 말이다. 만 2년의 시행착오 끝에 올 하반기 공채에는 경력직을 중심으로 채용공고를 냈다. 사실 이면을 들춰보면 실력만 보장 된다면 연봉을 맞춰줄 수 있는 여유도 생겼고 사업 방향이 명료화되면서 이전보다 채용하고자 하는 포지션이나 업무 분담 영역도 다소 확고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호기로운 신입을 위해 가능성을 아예 닫아 버리지는 않았다. 패기 아직 못 버리고 경력직과 별개로 최소 신입 1명, 2명까지는 뽑고 싶었던 게 솔직한 나의 바램이었다. 그리고 하반기 채용공고를 닫은 지금, 하나 더 깨달은 게 있는데 경력직이 신입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건 업무 능력 이전에 업무 상황 공유라는 걸 만 3년이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무릎팍 탁! 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왜 경력들과 함께 일하면 편한 건지, 어떤 직원이 나를, 그리고 다른 직원들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지 하반기 채용에서 가장 먼저 입사한 J씨와 바로 그 다음 입사한 H씨를 보며 극명한 차이를 알았고 '아, 어떤 사람이 필요하구나!'라는 걸 비로소 명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불합격의 길은 짧아도 합격으로 가는 길은 회사 측에서도 참으로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걸 아주 조금은 알려주고 싶었다. 이렇게 쓰고 있는 지금도 내년 이맘때 쯤 우리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은 지금과는 또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특히 이번에 스펙이 너무 화려해서 떨어졌던 사람들이 오히려 그때는 더욱 필요해지지 않을까, 아쉬운데 어떡하지, 내년에 또 지원해 달라 해야 하나, 쓸데없는 고민을 벌써부터 하고 앉았는 것이다.


신입들은 아무래도 뭐가 정말 중요한 일인지, 이걸 허락받아야 하는 건지, 의사결정을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어느 정도 선인지를 판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입사초기 3개월 동안 정말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까지도 팀원들이나 동료에게 확인하는 수고로움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그런데 이걸 뭔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던지, 본인의 능력이 폄훼되는 일이라 착각하는 경우들이 많더라. 그래, 여기까진 이해를 할 수 있다. 그래서 다시 나나 사수들이 붙잡고 가르친다. 다음부턴 어떻게 처리하라고 매우 상세히 매뉴얼 수준으로 - 그런데 왜 때문에 반복해서 일처리를 말아먹는 거죠? ㅠㅠ

(우린 여기까지인 것 같아요...)


우리 안 물어요. 잡아 먹지 않아요. 모르는 일은 부디제발간절히 물어봐 주세요.

망하고 수습하는 것 보다 여러 번 답하는 게 차라리 낫답니다.




2. 쿠션 멘트로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사람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단지 '쿠션 멘트'만 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관계라는 건 너무도 신기해서 아무리 겉으로 웃고 있어도 '왠지 모를 쎄한 느낌'이라는 무의식적 사인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예전에 스타트업 근로기준법 강의하던 변호사가 농담삼아 "굳이 해고할 필요 없다. 직원들은 대표가 텔레파시만 보내도 안다"고 하던데 정말 그렇다. 채용 후 1달 내로 '저 직원은 우리 회사 적응 못 할 것 같은데' 싶은 사람 있으면 100% 인턴 기간 중에 그만 둔다. 정리하기로 얘기 끝내고 나면 티 낸 적도 없고 말도 하지 않았는데 핵심 멤버들은 이미 다 눈치채고 있다. 그리고 지금껏 얘기하지 않던 불만이나 단점들을 나열하며 이런 부분에서 함께 못 할 것 같았다고 이야기하는데 들어보면 서로 목격한 상황이나 현상은 달랐어도 증상(?)은 같다.


지금은 서로 말 안해도 속내를 알 것 같은 팀원들이랑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는데 1년 이상 걸린 것 같다. 회의하면서 싸우기도 하고 갈등 상황에서 서로 답답해하고 속상한 적도 없었던 건 아니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건 돌이켜 보면 바닥까지 가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서로에 대한 배려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남녀 사이도 마찬가지지만 인간 관계나 조직 생활에서도 넘지 않아야 할 선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이 최소한의 경계를 넘어버리면 관계는 예전으로 돌이키기 힘들어 진다. 언성이 다소 높아지거나 눈물콧물 질질 짤 수는 있지만 인격을 모독하는 단계로 넘어가면 그 관계는 끝난 거라고 생각하고 그 지경이 되기 전에 관계를 정리하는 쪽이 서로 윈윈이라고 본다.


바닥까지 가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쿠션 멘트가 필요하다. 그것은 굳이 쿠션 멘트가 가진 언어의 의미를 넘어 쿠션멘트를 하는 동안 다시 한번 생각할 여유를 주기 때문이다. 쿠션 멘트란 일반적으로 상대방에게 불편한 이야기를 하기 전 양해를 구하기 위해 미안하지만, 죄송하지만 등의 멘트를 붙이는 거지만 "미안하지만 저리 좀 꺼져 줄래?"를 쿠션 멘트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사진출처: 다음웹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이런 문제가 있지 않나요?"
"XX님이 그렇게 생각하게 한 건 죄송해요. 그러나 이 부분은 제 입장에서도 블라블라~~~"
"~~~ 부분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해 주십시오. (설명 다 들음) XX님 그건 제 의도와 다릅니다."


이런 종류의 배려성 멘트를 경우에 따라 여러가지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일 잘 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니 대부분 의당 상대가 처리해야 할 일, 심지어 후배나 부하직원에게 일을 시킬 때 조차 "XX님, 지금 바쁘시겠지만 ~~~ 부분 좀 한번 확인해 주시겠어요?"라는 청유형 문장을 쓰더라는 것이다. 상사나 대표에겐 그렇다 쳐도 동료나 부하직원에게는 은근히 하대하거나 불쾌하게 업무를 맡기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이런 작은 징조들이 모여 그 사람의 커다란 미래와 성공을 보장하는 거라 믿는다.  '아 저 사람은 우리 회사 뿐 아니라 어딜가도 잘 살겠구나' 싶어서 더더욱 같이 일하고 싶어진다. 가끔 비슷한 또래, 신입들끼리 나이나 학번이 같다고 상대에게 예의없이 구는 경우를 보는데 단순히 친함의 표시를 넘어 팀웍을 해치는 요소가 되기 십상이다. 팀과 직원이 많은 대기업과 달리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에서는 한 사람의 한 마디가 전체 분위기를 많이 좌우한다. 어쩔 수 없다. 집에서 2인분 요리하는 거랑 구내 식당 밥하는 거랑 같을 리가 없잖은가. 커다란 가마솥엔 간장 한 숟갈 들어가서 티도 안 나지만 국 그릇 하나에 간장 한 술 들어가면 음식 버려야 한다.


창업하면 5년 간 온갖 삽질을 하게 될 거라 예상했고 그 삽질에는 나의 과로가 포함되어 있다는 걸 충분히 받아들인 상태이므로 아직은 사람이 모자라서 일을 더 많이 하게 되는 상황보다 사람 하나 잘못 들어 팀웍 깨지는 게 훨씬 두려운 시기인 것 같다. 초기 멤버들 간의 팀웍이 10년 후의 엑시트를 보장한다는 나의 믿음은 여전히 견고하다.



3.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XXX ♪


대부분 능력이나 역량 같은 객관적 평가 척도의 문제 보다는 태도나 성향에서 비롯된 문제가 많다. 우리가 자유로운 문화를 표방할 수 있는 건 서로에 대한 배려 때문이다.


"상대에 대해 배려하려면 먼저 자기 일을 제때 끝내야 하고 함께 일 하는 사람이 편하게끔 전달해 주고 협업해야 한다. 이게 무너지면 내가 싼 똥을 남이 치워야 하는데 이게 한명 똥만 치우면 될 일이 아니고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일이 밀려버리기 때문에 몇명이 피해를 보게 된다. 그래서 자기 일을 제대로 처리하고 타인과 협업할 때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본인이 좋아서 입사한 유연한 근무 환경을 계속 지켜나가려면..."


만약에 당신이 우리 회사 면접에 합격했고 입사를 해서 엄청나게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거나 그다지 치명적이진 않지만 12회 이상 같은 종류의 잘못을 되풀이했다면 가장 먼저 듣게 될 잔소리는 위와 같을 것이다. 물론 일잘알들은 이런 잔소리를 구구절절 들을 일이 없고 신입이라고 전부 듣는 것도 아니더라. 일단 이 치사하고 찌질한 잔소리는 하면서도 내가 쪽 팔리고 다신 하고 싶지 않은 뭐 그런 종류의 잔소리가 되겠다. 그리고 이 잔소리를 들은 사람이 수습이나 인턴 기간 후에도 지속적으로 남아 합류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잔소리를 한 마디로 줄이면 "당신은 팀웤을 산산조각 내 버렸소..."가 될 테니까.


예를 들어 웹개발을 할 때 상세 페이지 콘텐츠가 제 시간에 마무리 되지 않으면 디자인 작업이 밀리고 프론트엔드 개발자나 퍼블리셔가 제대로 작업할 수 없게 된다. 이 일이 누적되면 퍼블리셔는 근무 시간에 할 게 없다가 갑자기 일이 밀려 허우적대며 밤을 새야 하는 일이 터진다. 1사람이 하루 밀린 거지만 디자인 단계에 가면 2일이 밀리게 되고 개발팀쯤 오면 일주일쯤 누적치가 쌓이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누군가는 반드시 불만이 쌓이게 되고 팀웤이 무너지는 최악의 사태까지 진행될 수 있다.


본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관리자급이나 책임자급에서는 이러한 도미노 업무 지체 현상을 최대한 빨리 파악해야 한다. 팀웍은 스타트업에는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필자 꼰대질: 스타트업의 생존이 돈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아직 스타트업을 시작할 때가 아니다) 당장의 해결을 위해 자원을 더 투입하거나 때를 기다려 문제를 반복적으로 발생시키는 사람을 빨리 정리해야 한다. 인력 충원은 항상 생각처럼 되기 않기 때문에 공백기에 업무 분담이 각자 조금씩 늘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상쇄하거나 대표가 개고생을 자처하거나 단기간 고급 인력이라도 투입해서 팀웍이 무너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그런데 이 글을 쓰다가 또 지우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이 1, 2, 3번이 다 따로 떨어진 게 아니라 1이 되는 사람은 2가 되고 3도 되더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몇달에 걸친 면접과 내부의 의사조율과정을 통해 시장에 생각보다 일 잘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런데 이건 내가 10년 전부터 익히 알고 있던 사실 아닌가? 아뿔싸.


헤드헌터들은 여러 고객사(경력자 채용을 원하는 회사)를 관리하는데 보통 경력자 채용은 한꺼번에 이루어지기도 하고 비용이나 시간 문제를 고려하여 여러 포지션을 한번에 의뢰한다. 일반적으로 회사 하나당 포지션 3개가 동시에 의뢰 왔다고 가정했을 때 헤드헌터들은 앞뒤 시기가 맞물려 3~5개사의 10~15개 포지션을 동시에 관리하게 된다. 대부분의 능력 있고 경력이 오래된 헤드헌터일수록 업종이나 직종이 다소 협소하고 전문화되어 있기 때문에 괜찮은 인재의 경우 구직자 리스크를 생각해 합의하여 오픈 포지션 2~3개를 동시에 지원하기도 하고 애매한 구직자가 다수일 경우 반대로 구직자에겐 비밀로 하고 한 회사에 2~3명 정도 복수의 이력서를 넣는다.


그런데 매우 재미있게도 사람들 보는 눈이 다 다를 것 같지만 막상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B사에서 괜찮다고 한 A 씨는 C, D사에서도 호감을 표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 경우도 성립한다. 살짝 애매모호한 인재라 판단하여 일단 만나보고(면접보고) 판단하라며 회사측 실무팀이나 인사담당자에게 면접을 의뢰한 경우 대부분 선뜻 '좋다'고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헤드헌터 입장에서도 고객사와 눈을 맞춰 가는 과정이고 해당 고객사의 기업 문화나 인재상을 실제로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다. 혹은 이직을 원하는 구직자쪽에서 먼저 연락오는 경우도 많은데 이렇게 먼저 다른 회사를 찾는 사람들의 경우 합격할 가능성 보다 탈락할 가능성이 더 많다는 걸 이력서만 봐도 판별가능하다. 진짜 경력 계발을 잘 했으면서 이직도 성공적으로 하는 경우는 헤드헌터한테 오기 전에 지인 추천으로 옮겨 다니는 걸 꽤 많이 봤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력 시장 상황은 최고의 실업률을 찍었던 시기에 조차 항상 ‘사람없다’는 기현상으로 귀결된다. 기업은 '일잘알'을 찾는데 대부분의 사람을 본인이 일을 잘 한다 생각하지만 막상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생기는 현상이란 걸 이제 잘 알겠다. 기업과 맞고 안 맞고의 합을 맞추는 것 이전에 일 잘 하는 사람이 가진 성향, 태도, 특성 군집이 있다는 걸 그때부터 나름 알았던 것 같은데 왜 막상 내가 회사를 만들고 사람을 뽑자니 다시 까막눈으로 돌아가 버린 것일까?



인간의 능력이란 뭘까?



능력이 중요할까? 성격이 중요할까?

자원이 한정된 초기 스타트업에서 능력과 성격이 모두 좋은 팀원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어느 쪽일까? 나도 정말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 대학 때 이후론 펴보지 않던 성격심리학 교재나 심리학 원서 따위를 들춰보기도 했다.  


최소한 2017년 11월의 나는

능력 좋은 사람이 성격도 좋다. 혹은 태도가 바른 사람이 능력이 향상될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정도로 정의내릴 수 있을 것 같다.


10평도 안 되는 사무실 청소를 매월 1회 정도 함께 하는데 항상 보면 먼저 빗자루 들고 와서 시작하는 사람, 열심히 쓸고 닦고 찾아서 일하는 사람, 뒤에서 남하는 거 구경하는 사람, 정해져 있다.  근데 이거 진짜 웃긴 게 업무 할 때 태도나 능력과도 넘나 꼭 같은 것이다. 몸 쓰는 거, 머리 쓰는 거 별반 다르지 않다. 중요힌 건 그 사람이 가진 태도와 예의라는 한계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지난 3년 간 지난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내가 최근 하는 생각은 다음과 같다.

써놓고 보니 참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얘기네 싶다.

그런데 막상 스스로 깨닫고 결론내기까지는 또 다른 나라 남의 얘긴가 싶으네.


1.  스타트업 조직 문화는 조직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아직 견고하지 못한 문화가 좀 더 좋은 쪽으로 정립되길 바란다면 매몰 비용을 아까워하지 말자.

채용 실패 과정에서 나간 비용과 월급은 다 창업 수업료라 생각하고 아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아멘 백번쯤 외운다. 잠재력을 가진 사람과 정말 맞지 않고 능력없는 사람에 대해 빨리 판단해야 하는데 이 부분을 혼자 결정하기 어렵거나 부담스럽다면 핵심 멤버들끼리 2번의 과정을 통해 최소한의 합의점을 도출하도록 하자.

2. 핵심 멤버와 동료 평가는 KPI가 정립되지 않은 스타트업 인사고과에서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정량화될 수 없는 정성적인 코멘트라도 최소한의 공정성과 내적 기준은 있어야 할 터.

3. 1, 2번을 통해 발견한 조직과 맞지 않은 사람은 최대한 빨리 정리한다. ASAP일수록 좋고 최대한 3달 안에.

그러나 이때에도 최소한 대표 한 사람, 그리고 조직이 커졌다면 핵심멤버 2-3명은 붙박이처럼 꼬옥 붙어 있어야 안정된 상태에서 좋은 인재를 채용할 수 있으니 좋은 사람이 나타났다면 맞지 않는 이를 빨리 정리해야 할 필요성 만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롸잇 나우 붙잡아야.

(그렇지만 대표님들, 텔레파시를 보내고 합의하여 정리하도록 하세요. 아무리 5인 미만 기업이라도 해고나 권고사직은 절대 네버 권장하지 않습니다. 스타트업에 입사한 사람이라면 최소한 회사 사정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할 것이고 이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과도한 보상을 요구한다면 이번 손해를 감수하고 다음부터 이러한 사람을 뽑지 말자고 본인의 사람보는 눈에 대해 반성합시다. 안 맞아서 헤어질 때 핑크빛 꽃길을 걷지는 못하겠지만 원한을 지고 나가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나는 내가 나름대로 인간덕질 20년, HR 5년 경력에 빛나는 나름의 통찰력과 예측력을 장착한 소수의 인간이라 자부하는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술펀하면서 얼마나 깨지고 멍들고 상처 입었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회사가 엄청난 권력기관인 줄 알지만 초기 스타트업 대표들은 수퍼 을(乙)이다. 고객에게 치여, 정부에 치여, 직원에게 치여, 돈은 가끔 돈대로 없고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 하루에도 열두 번씩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에이 ㅆㅂ 다 때려치고 농사나 지을까? 별별 생각 다 한다.


특히 면접 볼 때 온갖 사탕발림으로 회사가 어떻고 저떻고 자기는 입사하면 마치 회사를 업계 최고 기업으로 만들 것처럼 생글생글 웃으며 얘기하다 막상 입사해서 일하는 거 보면 복사 한 장 제대로 못하고 비즈니스 메일 문구하나 변변치 못한 걸 보면 속에 천불이 난다. 근데 이 보다 더 괴로운 순간은 내 텔레파시를 어떻게 알아챘는지 입사 2~3개월 차에 "대표님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라며 먼저 정리를 하자는 얘기를 꺼내는 바로 그 순간이다. 아, 그럼 정말 먼저 생각했던 바랑 안 맞아서 나가겠다는데 왜 그렇게 죄책감 생기고 괴로운지. 예의상 한번 더 생각해 보라고 하면서도 정말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어떡하지 싶은 순간도 있고 그렇게 안 맞다고 똑같이 생각을 하고 있었으면서도 아 이번에도 실패인가 싶은 순간을 레알 맞딱뜨리게 되면 나로서도 멘붕이 온다.  


대표도 인간이고 대표도 상처를 입는다.

그렇지만 나보다 직원이 더 약자겠거니 하고 참는 거다 ㅠ

나는 참 수면의 질이 높은 사람인데 이렇게 맘고생을 할 때면 꿈으로 해소하는 경우가 왜 그리도 많은지.

아아 프로이트 횽아


다른 사람들 속엔 안 들어가 봤으니 일단 제쳐두고 나의 경우엔 그렇다. 내가 15년 동안 했던 요가나 명상보다 술펀을 한 3년이 내게 준 깨달음 백팔만 배쯤 크다고 하면 너무 과장일까? 나도 막 창업하면서 뿌듯하고 멋있고 "젊은이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너는 할 수 있다!" 따위의 통 큰 희망을 주거나 고생 후일담을 구구절절 늘어놓으며 "와-대표님 대단하십니다" 같은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글을 못 써서 안 쓰는 게 아니다. (레알?)


현실에서 매우 자신만만한 내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 뒤에는 진짜 더럽고 치사하고 백원짜리 하나에도 덜덜 떠는 내 모습이 있기 때문에 말로 할 수 없는 부분들을 글이나마 남겨 보는 게 나이먹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미덕(?)이라 생각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따위의 얘기를 진정 얼마나 경멸하냔 말이다. 우리네 삶이 죽을 때까지 단 한 순간도 안 아픈 순간이 있을까? 지독한 행복을 느끼는 그 순간까지 이 행복이 깨지면 어쩌나 걱정하는 게 인간이란 생물체 아니던가? 우리는 70억 인구 중 하나일 뿐이고 우주 전체의 먼지 한 톨에 불과하다. 여느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처럼 내가 하는 일이 엄청 거창하고 가치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매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 한계를 매 순간 경험한다. 그리고 그 한계를 조금이라도 넘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넘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그 고민의 시간들이 내 안에 쌓여 있을 뿐이고 누구도 나를, 내 속을 100% 이해할 수 없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공감이 되고 그 사람이 '아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한 명은 더 있구나', 혹은 전혀 다른 입장의 사람이 '아, 그때 그 사람은 저럴 수도 있었겠구나' 정도를 통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대기업이 아니라 스타트업, 특히 소셜벤처나 사회적기업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조금 다를 거라 기대한다. 구직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서로가 기대하는 바로 그 다른 점에 대해 서로 배려하고 맞춰가는 것이지,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해서는 좋은 문화가 만들어질 수 없다. 저녁이 있는 삶은 나도 좋고, 너도 좋고, 모두가 좋을 것이다. 그러나 나 하나가 제대로 업무를 처리하지 못하면 전체 시스템이 무너진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그 기회를 가지는 것이 합당할까? 서로의 노력에 의해 규칙이 지켜지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면 채용 합격은 해피엔딩이 아닌 헬게이트의 길목일 뿐이다.   


술펀이라는 조직의 성격은 이걸 만든 내가 봐도 다소 특이하다. 우리 조직의 성격과 성향에 대해 나는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가 성공을 원하지만 그 성공이 돈과 일치하지는 않고 멋진 일을 하고 싶지만 그 과정이 훼손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 사회적기업의 탈을 쓰고 있지만 스스로 그것을 내세워 '선함팔이'를 하고 싶어하지는 않으며 그렇다고 벤처 스타트업처럼 무턱대고 빠른 시도, 빠른 성과를 바라지도 않는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갈등도 있고 시행착오를 겪긴 하지만 한번도 합의하지 않은 채 결론지어진 적은 없다. 매우 개인주의적이지만 한편으론 어려울 때 말없이 두팔 걷어 붙이고 배려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게 가끔 보고 있으면 신기하다. 올해 12월이면 드디어 우리도 만 3년이 되는데 이제부턴 내가 아니라 구성원들의 힘으로 굴러가는 부분이 점점 커질 거라는 뿌듯함과 두려움 동시에 밀려든다.


나는 처음부터 맨땅에 헤딩하는 격으로 공동창업이나 부대표와 함께하지 않고 완전 홀로 창업해서 처음부터 월급을 주고 일해 왔기 때문에 장점으로는 작은 회사치고 시스템이 매우 잘 갖추어져 있고 단점으로는 내 스스로 과부하가 걸리지 않게끔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작년까지만 해도 누구 하나 없어도 뭐 회사가 잘 굴러가는데 지장이 없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올해 상반기를 지나면서 부터 여러 계기를 거치며 '아, 드디어 단독 창업의 탈을 벗고 팀으로 굴러가는구나'라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하반기 채용부터 팀원들이 아예 1차 면접을 보고 이 친구들 선에서 탈락하면 2차 면접을 아예 진행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1, 2차 면접을 진행한 이후 매번 합격/불합격 이유에 관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나누었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가 참 비슷하구나, 그래서 함께 오래도록 술펀하고 있구나, 그리고 서로가 보는 관점이 어디서 차이나는지, 어느 부분을 놓쳤는지를 공유하며 인사이트를 키우게 되었다.


팔 먼저 빚으니까 몸통 실패하잖아 거봐 맞지 ㅡ,.ㅡ


점점 사업이 확장되고 일이 많아지니 내 업무 외의 다른 부문에서 과부하가 걸리지 않나 싶어 인력 충원에 대해 종종 논의하는데 무엇보다 정말 꼬옥~ 맞는 사람이 아니면 서로 좀 더 고생하고 차라리 뽑지 말자는 부분에서 의견이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었덤 점이 장장 3개월에 걸친, 우여곡절이 끝없이 이어지던 이번 면접을 마무리하며 나로서는 가장 결실있는 부분이었던 것 같다.


아직 J커브도 넘지 않은(우린 넘었다. 얏호! 레알트루ㅋ), 매우 초창기 상태의 조직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것은 단순히 N명의 인원이 더 생기는 것이 아니다. 태초에 야훼가 진흙으로 인간을 빚을 때 덩어리를 퍼억~하고 던지진 않았을 것이다. 나름 머리, 몸통, 손가락 하나까지 정성껏 빚었겠지. 이렇듯 유기체의 각 부위를 하나하나 새로 빚어나가는 과정이다. 내 몸에 맞는 옷에 비유할 게 아니다. 정말 살점이 떨어져 나가면 아플, 뼛 조각 하나 없으면 완성되지 않을 하나의 개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몸통을 빚었으면 팔을 빚고 손을 만들고 손가락을 붙여야지 몸통 빚고 바로 손가락 빚어 놓으면 팔과 손 빚는 사이 굳어버리고 말겠지. 좋은 사람도 때가 맞지 않으면 인연으로 이어지지 않는 법이다. 참고로 나 불교도 기독교도 아님. 무교임.

 

불합격 메일을 보내긴 했지만 통상 의례적인 탈락 메일 이상 읽히진 못했을 것이다. 인턴이든 수습이든 잠시라도 술펀을 스쳐갔던 사람들, 아쉽게도 인연이 닿지 못한 사람들, 혹은 다른 회사 어느 면접에서 떨어진 누군가에게 이 글이 읽힐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순간에도 그것이 오롯이 그 사람의 온전한 경험이 되었으면 한다. 비록 당신의 심장만큼은 아니었겠지만 맞은 편에 있는 상대도 많은 생각을 하고 결정한다는 걸 서로 조금씩 생각해 본다면 아마 다음 기회에는 더 큰 찬스가 찾아오지 않을까? 나 역시 내가 직원이거나, 헤드헌터였거나, 바지 사장이었을 때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이제야 보이게 되었으니까. 100% 내가 될 순 없겠지만 면접 자리에서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를 한번 쯤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우린 서로 같은 인간이니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글은 이따위로 썼지만 면접 볼 때 압박 장난없다.

저에 대한 환상, 안녕(Hello 말고 B.y.e.)하고 와 주세요 -_-//~





시작은 장대하였으나 끝은 매우 미약하네요.

보잘 것 없는 저의 면접 후일담은 이것으로 끝을 맺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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