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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함존중 Mar 03. 2019

전통주, 라이프스타일로 새옷을 입다(下)

남도탁주 정고집 신제품 개발 및 브랜드 리뉴얼 프로젝트 2



술펀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논하기 전에 더욱 중요한 건 '왜'가 아닐까? 아무리 비용을 많이 지불하겠다는 클라이언트가 나타나도 내 스스로 '왜'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명확히 세울 수 없다면 움직이지 않는다. 사실 '왜 움직이는가?'에 대한 이유는 백만 가지라도 댈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 움직이지 않는가에 대한 답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간략히 정리될 수 있다.


1) 제품성이 떨어진다

술에서 가장 중요한 제품성은 바로 '맛'이다. 맛이 없는 제품을 만들어 내는 양조장에서 신제품을 새로 만들거나 기존 제품을 수정하는 것 보다 이미 잘 만든 제품을 찾아 내거나 술 잘 빚는 양조장에 의뢰하여 기존 제품을 개선하여 브랜드나 디자인을 바꾸는 쪽으로 설득하는 편이 훨씬 빠르다.


이른 바, '손맛'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과학 들이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를 비과학적이고 미신적인 어떤 것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손맛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의 경험과 노하우가 오랜 시간 지나며 축척된 개인화된 빅데이터와 같은 것이다. 다만 정량적, 정성적 평가치들을 인간의 한계로 측정하기 힘들 뿐이다. 이것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에 후천적 노력이 가미된 숙련공의 '감'과도 같은 것이다. 술은 요리와 같아서 같은 재료, 레시피, 설비로 만들어도 맛은 천차만별이다. 술 못 빚는 사람이 잘 만들게 되기란 일개 동네 분식집 이모가 아무리 오뎅 국물을 잘 우려내도 하루 아침에 일류 호텔 요리사가 되기 힘든 원리와 같다.


어떤 제품은 조금만 손을 보면 충분히 개선 가능하다. 혹은 현재 제품을 파는 게 아니라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야 할 경우에는 더더욱 향상될 수 있다. 또한 제품 개선에는 반드시 근거가 있다. 소비자의 취향, 타겟팅한 페르소나의 선호, 지역(국가, 도시, 마을 등)의 특성 등 여러가지 요소가 가미되어 제품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런데 그냥 맛이 없는 술도 많다.


Taste beyond Standard


이는 나의 맛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다. 아니 맛 뿐만 아니라 예술품을 포함한 세상 모든 가치품들에 대한 철학이다.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간 후에야 우리는 비로소 '취향'을 논할 수 있다. 미술을 예로 들면 설명이 좀 쉬울까? 인상파냐, 후기 인상파냐, 입체파냐, 낭만주의냐 논하려면 고흐냐, 세잔이냐, 피카소냐 논하려면 일단 그들의 작품이 뛰어나고 봐야 한다. 왜 맛에서는 아닌가? 술이라고 다를까? 하수구에 쏟아 버려야 할 술들을 사 먹으라고 버젓이 내 놓는 걸 보면 썩소가 나온다. 사람들이 국뽕에 의지해 술 사 마시려고 피땀흘려 돈 버는 건 아니거늘.


왜 다들 양조장 사람들은
자기 술에 비법이 있고 뭔가 특별하며 맛있다고 주장할까?


 이상 미신은 없다. 데이타로 평가하자.

소비자들은 맛난 술을 마실 권리가 있고 술펀은 맛없는 술과 함께하지 않을 책임이 있다.



2) 제품성이 술펀이 추구하는 가치와 맞지 않으며 이를 수정할 의지가 없다

전통 누룩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전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해서 한번도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왜 백세를 해야 하고 탕수를 해야 하는지, 일제강점기에 전통 문화가 어떤 취급을 당해왔으며 전통이 가진 속성은 무엇인지 제대로 깊이 고민해 본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종류의 고집을 강요할 때 그들은 그것으로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자족과 위안의 자양분을 삼는다. 전통은 공시성과 통시성을 동시에 가지며 그 어떤 시대에도 타국과의 교류를 통해 발전하지 않은 적이 없다. 과거를 재현하고 현재에 머무는 게 아니라 미래로 향하는 길을 고민하지 않으면 함께 백년酒대계를 세울 수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양조장은 지방소도시나 농촌에 있다. 지역 사회와 상생하고 술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나누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러한 이들과 심정적으로 함께하고 싶지 않다.


왜 그때 그 시절엔 백세를 했을까?

지금은 도정 기술이 발달하여 '분도'를 차등까지 두어 내 맘대로 곡식을 깎아낼 수 있다. 그러나 예전엔 키질을 하거나 사람 손으로 일일이 벌레와 돌을 골라 내고 방아에 찧어 껍질을 벗겨냈다. 술을 빚어야 할 곡식들이 더럽고 거칠 수 밖에. 게다가 물은 또 깨끗했을까? 물 얘긴 또 다음 단락에 나오니 잠깐 넘어가자. 고문헌의 '백세'란 의미는 정말 바를 정(正)자 써 가며 백번 씻으란 말이 아니라 물도 쌀도 더러우니 박박 씻고 또 씻어 최대한 깨긋한 상태로 술을 빚으란 얘기일 것이다. 미생물의 발효 결정체인 술에 조금이라도 나쁜 균을 없애볼 요량으로,


 

왜 그때 그 시절엔 탕수를 했을까?


마찬가지다. 예전에 수도가 어딨고 정수가 어딨나? 계곡물로, 동네 시내물 양동이에 길어다가 썼을 터. 상류에서 머리감고 똥 싼 물이 하류로 그대로 내려온다. 더럽다. 끓이기라도 해야 식균 속은 살균이 된다. 그래서 탕수한 물을 식혀 쓰란 표현이 나온 게 아닐까? 정수와 소독이 잘 된 현대 사회에서는 굳이 탕수할 필요 없다. 수도물로 술 빚어도 잘 나온다. 오히려 미네랄 없는 정수기나 생수 보다 수돗물이 더 잘 빚어지는 경우가 많다. 가양주는 대체로 효모나 효소를 쓰기 보다 전통 누룩을 사용해 손으로 직접 주물러 빚는데 자체적으로 가진 몸의 미생물이 맛(?)있지 못하면 술도 마찬가지다. 가양주 수준에서의 양조란 결국 빚는 인간이 소유한 미생물에 절대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교육기관에서 같은 레시피에 같은 재료와 도구로 빚어 함께 채주해도 사람마다 전부 술맛이 다른 것이다. 비닐 장갑끼고 빚으면 바이어스가 조금 덜 생기기도 하지만 빚으며 말이라도 하면 침이 튀고 모르는 사이에 수십만 몸에 붙은 먼지와 미생물들이 술통으로 떨어진다. 하물며 맨손으로 빚으면 백발백중이다. 정말 미신을 팔고 싶다면 차라니 영혼의 격에 따라 술맛이 달라진다고 해라. 이건 빅데이터로 밝혀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명시하고 있진 않지만 난 누군가를 혹은 전통주 양조에 있어서의 어느 사조를 까고 있다.

더 이상 미신과 비과학은 없다. 전통은 머무르지 않는다. 시대와 시간과 함께 변한다.

시대를 고수하기만 하다간 예전처럼 일본한테 지배나 당하겠지.

술펀이 있는 한, 다음 100년 전통에 적폐는 없다.



3) 가격으로 간을 본다

우리는 일에 착수하는 가격 마지노선이 있다. 특히 브랜드 컨설팅은 일정 가격 이하로는 아예 일을 맡지 않는다. 이건 사실 우리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그럴 것이다. 아무리 매력적인 일도 우리가 정해 놓은 가격 이하의 규모는 착수하지 않는다. 이렇게 쓰면 매우 큰 금액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일 하다 보면 출장도 가게 되고 실비가 지출되는데 이러한 부분을 감안하여 최소한의 금액을 측정해 놓은 정도다. 사실 하는 일에 비하면 턱도 없이 적은 금액이라고 생각한다. 시장이 개선되면 우리도 조금씩 가격을 인상하게 될 것이다. 


무튼 최소 금액으로는 시장 출시까지 필요한 제작물(Meterial)들을 전부 개발할 수 없기에 보통 실제 계약하는 금액은 훨씬 높아진다. 그리고 우리가 제시하는 금액은 합당하고 합리적이다. 프로젝트를 끝낸 회사가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한번도 없을 정도다. 그런데 술펀 이전에 일했던 모든 경험을 통틀어 비추어 보면 가격으로 실갱이를 하는 클라이언트와는 절대 신뢰를 구축할 수 없다. 이런 사람은 반드시 뒷통수를 친다. 몇 번의 쓴 경험 끝에 우리는 계약 전에 돈으로 장난치는 사람과는 절대 일하지 않는다.


결과물에 만족하지 못 하면 함께 협의점을 도출하며 개선하면 된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면 된다. 그런데 처음부터 10만 원, 20만 원 가지고 시비거는 사람은 반드시 열배 이상의 금전적, 비금전적 손해를 끼친다. 특히 본격적으로 계약서에 사인하고 일에 착수하기 전에 다른 곳에 견적도 받아보고 충분히 이리보고 저리보고 다 알아 본 후 '정말 우리와 일 하고 싶으면 오라'고 투명한 여유를 주는데 마치 아닌 것처럼 겉으론 내일 당장이라도 입금할 것처럼 사탕발림 하다 네이밍 부터 콘셉까지 온갖 아이디어 다 빼내가고 마지막에 뒷통수 치는 사람도 있다. 판별하는 방법은 역시 관상 뿐인 것 같다 -_- (눙물 좀 닦고 ... ㅠㅠ)



제주 바다 보며 (눙물 쫌 딲꼬) 잠깐 쉬어 가자



양조장을 다니며 일하는 나 말고 사적인, 개인으로서의 나는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저렇게 늙어가지 말자


는 것이다. 아쉽게도 '저렇게 늙어가고 싶은 사람'은 아직 만나지 못 했다.

갑자기 술펀에서의 4년이 지나며 회한이 밀려드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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