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디렉션이 최적의 결과물을 낳는다
컬러포인트는 민트와 옐로우로 잡았다.
민트는 자연과 하늘, 노랑은 풍요와 땅을 상징한다.
전략적으로 브랜드 '미녀농부'와 회사명 '쉼표영농조합법인' 아이덴티티를 별도로 가지고 간 케이스.
우리처럼~
'쉼'이라는 글자에 착안하여 집을 형상화하고 받침인 ㅁ은 의자처럼 보이게끔 도안을 만들었다. 만국 공용 기호인 쉼표를 중간에 넣어 직관적으로 표현하고 농촌과 수확을 떠 올릴 수 있도록 벼와 이파리 달린 나뭇가지의 모양새를 쉼표 안에 넣어 농부, 농촌의 이미지를 가미하였다. 쉼표를 유색 바탕으로 만들어 활용도를 높였다(오른쪽).
미녀농부: 바쁘고 지친 현대인에게 여러모로 쉴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직장 생활과 끝나지 않는 빨리빨리 속에 지쳐서 귀향했는데 제가 제공하는 농산물과 제품이 누군가에게 편안함을 주었으면 합니다.
처음 상담 요청이 왔을 때, 가장 고민했던 건 다름이 아니라
미녀농부의 비즈니스가 어떤 방향을 중심으로 흘러갈 것인가?
본인이 농사지은 제품만 팔 건지, 농산물 큐레이션을 할 건지, 제조가공을 해서 직접 가공품 생산을 할 건지 수 차례에 걸쳐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고민을 나누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술펀 보다 남의 비즈니스에 해답이 더 잘 보이는 걸 보면 역시 뼛 속까지 컨설턴트의 피를 타고난 것 같다.
소농, 영세업자들이 초기에 가장 쉽게 포지셔닝 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가 본인을 브랜드에 투사하여 개인 브랜드 전략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래서 식당 간판에 본인 이름을 써서 아예 식당 이름 삼는 경우도 많고 최근 잘 나간다는 마켙 컬리나 헬로네이처 등 농산물 직거래 플랫폼들이 농부의 이름과 개인 프로필, 스토리를 열거하는 이유도 이에 일맥상통한다. 아무래도 고비용 광고를 할 수 없는 형편인 데다 먹거리다 보니 개인의 신뢰가 곧 제품의 신뢰로 직결되기 때문이리라.
개인적으로 농촌6차산업에 관심을 가지고 현재의 농촌과 농업을 상생가능한 방향으로 고민하며 여러 시도를 추구해 보려는 미녀농부를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 역시 컸다. 그리고 실제로 그녀는 미녀였기에 적극적으로 '본인을 팔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그 방식이 소위 말해 싼티나거나 천박한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미녀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농부라면서 짙은 화장에 예쁜 척 하는 모습만 빈번하게 노출하면 오히려 역효과만 날 수 있다. 예쁜 모델 있는 여성의류 쇼핑몰 접속자 중 남자가 월등히 많은 경우가 바로 그렇다 -_-;;;
본인의 얼굴을 노출하지 않고 의인화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중에 하나가 캐릭터다. 술펀 역시 3명의 캐릭터가 노닐지만 좋은 캐릭터를 뽑아 내는 게 쉽지는 않다. 또한 캐릭터를 표현하는 기법에 따라 분위기와 컨셉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이를 정하는 과정은 생각 보다 까다롭다.
몇 가지 직접 살펴 보자.
요즘 이모티콘이나 앱에 많이 쓰는 2차원 캐릭터다. 왼쪽은 선이 좀 굵고 오른쪽은 선이 좀 더 얇다. '캐릭터'라고 했을 때 전형적인 건 사실 왼쪽에 가깝고 오른쪽은 일러스트에 가깝다. 캐릭터 개인의 역할이 중요한지, 전체적인 분위기를 강조할 건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5천만이 다 아는 만화 둘리, 그리고 이 블로그를 보는 분이라면 알 수도 있을 우리 술펀의 3총사 캐릭터.
사실 둘리 만화의 역사는 내 나이보다 오래되었다. 오랜 시간 사랑받는 몇 안 되는 우리나라 만화 중 하나, 반듯반듯한 캐릭터 느낌 보다는 만화 주인공이라는 느낌, 사람이라는 느낌이 더 많이 든다. 술펀도 마찬가지다. 캐릭터라고 하기에 매우 복잡한 선을 가지고 있어 단순화된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다. 처음 기획 할 때 최신 유행 보다는 다소 고전적인 방식을 택했다.
캐리커처도 종종 활용된다. 선과 동작이 전반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 든다. 농산물 생산자로 개인 브랜드를 만들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식 중 하나지만 개인적으로 브랜드 작업에 선호하지 않는다. 너무 개인화 되어 있어 오히려 보편성에 뒤쳐진다.
좀 더 입체감이 있어 보인다. 뽀로로의 경우 태생이 3D이므로 역시 동글동글해 보인다. 요즘은 평면적으로 표현한 듯 하지만 원근감이 느껴지는 캐릭터를 많이 사용한다. 그렇다고 완전 3D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어려운 용어 다 집어 치우고 일반인들이 슬쩍만 봐도 위의 캐릭터들과 느낌이 조금 다르지 않나?
미녀농부에 활용한 컨셉이다. 과일바구니를 들고 있는 것처럼, 혹은 앞으로 내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미녀농부의 사진 여러 장 받아 그 중 캐릭터에 부여하고 싶은 이미지를 3장 정도로 압축했다.
캐릭터는 보통 우리도 외주를 준다. 작업하려는 캐릭터의 컨셉과 분위기에 따라 선택하는 일러스트레이터 풀(Pool)도 달라진다. 아트디렉터는 클라이언트와 캐릭터 일러스트레이터 사이의 의견을 잘 조율하고 반영해야 하므로 일반 BI, CI 작업 보다 2배로 품이 많이 든다.
캐릭터를 만들면서 전체적인 컨셉이 결정되면 얼굴 표정과 옷, 악세사리, 신발 등 여러가지 디테일도 결정해야 한다. 미녀농부 만들면서 블라우스에 치마같은 것도 재미로 입혀 보았는데 역시 작업복이 최고더라. 하하. 그러나 미녀농부가 대박쳐서 스페셜 에디션 같은 거 만들 게 되면 한복이나 드레스 버젼 만들어 볼 수 있겠다.
대량 생산이 아닌 소량, 소포장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시기에 스티커 활용법을 권장하였다. 크래프트지나 비닐팩 등 방산시장과 인터넷에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포장재에 제품에 맞는 스티커를 부착하여 판매할 수 있도록 아직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창업가에게 큰 부담을 지우지 않기로 했다.
미녀농부 글씨 역시 2가지의 메인 컬러와 포인트 컬러를 활용해 전체적으로 캐릭터 및 CI와 통일감을 주고 서체는 전반적으로 둥글게 그려 부드러운 느낌을 주도록 했다. 최대한 생략하는 걸 좋아하는 우리의 취향을 조금 반영하여 미녀농부에서 자음만 본따 활용할 수 있도록 앞치마에 넣어 보았다. 미녀농부 인물 캐릭터와 농산물(사과, 배, 쌀알) 캐릭터를 조합하여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주어 조금의 지식만 있으면 포토샵과 일러스트로 즉시 패키지로 만들 수 있게 추후에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였다.
경북 상주에서 맛있기로 유명한 사과, 배, 그리고 우리의 주식 쌀을 메인으로 캐릭터화 하여 2017년에 이 세 가지중 무엇을 팔더라도 대박날 수 있도록 깜찍하게 만들어 보았다. 명함 디자인도 보통 1종류 하는데 우리 디자이너도 하면서 영감을 팍팍 받고 즐거웠던지 2가지를 다 해서 드렸다.
끝나고 미녀농부님과 거창 이수미팜베리에서 쫑파티도 했다능 ;;;
아, 정말 훈늉한 '갑'과 '을'의 모습 아님요?
2016년 한해 맞은 여러 대의 뒷통수를 미녀농부님께 한방에 치유받았다.
아아, 은혜로와라 >.<
이번 작업은 미녀농부의 빠르고 신속한 결정 덕분에 다른 프로젝트의 70% 정도로 시간도 단축되고 즐거운 작업이 되었다. 브랜드 디자인 작업이 망하는 가장 흔항 경우는 클라이언트가 처음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디렉터의 말에 전부 수긍했다가 작업물 다 나오고 반 이상 진행된 상태에서 뒤집어 엎을 때, 심지어 뒤집어 엎은 후에도 정확한 요구를 표현하지 못할 때, 표현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조건 '이건 아니다'고 할 때 백이면 백, 작업이 끝난 후에도 개운치 않고 기분이 나쁘고 돈을 받아도 즐겁지 않다.
1월 말까지 예상한 작업이 2016년 말에 다 끝났다. 반대로 12월에 끝내려던 작업은 오히려 2월까지 질질 끌게 됐다. 왤까? '클라이언트가 자신의 욕구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인지하고 있는가'에 달렸다. 정확한 디렉션이 훌륭한 결과물을 낳는다.
덕분에 2016년 마무리와 2017년 시작이 매우 순조로웠던 것처럼 미녀농부의 앞날 역시 그랬으면 좋겠다.
원래 브랜드 작업에 대해 사진이랑 약간의 소개만 하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일기처럼 되었다.
그래서 제목도 바꿈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