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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함존중 Oct 05. 2021

여수와 한번 취해 보시게요

여수 대표 전통 맛 프로그램 개발기

최근 인터뷰를 하면서 질문 중에 "전통주 추천"이 또 있길래 "이 질문은 너무너무 지겨우니 조금 바꿔 보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출장을 많이 다닐 텐데 혹시 추천 여행지는 어떠냐


고 물어봐 달라고 강요(?) 아닌 강요를 하고 답변은 속초와 여수, 저는 이 두 도시가 참 좋더라고요.


일단 음식이 맛있습니다. 술도 음식이라 술을 주로 취급하는 저에게 '맛'은 빼 놓을 수 없는 삶의 필수재입니다. 음식이 아니라 '맛'이요. 물론 저에게 맛이란 혀에서 느껴지는 '그것'만이 아니라 물리적 특성에서 화학적 총합, 영적 에너지까지 총체적인 어떤 덩어리입니다. 저는 아무리 바빠도 레토르트나 편의점 간편식으로 끼니 때우는 걸 죽을 만큼은 아니지만 기절할 만큼은 싫어합니다. 굶으면 굶었지 영혼 없는 음식을 우겨넣는 건 제 취향이 아닙니다.


둘째, 제가 좋아하는 도시들은 오래된 매력과 현대적 편의를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다양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도시의 편의를 60% 이상 누릴 수 있죠. 매력적인 재래시장이 있지만 편의점과 마트도 최소한의 수량은 분포되어 있습니다. 적당한 익명성을 누릴 수 있고 한국인 뿐만 아니라 드문드문 외국인 관광객도 보인다는 거죠.


제천, 보은, 삼척, 서천 같은 도시들은 자연 풍광이나 오래된 매력은 있지만 현대적 편의가 떨어지고 접근성이 불편합니다. 반대로 상주, 포항, 광주 같은 도시는 교통도 편하고 볼 거리는 있지만 생각 보다 고풍스런 맛이나 유적지가 없어서 또한 여행지로서 매력이 없습니다. 그외에 논산, 강경, 철원 및 부산인근 소도시 같은 스팟들은 관광지로서의 개발이 너무 안 되어 있어서 숙박이나 식당, 즐길거리가 너무 후집니다. 저도 한때 창업을 꿈꿨던 도시, 제주도 좋지만(한때 진짜 땅 많이 보고 다녔죠) 경험해 보니 저는 음기 쎈 섬이랑은 안 맞는 걸로.


셋째, 바다가 있네요. 대구에서 자고 나라 서울에서 살아서 그런지 누구나 그렇듯 바다를 보면 뻥 뚫립니다.


그 외에 군산, 통영, 영월도 좋아합니다. 요렇게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겠네요. 앞서 꼽은 두 도시는 가서 살아야 한다면 살 수도 있는 곳이랄까요. 제가 경상도 사람이라 그런지 다시 경상도로 돌아가고 싶진 않은가 봅니다. 하하.


세월이 지나면 다른 곳들이 좀 더 치고 올라올 수 있으려나요. 아무튼 지금까진 속초랑 여수를 가장 좋은 여행지로 꼽고 있습니다.


마침 이번에 여수에서 프로그램 개발 건이 있어 너무 행복하게 일을 마무리 하게 되었습니다. 장소만 좋은 게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 함께 여서 더욱 즐겁고 보람 찬 프로젝트였어요.


(주)여수와는 로컬 크리에이터이자 지역 관광 회사입니다. 여수가 고향인 하지수 대표는 17년의 중등교사 임용 생활을 접고 2018년 사회적기업의 형태로 여수와를 창업하였습니다. 그간 다크 투어리즘의 일환인 비하인드 하이킹, 여수의 맛과 같은 의미있는 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하였고 여수와 맥주, 드립백 커피 등 관광 상품도 개발하였습니다.


비하인드 하이킹여수의 맛이 여러 관광 스팟을 돌아다녀야 하는 동적 프로그램이라면 이번에 저희와 함께 개발한 프로그램은 앉은 자리에서 진행하는 정적 프로그램입니다. 2014년 부터 꾸준히 일반인 대상의 전통주 프로그램을 진행하였기에 저희에게는 다양한 레퍼런스가 있었지만 지속가능한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서는 진행자와 해당 지역에 눈 녹듯 스며드는 자연스러움, 매번 변화하는 참가자 특성에 맞게 조금씩 세부 내용을 수정할 수 있도록 유동성을 갖추는 게 핵심이었기에 기존의 여수와가 가지고 있는 핵심 역량 및 자원을 분석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본 프로그램 개발에 있어 가장 취약한 점이 1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지수 대표,
진행자가 술을 거의 못 마신다


는 거였죠. 한 방울까진 아니었지만 세 스푼 정도 마실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해야 할까요? 즉, 본인이 술을 전혀 즐기지 않는 사람이고 프로그램에 필요한 술에 대해 미식과 관능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없는 근본적인 취약점을 안고 시작해야 한다는 게 가장 문제였습니다. 개발 도중에 저는 "혹시 다른 분이 진행할 수는 없느냐?"고 관광두레PD 및 하지수 대표에게 심각하게 건의드렸던 적도 있습니다. 세 모금 정도 마시면 쓰러질 것 같더라고요 �


하지만 우리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답을 찾는 사람들이죠! 여러번의 시행착오와 관광두레분들의 도움을 받아 최종적으로 하지수 대표의 핵심역량인 '여수에 대한 애정'과 '커뮤니티로서의 성격 강화'에 좀 더 초점을 맞추기로 하였습니다.




https://m.booking.naver.com/booking/12/bizes/570680?fbclid=IwAR2TfaUUSi09Ewxci7U987ZR_VoXU8CYwsmdfuhst-n8jAywALQWoajO5UYfbclid=IwAR2TfaUUSi09Ewxci7U987ZR_VoXU8CYwsmdfuhst-n8jAywALQWoajO5UY


이쯤에서 술펀 공식 똥손인 제가 찍은 오동재 모습 보여드립니다. 바다가 보이는 한옥 호텔이라니 대박스럽죠?





온 김에 비록 저는 묵지 못 했지만 여러분에게 오동재 2인실 방도 보여드릴게요.



원래는 유리가 아니라 창호 여닫이인데 요즘은 편의상 현대 기술을 활용해 이렇게 통창을 많이합니다. 논산이나 안동 고택 체험을 가시면 여전히 한지가 발린 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앞뒤뜰을 통으로 즐길 수가 있죠. 앞집과 높낮이가 달라 사생활이 보호됩니다. 사진에 보이는 곳은 거실이고 왼쪽으로 안방(침실)이 따로 있습니다.


한옥 컨셉을 살린 옷장과 수납함입니다. 냉장고를 열면 안에 저렇게 수납도 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옥의 컨셉을 살리면서도 프라이버시는 보호하고 모기장이 달린 유리창과 냉장고를 활용하여 현대인들의 편의를 도모한 한옥 호텔입니다.


이곳저곳을 둘러 보고 본격 프로그램 준비를 시작합니다. 열정, 애정, 능력이 있는 분들과 함께 하니 문제가 생겨도 바로바로 해결, 더 좋은 아이디어가 팍팍 샘솟네요. 관광두레 PD님을 여러명 만나보았고 함께 멘토링을 진행한 적도 꽤 있었지만 이렇게 진심인 분들, 너무 좋습니다. 그러니 여수가 더 매력적일 수 밖에요.



저는 컨설팅을 할 때 클라이언트가 최대한 비용을 절약하는 게 좋고 바뀔 수 있는 부분은 처음부터 풀세팅을 하는 것 보다 진행하면서 더 나은 방법을 찾는 게 좋은 방향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핵심이 아니라면 최대한 처음부터 고정비에 많은 돈을 지출하지 않도록 권하는 편입니다.

 

파일럿을 해 보고 이후 잔과 접시 등을 세팅하는 게 중요하다 판단하여 이번에는 여수와에서 가지고 있는 자원 내에서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프로그램 진행에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제품이든 서비스든 일단 런칭하고 수정하는 것, 피보팅이 중요하지 처음에 고정비를 지출하게 되면 더 나은 방향이 아니라 도구에 맞춰 핵심을 맞춰가야 하니 좋은 제품을 완성하기 어렵습니다. 아니 완성이란 없죠. 제품과 서비스는 끝없이 개선해야 할 대상입니다.



오늘의 참가자분들은 서로가 아는 분들이라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로그램 리더인 하지수 대표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긴장한 상태였고 초창기 창업 기업 대표가 대부분 그렇듯 과한 노동으로 꽤나 지쳐있는 상태여서 이미 라포가 형성된 참가자들 대상으로 하게 된 것은 운이 좋은 거죠. 커뮤니티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 라포를 형성하고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려면 추가적인 에너지가 많이 들어갑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뭉쳐 있으면 좋은 운을 끌어당깁니다. 프로그램 도중에도 식은 땀을 흘리는 걸 예민한 저는 포착했기 때문에 다시 한번 그날의 노력에 박수 갈채를 보내드리고 싶네요.



마스크를 쓰니 모자이크 따로 안 해도 되어 좋네요


참가자들 연세는 대략 50대 중반 정도로 보였습니다. 전부 경상도 분들이라 저한테는 삼촌 뻘? 특이하게도 여성분들끼리 친구고 이 모임에 남편분들이 따라온 형국이라 재밌었네요. 함께 나이드는 친구들끼리 이렇게 놀러다니면 참 재밌죠. 대부분의 경상도분들이 그렇듯이 술을 폭음하듯 먹고 마시는 데만 익숙하지 이렇게 취향을 나누는 경험은 어색할텐데 역시나 소감나누기에도 나왔던 것처럼 "아, 우리가 술을 이렇게도 마실 수 있구나!"라는 체험은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정적 프로그램, 특히 커뮤니티 중심의 프로그램을 디자인할 때 참가자들의 특성에 따라 세부 내용을 변형할 수 있도록 오픈해 놓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MZ 세대라면 최대한 SNS에 자랑샷을 올릴 수 있게 포토존, 사진찍기 좋은 세팅, 필요한 시간을 적절하게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홍보에 욕심이 있다면 필수 해시태그를 권장하는 것은 무조건입니다. 또한 후기 업로드시 추가 경품을 거는 것 역시 필요하겠죠.


프로그램 당일에 해당 프로그램을 성료하는 것만큼 재구매, 구매전환을 유도하고 후기를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 장치들을 마련해서 바이럴과 여수와가 가진 다른 자원에도 참가자들이 소비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하는 것은 어쩌면 프로그램 진행 보다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여행 프로그램, 특히 로컬 가이딩의 특성 상 현재 고가 보다는 중저가로 형성된 시장이 많고 그에 반해 마진은 너무 적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로컬의 혁신을 위해서는 참가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윤리적인 범위 내에서 다른 구매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는 것은 로컬 밸류 체인 형성에 특히 중요합니다.


프로그램 진행 도중에는 타임 체크와 모니터링을 하느라 사진을 거의 찍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끝나고 피드백 겸 저녁 먹으러 온 자리에서 프로그램 당시 사용했던 서대회 찰칵!



저는 맛집으로서 네이버평점은 불신하는 편이라서 4점만 넘으면 된다 정도로 봅니다. 보통 구글 검색 한번 더 하는 편이고 음, 그러고 보니 카카오맵은 더 불신하네요. 세개 정도 더블체크하고 결정적으로 제 맛집 레이다가 젤 정확하다고 봅니다.  


아구할미 서대대감

전남 여수시 교동남2길 5

http://naver.me/GzQ9Tms5


요런 식으로 초무침하는 회들이 서해나 남해 쪽에 몇가지 있죠. 그 중 대표가 전어랑 서대인 것 같습니다. 근데 저는 뼈가 너무 강한 세꼬시류를 그렇게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전어에 비해 보들보들한 서대가 훨씬 입맛에 맞는 편입니다.


특이하게도 여수의 서대회무침에는 막걸리 식초가 들어갑니다. 그래서 상품화 해 볼 요량으로 물어보니 식당에서 직접 만드는 곳들이 많다네요? 역시 맛의 고장답습니다! 그래서 서대회 무침에는 막걸리 조합이 완벽한 스토리텔링이네요.


파일럿 프로그램은 예정했던 60분 보다 20분이 더 길어졌고 전체적으로


아이스브레이킹

막걸리 3종 블라인드 시음

서대회와 함께 시음

취향 찾기


크게 4 섹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고 추후 실제 참여하실 분들의 연령대나 친밀도에 따라 툴이 달라질 수 있기에 가볍게 적어 보았습니다.


본 프로그램에서 강조하고 살려야 할 특장점은 크게 3가지입니다.


1.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통한 호기심 강조와 취향 발견

2. 여수의 계절 음식과 막걸리 조합을 통한 색다른 맛보기

3. 인터넷에서는 발견하기 힘는 로컬 가이드만의 맛과 막걸리 스토리


그간 "여수의 맛" 프로그램이 시장을 구경하며 이루어졌다면 본 프로그램은 여수와 라운지 및 오동재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호텔과 결합하여 이루어질 수 있기에 여수와를 지속가능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핵심 비즈니스 프로그램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여수 여행 상품 및 기념품과 연계하여 참가자들에게 더 나은 지역 상품을 홍보할 수 있는 프로그램 플랫폼으로 자리 잡아 상술에 입각한 제품들 보다 훨씬 좋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지역 대표 관광 상품이 되기를 바랍니다.


술펀은 항상 지역의 혁신가들을 응원합니다. 여수와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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