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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함존중 Nov 25. 2018

전통주, 라이프스타일로 새옷을 입다(上)

남도탁주 정고집 신제품 개발 및 브랜드 리뉴얼 프로젝트 1


술펀에는 많은 사람들이 컨설팅이나 멘토링을 받겠다고 연락이 온다. 아직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개인도 있고, 막 문을 열려는 외식업체나 술공장 사장님도 있고, 몇 십년을 운영해 온 오래된 양조장도 있다. 그들 각각의 사정은 모두 다르다. 술펀은 이제 만 4년을 막 지나려 하고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또 담고 있다.


자그마치 2년 하고도 3개월이 더 걸렸다

나주 배약주가 나오기까지, 정확히는 제품의 형태를 갖추고 시장에 출시되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처음에는 예상하지 못했다. 필자가 예상한 시간은 약 1년 정도. 이미 시장에서 팔리던 제품을 리브랜딩하거나 리뉴얼하는 걸 넘어 제품의 기본적인 형태(맛, 용량, 도수 등)부터 기획한 것으로는 첫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시도한 적은 있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도중에 중단되거나 착수 단계에서 흐트러진 적이 몇번 있어 이번만은 꼭 성공시키고 싶었다. 특히 나주시에서 원하는 방향, 양조장이 처한 상황과 보유한 자원을 중간에서 조율하고 최적의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런데 농촌의 영세한 양조장에서 대기업 F&B 제품 개발을 할 때처럼 예산을 베팅해놓고 R&D-기획실-마케팅부-영업부 이런 식으로 각 담당 부서와 담당자가 유기적으로 연대해 정해진 타임라인 안에 목표를 정해놓고 상품을 안정적으로 랜딩시키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술펀을 포함한 작은 스타트업 조직이 겪는 시행착오 속의 성과와 같이 수많은 도전과 실패, 작은 성취 속의 업그레이드가 빠른 시일 안에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자금이 부족하다. 적은 비용으로 최소한의 실패, 작지만 정확한 성공을 쟁취하지 않으면 그간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고 팀이 무기력에 빠질 수 있다.


이걸 쓸 때까지만 해도 6개월 내에 제품이 나올 거라 생각했었더랬지



농촌 양조장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사실 2년 3개월이란 시간은 나주 배약주만을 위한 시간이며 아이디어 단계부터 논하자면 근 3년에 달한다. 남도탁주와 나주 배약주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이미 주령사 2기를 함께 하며 어느 정도 신뢰를 쌓은 상태였고 반년 이상을 앞으로의 농촌 양조장들이 나아갈 방향과 제품 개발 방향을 공유한 상태였기에 적합한 정부사업이 공고되었을 때 바로 착수할 수 있었다. 남도탁주 뿐 아니라 현재 우리와 함께 하는 클라이언트들은 허벌나게 뒷통수를 쳐서 내가 법정 소송을 하네마네 언급한 두세 군데만 제외하면 거의 오랜 기간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성장하는 중이다. 그때야 사업 초기라 내가 너무 믿었던 탓도 있고 지금은 그럴 일이 없다. '실수가 세번 반복되면 그때부턴 그냥 그러한 사람이 된다'는 나의 철칙 상, 더 이상 같은 실수는 없다. 


1) 함께 고민할 수 있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지금 당장은 지역에 막걸리를 공급해 살 만한 양조장이라도, 아무리 지역 유지를 해 오며 오랜 시간 자리잡은 양조장이라도 시장은 변하고 있고 이미 그 징후들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은 5천 만 인구 중 수도권에 20% 이상이 몰려 있는 지나친 중앙집중식 시장 구조를 갖고 있다. 이로 인해 수도권 진출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빠른 시일 안에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사실 2010년 이후 경매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막걸리 양조장들은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 하고 문닫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작은 양조장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청소부터 납품에 배달까지 소화하다 보면 미래 전략을 고민하고 신제품을 개발하기에 벅찰 수 밖에 없다. 전문가인 우리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다양한 채널을 통해 바지런히 공부해야 하는데 정보 도달률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농촌에서 전문인력도 없이 이 모든 걸 고민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술펀을 처음 창업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이러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생각 보다 이러한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그나마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 중에 우리와 뜻이 맞는 사람은 더더욱 적었고 그 중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무튼 그 시절 우리는 '결과로 승부해야 한다'는 매우 원칙적인 명제를 가지고 어떤 일을 하건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란 결국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고 몇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살아남았고 대부분의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2) 지역과 상생할 수 있는 길을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지역에서 나는 원료를 쓰는 일이다. 이렇게 하면 일단 주세법 상 전통주로 분류되는 '지역특산주'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지역특산주 허가를 받게 되면 초기 사업을 시작할 때 지자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에 자금이 쪼달리는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된다. 뒤이어 상세히 쓰겠지만 1차 마케팅 타겟이 지역 기반이 아닌 경우에도 생산 기반이 있는 지역 사회와 어떻게 상생할 것인가는 그 어떤 경우에도 가장 우선적인 고민이 되어야 한다. 술을 마시는 이유는 취하기 위해서지만 술을 만드는 이유는 도를 닦기 위해서다. 좋은 술을 만들려면 덕을 쌓아야 한다. 마케팅 하는 인간이 웬 귀신 씨나락 까 먹는 소리냐고? 이것이 바로 마케팅의 근본적인 고민이고 동기이기 때문이다. 제품을 잘 팔 수 있도록 전략을 짜고 수행하는 일이 마케팅이라면 좋은 제품을 만들고 선정하는 것이 그 일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모든 제품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만들어져야 한다. 이것이 술펀이라는, 이수진이라는 창업자의 가장 기본이 되는 동기이다. 우리팀이 선택하여 함께 가는 전통주, 한국술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는 '지역 원재료를 사용하는가'이다. 무엇보다 술펀은 이 고민을 하지 않는 기업과는 함께 일하지 않는다! 좋은 제품은 원료 선정에서 부터 출발한다. 좋은 제품이 잘 팔려 부가가치가 생산되면 지역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경제에 이바지한다. 모든 원대한 꿈은 결국 가장 사소한 것에서부터 출발한다(Back to Local).


3) 시장의 범위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어떤 제품은 지역 기반으로 판매하고 철저하게 마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프로모션해야 한다. 1병에 천원도 안 하는 막걸리가 그러하다. 막걸리가 그 지역에서 자리잡지 못하면 물류-유통-보관의 문제로 인해 많은 기회비용을 소모해야 하며 마진율이 떨어진다. 막걸리로 현금흐름을 만들어 내면 신제품 개발에 대한 비용부담이 훨씬 가벼워진다. 혹은 처음부터 고가의 시장을 타겟으로 제품을 생산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누구에게 팔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제품 개발을 시작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고가라면 수도권에 진출해야 할텐데 수도권에서도 홍대, 이태원, 강남의 특성이 다르고 여러 가게 중에서도 1차 맛집이 있고 2차 술집이 있다. 남녀 커플이 많이 오는가 하면 중장년 남성이 많이 오는 집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 술을 팔 것인지 고민도 하지 않고 술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2019년 트렌드 키워드 중에 "콘셉팅"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제는 마케팅이 먹히지 않는 시대다. 내 제품에 대한 명확한 콘셉없이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콘셉팅이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11161143001



보고서로만 끝나는 컨설팅은 안 돼

술펀을 창업하고 단 한번도 이 명제에 대해 의심한 적이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 현재 상대가 처한 어려움을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빨리 성취할 수 있는 방향으로 안내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그리고 나의 능력이 부족하다면 해당 분야에서 내가 아는 가장 유능한 사람을 소개시켜 주어야 하므로 컨설턴트에게 인맥은 또 다른 능력이다. 무엇보다 할 수 없는 일에 관해서는 객관적으로 자신을 판단하여 일의 범위를 명징하게 지정해야 한다. 자신의 몸값을 높이고자 하는 거짓말은 금방 들통난다. 


다시 쓰고 싶지 않은 종류의 보고서랄까 -_- 반복한다 다신 안 써!



양조장에서 가장 많이 착각하고 있는 건 제품을 만들어만 놓으면 누군가는 사 줄 거라는 근거없는 믿음이다.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왜 때문이죠?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자. 우리가 어떤 제품의 구매 결정을 내리는데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수 많은 변수를 고려하여 결정을 하는지. 왜 당신의 제품에 대해서는 그토록 관대한가? 자신의 제품에 '비법이 숨어있다'고 말하는 양조장 대부분은 알고 보면 별 것 없음이 들킬 것에 대한 두려움을 방어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보고서로만 끝내고 싶진 않아도 백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보고서를 작성해야 할 때가 많다. 특히 정고집 브랜드 리뉴얼 및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는 정말 여러 번 고생을 했고 많이 뒤집어졌고 여러 이해관계자를 충족시켜야 했기에 명실공히 넘버원 애증의 클라이언트였다. 긴 세월을 잡아 먹은 걸 감안하면 우리 입장에선 턱도 없이 적은 돈이었는데 제품은 2018년을 한달 남겨두고 이제서야 식약처 승인을 받았다. 이 제품이 제때 안 나오면 지난 2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는 압박, 결국 그 때를 놓쳤을 때의 아쉬움, 출시일이 너무 지나 제품 자체의 제성을 변경하고 싶은 열망, 모든 것이 지금은 다소 안타깝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 사이 우리가 '술다방'이라는 최적의 소비자 리서치 섹터를 만들었고 우리의 실험을 결과로 도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것. 출고가를 정하기 위해 그저께도 통화를 했다. 1달 간의 프로모션 결과를 전달하며 명확한 가격 범위와 소비자 선호를 전달할 수 있었고 최종 결정은 양조장에서 하겠지만 아무런 지표도 없이 망망대해를 헤매는 것 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한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으리라.


컨설팅의 결과가 무엇이든 우리는 이것을 실제 제품 출시에 어떻게든 반영하고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컨설팅을 결과물로 내놓을 때 가장 확실한 건 역시 '디자인'이다. 라벨, 패키지, 브랜드 로고 등 컨설팅 과정에서 고민한 콘셉과 타겟, 스토리텔링을 한 눈에 보여줄 수 있는 건 역시 머릿 속 생각을 구체적으로 구현한 시각화(Visualization)이다. 그러나 작은 막걸리 양조장이 거창한 브랜드를 만들고 라인업을 재편할 만큼의 돈을 한꺼번에 내놓기는 힘들다. 특히 남도탁주의 경우 여러 사정으로 인해 더더욱 형편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잘 살펴보면 길거리에도 굴러다닌다. 그러니 잘 살펴보자!



내 사업 철칙 상 돈 없어서 안 되는 일은 없다. 뜻이 있으면 돈은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남도탁주 정내진 사장과 함께 돈을 만들러 찾아갔다. 나주시 농업기술센터로.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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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


술펀은, 대표 컨설턴트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논하기 전에 더욱 중요한 건 '왜'가 아닐까? 아무리 비용을 많이 지불하겠다는 클라이언트가 나타나도 내 스스로 왜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명확히 세울 수 없다면 움직이지 않는다. 사실 '왜 움직이는가?'에 대한 이유는 백만 가지라도 댈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 움직이지 않는가에 대한 답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간략히 정리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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