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는 직업명이 아니라 '비정규직' 같은 말이다
닷페이스는 내가 처음으로 마음 붙이고 다닌 회사였다. 대학내일이나 MBC는 어쩌다보니 운 좋게 주어진 직장이었지만, 닷페는 내가 먼저 문을 두드렸다. 서브채널 '그거앎'의 PD로 입사해, 알지도 못하는 브랜딩과 모션을 곁눈질로 해가며 ‘성장’이란 걸 했다. 좀 웃기는 소리지만 닷페이스와 당시의 나는 일적으로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배우지 않고 시작한 일이었고, 웃기지만 ‘열정’, ‘재미’, ‘사명감’ 같은 걸 따라서 열심히 하다보니 뭔가 쌓인 상태였다. 닷페이스는 그걸 이제는 정리해서 차곡차곡 쌓아가야한다는 걸 인지했고, 나는 그걸 보면서 많이 배웠다. 대체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대체불가능하게 일하고자 했던 날들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뭔가를 정리하고 구조화하는 방법을 배우고 몸으로 익혔다. 이때 얻은 사고방식과 근육은 ‘일’의 영역에서 내 인생에서 두고두고 가장 큰 영향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퇴사 결정에 있어
-명확했던 대목은 ‘다큐PD로 성장하고 싶냐’에 대한 내 대답이 ‘NO’였다는 것. 그거앎을 계속 했다고 뾰족한 수가 나왔을지는 모르겠지만, 닷페이스로 옮겨가고 1년 동안 한 게 없다는 무력감에 시달렸다(돌아보니 많은 걸 했고 하나도 후회하진 않지만). 그러다보니 ‘내가 여기서 개짱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했는데 아닌 것 같았다. 그냥 자신이 없는 수준이 아니라, 아무 그림도 안그려졌다. 나는 다시 ‘주어진 직장’을 다니게 되었고, 결국 그 지점에서 만족이 안됐던 것 같다.
-아쉬운 대목은 내가 무엇이 될지 더 능동적으로 볼 능력이 없었던 것. 결국은 애매한 위치에서 애매한 PD로 사는 시간이 쌓여 퇴사까지 갔다고 생각한다. 닷페이스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였을까-를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 뭔가 있는 것 같은데, 그 때는 하나도 안 보였다. 그럴만큼 나에 대해서나 회사에 대해서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눈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니, 이런 저런 스킬이 잔뜩 있으니 퇴사를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애매한 육각형을 타고, 나는 커리어 시작 후 처음으로 회사 밖으로 나왔다.
한국노총 에세이필름/ 기획, 취재, 연출, 편집
: 작년에 뭐했냐고 물어보면 가장 먼저 보여주는 영상. 에세이필름 전부터 해보고 싶었는데 이 기회에 해봐서 좋았다. 다루고 싶었던 이야기이기도 하고. 담고 싶었던 마음을 잘 담은 것 같다. 도입부를 비롯한 더 재미진 구성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공부하고 발전시켜보면 좋겠다는 생각. 인규랑 민선님 셋이서 다 한 건데, 사실 어떤 환경에서든 최고의 샷을 뽑아주는 인규의 덕이 가장 크다는 것은 백번을 말해도 부족하고, + 이 영상이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분야(브랜드필름)에서 내 수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 영상 자체를 내가 ‘브랜드필름’으로 명명함으로써 생각이 트인 지점도 있다. 여러모로 고마운 작업이었다.
HYNN 뮤비/ 연출, 진행
결과적으로 스스로는 어디에도 내놓지 않는 작품이 되었다. 여기도 연출로서 해야하는 지점과 포기해야하는 것, 나의 역할에 대해 스스로 정리를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프리랜서로 할 땐 매번 내 역할을 스스로 정확하게 정리하고, 서로 간에 명쾌하게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중요하다. 혼자 다 하는 게 습관이라 이 부분을 (대체로) 간과하는데, 볼륨이 큰 작업일수록 여기서의 구멍이 결과물에 크게 티난다. 탓하고 싶은 게 많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정리하고 가지 못한 내 탓이 결국 제일 크다. 궁극적으론 이 지점에서 큰 착오가 있었다.
여수MBC '섬마을식탁'/ 타이틀 디자인
대놓고 디자인으로만 불려간 건 처음이라 좀 걱정이 됐는데, 개인으로는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 작업할 때 OTT 환경을 생각하고 작업했는데, 결국 OTT에 못 올라간 게 아쉽다. OTT랑 유튜브가 딱히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유튜브에서 보니까 내가 생각했던 느낌이 아니었다. 물론 단순히 내 능력의 부족일 수도 있지만.
양평원 성교육 영상/ 연출, 편집, 그래픽
단건으로 받은 가장 비싼 일이었는데, 사실 그냥 돈 벌려고 했다. 클라이언트가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아서 나도 그냥 마음에 든다-정도. 기획과 스크립트를 직접 하지 않고, 정말 '프로덕션'이 필요해서 내게 온 일이었다. 이런 일 일수록 동료들과 효율적으로, 각자의 역할만 잘 하며 프로페셔널하게 해낼 방법을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듦.
SH주택공사 인터뷰/ 구성과 편집
일한 만큼 받고, 클라이언트와 직접 커뮤니케이션하지 않아서 좋았던 작업. 사람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건 언제나 설레지만 먹먹하고 슬프기도 한 일이었다.
ARTLab 소개 영상, 드라마타이즈, 익스플레인/ 1인 제작
세 개나 했는데 겨우 하나 제대로 완성했고, 나머지 두개는 발행도 못 했다. 드라마타이즈는 철 지난 포맷에 내가 묶여있었던 게 패착인 것 같다. 익스플레인은 클라이언트 쪽에서 요구가 명확치 않았다는 생각. 뒤로 갈수록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질 않았다. 여기도 내가 100% 외주로 작업하지 않고, 처음에 약간 내부자처럼 직접 기획하고 아이디어 드리겠다고 포지션을 잡았던 게 패착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부에서 명확한 니즈가 없었는데, 일단 날 고용(?)하고 본 상황이었고... 난 날 필요로 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으면 의욕이 사라져서.. 좀 미안했던 협업이었다.
이 외에..
심상정 의정보고 영상, 공모전 홍보 영상 촬영 편집, 안소희 채널 편집 외주(..), 온갖 현장 스태프를 했다.
-
모아보니, 지난 1년 간 가장 문제가 되었던 지점은 '역할 설정'. 나는 AtoZ를 다 할 수 있는 PD가 맞다. 근데 이제는 매번 AtoZ를 해야하는 게 아닐 뿐더러, 아무도 내가 그러길 바라지 않는다.
인하우스 PD일 때는 '제한된 소스'로 '최선의 성과'가 디폴트 값이었다. 대체로 [제한된 소스=나]였고, 나를 갈 때 까지 갈아서 최선의 성과만 내면 됐다. 동료들도 그걸 아니까 판단 기준에 '제한된 소스'를 넣어서 봐줬다.
근데 이제는 '제한된 소스'가 안 보인다. '최선의 성과'만 보인다. 내가 아무리 고생해서 소품을 사오고, 그러다가 잠을 못 자고, 밤을 새가며 구성을 짜고 엎고, 진행표를 만든다고 한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 일이 필요없다는 게 아니라, 그 부분에서 이해받을 기회가 없다. 내가 지난 1년 간 억울한 마음이 들었던 순간은 다 이 지점에서였던 것 같다.
쓰다보니 복잡해졌는데, 중요한 건 적절한 협업이 중요하다는 것. 협업할 사람들, 협업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근데 사실 지금 내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그렇다면 내가 떼어서 넘기고도 남기고 싶은 '나의 일'은 무엇인가'이다.
- 사실 이 문제의식은 한참 전부터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일을 멈추고 3월 초까지 월급 받으면서 출퇴근의 휴식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2022년 하반기에 재밌는 일 있으면 연락주세요(?) 혼자 보려고 쓴 글이지만 뜬금 포폴 홍보하고 마침 https://ssook901.wixsite.com/dda-ye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