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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예 Jan 30. 2023

2022 프리랜서 둘째 해 결산

여전히 갈지자로 걷지만 허허벌판은 아냐


(혼자 기록을 위해 쓴 글이라 두서가 없읍니다)



역마살인가.

재작년에 프리랜서 1년 차를 정신없이 보내고 나니 이대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실을 공유하는 분들이 능력 좋고 경력 있는 분들이라, 들어오는 일들(aka콩고물)을 계속 받다보면 고민할 여력 없이 어중간하게 계속 일만 할 것 같았다. 마침 대선이 코 앞이었고, 지지하는 정당에서 선대위 영상PD로 3개월만 일해줄 수 있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남아있는 일말의 의협심을 핑계 삼아, 사실은 나의 일 관성에서 도망치기 위해 제안을 수락했다.


간만에 출퇴근+월급으로 이루어진 삶을 살며, 예전처럼 매체에서 하던 유튜브 영상들을 만들었다. 그 환경에서 만들 수 있는 건,,, 이미 해본 형식이었다. 기획을 올릴 때 내가 이전에 만든 영상을 레퍼런스로 보여줬다. 그마저도 선대위에선 영상 팀원 없이 혼자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팀원에게 피드백이라도 충분히 받으며 만들었던 레퍼런스보다 퀄리티가 떨어지는 결과물이 나오기도 했다. 딱히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진 않았고, 그냥 '뉴미디어'라고 일컬어지는 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형식은 다 해봤나보다-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정치판이라 내가 만든 영상이 뉴스에 자료화면으로 쓰이기도 하더라~는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올해(이제 작년)의 목표

아무튼, 작년에 역할 설정에 대한 고민을 안은 채 1년 차를 마무리했던 터라, 올해의 목표는 '개발하고 싶지 않은 기존 능력을 써서 돈만 버는 일은 안 받기'였다.


물론 몇 개 받았다. 나도 먹고는 살아야하니까^^... 그리고 딱히 안 받았고 쳐낸 일이 뭐가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돌이켜보니 마음과 시간을 깊게 써서 했던 것들만 굵직하게 남은 느낌이라 좋다. 특별히 새로운 장르나 능력을 개발한 것은 아니지만, 협업을 하며 어떤 역할은 더 잘하는 사람에게 맡기고, 나는 기획+각본+연출에 집중해서 일했다는 감각이 확실히 남았다.





2022년의 작업들


한국노총 어떤일들 시리즈 세 편 / 기획, 각본(ep2는 각색), 연출, 편집

ep.2 92년생 목욕탕 청소 노동자

ep.3 최저시급 카페알바

ep.4 상견례를 앞둔 콜센터 남자 직원]


[시리즈화/포맷] 뒤로 갈 수록 기획&각본에 자유도가 커졌던 작업이었다. 작년에 했던 에세이필름을 시리즈화 한 것인데, 2편은 공모전 당선 수기를 각색했고, 3,4편은 취재를 기반으로 각본을 직접 썼다. 4편이 가장 힘들었는데 거의 단편영화 수준이 되었기 때문... 런닝타임도 20분 가까이 나와버렸다. 슬프게도, 들인 공에 비해 결과물의 흥미는 떨어졌다는 생각. 에세이에 그림을 붙이는 형식으로 시작한 터라, 드라마타이즈를 많이 섞으니 애매한 지점들이 생겼다. 그것까지 볼 시야나 여유, 능력이 부족했다는 점이 아쉽고 슬프다. 그래도 고군분투하며 갈 데 까지 밀고 가는 경험을 했기에 수정할 부분을 발견하고 이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협업 경험] 과분하게도 2,3편은 PD님들께서 함께 해주셨다. 제작 파트를 떼어내고 연출에 조금 더 집중해보는 경험이 처음이었고 좋았다. 아웃고잉한 사람이 아니라 메일을 쓰거나 전화 한 통 하는 데에도 에너지를 많이 쓰는 편인데, 그런 걸 너무나 프로페셔널하게 척척 진행해주시는 분들을 만나니... 쏘... 행복... 감격... 커뮤니케이션/얼라인 등 제작 진행은 정말 하나의 전문 영역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찍어주는 촬영감독님과 지속적으로 협업할 수 있었던 것도 너무나 든든했다. 믿고 맡길 수 있는 멋진 동료들과 협업한 것이 올해 가장 귀한 경험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솔직히.. 내가 해야할 것 같은 일을 다른 사람이 한다는 게 어색하고 어렵긴 했다. 그래서 동료들에게 '이 얘기 이래서 꼭 하고 싶어요', '이렇게 하면 더 좋지 않을까요?'하며 마음을 사는 소통을 충분히 못 했다는 생각이 든다. 마냥 고맙고 과분한 느낌에... 너무 좋아요, 고맙습니다ㅠㅠ... 만 하는 건, 사실은 방어적인 태도였을지도 모른다는 쟈근 반성. 그 사람을 더 믿는 것이 더 존중하는 것이다. 반성은 변화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으로 완성되는 것이므로... 올해에는 더욱 '공동'의 작업이 될 수 있도록 많이 얘기하고 치대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아, 올해엔 멋진 미술팀과도 협업해보고 싶다.)



배드캐럿 브랜드 필름 / 기획, 각본(구성 및 인터뷰)

브랜드의 비전이 내가 마음을 쓸 수 밖에 없는 내용이라 잘 하고 싶었다(정키함을 마다하지 않는 비건 브랜드임) 근데, 첫 해외 촬영(!)인데다, 스타트업이라 규모가 작았다. 촬감님과 딸랑 둘이 가는 상황. 부족한 인원과 해외라는 예측 불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미리부터 열심히 커뮤니케이션을 했...음에도 난항이었다. 코로나 처럼 미리 대비하긴 어려웠던 이슈까지 겹쳤다. 결과적으로 대표님 인터뷰에 행사 스케치를 얹은 영상이 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든다. 험난한 과정을 알아서일 수도 있지만.. 물론 좋은 결과물은 사실상 장면 연출(현장 촬영과 스케치 컷편)을 맡아준 촬감님의 능력 덕이다. 좋은 경험이었다.


현실적으로 브랜드 필름에 대해 더 파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브랜드 필름'이라고 이름만 번지르르 하게 붙이지 말고, 브랜드가 멋진 가치를 가지고 있을 때, 그걸 전달하는 방식은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봐야겠다. 다큐가 궁극적으로 가고 싶은 방향은 아니지만, 현실적인 길목 길목에서 가장 욕심이 나는 영상인 것 같다.



닷페이스 전시 크레딧 / 연출, 모션그래픽

닷페이스가 문을 닫았다. 전 동료로서도, 험난한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도 마음이 어려웠다. 마지막 회고 같은 전시를 한다고 했다. 전시의 마지막 크레딧 영상이 필요하다기에 한달음에 달려가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했다.



LMO작물 바로알기 교육 영상 / 구성, 연출, 모션그래픽 - 1인 제작

풀모션으로 6분을 채워보았다. 할 거면 앗싸리 모션으로만 가는 걸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다. 애니메이터, 모션그래퍼들 존경합니다...



[할머니의 레시피] 편집 / 구성편집

이미 촬영된 인터뷰/다큐를 편집하는 일을 처음 해봤다. 매뉴얼 없이, 내용을 새로 짜도 된다고 하시기에 정말 '스토리 구성'을 했다. 편집이란 본디 수명을 끌어다 하는 작업(..)이라 힘들었지만 좋았다. + 직업적인 것에 앞서,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올해엔 '사람들의 이야기' 자체에 귀가 기울여지는 한 해 였어서 하고 싶은 작업이기도 했다.



<유척추동물> 전시 촬영 / 촬영

사실 이렇게 넘버링할만큼의 일은 아니었는데(일 주시는 분이나 받는 나나) 혼자 카메라 딸랑 들고 가서 촬영했고, 전시 촬영은 처음이었어서 남겨둔다. 짧고 굵게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고맙읍니다..



번외. 정말 하고 싶었는데 못 한 일

카카오 임팩트에서 펠로우십 멤버와 협업하는 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이 있었다. 너무 하고 싶은 시리즈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연말에 현실에 치이면서 결국 기획서를 못 쓰고 기한을 넘겼다. 정말 에너지가 0에 수렴하는 와중에도, 캘린더에 쓰여있는 '카카오 기획서'를 끝내 삭제하지 못하고 매일 매일 다음날로 옮겼었다. 2주 내내. 일을 다 끝내고는 다른 일을 안 받고 그걸 했어야한다는 생각도 했다. 기획서를 냈다고 됐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놓친 기회였다. 올해는 받는 작업이 아니라 따내고 싶은 작업도 찾고, 그걸 찾을 물리적인 시간도 꼭 배당할 것이다. 화이팅.



+물론 올해도.. 그 외에, 소규모 단편영화&웹드 음향, 온갖 촬영 지원을 했다. 덕분에 입에 풀칠 했읍니다... 손이 필요하면 불러주세요<3






재작년에 비해 수입이 적었다. 집중하고 쉬어가는 해를 의도한 것도 있어서 불안하진 않다 (아직은^^..) 다만, 떼어내는 역할들을 매꿀 각본/연출의 역량이 부족한 만큼 돈을 못 번 거겠지?..라는 뼈저린 성찰을 한다. 1인 제작 시스템에서 애매한 육각형으로 일해 온 인간의 숙명이겠거니.


불안감을 조금씩 떨치며, '이게 내가 남기고 싶은 분야가 맞는지'에 대해 스스로 확신을 쌓는 한 해였다. 여전히 모르겠-...지 않다. 기획하고, 내용을 짜고, 연출을 할 때 가장 마음이 팡팡 머리가 팽팽 돈다. 올해는 떼어내는 불안감을 견디는 데에 에너지를 쓰는 게 아니라, 붙들고 싶은 능력을 부단히 키우면 좋겠다. 성실하자. '그건 재능이라서 이만치 했으면 안 되는 거다' 퉁치고 도망치기엔, 이만치 못 해본 거 같다. 이제야 집중해야하는 게 뭔지 알겠고 던져볼 수 있겠다는 느낌이다. 소중한 것일수록 한 순간에 완성될 수 없고, 생각보다 견디기 힘들 만큼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것도 기억하며... 마음을 단단히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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