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하지 않은 노인이 되고 싶어
[한결, 생후 340개월]
340개월이요? 으응~ (관심X)
결: 요즘에 어떻게 살고 있더라..? 학교 종강했고, 연말이니까 약속이랑 전시 보러 다니느라 바빴던 거 같은데? (학교 다녀?) '파티(PaTI)'라고 '파주 타이포그래피 학교'의 줄임말인데... 타이포그래피, 그러니까 활자를 디자인하는 것으로 시작된 학교이긴 한데, 사실상 대안예술학교? 해외의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는 예술학교 같은 느낌이야. 이제 끝났지만.
따: 완전히 끝났어?
결: 응. 나는 1년 제로 들어가서 수료를 하게 될 거야. 그냥 일반대학이랑 똑같은데, 4년제 학사가 있고 2년제 석사과정이 있거든. 나는 2년제 석사 과정을 1년을 맛보기처럼 응축해서 들을 수 있는 과정을 수료했어.. 석사 과정 1년제를 들었고. (뭐가 달라?) 학교 수업 듣고 하는 건 거의 똑같은데, 뉘앙스가 다르긴 하지 수료랑 졸업은. 근데 애초에 비인가 학교라서 큰 의미는 없을 수 있다. 그냥 뉘앙스가 다르다. 아, 그리고 이렇게ㅋㅋㅋㅋ 다른 사람들한테 설명이 길어지지.
따: 파티는 왜 들어갔어?
결: 되게 복합적인 이유들이 있는데... 1번은 내가 대안학교 나오고 홈스쿨링하면서 대학을 안 가서 전공이랄 게 없었잖아? 그래서 하나를 전공처럼 공부를 해보고 싶었고.. 너무 이런 비주류의 삶을 살다 보니까 좀 어딘가에 소속돼서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공부를 한 번은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실제로 직장 생활하는 데에 있어도 좀 공부하지 않아서 느끼는 부재가 너무 많아서 학교를 가야겠다 결심을 했지.
근데 일반 대학처럼 너무 상업, 직업적 시선으로 디자인에 접근하는 학교보다는 좀 더 말랑말랑하게 가르쳐주는 학교를 찾고 싶어서 파티를 갔지.
따: 오 말랑말랑이라니. 실제로 말랑말랑했어?
결: 응. 실제로 말랑말랑하고. 다른 학생들 작업 보는 게 놀라웠어. 자기 거가 있어 애들이, 다. 설령 테크닉적으로는 부족할지언정 자기 게 있더라고. 그 점을 엄청 높게 사는 편이야. 일반학교 갔어도 물론 그런 애들 있었겠지만, 그리고 취업 시장에 집중하고 산업 내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디자인을 배우는 것도 나쁜 건 전혀 아니지만... 일반학교 갔으면 아무래도 자기 개성을 연구하는 것보다, 일단 멋있게 보여지는 것에 더 치중했을 것 같아, 내 스스로가. 사실 지금은 멋져 보이지 않아도 되거든. 멋보다는 자기 얘기가 있느냐-가 중요해.
따: 오. 파티 다니면서 만족도가 높았던 거 같아.
결: 응. 엄청 좋고. 1년이 훅 지나갔어. 아쉬울 정도로. 편입을 할 수도 있는데 일단 학비가 너무 비싸고.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비싸고. 사실은 의지를 가진다면 혼자도 이어갈 수 있는 공부이기도 하다. 왜냐면 이미 접근하는 방법,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방법은 배운 거니까.
따: 구체적으로 뭐가 좋았는지 얘기해 줄 수 있어?
결: 음, 나는 수업을 진짜 많이 들었는데... 일단, 아주 기본적인 테크니컬 한 것들, 예를 들면 어도비 툴 다루는 걸 과제하면서 익히기도 했고.
핵심은 사고하는 연습을 하고 방법을 배운 거야. 예를 들면 이런 식이거든. '네가 좋아하는 이미지 100개를 모아 와라. 그리고 그게 왜 좋은지 설명해라. 그걸 토댈로 네가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냐'. 그래서 내 나름대로 이미지를 모아가면, 그걸 계속 의심해 줘. '진짜 좋아?' 이렇게. 그러니까 '좋다'는 기준이 필요한 거지. 그런 질문을 6개월 정도를 계속 받으면... '내가 이걸 좋아하는 게 맞나?' 자문하게 돼. '혹시 그냥 멋있어 보여서 좋아하나?' 그러면 그 고민 사이 사이에 스승들이 여러 인사이트를 넣어줘.
'네가 이거 진짜 좋아하면 이 사람 것도 찾아봐.' 그래서 찾아보면 흥미가 안 생겨. 그러면 또 다른 걸 추천해 줘. 그럼 또 좋아. 그럼 내가 그 작품의 ‘이거’를 좋아했구나가 점점 찾아져. 그럼 '이 좋음을 어떻게 작업에 접목시키지?'로 이어지고. 예를 들면 이 스타일을 포스터에 어떻게 접목시키지? 하는 식이야. 포스터 뿐만 아니라, 인디자인, 타이포, 프로덕트, 다양한 분야로 접목시켜 보는 거지.
근데 거기서 무너지는 애들이 진짜 많아. 울고불고 난리 나. (히익. 울고불고까지 해?) 응. 자아가 흔들리니까. '내가 좋아하는 게 있나? 내가 뭐지?' 왜냐면 그건 사람의 근간이 흔들리는 거거든. 발표하다가 울어. (와, 진짜 고통스럽나 보다) 근데 그게 나도 뭔지 아니까... 나도 한 3년 정도만 늦게 들어갔으면 그랬을 거 같아. 그나마 난 취향이 좀 확실한 편이긴 해서, 일단 가져가면 수업이 피드백을 받는 시간이거든, 나한테는? 근데 일단 가져가는 것부터 못 하는 친구들이 많지.
따: 그럼 결이도 스스로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었어?
결: 난 원래 일본 그래픽들을 좋아했는데, 왜 좋아하는진 몰랐어. 일본 그래픽도 되게 여러 가지잖아. 그중에 어떤 걸 좋아하는 건지 몰랐는데... 그 일본의 포스터나 편집된 책들을 보면 되게 허술해. 한국이나 로마자는 폰트나 이런 것들이 어느 정도 도톰한 굵기가 있고, 자간 행간들이 읽기 좋게 잘 맞춰져 있고. 근데 일본은 서체들이 되게 얇고 허술하게 짜여있어, 여백도 많고.
알고 보니까, 나는 비어있는 걸 가만히 놔두는 게 좋았던 거야. 허술하게 짜져 있는 행간과 자간, 포스터여도 꽉꽉 채우지 않고 빈 상태로 남겨놓을 수 있는 것들. 그런 틈이 있는 것들이 좋았어. 그렇게 적당할 때에 놓을 수 있는, 그만할 수 있는 게 진짜 대단한 거라고 생각하거든. 힘을 좀 뺀 것들. 정점을 찍었는데 거기서 한번 힘을 뺀 게 훨씬 깔끔하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아. 그래서 힘 빠져있는 그래픽이나 편집디자인 일러스트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 색도 너무 화려하지 않은 그런 거.
거기에 위트! 힘을 뺐는데 살짝 위트가 얹어졌다? 그게 최고의 기술인 것 같아. 그건 꼭 그래픽이 아니어도, 삶에서 사람들을 볼 때도 그래. 양동근 같은? 힘 뺐는데 위트 있고 가벼워 보이지 않는 거. 그게 추구미인 듯?
따: 학교 가야겠다는 결심은 왜 올해였어?
결: 그것은 정말 기묘하게도... 작년 말에 마침 퇴사를 하게 됐지. 근데 그 회사 다닐 때, 상사들을 보면 내 청사진이 그려지는 거야. 근데 자기 게 없이 계속 버티고 있을 때, 그 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역할이 명확하지 않고 자리만 지킬 때 생기는 아집들이 보이는 거야. 되게 여유도 없고, 후배를 밀어주는 법도 모르고.
작년에 동준이가 그랬거든. 배울 점 있는 어른이 있는 곳에 가야 한다고. 회사 다닐 때 그 말이 계속 내 안에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그 직장에는 배울 게 없는 거야. 근데 그게 내 미래 같은 거야. 특기와 무기가 없이 연차가 쌓이면 역할 없이 버티는 느낌이 들 것 같아서. 나는 그러면 안 되겠다. 성격이 드러워도 자기 거가 있어야 되나 보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
근데 그 시즌에 내가 계속 회사를 다녔으면 2년 차, 3년 차, 이런 애매한 사원과 대리 사이에 있을 것 같은데, 지금 안 하면 더 일하고 나서는 회사 못 그만둘 것 같은 거야. 그래서 작년에 마침 퇴사한 김에, 어디서든 애매하게 더 연차가 쌓이면 안 되겠다. 그래서 무리하게 퇴사하고 학교에 간 것 같아. 결과적으로 너무 좋은 선택이었다. 1년인데, 그 지평이 엄청 넓어졌어. 좀 스스로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있어.
따: 스스로 자기 게 없다거나 애매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뭐야?
결: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얕은 재능이 되게 많은 사람이었어. 뭘 해도 중간 이상 하는 애 있잖아. 근데 크면서 이것들을 가지치기를 잘 못한 것 같아. 다 그냥 어느 정도 해. 근데 뭐 하나 뾰족한 사람이 아닌 두루두루 사람인 거야. 근데 일은 또 많이 했어. 카페에서도 일했지, 가구도 했지, 기획 전시도 했지, 그래서 그냥 보는 눈은 높아지고, 재능은 두루두루 다양하게 있는, 근데 내 건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거야.
근데 그냥 감각만으로 사람을 설득하는 일이 한계가 있잖아. 그런 것들을 막 뭉뚱그려서 느낌으로만 설명하는데, 사회에서는 전혀 설득이 안 되는 거지, 내가 하는 말들이. 힘도 없고. 스스로도 그걸 느끼게 되고.
물론 학교 가서 완벽하게 날 알았다! 이건 아니고. 학교에서도 두루두루 잘한 것도 맞아. 어떤 수업을 들어도 중간 이상으로 잘하고, 칭찬도 받고. 나중에서야 허술한, 여백이 많은 그래픽 느낌들이 좋다고는 했지만, 계속 나의 어떤 명확한 스타일이 있었나?를 고민하면서 학교를 다닌 것 같은 느낌. 취향이 있으니까 비슷한 느낌으로 결과물들이 나오긴 하는데, 누가 내 걸 보고 '딱 한결 느낌으로 했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닌 것 같아. 아직 주 무기가 뭔지 잘 모르겠어가지고.
따: 비슷한 고민을 한 사람으로서 공감 200.. 근데 그건 정말 평생 찾아가고 벼려가는 것 같아. 그래도 학교 다니면서 네가 스스로의 방향을 전보다는 분명 찾은 것 같아 보여서 나는 너무 부럽따.. 그걸 이렇게 설명할 언어도 있고, 그런 종류의 레퍼런스 박스도 가지고 있고.
결: ㅎㅎ (부정하지 않는 듯!)
결: 가장 오래 공부한 건 목공이라고 할 수 있겠지? 원래는 가구. 내가 되게 아날로그 한 작업방식에 익숙한 사람인가 봐. 우리는 그래도 시작은 노트북 보다 손으로 하던 세대였으니까. (ㅋㅋㅋㅋ옛날 사람 같잖아?) 그래서 목수, 손을 움직이는 작업을 먼저 했고. 그렇게 계속 가구를 만들다가 가구 만드는 회사에서 가구 제작자로 일했지.
근데 거기 대표님이 제안을 주셔가지고, 중간에 브랜딩 매니저로 바꿨어. 가구회사 브랜딩, 기획, 전시 이런 걸 하다가... 공예에 관심이 생겼어. 그래서 건축 및 공예 전시를 기획하는 회사로 옮겼지. 거기서 기획 및 브랜딩을 했고. 하는 일은 뭐 홍보 및 sns관리, 그런 걸 했는데...
아! 근데, 그전에 하나 끼우고 싶은 건, 내가 커피를 진짜 좋아해서 한 카페에서 매니저까지 했는데. 사실 커피를 10대 때부터 했다? 한 17, 18살 때부터. 그냥 만만한 게 카페 알바여서 했던 거 같아. 그때 운이 좋았는데, 17살 때 처음 카페 아르바이트한 곳이 핸드드립 카페였는데 거기 사장님이 엄청 커피에 진심이셔가지고 나한테 맨날 생두를 고르라고 시켰어. 결점두를 찾는 거야. 그런 생두 고르는 것부터 해서 로스팅하는 것도 구경하고, 희한한 원두를 진짜 많이 먹어봤어. 핸드 드립이 지금처럼 붐이 아닐 때, 한국에 많이 없는 원두, 막 게이샤, 시다 이런 거도 먹어보고.
따: 오 진짜 운 좋다. 그 나이에 하기 어려운 경험인데 사장님을 잘 만났잖아?
결: 근데 되게 안 좋게 끝남. 그때만 최저임금 안 지켜지던 시절이라서ㅋㅋㅋㅋ 눈만 높아졌지. 이후에 스스로 좀 커피에 진심이 된 건 삼층로비 카페 매니저 하면서. 거기도 알바로 갔는데 일하던 중에 매니저 자리가 비어서 매니저가 됐거든. 그럼 어쨌든 내가 총괄인데 그 카페에는 커피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어. 그래서 그냥 말재간으로 무마하는 게 한계가 있는 거야. 근데 내가 진짜 내려서 손님한테 내야 되기도 하고 업체랑도 얘기해야 하니까, 그때 찾아보고 유튜브로도 공부하고 그랬지.
결: 스탠다드 에이가 아무래도 그렇지. 거긴 내가 아무래도 전문적으롤 아는 분야였고, 가구는. 그 나무라는 거에. 나무라는 것을 브랜딩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아마 내가 제일 잘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 그리고 어쨌든 첫 사회생활, 회사 다니는 경험을 했으니까. 첫 직장인 거지. 상사도 있고, 야근도 있고, 연차도 있고, 연봉 협상도 해보고.
근데 무엇보다 그게 메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내가 그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이 있었어. 스스로도 그 일을 좋아했고. 무엇보다 그것 때문에 메인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 근데 사실 어디 가서 어디서 일했어? 하면 나중에 다닌 훨씬 대기업 회사 말하긴 해. (ㅋㅋ나도 그래) 왜냐면 첫 회사는 힙스터들한테는 유명해도 스타트업이고, 나중 회사는 이 판에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거든. 근데 되게 곤란한 게ㅋㅋㅋㅋ. 거기 다녔다고 하면 가끔 "거기 누구누구 차장님 계세요?" 그러면 이제 "앗 제가 좀 짧게 일해서 ㅎㅎㅎㅎ;;;"
따: 목공→ 브랜딩. 제작에서 → 기획은 업의 성질 자체에서 큰 변화인데. 좋았어?
결: 응. 좋았어. 난 사실은 그게 하고 싶었던 건가 봐. 목공은 사실 혼자 하는 일이기도 하잖아. 구석에서 틀어박혀서. (장인 같은?) 응, 그런 일인데. 근데 사람들이랑 뭔가를 만들어가고 좀 더 통찰하고 이끌어가는 일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되게 여러 번 뭔가를 해보려고 했는데, 접근법을 몰랐어. 어떻게 이런 걸 만드는 지도 몰랐고. 근데 그런 브랜딩 디자인이 주로 시각디자인 하는 사람들에게서 출발을 하더라고. 근데 이제 그런 제안이 왔을 때 어? 내가 뭔가 그런 걸 하고 싶어 하는 게 보였나 싶기도 하고.
따: 오, 결이한테 좋은 변경이었던 것 같은데?!
결: 그렇..긴 한데. 이게 제작하는 건 퇴근이 잇다? 근데 기획직들은 퇴근이 없잖아.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레퍼런스 찾고. 그리고 일하는 사람들 성격도 엄청 달라. 목공 하는 사람들은 섬세하지, 신경질적으로 예민한 사람들은, 뭐 있기야 있지만 안 심하거든? 근데 머리로 일하는 사람들은... 약았고 일단 (ㅋㅋㅋㅋ) 뭔가 좀 신경질적이고 스트레스가 훨씬 많아. 그리고 몸으롤 일하는. 몸의 대화가 익숙하지 않을 때 사람들이 되게 , 현장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작업 프로세스가 나랑 잘 맞다? 극대화된 효율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판을 빨리 읽어. 근데 그런 게 없는 사무직들은 그 회사가 정치적이어서 그런가.. 효율보다 명분이 중요해. 그게 너무 짜증 나. 그래서 해결이 안돼.
따: 그럼 결이는 제작행위 자체도 좋은 거지
결: 응, 난 좀 손으로 만들어가는 타입인 것 같아. 파티에서도, 피피티 발표를 많이 한했거든? 수업이 다 발표인데. 기획 설명을 하라고 하면 내 머리엔 있단 말이야? 그걸 어찌어찌해서 피피티를 막 정리해서 가. 근데 사람들은 글만 보고는 상상이 안 되니까, 내 상상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냥 차라리 빨리 제작물을 만드게 해 달라'했는데, 계속 리서치를 시키는 거야. 한 번은 그게 너무 힘들어서 피드백들을 제쳐두고 그냥 나 혼자 독단적으로 선작업을 막 해버렸어. 그때 무슨 이불을 만드는 프로젝트였는데... 나는 그걸 만들어가면서 생각이 오히려 발전하는 거야. 그래서 나는 '이게 좀 손으로 먼저 움직이고 그렇게 만들어가는 타입인 거 같다.' 만들면서 정리가 되고 확장하는 거 같아.
근데 나랑 다르게 그런 걸 되게 잘 찾는 애들도 있어. 서치 하면서, 예를 드어 엄청 기억에 남는 친구 중에 하나는 포스터 만드는 과제를 받고 ‘악당’이란 주제를 받았어. 그럼 걔는 악당의 사전적 정의부터 찾아. 거기서 확장해. 그리고 영화도 리서치 해. 다크나이트를 보고 조커를 보는데 조커가 배트맨한테 하는 대사 중에 '네가 나를 완성시켜'라는 대사가 있는 거야. 영웅이 있음으로써 악당이 있고, 그 반대도 맞는 거지. 둘이 상생관계. 그래서 조커랑 배트맨의 이미지가 교차하는 이미지의 포스터를 만들었어.
그걸 보고 저렇게 데스크에서 다 완성하는 애들도 있구나. 그런 걸 잘하는 애들은 좀 부러워. 생각을 텍스트에서 찾고, 그걸 정리해서 완성까지 시켜낼 수 있는 친구들. 근데 나는 확실히 손으로 시작하는 타입이야.
따: '뭔가를 만드는 게 재밌다'라고 처음 생각한 게 언제인 것 같아?
결: 어려운데... 아! 우리 어렸을 때 친구들이랑 4절에 편지 쓰는 거 유행했었어. (아 뭔지 알아ㅋㅋㅋㅋ) 그거 쓰는 걸 되게 좋아했는데, 초등학교 때 내가 그걸 진짜 잘했어. 글씨를 한글로 치면 5, 6포인트 정도로 펜으로 전지를 채우고 콜라주처럼 사진 붙이고, 그거 친구들 생일선물로 주고. 물론 내용은 쓸데없지만. (ㅋㅋㅋ맞아) 지금 먹고 있는 초콜릿 무슨 맛이고 점심 양배추 막 이런 거 쓰는 건데. (사실 우린 그걸 꾸미는, 작품을 만드는 게 재밌었던 거지) 그거는 지금 생각하면 작품이라고 할 정도로 엄청 공들였던 거 같아. 하이테크 비싸서 파인테크 쓰고ㅋㅋㅋㅋ
따: 목공은?
결: 스무 살 무렵에 만난 남자친구가. 그때 사람도 일을 그만둔 시기였고, 난 스무 살이었어. 그래도 난 어렸을 때 입시미술이나 미술을 꾸준히 해왔는데, 그런 상태에서 둘이 앞으로 뭘 하면서 살면 재밌을까를 고민하는 인생의 시기가 겹친 거야. 근데 그 사람이 새로운 직업을 찾고 싶어 했어서, 같이 놀던 곳 근처의 나무 공방에 가서 상담을 받았는데, 나는 그 상담을 받고 설득이 돼가지고 전문가반을 등록을 해버렸어. 근데 남자친구는 안 했어. (?ㅋㅋㅋㅋ)
그래서 그게 약간 나한테는 전공처럼 된 것 같아. 근데 애들도 대학 갈 때 뭐 하는 과인지 잘 몰라도 성적 맞춰서 가잖아? 나도 그냥 '목공, 재밌겠는데, 나 인테리어 좋아하니까?' 그렇게 가볍게 사실 간 거였어 그때는.
따: (… 잠시 침묵)
결: 어렸지.
(일동)ㅋㅋㅋㅋㅋㅋㅋㅋㅋ
따: 후회하는 건 아니잖아
결: 전혀 전혀 전혀. 너무 잘했지. 되게 많이 배우거든, 그 목공이란 노동에서, 인생을. 근데 그렇게 뭔가 손으로 몸으로 스스로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일들 있잖아. 그런 일들을 해봤다는 거에 너무 감사해. 그게 지금도 내 삶에 적용되는 거 같아. 그리고 막 어디 가서도 얌전한 척 하지만, 난 사실은 되게 험한 환경에서 되게 험한 일들을 경험해 봤잖아. 손이나 힘으로 하는 일들에 어느 정도 만렙인 거야. 그럼 일반적인 환경에서 여유가 생기는 게 있다? '나 얌전한 여자애 같지? 뭘 알겠니ㅎㅎ' 이런 거. 하다 못해 전시장 설치할 때도, 애매하게 알면 나서고 싶잖아. 근데 나는 안 그래. 그냥 쓱 빠져서 사람들 하는 거 봐. 그런 여유. 그걸 막 드러낼 필요도 못 느끼는 수준인 거지.
따: 귀여웤ㅋㅋㅋ 근데 사실 나도 장비 들고 다녀서, 가끔 그런 생각했던 거 같아. 굳이 나설 필요도 없는 나만의 묘한 자부심이랄까.
따: 뭔가를 만들 때, 결이는 재미를 과정VS결과물 중 어디서 느껴?
결: 재미는 결과에 있지. 과정도 물론 재밌는데. 다 해놓고 사람들한테 인사치레 할 때 좋더라 그게 나는? ㅋㅋㅋㅋ 다 해놓고 초대하거나 브랜드 관계자들이랑 인사하거나. 다 끝내놓고 메일로 이런 이런 거 수고하셨고 감사합니다. 그런 거 할 때 좋고. ㅋㅋㅋㅋ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나?
근데 과정 중에 재밌는 거는, 내가 또 안 좋아하는 게... 진심이 아닌 건 또 안 좋아해요. 그러면 어떤 분야, 내가 잘 모르는 분야를 마주하면 막 공부를 하게 되잖아. 예전에 킨츠키 작가님 전시를 하는데 그 킨츠키에 대해서 공부하고, 그 일본의 어느 지방의 어떤 도자기 특징들 막 이런 걸 공부하고, 그때 그랬던 과정들은 재밌는 거 같아. 지식의 습득. 그리고 그게 기반이 되어 이어지는 사람들과의 아는 척ㅋㅋㅋㅋ 이 두 가지를 좋아하는 것 같아. 성장한 나. 성장해서 자랑스럽게 나서는 나.
따: 좋지. 그 맛이지.
따: 결이 만들어낸 것 중에 가장 애정하는 건 뭐야?
결: 흐음.. (심드렁한 표정.. *그는 완벽주의자다) 내가 또 '가장', '인생의', 이런 거 대답 못 하거든.
(한참 고민)
나는 물건을 되게 쉽게 주고 쉽게 버리거든? 내가 만든 가구도 사람들한테 쉽게 줬어. 근데 제일 첫 번째로 만든 스툴은 가직고 있어. 되게 단순한 모양의 오크 나무로 만든 스툴인데, 오크라는 나무가 레드 오크, 화이트 오크,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화이트오크가 흔한 나무야. 내가 그걸 처음 배울 때 우연히, 약간 톤이 묘하게 다른 화이트 오크를 집었어. 근데 그 화이트 오크가 되게 색깔이 예뻐. 다른 화이트오크랑 달라. 되게 단순하게 만들었는데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깔끔하게 만든 스툴이거든. 근데 그거는 누구를 안 줄 것 같아. 그런 기준에서는 그걸 되게 애정하는 거 같아. 막 특별한 건 없는데, 그거는 계속 가져갈 거 같은.
결: (한참 고민) 근데 이게 좀 문제야. 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을 때 어떤 일을 하고 있는 내가 떠오르는 게 아니라, 어디에 속해있는 나를 자꾸 그려. 근데 그게 좀 위험한 거 같거든? 내가 인지하고 있으니 다행이긴 하지만. 솔직히 나는 타이틀이 중요한가 봐. 근데 그거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되게 찐또가 되고 싶은데, 어떤 일이든 간에. 그 일을 굉장히 전문적으로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사실 타이틀은 그러면 따라오는 거여야 되잖아. 근데 '그 일이 좋다'보다는 '어떤 사람들이 속한 커뮤니티에서 내가 얼마나 멋있게 어우러지고 있나'가 그려지는 거야.
지금은 아무래도 학교에서 배운 출판디자인이나 여러 가지 기획 브랜딩에 관련된 일들을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꾸 멋있는 사람들 있는 데에 속해있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서,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모르겠어.
따: 그냥 멋있는 곳에 속하고 싶구나-를 받아들여보는 건 어때? 나쁜 건 아닌 것 같은데.
결: 근데 사실 그런 곳에 속하려면 내가 진짜 능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해.
따: 그런 멋진 사람들이 있는 곳, 예를 들면 어디야?
결: 지금 생각하는 건 워크룸프레스 같은 디자인 되게 잘하는 출판사가 있는데, 지금 프리로 하는 디자이너 중에 워크룸프레스. 그런 데라든지, 두루두루라든지. 뭐 회사 내부는 어떤지 모르지만, 조금 취향이 있는 사람들이 일하는 곳에 가고 싶지. 근데 내가 거기서 멋있어지려면 내 거를 잘해놔야 될 거 같아. 아쉬운 소리 하기 싫잖아.
따: 앞으로 결이가 가보고 싶은 분야는 어떤 것들이 있어?
결: 출판 디자인 업계에서도 한번 일해보고 싶고, 공예 전시 기획이나, 엔터도.. 엔터는 트렌드의 최전선이잖아. 그래서 엔터업계에서도 한번 일 해보고 싶어. 그거는 그냥 뭔가... 경험해보고 싶어. 그런 삶 ㅋㅋㅋㅋ 최전선에 있으면서 착착 착착 트렌드를 계속 캐치하고, 그럼 진짜 역동적으로 일하는 느낌일 것 같아. 그런 업계는 피드백도 진짜 빠르잖아.
근데 만약에 내가 돈이 진짜 많으면, 그냥 내가 하고 싶지. 꼭 엔터라고 해서 연예계 쪽이 아니어도, 갤러리도 마음에 드는 작가들 레이블처럼 하거든. 그런 식으로 아티스트들이 소속된 레이블을... 돈이 많으면(^^) 해보고 싶지.
따: 찐 기획자 같아
결: 나도 작가는 아니라는 생각이 나무하면서도 들긴 했다? 근데 파티에선 자기작업 시키잖아. 작가적인 영역을 건드려. 근데 난 작가를 하기에는 너무 현실적인 걸 못 버리는 거야. 당위를 계속 찾고, 이걸 어떻게 내보이고. 이런 계산이 너무 빠른 거야. 근데 작가들은 그렇게 움직이면 자연스러운 작품들이 안 나오거든. 근데 파티에서 그런 걸 하니까 스스로 작가적 욕심도 생기긴 하는 거야. 근데 나도 막 나름대로 배운 거를 전시하듯이 해봤잖아? 도자기도, 목공도.
근데 나는 작가는 아니거든, 내 생각에? 근데 욕심이 있다? 그런 기획을 하면서도 내 거를 하고 싶은.. 근데 돌아다니다 보면 갤러리 하는 관장님들 중에 그런 사람이 있어. 자기 거 하고 싶은데 안되니까 그 안목으로 기획하는. 그러니까, 스포트라이트가 나한테도 왔으면 좋겠나 봐. 근데 기획자는 판을 까는 일이잖아. 그래서 그게 참...
따: (찐 공감)
결: 근데 그런 욕심이 다들 조금씩 있잖아.
따: 응. 나도 있어.
결: 근데 중학교 때... 내가 패션디자인을 해보고 싶어서 수업을 받았는데,, 패션 도식화 그리는? 근데 나한테 그 대안학교 선생님이 '너 이거 잘 생각해야 된다'면서, 디자이너는 '모델들을 빛내는' 직업이라는 거라는 거야. "너는 무대 아래 있는 거다." 그때 그게 갈리는 거라고 깨달았는데. 왜, 내가 아이돌도 하고 싶다고 했잖아. 그런 욕심도 있나 봐. 관종. 관심받고 싶은. 그래서 작가도 하고 싶고 기획자도 하고 싶어. 근데 완전 순수예술하는 작가는 못 될 거 같아.
따: 메타인지를 엄청 하고 있잖아, 스스로에 대해?
결: 그것이 문제다.
따: 똑똑해서 그래. 머리가 좋아서 메타인지가 자동으로 되고, 그럼 눈에 보이는 걸 어떡해.
결: 그래서 그냥 괴짜 같은 애들, 너드, 부러워. 천재.
따: ...
결: 천재가 되고 싶어!
따: (여전하군)
결: 저는 천재로 태어나지 못한 게 천추의 한 입니다. 노력도 타고난 상태로 하고 싶다.
따: 30년 살고도 '타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니. 정말 한결같다~~~~
*이런 결이 요즘 인정하는 천재는 이찬혁 님이라고 함
결: 대외적인 대답(ㅋㅋㅋㅋ)으로는 전시를 많이 보고. 왜냐면 크고 작은 전시를 제 지인들이 정말 많이 하거든. 언제 봐도 하고 있는 전시가 있다. 그래서 ‘이거 가볼까?’ 해서 시간 맞으면 가고. 아니면, 제가 또 극 I지만 친구가 엄청 많답니다? 그래서 빌 때에야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나고.
대부분의 시간은 릴스와 짤을 보는 데에 씁니다. 나는 이게 되게 바보 같은 걸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엄청 중요한 정보도 많이 얻거든? 센스 있는 화법 하는 사람들은 릴스를 봐야 된대. 트렌드 리서치랄까? 근데 또 너무 많이 보면 갇혀. 너무 댓글들도 자극적이고 비윤리적이고.
따: 혼자 있을 땐 뭐 해?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편?
결: 그런 거 같습니다. 혼자서 보내는 삶을 잘 못하는 거 같아서. 혼자 있으면 자주 우울한 편인데, 그게 정상은 아닌 거 같거든. 사람들한테 대외적으로 보이는 내 모습이 진짜 내가 아닌 것 같은데, 혼자 있을 때는 좀 맘껏 우울한 거 같아서. 그런 솔직한 시간들이 필요한 거 같아. 아무렇지 않은 척을 생각보다 잘해서. 기본의 솔직한 나로 돌아가서 나 자신도 돌아보고 하는 시간이 필요한 거 같다. 내가 나를 착각하는 순간들이 많아. 나를 인지하는 시간이 필요한가 봐. 다른 사람들이랑 있을 때 그게 잘 안 되니까. 복기를 해야 돼. 그래야 중도를 잘 찾아서 갈 수 있어. 근데 그렇게 너무 혼자만 있으면 병 걸릴 거 같아. 현타가 좀 많이 오는 느낌.
따: 결에겐 ‘정말로 편안한’ 사람이 있어?
결: 사실 누굴 만나도 어느 정도는 마음이 조급해져.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잘 말하면서도 혀가 꼬이고, 계속 머리를 굴리고, 시간을 많이 본다거나. 사실 내 마음속에서는 계속 의심하는 거야. 반응이 진짠가, 정말 웃겨서 웃나. 이런저런 상대방의 눈치를 많이 봐. 말하는 나의 표정을 자꾸 의식하고. 아예 안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솔직히 지금은 없는 거 같아. 근데 이건 좀 궁금해. 다들 어느 정도는 그런 거 아닌가?
따: 언제부터 혼자 살았어?
결: 19살 초. 아, 제 인생 이력이 어떻게 되냐면요. 초등학교 졸업하고 - 간디 학교 1년 반 다니고 - 15살에 마다가스카르 갔다가 - 17살 즈음에 한국에 와서 - 검정고시를 쳤지. 그 이후에는 계속 여행 다니고 홈스쿨링하고... 고향이 전주인데, 19살 때 전주에 프랑스어를 공부할 만한 시설이 없었어. 해외에서 배워온 게 아쉬우니까 서울에 있는 프랑스어 교육원을 다니게 되면서 오빠가 다니는 가천대, 성남 쪽에서 같이 자취를 했지. 근데 잘 안 맞아서 혼자 나와서 자취하기 시작했어. 뭐, 중간에 친구랑 살 때도 있었고, 여행 다니던 시절도 있었고.
따: 진짜 일찍부터 혼자 살았다.
결: 그랬네. 근데 별로 안 좋은 것 같아, 지금 생각해 보면.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한 시간을 너무 빨리 얻었어. 혼자 있으면 울고 싶을 때가 생기고, 깊게 거기 빠질 수밖에 없잖아. 근데 그걸 너무 사춘기 때 그런 시간들을 받아버린 것 같아.
따: 결이는 언제 처음 어른이 됐다고 느꼈어?
결: 어어엉 그거는 느낀 적이 없는데용?? 지금도 없는데용?!
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 아, 근데 요즘에 그런 생각한다. 동생들 보면 귀엽다. 미워 보이지 않고 귀엽다. 학교 다니면서 같이 알바하는 동생들도 그렇고, 학교에서 재잘거리는 애들 보면... 내가 그 나이에 거리감이 생겼나 봐 귀여워 보여. 20대 애들 봐도 안 밉고. (앜ㅋㅋㅋ예전엔 미웠어?) 어, 밉지. 시기, 질투, 이런 거. 왜 저래? 대가리가 비었나? (ㅋㅋㅋㅋ) 옷을 왜 저렇게 입지? 근데 요즘엔 안 그래. '그래, 맞아~ 저땐 저렇게 멋 내고 싶지~'
결: 히익! (미간 찌푸림) 조급해에... (시무룩) 꼰댄가 봐. 왜 다들 넘어갈 때 사실 별 느낌 없다 이런 얘기하잖아. 근데 나는 좀 이렇게 20대랑... 거리가 생겨.
따: 오...? 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 아, 좀 약 올리는 마음이 생겨, 내가 동안이니까. '어려 보였는데, 서른이지? 훙? 나 나이 좀 있다굿'. 이런 부심도 생기고. 나 왜 그러지? 무시를 많이 받고 살았나 봐ㅋㅋㅋㅋ 볼살도 통통하고 그러니까. 근데 '나, 이래 봬도 30년이나 살았다고?' 이런 부심이 생긴다. '나 어디서 많이 굴러먹어 봤어, 이 자식아.
따: ㅋㅋㅋㅋ공감
결: 근데, 지금이 딱 괜찮은 거 같아. 서른다섯은 안 되고 싶어. (왜?) 서른다섯은 내게 생긴 편견이 '굳어지는' 나이일 것 같아. 새 걸 받아들이기 어려워지는 나이. 지금이 딱 좋아. 내 것도 좀 있고 새로운 것도 있고. 지금보다 더 겁이 많아지면 안 될 것 같달까. 이건 근데 내 주변의 근거 있는 통계야. 서른다섯이 되면 뭔가 고집 같은 게 생겨. 좀 더 어렸을 땐 저 사람의 위트로 보였던 게, 진짜 꼰대 같아져. 막 발끈하는 것도 보이고 내 눈에.
따: 엇시 무섭다.(+2살)
결: 진짜, 나 경계하고 있어. 외적인 변화가 아니라 그런 게 진짜 무섭잖아. 이 지점에서 가리는 것 같아. 대화가 되는 어른, 안 되는 어른. 갈리더라고. 그래서 그 즘 되면 더 철 없어져야 돼. 근데, 또 돈은 있었으면 좋겠어.
따: 어렵구먼
결: 그니까. 돈 있는 철없는 서른다섯이 돼야 해.
결: 그때는 성숙해 보이고 싶었지, 엄청. 생각이 달라 보이고 싶었고. 왜냐면 내가 학교를 안 다녔으니까, 남들과 다른 통찰력이 있다는 걸 증명해야 했던 것 같아. 난 요즘 애들스럽지 않게 더 넓게 보고 깊게 봤다. 그런 걸 하다 못해 내가 쓰는 단어에서도 티 내고 싶었고, 취향이나 행동에서도 티 냈던 것 같아. 근데, 지금은 사랑받고 자란 것처럼 보이고 싶어. 그것도 힘숨찐인 것 같아. 오히려 그런 티 안 내고 가볍게 지낼 수 있는 거.
따: 10대, 20대 때 부러웠던 사람 있어?? 저렇게 되고 싶다. 질투 난다.
결: 엄청 많지. 엄청 많지 *2
따: 그럼 그중에 제일 버튼 눌릴 만큼 질투 나는 사람.
결: 질투? 나 블랙핑크 제닌데?
(일동)ㅋㅋㅋㅋㅋㅋㅋ
결: 난 시기, 질투 이런 거 많이 하는데... 그 대상이 내 주변 사람이 거의 아니었어. 그 분야의 뛰어난 어떤 사람들. 그래서 웬만해선 눈에 안 차. 근데 요즘은 차분한 사람. 요즘은 어떤 상황이 오면,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차분한 사람들을 떠올려.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까.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생각을 해. 난 조급하니까.
최근에는 그 악당으로 포스터 만들었다는 친구인 ㅊㅊ 생각을 되게 많이 했어. ㅊㅊ가 되게 차분하거든? 그러니까, 대답을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이야. 그래서 누가 뭘 물었을 때 ㅊㅊ의 템포로 말해야겠다. 저런 템포로 생각하고 말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진짜 많이 했어. 이 얘기를 ㅊㅊ에게 해 본 적은 없지만...
따: 20대 초반 이미지 메이킹은 성공적이었어?
결: 응. 그랬던 거 같습니다. 또래들이랑 잘 안 어울렸어. 10대 후반~20대 초반엔 좀 심했고, 23부터는 오히려 철없이 살았고.
따: 왜 23살 땐 이미지 메이킹 버렸어?
결: 그게 너무 어렸을 때는, 10대부터 사회생활을 한 거니까, 너무 10대처럼 보이면 안 됐던 것 같고, 진짜로 성인이 됐다는 걸 좀 자각하면서부터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굳이 그래 보이려고 막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 철없이 해도 어차피 나는 그냥 성인인 거지. 그때부터는.
따: 20대 때 너에게 가장 큰 결핍은 뭐였던 것 같아?
결: 자신감. 아니, 자존감. 자신감은 좀 있었는데 자존감이 낮았던 것 같아. 뭘 해도 잘할 거라는 나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은 되는데, 그렇게 잘 해내는 내가 스스로 만족스럽진 않았던 것 같아. 내가 나를 그렇게 사랑하지도 않았던 것 같고.
따: 그 결핍은 채워졌나요?
결: 아니 아니요, 지금 현재형이다. 스스로에게 만족을 전혀 못 한다. 스스로 칭찬할 줄 잘 모르는 것 같아.
따: 어떻게 채우고 싶어? 사실 결이는 그걸 동력 삼아서 뭔가를 많이 하는 것 같아서, 솔직하게 채우고 싶기는 할까? 가 궁금하기도 해.
결: 엄청 채우고 싶어. 나를 사랑하고 싶어.
따: 오옹.. 그걸 위해서 지금의 결이가 찾은 방법은 뭐야?
결: 계속 배우는 것 같아, 그래서. 계속 배우고. 배울 때 겉핥기로 안 하고. 하나 정한 것에 전문적인 지식을 계속 채우고, 계속 배워, 뭐든. 내가 가진 조금의 재능으로 뭔가를 보여준다기보다는 그걸 계속 채우고 채우고 배우고 배우는 것 같아.
따: 지금은 왜 배움으로 그 방법을 잡았어? 얼마나 배우면 채워질까?
결: 내가 뭔가 사람들을 만나면서 누군가가 괜찮은 사람인지 판가름할 때, 그 분야에 대해 '기술적으로 알고 있냐'를 넘어서 그 분야에 자기 철학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이냐가 보였을 때, 나는 그 사람이 진짜라고 생각하는 것 같거든. 그런 측면에서 다방면의 지식들을 가지고 있을 때, 더… 뭔가.. 채워졌다고 느낄 때 덜 불안해지는 것 같아, 스스로. 그래서 계속 배우는 것 같기도 하고. 계속 배우는 자세가 있으면 세상이 계속 계속 넓어진다고도 생각을 하고.
근데 그걸 넘어서 그렇게 취하는 태도 자체를 높이 사는 것 같아. 계속 알아가고, 배우고, 넓히고, 사고하고. 이런 태도를 가져가는 삶을 높이 사는 것 같아. 그래서 나 스스로도, 배우면 믿을 수 있는 자산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사실 이런 것들은, 나는 좋은 사람들이랑 대화하고 싶은데 내가 대화가 안 되는 사람이 되면 안 되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따: 대화할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 스스로가?
결: 어, 왜냐면. 이게 되게 애석하게도... 사람이 좋아서 할 수 있는 대화는 이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그 사람이 하는 일이나 전문적인 지식이 궁금하고 흥미롭고, 나와 함께 재밌는 걸 해낼 수 있을 때,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내 것이 있다는 확신이 없어서 그런 거겠지.
결: 아빠. 아빠아빠아빠. 대단히 막 사이가 좋은 딸은 아니고. 아빠는 나한테 되게 연민 가득해. 우리 아빠는 약간 키다리 아저씨 같은 아빠였어. 내가 한다고 하고, 스스로 그 명분을 설명할 수 있으면, 정신적으로든 금전적으로든 엄청 서포트해 주는 사람이었어. 그 기대에 부응을 못 할 때 좀 슬픈 것 같기도 해.
따: 뭘 기대하셔? 뭘 부응해주고 싶은데?
결: 그런 건 아닌데, 그냥 내가 사랑하는 일을 되게 멋있게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요즘은 그냥 안부 묻고, 일 있으면 전화하고, 가끔 자잘한 인생 에피소드 얘기하고... 근데 아빠는 뭔가... 몰라. 마다가스카 가는 시점에서부터 아빠랑 서로를 애잔한 마음이 생긴 거 같아. 어쨌든 타지에 있으니까. 그때 처음으로 아빠가 출국장에서 인사하면서 눈물을 참는 모습을 봤거든. 그리고 나도 타지에 있으면 막 서러우니까.
당시에 아빠가 잠깐 한 일주일 정도를 마다가스카에 왔었는데, 그때도 엄청 애틋했던 기억이 강하고. 아빠가 혼자 한국에 돌아갈 때 영영 못 볼 것 같은 부모라는 느낌을 받았어. 짠해, 뭔가. 이러나저러나 가장 기저에 있는 나의 지지기반은 아빠다.
따: 상당허게 자랑스러워하실 것 같은디..
결: 모르지만, 뭐... 그러겠지? 자식인데.
(괜히 저런다)
결: 예상외로 학력인 거 같아. 실제로 내가 학교를 안 나왔기 때문에 부족하다고 전혀 못 느끼거든? 근데도 그런 얘기가 나오면 ‘어떻게 하면 더 있어 보일까?’ 하고 머리를 많이 굴리는 거 같아. 너무 내가 살아온 것을 설명할 일이 많았어. 대안학교나 유학이나. 그래서 학교 관련 얘기가 나오면 방어적으로 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따: 으, 우리나라 너무 다 똑같이 살아가지고
결: 특별한 게 자랑스럽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게 특별한 이력이라고 말하려면, 현재 내가 되게 잘 살고 있어야 그게 성립된다고 느껴. 근데 난 지금 되게 평범하게 살고 있거든?
따: 네가...? (머리 쥐어뜯)
결: ㅋㅋㅋㅋㅋㅋ아냐? 내가 뭐 인플루언서도 아니고
따: (포효) 그냥 결이는 오히려 그 혐오하는 인플루언서가 한번 돼 보면 모든 자존감이 채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결: ㅋㅋㅋㅋㅋ아낰ㅋㅋㅋㅋㅋㅋ 그런가?
따: 응, 팔로워 1M, 그냥 숫자로 빡!
결: 그럴수도? 아냐, 안돼, 안돼.
결: 아, 내가 (책상을 탕- 내리치며) 그렇게 방탕한 삶을 못 살아봤다?! 클럽 다니고 이런 거 있잖아, 좀~~~ 헤까닥 놓는 거. 의외로 그런 삶을 못 살아봤어. 헌팅포차, 막 헌팅 하고, 아무 남자 만나고 이런 거 있잖아. 그걸 완전 철없을 때 해봤어도 좋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
그니까 어릴 때 독립해서 무언의 선, 보이지 않는 책임감과 선이 강했어. 내 스스로 브레이크 안 걸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 생각보다 20대에 사고도 안 치고 잠잠하게 살았다. 클럽 두 번 가보긴 했는데, 잘 안 맞는 사람들이라서 노잼이었고, 뭔가 어떻게 노는지를 몰랐어. 하... 뭔가 잘 못 놀았어. 옷도 학생처럼 입고 가 가지고. 옷도 좀 야하게도 입어보고, 후려도 보고, 원나잇 해보고. 그런 삶을 못 살아본 건 좀... 그런 게 아쉽다? 그리고 뭐, 돈을 왜 안 모아놨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 쓸데없는 물건 왜케 많이 샀을까.
따: ㅋㅋㅋㅋ후회투성이잖아, 이 사람?
결: 운이 좋았다. 되게 좋은 사람들이 있을 법한 느낌이 드는 곳에, 그냥 잘 흘러가듯이 안착했었다. 여기 왔더니 이거 관련된 사람이 있어서 여기로 가고, 저기로 연결되고. 물론 대기업에 입사하려는 사람들이랑은 다른 결이지만, 스스로는 ‘왜 취업이 어렵지?’ 이런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감정적으로는 20대 때 되게 화나있었어. 되게 감정적이고. (지금도...?) 응. 학생으로 돌아가서 그런가 봐.
따: 걍 화 내. 체력이 받쳐줄 때까지 열심히 내자!
따: 살면서, 돌아가서 바꾸고 싶은 하루가 있어?
결: (고심)... 너무 많이 스쳐가는데?
(아주 긴 시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다 생각이 들어버리네... 뭐... 수강신청? (ㅋㅋㅋㅋ) 테크닉적으로 필요한 수업이랑 생각을 말랑하게 해주는 수업이랑 고민을 했거든. 내가 후자를 들었는데 전자를 들을 걸 그랬나 이런 생각이 드네.
따: 살면서, 돌아가서 그대로 다시 즐기고 싶은 하루를 꼽으라면 언젤까?
결: 아, 이거 황금노가리다, 황금노가리. 지금도 내 가장 아름다운 청춘으로 꼽힙니다. 호텔 빌려서 놀고. 그 나이 대에 그렇게 양질의 대화를 하면서 서로를 좋아하면서. 순수했고 자유도 있었고. 부족하지만 돈도 좀 있었고. 그거는 다시 즐기고 싶은 때인 거 같아.
따: 70살의 너는 어떤 장면 속에 있고 싶어?
결: 건물주.
따: ㅋㅋㅋㅋ
결: 근데, 진짜로. 그 어떤 분야의 만만하지 않은 노인이 되고 싶어. 영향력 있고 싶어. 내가 마냥 편안하다고 행복할까 싶어. 멋있고 싶어.
따: 200% 될 거야. 전에는 어떻게 해도 만족없는 결이를 설득하고 싶었는데(오만하게도 예전의 나 같아서), 이제는 그걸 동력삼아 계속 더 배우려는 니가 멋있는 거 같다. 만만하지 않은 노인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