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배움을 포기않는 이동준

나는 천방지축이라 계속 배울 거야

by 따예
[이동준 / 생후 343개월]
...너무 오래 지났는데..?



졸업하고 취직했는데
또 공부하는 이상한 선생님


따: 요즘 어떻게 살고 계세요?

동: 서른 살이 됐잖아? 그래서 마음가짐이 좀 달라진 게... 없더라고? (ㅋㅋㅋㅋ) 달라질 줄 알았는데 일상이 그냥 꾸준하게 지나가는 거야. 윤석열식 나이의 안정감을 주는 도피처가 있어서 그런진 모르겠는데... 그냥 꾸준한 일상이야.


좀, 계속 뭘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겨. 교육 분야도 그렇고, 기술도. 예를 들면 수영. 브레이크 댄스 같은 거. (브레이크 땐쓰?!!) ㅋㅋㅋㅋ응. 뭐든 내가 할 수 있는 걸 늘려가고 싶고. 이상하게 10, 20대보다 30에 더 생긴다? 오히려 10, 20대 때는 때는 학교에서 하는 학습이 다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 20대 때 좀 학교 밖에서 활동하거나 운동하는 사람들 보면서 '교실 안에만 배움이 있는 게 아니구나' 이런 게 생겼던 것 같아.


학기 중에는 거의 9시에 출근해서 6시까지 있어. 애들 만나고, 가르치고, 오후에는 공부하고. 공부 없는 날은 데이트하거나, 혼자 집 가서 맥주 마시거나. 따로 하는 건 별로 없는 것 같아. 아, 얼마 전에는 소설을 좀 썼거든? 그때 이후로 '또 좀 써볼까'하고는 있는데... (썼어?) 최근에 수업 들으면서 살짝 썼어.



따: 어디서 일 하시는데요?

동: 저는 대안학교에서 일하고요. 뭔가, 내가 아이들한테 뭘 가르친다기보다는 세상과 아이들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해요. 그래서 우리 학교는 교사가 좀 더 많이 배워야 돼… 교사의 한계가 아이들의 한계가 되기도 해서. 교사가 더 많이 배워야 하는, 그래서 나도 가르치는 사람이라기 보단 배우는 사람인 느낌이야.


따: 구체적으로 뭘 가르치고 연결시켜?

동: 아이들한테 필요한 과목(?)을 가르쳐. 그게 청소가 될 수도 있고, 텃밭 일이 될 수도 있고, 과학이나 철학일 수도 있어. 아이들의 어떤 현상을 관찰하고, 그것과 연결된 본질적-사회적 문제의식과 연결해서, 그 부분을 가지고 아이들한테 교육을 제공해. 학습이 이루어지는 장은 교실이지만 세상과 연결되는 내용을 가르치는 것 같아.


물론, 과목의 틀은 있지. 고전 수업도 있고, 언어·자연과학·수학·과학 다 하는데, 그 내용을 정할 수 있어. 예를 들면, 내가 과학수업을 하거든? 저번 학기 때 우리 학교의 문이 뻑뻑해서 애들이 문을 잘 안 닫고 다니는 거야. 그럼 잔소리를 하게 되고, 산이라서 여름에는 모기랑 벌도 들어와. 그래서 문을 닫아야 하니까 계속 잔소리를 하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애들이 '그럼 자동문으로 바꿔달라'고 한 거야. 고친다는 생각 보단 위탁하고 자동화하는 게 익숙한 거지.


사실 그 아이들의 부모님도 그렇고, 속한 사회 자체가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하기보단 위탁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삶의 외주가 많은 거지. 그런 것들을 아이들이 많이 보고 자라니까, 자기가 해결하는 능력을 고민하기보다는 부탁하거나 맡겨버리게 돼. 그러면 해결의 사고 능력이 점점 없어지는 거야. 그래서 '이번 학기에는 여러 가지 과학원리들을 배워서, 우리가 같이 우리 시설을 고쳐보자.' (헐 너무 재밌다) '사실 나 어렸을 때는 문에 도르래 달아서 자동문 만들었다? 그니까 우리 같이 도르래의 원리도 배우고, 문도 고쳐보고 하자.'


따: 와, 진심으로 그 학교 다니고 싶어. 그래서 문 고쳤어?


동: 아니, 아직. 다음 학기에 해보려고ㅋㅋㅋㅋ 아무튼 이런 식으로 접근을 하는 거 같아.


그리고, 애들이 허풍이 많다? 근거 없이 거부 반응만 많아. 주장만 하고 근거가 없을 때, 그럼 그걸 가지고 같이 실험을 해버리는 거지. 가설도 세우고, 원인·결과 찾고, 일반화해 보고. 그 주장을 납득시킬 수 있을 정도로 디벨롭을 하는 거야. 수업을 짤 때 이런 메커니즘이 없으면 커리큘럼이 통과가 안 돼. 그러다 보니까, 내가 하는 일이 애들 관찰하는 거야. 안 보면 애들한테 뭐가 필요한지 모르니까.


근데 계속 보다 보면 애들의 문제가 어른들의 문제랑 똑같다고 생각이 들어. 아무튼, 그렇게 관찰하고, 같이 실험하고, 가르치고, 세상과 연결하는 일들을 해.




제목 없음-1.jpg 쌤 뭐 해여?



성장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성장의 판을 까는 사람


따: 어쩌다 그 일을 하게 됐어?

동: 그러겤ㅋㅋㅋㅋㅋㅋ 음.. 대학에 오고 나서 고등학교가 싫어졌어. 분명 고등학교 때*대안학교 다님 난 재밌고 행복했는데, 남은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많이 놀고 경험하긴 했는데, 나중에 돌아보니까 "이건 걍 방치 아님?" 싶은 거야. 준비가 안된 채로 사회에 방출됐다는 느낌인 거지. 우리 학교는 대학 가는 친구들보다, 안 가고 자기 길 찾는 친구들이 더 많았거든. 근데 사실은 대학 가는 애들보다 바로 사회로 나갈 때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잖아. 근데 그렇게 애들이 '방출'되면, 알바하다가, 군대 갔다 오면 23, 24살 되어 있고. 이게 맞나? 싶었어.


어쨌든, 그런 문제의식이 있었는데, 사실 난 대학을 갔어. (뭐야?ㅋㅋㅋㅋ) 대학교 땐, 학생 운동하면서 세상에 대해 알아보고 직시할 수 있었어. '세상이 이런 식으로 나쁘게 흘러가는데, 난 이걸 좀 천천히 나빠지게 만들어야겠다'까지는 대학교 때 마음먹었던 거 같아. 근데 내가 잘 흔들리더라고. 그냥 돈도 벌고, 풍족하게, 번듯하게 살고 싶은 나도 있는 거야. 그 두 마음이 공존하는 게 힘들었어. 하다 못해 시위도 나가기가 너무 귀찮을 때도 있는 거야. 그런 식으로 내가 내 마음을 다잡지 못하는 거에 대해서 아쉬움 혹은 죄책감이 컸던 거 같아.


근데, 학생운동 할 때 모임에서 가끔씩 공부 같은 걸 했거든, 책 읽고. 난 그걸 읽을 때마다 마음이 잡히는 걸 알았어. 그런 죄책감이나 아쉬움에 대해서. 뭔가, 내가 공부하고 배우면, 이 사람 책을 읽는데 나에 대해서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공부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 그래서 졸업하고 '뭘 할까' 하면서 글도 써보고, 공부도 해보고, 했지.


그러다가, 지인이 자기 다닌 대안학교에서 보조교사를 모집한다는 거야. 강화도 생태 탐방 보조교사. 남자 보조 교사가 필요하대. 그래서 '노느니 알바도 할 겸 갔다' 오자 했어. 근데 생각보다 내가 너무 애들이랑 잘 노는 거야. '내가 놀아주는 사람임 아니라, 그냥 노는구나 애들이랑?' 이런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탐방이 끝날 때쯤 어떤 애가 다음에도 오라는 거야.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응!"하고 대답을 해버렸어. 그러고 집에 갔는데, 너무 고요하고 조용했어. 그때 느꼈던 게, 나는 혼자서 일하는 것보다는 같이 일할 때 활력이 도는 사람이구나. 나를 밖으로 내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마침 거기서도 연락이 왔어. '같이 하자'고


근데, 거기서 자기들이 선생님을 뽑는 기준이 세 가지가 있대.


1.사회 교육 전반에 대해 문제의식이 있는지 - 이게 없으면 애들이랑 세상을 연결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2.아이들을 진짜 사랑하는지 - 어떤 직업이든 그럴 거 같은데, 약간' 이 사람이 돈 벌러 왔구나' 아니면 '뜻이 있구나' 이런 게 느껴지잖아. 교사도 가끔 너무 좀... 가르치려고만 드는 사람이 있어. 혼도 많이 내고, 짜증도 많고. 솔직히 사짜 들어가는 직업은 좀 책임감 있어야 되는 것 같은데, 뭐, 의사가 환자 배 째놓고 여섯 시에 퇴근할 순 없잖아. 그런 맥락으로 선생님도 애들이 있으면 오래 있기도 하고. 근데 개인 삶이 더 중요한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걸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추구가 다르니까.

3.계속 배울 의지가 있는지


그러니까 나는 공부도, 세상에 이로운 일도, 돈도 벌고 싶었는데, 다 충족하는 일이라서 일을 하게 됐죠.



IMG_3694.jpg



따: 원래 아이들 좋아했어?

동: 아닠ㅋㅋㅋㅋ 난 안 좋아했던 거 같아. 명절에 친척 동생들 오면 하나도 안 놀아주고. 애들이랑 재밌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지금 애들이랑 노는 게 재밌는 건, 대화하는 게 좀 재밌어. 어른들은 서로 대화할 때, 모르는 단어나 뉘앙스가 있어도 적당히 넘어가잖아. 가령, '지혜'에 대해서 얘기할 때 우리는 뭉뚱그려서 넘어갈 수 있어. 근데 애들은 꼬치꼬치 캐물어. 그럼 나도 지혜가 뭔지에 대해서 오히려 철학적인 대화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애들이 순수하고, 호기심이 많다는 게 확 느껴지고...


그리고 애들이랑 놀 때는 내가 제일 강자잖아? 덜 불편한 것도 있지. 내가 애들 그냥 다 제끼고 골도 넣고.



따: ㅋㅋㅋㅋ그럼 일하면서 가장 기쁠 때는 언제야? 애들 제치고 골 넣을 때?

동: 애들이 큰 걸 볼 때. 성장한 게 느껴질 때.


따: (머쓱)


동: ㅋㅋㅋㅋ예를 들면. 뭐가 좀 잘 안 되는 애가 있어. 정리가 안 되거나, 감정 조절이 안 되거나. 그건 내가 아무리 말로만 한다고는 바뀌지 않거든? 근데 얘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구조나 환경을 만들어주면 아주 천천히 변화하거든. 내가 뭐라고 얘기를 해서 변하는 게 아니라 그 조성된 환경 속에서. 그런 걸 깨달으니까 내 마음도 좀 편해. 이 아이가 내가 성장시켜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는 이 시스템이나 구조를 잘 만들어주는 거고, 그러면 알아서 크는 거구나.


이번에 캠프했을 때, 원래는 선생님들이 씻겨주고 했는데. 이제는 2-3년 공부 같이한 애들이 철이 좀 든 것처럼. 빨래도 자기들이 하려고 하고, 선생님 도와주려고 하고, 애들이 선생님 일을 덜어가는데 너무 편한 거야. 일단 되게 편하고, 시간도 많아지고 그럼 애들을 볼 시간이 더 많아지고. 애들 자생 능력이 큰 거지. 그리고 또래들 사이에서도 본인이 더 경험이 많고 형이니까, 뭘 더 해줘야 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거지.



따: 동준이가 담임도 맡아? 커리큘럼은 어떤 식으로 짜여있어?

동: 응, 나도 있어. 매년 담임은 계속 바뀌고. 우리 학교는 10.11.12살 / 13.14.15살 끼리 같은 수업을 들어. 3년 동안 아이들이 막내 역할 - 중간 역할 - 맏이 역할을 하는 거지. 그럼 서로가 배웠다가 - 도와주고 - 끌어주고 하는 상호작용이 생겨. 근데 나도 느끼는 게 뭐냐면, 석학들을 보면 바운더리가 되게 넓은 사람들이 있잖아. 한 분야만 판 사람 말고?


예를 들면 스티븐 와인버그라는 물리학자가 있어. 이 사람은 물리학을 계속 공부하다 보니까 과학 철학사가 중요하다고 느낀 거야. 그러면 수업을 열어달라고 해서 자기가 수업준비를 하면서 공부하는 거지. 애들도 배운 걸 다시 자기가 설명하면서 정확하게 정리가 되는 거야. 우리가 그냥 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막상 설명을 하려고 하면 진짜 아는 게 아니라고 느껴지기든 하거든. 그러니까 우리 애들도 3년 차가 되면서 설명할 일이 생기면, 다시금 정리도 하고 깨닫는 거지.


따: 어, 나 돌봄센터 취재할 때 그런 교육방식 들었던 것 같아. 일리있다고 생각했어.


동: 응, 우리가 하는 교육이 고대 그리스 교육이거든, 쉽게 말하면 시민 교육 같은 거..? 국수사과영 이런 거 안 나누고 모든 걸 다 배워야 한다는 거야. 두루두루 넓어야 돼. 스무 살 때까지는 넓게 공부하는 거고, 그다음에 깊게 파는 거라는 생각이 있어. 기반이 넓어야 높이 간다는 취지. 공부해 보니까 고대 그리스도 애들이 10살까지는 다 놀더라고?


따: 어쩐지 늘 그리스에 가고 싶었음ㅇㅇ.


동: 우리 애들도 오전에는 놀고, 오후에는 수렴하는 시간을 가져. 어떻게 놀았고, 뭘 봤고, 이런 게 중요해. 오전에도 공동체 놀이 같은 걸 해. 한국에서 애들이 공부를 할 때 쉽게 좌절하거나, 자괴감을 갖거나, 자학하거나, 이런 게, 원인을 살펴보면 '많이 못 놀았다', 즉, '자기 욕구를 분출 못 해봤다'는 거라고 하더라고. 그 출처가 부모님이든 어디든 간에, 좌절을 겪는 건 공부를 잘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잖아. 근데, 우리나라에서는 심지어 본인이 잘하고 싶다는 그 욕구조차 인정을 못 하고.


아무튼, 논다는 것의 핵심은 애들이 '자기 욕구를 파악해 보는 시간'인 거야. 일반적 공부보다 그게 선행되도록 하는 거야. 그리고 노는 과정에서도, 예를 들면 나는 경(찰과)도(둑) 하고 싶은데 얘는 피구 하고 싶어. 그럼 오늘은 피구 하고, 내일은 경도 하자. 이렇게 욕구를 표출해 보고, 욕구를 지연시켜 보고, 좌절도 겪어보고, 보상도 받고.



따: 되게 멋진 교육을 하고 있고, 스스로도 자부심이 있다고 느껴는데.. 힘든 건 뭐야?

동: 월급의 액수...? 솔직히 돈이 좀 더 있으면 인생 걱정을 좀 덜 하고 일에 집중할 수 있겠다.


따: (당황) 오, 너무 타당(?)해서 오히려 예상 못한 답변이다ㅋㅋㅋ 그건 너무 중요한 거지. 사실 그게 제일 중요한 거지.


동: 그리고, 처음에 여기 왔을 때 좀 당황했던 게, 내 이미지는 정글 속 무림 도원, 도 닦는, 이런 느낌이었거든. 그런 데는 늘 스승이 있잖아. 우리도 스승이 있어. 모두가 인정하고. 그게 장점이면서도, 약간 1인 중심 공동체의 한계 같은 게 느껴질 때도 있어. 분위기 자체가 좀 오래된 느낌이야. 중간 연차가 별로 없어.


예전에는 그런 거 있었어. 내가 이런 데 다니니까 설명할 게 너무 많은 거야. 귀찮아서 나도 모르게 적당히 좋게 좋게 포장하려고 하게 되거든. 그렇게 말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 스스로도 우리 조직 안의 문제를 안 보려고 하는 때가 있는 거야. 그렇게 무시하게 되면 그게 진짜 문제가 되는 거지.


이제는 알지. 우리는 이런 게 문제야 - 대신 그걸 상쇄할만한 더 큰 배움이 있어. 근데 또, 그런 식으로 계속 퉁치면 안 되잖아? '고치면서 갈 순 없는 거야?' 이렇게 계속 질문하는 게 건강한 거잖아. 알긴 아는데... 이게 어려운 건 내 성격도 있어. 문제를 발견하면 나는 스스로 해결하려는 게 있거든.


예를 들면, 내 생각에 월급이 좀 올랐으면 좋겠어. 그럼' 월급 올려주세요'라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어차피 쓸모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돼. '있으면 올려줬겠지'. 사실, 학교가 적자인데 그런 말을 하면 무슨 쓸모가 있어. '내가 일을 잘해서 학생들이 많이 오면 되지' 그런 식으로 생각을 했는데... 여전히 잘 안 돼. 요구를 하려면 내가 뭔가 행동하는 게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 안 그러면 그냥 징징대는 게 되잖아.


따: 근데 동준이가 돈 벌어오라고 고용된 사람은 아니잖아. 조직의 모든 문제를 동준이 해결할 순 없지. 때론 정확하게 징징대는 게 가장 필요할 수도!


872B7B82-E652-4A46-A517-CE65F224EDE6.JPG 우리 동준이 푸짐한 거 좋아한다구욧!



편하게 맘 먹어야
이어가게 되더라


따: 지금 몇 년 차세요?

동: 1년 차 때는 적응하느라 바빴던 거 같아. 근데 학교에서 처음에 분명 나한테 '3-6개월 체험해 보고. 수습이란 게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거다.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라고 얘기했고, 나도 정말 그렇게 생각했거든. 근데 들어가자마자 담임하라는 거야. 그럼 중간에 못 그만둘 거 아니야. '뭐지?'싶었어ㅋㅋㅋㅋ 나한테 좀 많은 걸 요구했지. 온도가 달랐어. '으응 뭐지..? 나는 아직 그렇게 온도가 높지 않은데...?'


그리고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어. '도망쳐야겠다'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어. 근데 선생님들이랑 공부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 그때 같이 공부한 게 피터싱어 책이었는데, 잘 살고 싶어지는 거야. 공부도 하고 싶고, 더 배우고 싶고. 그때, 스스로 여러모로 되게 힘들었는데 공부하니까 해소하는 경험이 되게 기분이 좋았어. 그래서 1년은 해보자. 1년을 채워보자. 그래서 1년을 채웠을 즈음에는 그런 고민 없이 자연스럽게 다음 해를 준비하고 있더라고.


2,3년 차 되면서는 이곳과 가치관이 잘 맞다고 느꼈어.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잘 맞아. 우리도 뜻이 맞으면 봐주거나, 믿고 넘겨주고 하는 게 있잖아. 1년 차 때는 학교가 있고 내가 있고였는데, 지금은 내가 학교야. 학교가 변하려면 내가 뭘 해야 되는 거야.


나는 이 학교에 젊은 바람이 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내가 5명 정도 불렀어. 후배도 와서 정규 교사로 일하고, 학교 친구도 부르고, 애인이 소개해준 친구도 연결해서 일하기로 했고. 실질적인 나의 역할이 이 안에 생기기도 했다. 아까 중간 연차대가 없다고 했잖아. 내가 젊은 피 수혈하는ㅋㅋㅋㅋ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학교에서 나에 대한 신뢰도가 있다는 생각도 들더라고. 나의 카르텔이ㅋㅋㅋㅋ 생기고 있다. (준라인 생기나요?) ㅋㅋㅋㅋ아무튼 내 역할이 생기고, 책임도 생기고.


근데 내가 이 학교를 좋아하는 이유는 문제를 해결하고 시스템을 계속 바꿔나가려고 해. 적절한 예인지는 모르겠지만, 학교 적자의 제일 큰 문제가 우리 학교가 서초구에 있어서거든. 임대료가.. (ㄷㄷ) 근데 우리 학교의 존재 이유가 또 그런 한.국.적. 교육열이 높은 곳에 일부러 파고드는 것이기도 하거든. 그래서 어려운 건데, 최근에 대안학교 법이 통과됐거든? 원래는 폐교를 대안학교는 이용할 수 없었는데, 개정되면서 대안학교도 이용할 수 있게 됐어. 그래서 뭐, 그것도 잘 알아봐서 학교 옮기자. 그런 노력도 하고. 그러니까 나도 그때까지 그 2년을 잘 버텨보고 싶은 거지. 부지도 잘 구하고 하면. 그래서 나도 2년은 잘해보자.



따: 아이들에게 어떤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어?

동: 다가가고 싶은 선생님. 애들이 날 편해했으면 좋겠어. 편해야 대화도 되고, 솔직한 고충도 들어줄 수 있고. 그래서 편해지기 전에는 교육적 어프로치 안 해. 수업 태도 개판이어도 그냥 둬. 좀 친밀감 생기면 그때부터나 잔소리도 좀 하고. 실제로 그때가 돼야 내 말을 들어주기도 하고. 그래서 편하고, 다가가고 싶은 선생님.



따: 그럼, 지금의 너에게 교사란 직업은 어떤 의미야?

동: 흠.. 나는 좀 나태한 사람이라서. 한없이 나태해질 수 있는 사람이고, 한없이 천방지축일 수도 있고, 한없이 빻거나 무너질 수도 있는 사람이야. 그런 나의 부족한 모습들을 스스로 알고 있어. 그래서 그렇게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극한의 환경으로 몰려는 게 있는 거 같아. 내가 더 나아지고, 내가 더 좋아질 수 있는 환경으로.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마지노선 같달까.



스크린샷 2025-04-16 12.18.48.png 마지노선을 지킨다기엔 천방지축 앞서가는 사람



따: 일 안 할 땐 뭐 해?

동: 일 안 할 때가 거의 없고. 일을 할 때가 너무 많아. 일 안 할 때.......? 막살아. 오히려 풀어줘, 나를. 괜히~ 막~ 책 읽으려고 애쓰지도 않고. 어차피 학교 가면 공부할 거니까. 만약에 휴일이 생긴다. 그럼 그냥 축구 게임, 평소에 특별히 하고 싶었던 거 아닌데도 하기도 하고. 넷플릭스 폭식하기도 하고. 데이트하고. 요 근래에는 혼자 시간을 밖에서 보낸 적이 없어. 옛날에는 내가 뭘 좋아하고 그런 걸 몰라서 취향을 찾으려고 시간을 많이 쓴 거 같아. 근데 요즘은 그런 욕구가 많이 없어. 그냥 쉬는 게 제일 좋다. 노는 게 제일 좋고, 술 마시는 게 제일 좋고.


근데 올해는 학교 이외에 뭔가를 해야겠다 싶었어. 소설 쓰기 모임도 그런 시도 중에 아니었거든. 그래서 소설 쓰기 모임 듣고. 아, 몸 강의 듣기로 했어. 척추 세우기 수업. 잘 못 쉬고 있는 거 같아.


아, 여행 가는 거 좋은 거 같아. 예전에는 여행 좋아하는 거 이해를 못 하고, 별 흥미가 없었는데... 요즘은 좋은 게, 뭔가 명상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 새로운 환경과 풍경을 보면 잡념 없이 거기에 빠져드는 게 있더라고. 대만 일본 애인이랑 갔을 때도 제일 도시 같은 데도 가보고 산골 시골도 가봈는데, 자연환경이 좋더라고. 그 모습이나 풍경들이 머릿속에 많이 남고. 도시는 사실 다 비슷하게 생겼잖아. 근데 자연환경은 나라마다 분명히 달라. '이걸 보는 게 재밌구나'싶어.



따: 축구도 좋아하잖아. 요즘도 운동해?

동: 기본적으로 많이 걷기는 해. 하루 평균 걸음이 만 보야 (건강 앱 보여줌) 근데, 근육량은 좀 늘려야 되는 거 같긴 해.


요즘은 축구를 할 때, 내가 차고 나서 원래 생각으론 내 몸이 여기까지 가있어야 되는데 공만 저 앞에 가있는 거야. 골을 넣을 때도, 차면 원래는 피융! 하고 직선 같은 곡선으로 갔는데, 피유우웅,,, (ㅋㅋㅋㅋㅋㅋㅋ) 여름캠프 때는 홈트도 했는데 학기 시작하니가 다 도루묵 되더라고... 그래서 수영 배워보려고. 8월 달부터 매달 신청했는데, 티켓팅이 안 되더라고.



IMG_3691.jpg 선생님도... 막 살아...


(구)판타스틱오르가즘 베이시스트
(현)방구석 생활작가


따: 선생님(teacher❌ Sensei⭕️) 워낙 레인지가 넓은 리스너잖아요...? 특별히 취향인 음악 장르나 아티스트 있어?

동: 한국 인디 노래는 기본적으로 좋아해. 꺼칠꺼칠한 거 좋아! 김일두나 백현진 아저씨. 외국 노래는 침대에서 듣는 음악. 공간감이 뛰어난 음악들. 베드 팝. 마일드 오렌지, 헬라도 니그로. 나는 음악을 소음 차단을 위해 들을 때가 많은데, 그런 사람들 음악은 날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시켜. 집중하는 나를 보면서 만족하는 거지. 엘피는 안 산지 오래됐어. 요즘 안 산다고 안 샀는데도 백오십 장 백장 정도 있고. 사실 월급 받아서 그런데 쓴 거야.



따: 음악의 세계에 처음 입문한 건 언제야?

동: 초등학교 때 집에 티비가 없었어. 라디오밖에 안 남아있었어. 근데, 라디오 듣다 보면 음악이 나오잖아? 그때 들으면서 아, 음악 되게 좋다- 하는 거 있으면, DJ가 '제이슨 므라즈의 아임유어스 듣고 오셨습니다'하잖아. 그럼 그걸 적어두고, 나중에 불따(..) 하고. 근데 문제는 곡 소개를 처음에 하고 틀 때가 있잖아. 그걸 중간부터 들었는데 노래가 좋으면 곡 제목이 너무 궁금한 거야. 그래서 선곡표를 검색하게 됐어. 그게 디깅의 시작이었던 거 같아.


그리고, 부모님이 처음으로 핸드폰 사준다고 해서 갔는데, 멜론폰이라는 게 있었어. 멜론폰이라서 데이터로 음악 듣기가 무료야. 완전 음악 듣기 폰인 거야. 그래서 엄마한테 그거 사달라고 했어. 고등학교 때 셔틀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내가 1 빠로 타는 사람이었어. 그럼 나는 음악 재생이 무제한이니까 내 폰으로 노래를 틀었어. 그건 디제이의 시작.


아, 중3쯤에 누나의 에어팟을 발견했거든? 누나도 대안학교 다니고, 학교에서 음악 문화사, 이런 수업을 들어서 마룬파이브부터 프랭크 시네트라? 이런 사람들 거가 있는 거야. 그때 팝에 빠졌지. 그렇게... 고등학교 때는 몽니, 안녕 바다, 이런 인디를 듣기 시작함. 로맨틱 펀치도 좋아하고. 밴드도 했어.


따: 헐 진짜? 1도 몰랐네?!!! 무슨 악기했어? 밴드 이름 뭐야? (흥분 ㅈㅅ)


동: 베이스. 밴드명은 좀 쪽팔린뎈ㅋㅋㅋㅋㅋㅋ 판타스틱 오르가즘


(일동 빵)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 그때는 그냥 크라잉넛, 노브레인, 이런 무조건 달리기만 하는 노래들 했어. 음악성은 중요하지 않아. 그냥 둥둥둥둥 둥둥둥둥. 늘 피날레가 되는 것들. 놀기 좋은 노래. 그러면서 음악이 되게 재밌어졌고... 스무 살 되면서는 학교 때문에 '내가 서울에 사네? 공연을 직접 보러 갈 수 있잖아?!' 하면서 공연도 많이 보러 다니고. 그러다가 음악 이제 질릴 때쯤에 돈을 벌면서 엘피를 사서 듣게 됐지.


음악이 좋은 게, 기억이 너무 잘나. 이 노래 처음 들었을 때가 기억이 나고, 뭐 하고 있었는지, 누구랑 들었는지, 이런 거 기억나는 게 좋아. 음악 관련 진로도 생각해 본 적 있거든. 라디오 작가. (왜 안 했어?) 공부해 본 적이 없어서. 음악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 장르나 음악사는 모르기도 하고. 그냥 취미로 남겨두고 싶기도 하고.



따: 선생님(Sensei..) 소설도 쓰시잖아요. 인생 책이 있나요?

동: 재밌게 익은 건 1Q84. 그때 내가 군대에 있을 땐데, 빨리 일과 끝내고 책 읽고 싶어 했을 정도니까. 군대에서 읽은 게,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 이 소설이 한 사람의 일대기인데, 되게 담백한, 평범한 사람의 인생을 보는 거거든? 막 흥미진진하지도 않아. 근데 사람의 인생을 그렇게 조명하는 걸 보니까, 각자가 다 하나의 책이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이구나 싶었어. 사람들한테 잘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책.


그리고 우치다 타츠류 <하류지향>. 약간 나에게 바이블 같은 책이야, 애들 가르치거나 공부할 때. 일본이 고령화 사회가 되고, 사람들이 무너지고. 예전에는 사회에서의 정체성을 노동 주체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소비 주체로 먼저 시작하게 된다는 거야. 그러니까 어떤 행동을 할 때, 이게 어떤 이익이 있지(돈이 되지?)를 먼저 생각한다는 거지. 선생님들이 읽기에 좋은 필독서.



따: 소설은 어떻게 꾸준히 쓰는 거 같아?

동: 환상이 있어. 왜냐면 내가 학생운동 했을 때, 사람들이 내가 나눠준 전단지나 발언은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아. 그건 같은 뜻이 있는 사람들만 봐. 근데 정말 세상을 더 넓게 변화해가고 싶을 때는 말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거 같은 거야. 소설이 그 방법 같고. 그래서 최은영 소설도 처음에 많이 읽었는데, 이 사람은 돈도 벌고.


그러니까 솔직히 소설 그 자체가 목적이었던 적은 없었고 수단이었어. 근데 내가 교육계에 들어오면서, 소설은 되게 간접적인데 교육은 직접적인 거야. 근데 이러고 나니까 소설이 그냥 수단이기만 하진 않더라고. 그냥 그 자체가 좋더라고. 어떤 사람이 되어보는 게. 왜 그런가 봤더니. 근데 공감 능력이 내가 별로 없다고 느끼는데, 소설을 쓰면서는 막 그 사람이 되어보는 순간이 좋은 거 같아.


그래서 수업을 들어도 되는데, 수업은 소설가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긴 하거든? 근데 난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거지, 소설가가 되고 싶은 건 아닌 거 같아. 소설가가 되고 싶은 것도 있긴 하지만. 소설을 진행 중인 사람으로 지내고 싶은 거 같아. 일하기 전에는 좀 얕았던 거 같은데, 공부를 하고 배우고 하니까 쓰고 싶은 말도 더 생기는 거 같고. 쓰는 사람으로 남는 게 좋은 거 같아.


학교에서 애들한테 바라는 것도 그런 거야. 다 전문가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시작하거든? 축구하면 손흥민 될 거야. 수영하면 박태환이 될 거야. 근데 사실 생활 체육인, 생활 과학자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슈퍼스타, 금메달보다는 그 행위를 했을 때 따라오는 것들에 집중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그게 쌓이면 나중에 뭘 할 때 편한 거지. 소설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IMG_3696.jpg 집 가서 소설 써야지~



나를 지키는 연애에서
나를 벗어나는 연애로


따: 서른이 되는 기분은?

동: 무덤덤. 주변에서 애인만 자꾸 내 서른 강조해. 되게 웃긴 게. 여자애들이 결혼을 빨리 해. 올해 내 중학교 때 전여친 두 명이 결혼했어. 근데 둘 다 남편이... 못 생겼어.


따: ㅋㅋㅋㅋ네? 그게 거기로 간다고요?


동: 무슨 매력일까? 재력일까?


따: 어떻게 동준이를 만나고 못 생긴 사람이랑 결혼할 수 있지? 해봤으니(?) 됐다 이건가.


동: ㅋㅋㅋㅋ아무튼 이제 주변에서 결혼 얘기가 나와..


따: 집안이나 주변에서 결혼을 바라는 거 같아?


동: 음 주변 보다도..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는 왜 결혼이 하고 싶지?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어. 묘하게 스스로 압박을 받는 것 같아. 절대 네가 니 능력으로 집 못 산다는 건 불변의 진리인데, 결혼을 하면 주변에서 도와줄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시기가 됐달까. 그래서 누군갈 만날 때 미래지향적이지 않으면 안 만나는 것 같아. 이 사람이랑 만나봐야 평생 갈 것 같지 않아. 그럼 흥미가 안 생겨. 근데 이 사람 만났는데 괜찮아. 그러면 진지하게 미래를 그리게 되는 게 있는 것 같고. 그러면 좋아져. 그렇게 미래의 지점이 정해지면 지금의 내가 변화하는 게 있어서. 예를 들면, 나는 미래에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럼 담배 피우려다가 정자 괜찮나 이러게 되고. (ㅋㅋㅋㅋ) 아무튼, 서른이 되는 느낌은, 지금만 바라보지 않는 게 생겼달까. 미래지향적이 되네.



따: 부모님도 결혼 얘길 하시나? 아니 일단, 부모님이랑은 친해?

동: 내가 10대 때부터 기숙사 살아서, 이제 엄빠랑 떨어져 산 세월이 더 길어. 그래서 애착이 좀 없기도 해. 요즘은 그게 좀 아쉽기도 하네. 내가 아쉽거나 힘든 얘기를 부모님한테 안 하더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영향도 큰 것 같아. 오히려 멀리 있고 얘기를 많이 안 나누니까 잘 살고 있음을 보여줘야 했던 것도 같아. 그니까, 인정욕구 있는 거. 타인에게 기대지 않는 것. 인정욕구가 있다보니까 연애를 늘 해야하는 거.



따: 첫 연애는 언제였어?

동: 중학교 때 연애는 기억이 안 나서 패스해야될 것 같고 ㅋㅋㅋㅋㅋ 기억 하나는 어떤 애가 나한테 초콜릿 선물을 주면서 문자로 2514를 보냈거든. 2렇게 5직 너 1만을 4랑해.


그리고 고등학교 때 좋아하던 누나가 있었어. 축구도 잘하고, 귀엽고, 예뻤고, 얍실했는데, 옷 스타일이 되게 대안학교 스타일인 거야. 원피스도 있고. 치마도 폭 좁고 종아리까지 오는. 어린애들 옷 아니고. 그 누나를 좋아했어, 한 학기 동안. 근데 다른 애가 나한테 대쉬해서 그 애를 만나버렸어. 왜냐하면(?) 그 애를 좋아하는 남자애가 한 명 더 있는데, 그 애가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느낌으로 날 고른 거였거든.


근데 또 막상 얼마 안 갔어. 다음 해에 그 누나가 나를 불렀어. 내가 그 누나랑 썸 타다가 딴 사람 만난 거라 서먹해졌는데, 그 누나는 날 불러서 자기가 내 친구랑 사귈 거 같다고 얘기를 하는 거야. 자기는 사실 너랑 잘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네가 딴 사람 만나서 자긴 좀 속상했다. 그래서 자긴 다른 사람 만나기 전에 너한테 말한다. 그때 약간, 아, 이런 게 사랑이구나. 사랑을 제대로 해석한 사람이구나. 어린 나에겐 충격이었어. 그때 뒤통수를 좀 맞았지.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그 누나랑 연애를 하지 않았는데도, 첫사랑이라고 하면 그 누나가 떠올라.



따: 살면서 연애 몇 번이나 했다고 볼 수 있나요?

동: 음, 총 8-9번 만난 거 같은데.



따: 허슬러... 그 다양한 20대의 연애들은 어떤 느낌이었어? 혹은 왜 했던 것 같아?

동: 잘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면서 나에 대해 알 수 있었어. 엄마도 내가 연애하는 거 되게 좋아해. 엄마는 아빠밖에 안 만나봤거든.


연인은 친구들이랑은 다르잖아. 그래서 사랑을 했을 때 나의 밑천도 보이고 상대방의 밑천도 보이고.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남을 위하고 남을 대한다는 걸 생각해 보게 됐던 거 같아. 왜냐면, 나는 연애할 때 늘 내가 제일 중요했거든. 연애하면 애인만 만나고 이런 사람들 안 좋다고 생각했어. 헤어지면 어쩌려고;; 우리 누나도 어딘가에 처음 가서 연애부터 하면 안 된다. 실제로 그렇게 했고, 연애할 땐 너무 감정을 많이 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그러니까 계속 벽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겠지, 상대방은. 근데 나는 반대로, 왜 다 나를 만나면서 불안해하지? 싶었어. 나는 매번 그게 의아하기만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내가 마음을 편하게 열지 않고 벽을 치고 했던 게 그 사람 입장에서는 진심으로 안 느껴지고 불안했겠구나. 이런 걸 알게 된 것 같아. 근데 그런 이전의 연애가 없었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야. 지나간 연애 다 감사하고 미안하고. 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한텐 되게 소중하고 고마운 경험.



따: 그렇게 벽친 이동준도 상처받은 연애가 있었나?

동: 늘 상처받지 않을 만큼만 좋아했는데, 최근에 그걸 감수하는 선택들을 해봤어. 더 어릴 땐 내가 상처받지 않는 게 먼저라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주려고는 하지 못했던 거 같은데, 지금은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주고 싶은 욕구가 있는 거 같아. 그리고, 그런 상황이 될 때 기분이 좋아. 오히려 내 자아가 없어질 때가 기분이 좋아. 내 몸의 한계를 벗어나는 정신이 됐을 때가 새로운 도약처럼 느껴져.



IMG_3698.jpg 솔직히 좀 유죄인간;;



한 땐 저도
고독을 씹곤 했지요..


따: 살면서 부러웠던 사람 있었어?

동: ... 난 내가 멋있다고 생각했어.


따: ㅋㅋㅋㅋ아 들을수록 재미진 인간이네.


동: 아니 왜냐면ㅋㅋㅋㅋ, 성공회대 사람들은 대안학교에 대한 로망이 있거든? 실제로도 그 안에서 대안학교 사람들의 기고만장이 있었어. '나는 정규 교육 안 받았고, 나만의 가치관이 있지' 이런 거. 나도 대안학교 다녔으니까, 당시에는 주변의 로망이 이미 갖춰진 사람이었어서. 가만 있어도 멋있는 축 같았달까. 근데 금방 뽀록나지.


인상적인 사건이 있었는데, 내가 그때 부학생회장이었거든. 계속 바쁘고 힘들었는데, 하루 쉬는 날이 생긴 거야. 근데 그날 정말, 너무너무 심심한 거야, 뭘 할지도 모르겠고. 혼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게임도 지루했어. 근데 갑자기 학교에서 사건이 터진 거야. 별 거 아닌데, 뭐 영상이 업로드가 안 돼서 내가 가야 하는 상황이 됐는데, 그게 기분이 너무 좋은 거야. 할 일이 생겼다는 사실에...


그러고 나니까 현타가 씨게 오더라고. 나 왜 이렇게 혼자서 못 지내지? 그래서 처음 가본 데가 국립현대미술관이었어. 사람들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취향을 만들어보자면서 처음 갔던 게 국현미. 그때부터 이곳저곳 가보기 시작했어. 그니까, 그때의 나는 혼자서 잘 지내는 독립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 같아.



따: 혼자만의 시간을 잘 즐기는 '독립적인 사람'되기는 성공적이었어?

동: 성공했다고 생각했는데 실패한 거 같아. 전에는 내가 되게 독립적이고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독립적인 게 좋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일단 생겼어. 물론 의존적인 게 좋은 건 아닌 거 같은데. 요즘은 독립적인 면과 의존적인 면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 누군가에게 기대야 할 땐 기댈 수 있고. 결핍된 건 좀 채우 과잉된 건 덜어내는 게 필요하다는 걸 알았달까.


내가 좋아하는 소설도 그런 거였거든. 주인공 남자고 혼자인데 쓸쓸하고 사연이 있어. 친구 없고. 혼자 아픔을 치유하는 내용이야. 예전부터 혼자 공상하고 상상하는 사람들 멋있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나도 혼자 있어도 봤고 했는데,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더 빛이 나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어. 함께 있을 때는 굳이 그걸 노력하지 않아도 편안해. 그래서, 그럼 좀 더 솔직해져야겠다. 나에게도 사람들에게도 내가 뭘 원하는지도 잘 말하고, 상대방의 욕구도 잘 수용할 수도 있어야겠고. 그래서 독립이라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자. 우리나라가 그게 좀 심해. 언제까지 엄마 곁에 있을 거야? 벗어나야 돼. 독립해야 돼. 하잖아. 근데 삶의 패턴도 바뀌었고 근데 이제는 25-30까지는 엄빠 있으면 같이 사는 것도 좋은 거 같아. 자본주의가 만든 거야. (갑자기?) 다 독립하면 냉장고도 하나 팔 거 두세 개 팔고.


따: ㅋㅋㅋㅋ성공회대 나온 건 분명하네



따: 그럼 혹시, 20대 때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싶은, 못 해봐서 아쉬운 거 있어?

동: 번호 따보기? 헌팅 같은 거 말고, '모르는 사람이랑 친해져 보기'. 막 용기 있게 확 다가가버리는 거. 이 생각은 왜 했냐면... 지금 맺은 관계들이 나를 규정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 내 주변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가 나를 다 설명해 버려. 나는 그 외엔 변수가 없는 거야. 주변에 다 보증된 사람들만 있으니까. 성공회대 사람들. 어떤 단체로서 관계를 맺었지, 1:1로 나만 아는 친구가 없는 거야. 내 친구들끼리는 서로서로 다 알아. 그래서 좋기도 한데, 한편으론 내 인생만 봤을 땐 조금 아쉽기도 한 거야. 그런 거 있잖아, 기차에서 대화하다가 시작되고. 그런 인연이나 연인들을 내가 만들어가는 걸 수도 있는데, 그런 데에서 용기를 내본 적이 없다. 그런 식으로 친해져 본 적이 없다.



IMG_3693.jpg 독립적인 인간도 먼저 다가가고 싶다




따: 20대 때 너에게 가장 큰 결핍은 뭐였던 것 같아?

동: 돈 없는 거. 늘 돈이 없었어. 돈 걱정을 안 해본 적이 없었어. 통장잔고를 늘 확인했던 거 같아. 학생운동을 하면 고정적인 알바를 하기가 되게 어려워. 특히 연애할 때는 그냥 좀 쓰고 싶은데 없는 게 너무 속상했어. 직장인들 만나거나 이러면 누나들이 뭐 사주잖아. (누나도 아무에게나 사주진 않을 거야..) 그래서 나도 뭐라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더 애썼던 것 같아. 만나면 최대한 잘해주려고 하고. 편지 써주고. 물론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관계에 최선을 다한 거지만, 그 가난한 사랑들이 불쌍할 때가 있었어. 더 많은 걸 못해본 게 좀 아쉬워. 여행도 다니고 놀러도 다니고 새로운 경험도 마음껏 해보고 이럴 수 있잖아. 너무 꾸역꾸역 살았어.


그게 내 결핍이었어서, 내가 일하고 돈 벌 땐 배부른 돼지가 쉽게 돼. 그걸 처음 느꼈던 게 풀타임 아르바이트할 때였는데 한 달에 200만 원씩 들어오니까 내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나도 안 하더라고. 맥주 사 먹어~ 맛난 거 사 먹어~ 놀아~~! 그 결핍이 채워져 버리니까.



따: 그럼 이제 월급 따박따박 들어오면서 그 결핍은 채워졌겠네..?

동: 웅. 직장도 있고, 적금도 붓고. 여행도 가보고 하니까, 월급에 길들여진 것도 있어. 이제? 월급 없는 삶이 상상이 잘 안 되지. 노예가 된 거지. 다른 걸 더 하는 게 의지만으로 되지 않더라고.


따: 진정한 사회의 일원이 되었구나.


동: 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도 배움이 있는 노예입니다.



따: 요즘 최대의 고민은 뭐야?

동: 비교적 고민 없는 상태야. 애초에 고민이나 걱정이 잘 없는 성격이야. 좀 낙천적이야. 삶에 대한 기복이 좀 없는 스타일. 아유~ 잘될 거야~ 괜찮아~ 어떻게든 살아~ 이런 마인드여서. 이런 것들이 무책임하게 보일 때도 있는 거 같은데, 반대로 좋은 분위기나 흐름을 만들 때도 있는 거 같아.


다른 선생님들은 불안해서 못 시키기도 한단 말이야. 어제도 캠프 피드백 했거든. 나에 대한 피드백이 '애들이 잘 믿는다 긍정적인 분위기가 있다', '애들의 한계를 잘 깨 준다'더라고. 옛날에 내 좌우명이 '걱정을 하지 말고 고민을 많이 하세요.'였어. 그런 긍정적인 바이브. 걱정 대신 실질적인 고민을 좀 많이 하자. 어떤 걸 선택하고 어딜로 갈지.



따: 고민하는 동준이는 앞으로 커서 뭐가 되고 싶나요?

동: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_< (ㅋㅋㅋㅋ) 근데 이 직업을 내가 평생 하진 않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들어. 잘 쌓아서 다른 곳에서 잘 발현하거나 활용하고 싶은 거 같아. 지금 이 길을 걷는 건 내가 성장하고 배우고 있다는 게 확실해서야. 이 학교를 들어오기 전과 후가 아주 달라. 나는 아직 학생이야. 나는 학생이고 싶어서 거기서 교사의 역할을 하고 있는 거 같아.


미래에 대해 아직 구체적인 그림은 없는데, 제일 바라는 건 지방에서도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싶어. 실제로 지방에서 내가 밥벌이를 할 가망도 있긴 있어. 엄마 아빠랑 가까운 데에서 살고 싶은 것도 있나 봐. 서울에 오래 못 살 거 같아. 근데 아직은 그런 것도 있긴 해. 문화예술이 있는 합정~ 망원에서 힙한 놈들 주변에서 살고 싶기도 함.


사실 나는 그렇게 멀리 보지 않아. 왜냐면... 나는 세계 평화를 지향해. (응?) 근데 안 될 거 같아. 그러면 거기까지 어떤 태도로 내가 하루하루 나아가고 있는지가 중요한 거 같아. 그럼 내일 죽어도 괜찮은 거야. 근데 세계평화 '달성'이 목적이면, 내가 내일 죽으면 실패한 거잖아. 지금 내가 어떤 모습인지가 중요한 거 같고, 그런 부분에서는 지금 만족스러워서 요즘 큰 고민을 안 해.



IMG_3699.jpg 막판에 방출하는 아이도루 이동준. SM 태업 각성하라




따: 솔직한 20대의 깨달음을 하나 나눠준다면?

동: '뭘 그렇게 애썼지? 좀 편하게 있지.' 나를 있는 그대로 못 받아들인 적이 많았던 거 같아. 하루 종일 집에서 놀면 죄책감 들고. 그냥 놀 수도 있는 건데.



따: 살면서, 돌아가서 바꾸고 싶은 하루가 있어?

동: 후회 없어. 뭐 잘못된 선택이었더라도 거기서 내가 뭘 배웠을 거야.



따: 살면서, 돌아가서 그대로 다시 즐기고 싶은 하루를 꼽으라면 언젤까?

동: 아~ 너무 많은데?ㅋㅋㅋㅋㅋ 황금노가리 할 때도 진짜 행복했던 거 같아. 매주 기다려지는 날이 있는 시절이었잖아. *동준이와는 소설쓰기 모임 '황금노가리'에서 만남


따: 그러네. 그런 시절이 자주 있는 게 아니더라.


동: 맞아. 아, 그리고 동기 애들이랑 영종도 여행을 가서 석양을 본 기억이 있어. 거기가 간척지잖아? 산도 별로 없고. 근데, 바다 저편에는 높은 도로가 있고, 나무가 직선으로 꽂혀 있고, 그 뒤에 석양이 있는데... 그게 너무 예쁜 거야. 예쁘다는 표현으론 부족해.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 나오는 사파리의 석양 같은. 말로 다 못 전하는 그때의 희열이 있는데, 그걸 다시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 <원더풀라이프>에서 죽기 전 장면으로 뭘 남기고 싶냐고 물어보잖아? 나는 그때가 떠오르더라고. 그래서 석양이 보이는 곳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따: 70살의 너는 어떤 장면 속에 있을까? 석양이 보이는 곳에 있나.

동: 일단은 흰머리가 많을 거 같고. 사실 나는 70살의 내 외모가 궁금해. 어떻게 늙을지. 이마는 어떨지. 머리털이 있다면 어떤 색일지, 아니면 없을지.


따: ㅋㅋㅋㅋㅋ


동: 지구가 있을까?


따: 없ㄱ.. 있다면?


동: 있다면… 퍼펙트 데이즈 할아버지처럼 살고 있지 않을까. 스스로를 루틴화해서 하는 삶을 꿈꿔. 그게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 그런 삶을 살고 싶어. 도시의 외곽쯤에서. 차 타면 영화관 갈 수 있는 정도? 동네에서는 지혜로운데 편한 어른. 와서 녹차 한잔 먹고 갈 수 있는.



2025-02-15.jpg 언젠가 베트남에서 베트남 쌀국수 먹자



매거진의 이전글가끔 불타는 달팽이 김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