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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Mar 27. 2024

10살이 된 너에게

며칠 전에 네가 "나중에 나는 딸을 꼭 낳을 거야"라고 말하는 게 좋았어.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할 거야"라는 네 말도 좋았지. 요즘 결혼도 임신도 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너에게는 아직 '순수한 이상'이 있다는 생각에 엄마는 내심 흐뭇했다.


"왜 딸을 낳고 싶냐"라고 네게 물으면서, 나는 은근히 기대도 했어. ‘엄마와 지내는 게 좋았다거나, 엄마가 나를 예뻐하듯 나도 내 아기를 예뻐해주고 싶다는 등' 너를 키운 것에 대해 내가 긍정적인 피드백을 듣게 되는 건가 싶었지. 결국 네 대답에 빵 터졌지만.


"인구감소를 막아야 해, 엄마. 딸이 있어야 아기를 낳으니까" 아, 맞다. 네 장래희망이 과학자였지?! 그걸 고려해서 질문을 잘 만들었어야 했는데. 문과생인 엄마는 '문제해결 중심'의 네 사고방식에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어찌 되었건 나는 그 답도 나쁘지 않았어. 그리고 네 재미있는 대답을 듣고 모처럼만에 깔깔 웃을 수 있어서 좋았고. 그런데, 우리 대화 끝에 내가 말할 것은 꼭 기억해야 해. 농담처럼 말했지만 사실이니까. "엄마는 그때 일하느라 바쁠 테니까, 아이 봐달라고 부르면 안 돼."라고 했던 것 말이야.


너무 매몰차니?

지금 엄마 나이가 어느덧 마흔 중반인데 여전히 둘째 손잡고 유치원에 등원하고 있잖니. 환갑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때 또 손주들 손잡고 유치원에 등원하는 건 곤란해. 아,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것은 좋아하니까, 종종 만나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건 즐겁겠다. 꽃 보고 나무도 보는 산책도 좋고. 그렇게, 엄마가 기쁜 방법으로 할머니의 역할을 해주고 싶어.


엄마의 도움 없이, 우리 딸이 아기를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등하원시키고, 어르고, 달래고 등등을 할 것을 상상해 보니, 엄마에게 네가 더 소중하게 여겨져. 엄마는 그런 너를 더 아끼고, 사랑할게. 너를 더 보살필게. 아이 키우다가 힘들면, 언제든지 엄마 집으로 와서 맛있는 밥을 먹어.


비록, 엄마는 나중에 너를 대신해서 아이들을 키워줄 수는 없지만, 이것은 꼭 해줄 거야. 지금부터 네가 성인이 될 때까지, '일하는 여성이 아이를 기껍게 키울 수 있도록' 이 사회가 진화하도록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보려 해. 내가 정치에 나간다는 것은 아니니까, 놀라진 마. 지금 당장 엄마에게도 이것이 '당면 과제'가 아니겠니.. 이 현실을 치열하게 살아보며, 엄마 나름의 답을 찾아볼게. 또 기회가 있다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주변의 엄마들과도 계속해서 답을 찾아나가 볼게.


해맑게 웃으며 "엄마가 될 거야. 딸을 꼭 낳을 거야"라고 말하는 너의 순수하고 맑은 마음을 지켜주고 싶어. 그러니 엄마부터 너희들을 기껍게 키워볼게. 일에서도 나를 성장시켜 보고. 20살이 된 너와는 이 주제에 대해서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 같아 기대되네?


그런데 딸, 엄마가 되기 위해서, 혹은 엄마이든 아니든, 무엇보다 중요한 게 있는데, 알고 있니?

답을 찾으면 엄마에게 꼭 알려줘. 이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보면, 네게 재미있는 답을 듣게 될 것 같아. 너와 나눌 대화를 기다릴게.


언제나 너를 사랑해.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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