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날 Jan 31. 2024

나는 미인이 아니야

나는 미인이 아니다. 그리고 내 딸도 미인은 아니다. 그래서 최근에 '세상의 기준'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는 아이가 "엄마, 나는 예쁘지 않아"라고 말했을 때, 속으로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나는 자라나며 이런 말을 누구와도 나눠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내 안에서 이것에 대한 적절한 답을 찾아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순간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대답은 이게 전부였다. 나름의 최선이었달까.



왜~ 우리 딸 예쁘지~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아이의 표정은 전혀 밝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아니야, 예쁘지 않아" 그래서, 나는 일단 후퇴했다. 더 적절한 답을 찾기 위해서..


동네에 육아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나보다는 나이가 어리고, 아직 키우는 아가들도 어리지만, 나는 종종 그 친구의 의견을 새겨듣곤 한다. 누구의 말이든 해주는 조언이 맞다면, 수용하고 앞으로 나아가면 되니까. 그런 소통이 가능한 대상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친구를 만났을 때, 이 숙제 같은 상황을 풀어놓았고, 정답이라고 볼 수 있는 답을 듣게 되어 기뻤다. 친구 본인이 어려서 엄마에게 외모에 대해 고민했을 때, 엄마가 해주셨다는 이야기는  내 입고리마저도 올라가게 했다.



너는 예쁘지 않아.
하지만, 엄마 눈에는 정말 정말 정말 예뻐!



나는 집으로 돌아와 첫째에게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 아이는 '생각하고 있던 것이 기정 사실화된 것에 씁쓸하지만, 왠지는 모르게 기분이 좀 나아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약간 부족했다. 그럼에도 '더 예뻐지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나에게도 느껴졌다. 그것은 아이의 순수한 '욕구'였다. 예뻐지고 싶은 마음, 그것을 어떻게 다루면 좋을지 나는 또 생각에 잠겼다.



사실 엄마도 그래
엄마도 더 예뻐지고 싶어  



이것은 내 솔직한 욕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딸에게 내 마음을 그대로 이야기해 보았다. "엄마도 더 예뻐지고 싶어. 우리 매일 더 예뻐져볼까?" 성형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것이었다.


물을 더 많이 마시기, 땅을 보고 걷지 않기, 등을 더 펴고 앉기, 입술을 뜯지 않기, 예쁜 말씨를 연습해 보기, 불편한 마음은 말로 잘 표현해 보기 등등을 아이와 이야기 나눠보았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외모에 대한 생각에 매몰되어 있던 아이가 '그것에서 점차 자유로워지는 것' 같았다. 그쯤 되니, 한 가지 부정할 수 없는 새로운 '사실'이 떠올랐다. 내 눈에는 정말 그렇기 때문에, 나는 확신에 차서 아이에게 이렇게 얘기해 주었고, 아이는 더 웃었다.



너는 아름다워!



이게 바로 육아 친구가 엄마에게 들은 그 문장이 아닐까! 친구의 친정엄마는 분명 이렇게 '확신'에 차서 딸에게 이야기를 해주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친구는 지금처럼 당당하게 자라난 것이 분명했다.


이런 생각의 흐름은 외모에서 뿐 아니라, 일하는 동안에도 나에게 문득문득 다가온다.

새로운 분야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내 능력의 바닥을 경험할 때가 있다. 내 능력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이미 잘하는 사람들에게 부러운 마음까지 더해지면, 나는 참 초라해진다. 나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잘하는 것도 같고..


이때 "그 정도면 잘하는 거지~ 시도하는 게 어디야~ 그 정도면 충분해~ 처음에는 다 그렇지~"라는 위로를 스스로 많이 해줘 봤는데, 궁극적으로 나는 그 감정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순간은 나아질지 몰라도, 그럼에도 잘하고 싶은 내 '욕구'는 위로받지 못했다. 그런데, 잘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해서 슬픈 나를 만나고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마음이 자연스럽게 흘렀다.



 속상해..
잘 하고 싶어..



무척 속상해……….


.

.

.

뭘, 어떻게 더 해보는 게 좋을까....

,

,

오,

그럼에도 시도해보려는 나, 좀 멋지다



최근에 나는 이렇게 슬픔과 좌절과 절망에서 빠져나왔다. 이럴 땐 육아의 경험이 내 성장에 밑거름이 된다고 여겨진다. 아무래도 이건 합리화일 테지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일하지 말고 맛있는 밥 해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