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고민
스물네 살부터 서른네 살까지, 11년을 쉬지 않고 일했다.
11년이란 시간 동안 진로에 대한 몇 번의 흔들림이 있었지만 생각에서만 그치고 말았던 건,
현실의 벽보다는 소심하고 걱정 많은 내 성격 탓이 컸으리라…
서른네 살 그 겨울에,
결혼이란 걸 하지 않았다면,
육아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결혼과 동시에 생긴 첫째 임신으로 시작된 육아휴직은 둘째를 갖기 위한 난임휴직으로 이어졌다.
난임휴직 기간 동안 한 아이가 잠깐 내게 머물렀다 자기 별로 돌아갔고, 5년의 휴직 후 나는 복직을 했다.
난임휴직 기간 동안 애타게 기다렸던 둘째는 복직 후 얼마 안 돼 찾아왔고, 7개월 남짓한 복직기간을 끝으로 난 다시 엄마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렇게 지난 9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내가 “교사”였던 시간은 고작 7개월뿐이었다.
교사로서의 삶과 엄마로서의 삶의 시간이 비슷해져 갈수록 나의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처음 교사를 그만두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 남편은 그래도 내 정체성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퇴직을 만류했다. 일을 하지 않고 엄마로서의 삶만을 살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남편은 아마도 교사를 그만두면 다른 일을 찾기 어려울 거라 판단한 것 같다.
그럼에도 지속되는 나의 퇴직이야기에 남편은 점차 수긍해 갔고, 결국에는 벌이와 상관없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먼저 찾고, 그 후에 교사를 그만두겠다는 약속과 함께 나의 퇴직에 동의해 주었다.
사실 나의 퇴직이 누군가의 동의가 필요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직업을 바꾸는 일… 그건 분명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살아갈 내 삶의 과정 중에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결혼을 했고 아이들이 있어 내 삶의 방향이 남편과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치 않는 일을 하며 원치 않는 삶을 이어나가고 싶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의를 구할 수밖에 없는, 아니 구하고 싶은 이유는 아마 마음의 짐 때문이리라.
교사를 그만둔다고 해서 내가 그저 엄마로서만 살아갈 것은 아니지만,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어쩌면 불투명한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나의 결정이 남편에게는 불편한 일일 테니까 말이다.
여차저차 남편의 동의를 얻긴 했지만 내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부분을 남편에게 밀어버리는 것만 같은 느낌은 지울 수가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모두에게 미안해도 이기적이고 싶다. 나만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껏 나만을 위한 욕심이란 걸 부려본 적이 없는 것 같으니 말이다.
이제 내게 마지막 1년이란 휴직기간이 남아있다.
결코 길지만은 않을 그 시간 동안 내 새로운 삶의 길을 찾는 시간들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그 길 위 어딘가에서 반드시 운명 같은 내 길을 만날 것이다.
이미 내 영혼은 그 길을 알고 있다.
p.s
남편아..
당신 어깨를 더 무겁게 만드는 것 같아서 나 정말 당신에게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나 꼭 진짜 나를 찾을게. 그래서 내 삶이, 당신의 삶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우리의 삶이 더 빛날 수 있도록 노력할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