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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빛바다 Jan 04. 2024

언제나 단발머리

큰 아이와 함께 헤어컷

결혼 전까지만 해도 항상 긴 머리를 고수했던 나였다. 첫째를 낳고도 늘 긴 머리를 유지했지만 둘째를 낳고는 긴 머리는 내게 사치와도 같았다. 머리카락도 많이 빠지거니와 인생 32개월 차인 둘째가 아직도 내 머리를 잡아채서 긴 머리는 감당불가이다.


안 그래도 미용실에 가야겠다 싶었는데 오늘따라 일찍 집에 온 남편이 머리를 자르고 오라고 한다.

주말에 친구를 만나러 대구에 간다고 했더니 이쁘게 하고 가라며… 이쁜 게 도대체 뭐냐며 포기한 지 오래라고 이젠 이쁠 수 없다고 속으로 외치며 큰 아이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비가 온다. 아이가 얼른 뛰어 올라가 우산 두 개를 들고 내려온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비가 자주 오는 것 같다. 두 번째 들른 미용실에서 헤어컷 오케이를 받았다. 요즘 미용실은 예약을 안 하면 패스당하기 일쑤지만 난 예약을 안 한다. 아니할 수 없다. 그저 시간이

될 때 머리를 자를 뿐.


이번에 온 미용실은 원장님이 세심하다. 큰 아이 컷을 하는데 불편하지 않게 이것저것 신경 써 주신다. 머리

감고 내려오는 데도 미끄러지지 않게 당부해 주신다. 젊어 보이시는데 아마도 아이가 있지 싶다. 어딜 가도 느끼는 바이지만 아이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다르다. 아이를 키워 본 사람만이 알 거다.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아이 모두 소중한 존재라는 걸 말이다.


나 역시 그랬다. 결혼 전 교사를 할 때, 물론 아이들을 예뻐했고 사랑했지만 내 아이가 있는 지금과는 달랐다. 그때엔 그저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을 대하고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면, 지금은 엄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어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의 깊이부터가 다른 것 같다. 한 명 한 명의 아이가 어떻게 부모에게 오고 어떤 사랑을 받으며 자라게 되는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너무도 소중하고 사랑스러워 그저 보고 있으면 때로는 내 눈물샘을 자극하는 존재. 아마도 존재 자체로 아름답다는 말은 아이들을 두고 한 말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 헤어컷을 하고 뒤이어 나도 자리에 앉았다.

“ 어떻게 해드릴까요? ”

“ 앞 턱선에 맞춰 반듯하게 잘라주세요. 가르마 방향은 양쪽으로 바꿀 수 있게 해 주시고요. “


언제부턴가 미용실에 가면 토씨하나 안 틀리고 하는 말이다. 지금 이 선택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남편은 나에게 다른 헤어스타일을 요구(?) 하지만 그건 내 사정을

모르고 아니 알면서도 하는 것이다. 누누이 말했는데 못 알아듣는 건지 듣고 싶지 않은 건지 모르겠다.


감사의 인사와 함께 미용실을 나와 집 앞 야채가게에

들른다. 애호박과 청경채를 고르고 남편을 위한 딸기도 한팩 집어든다. 집에 돌아오니 둘째와 남편은 오후잠을 자고 있다.

거실에 조용히 앉아 노트북을 연다. 쓰다만 자율연수휴직계획서를 마무리하려는데 둘째의 엄마를 부르는 소리에 노트북을 재빨리 닫고는 아이에게 뛰어간다. 지금 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엄마”의 역할을 하는 것이니까.


9년째 쉼 없이 달리고 있는 엄마로서의 삶이 가끔 버거울 때가 있지만 지금에 감사하며 오늘도 난 스스로를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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