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지난 3년의 마무리 - a
그런데 다행히도 약 3년 정도의 짬이 먹힌 건지 나름의 대찬 으름장이 통했다. 날 채용했던 담당자는, 적당한 때에 본인과 같이 일할 수 있도록 해보겠다는 확답을 주었다.
고마웠다. 그래도 내가 회사에 기댈 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다행이다 싶었다. 물론 내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복잡했다. '전 회사에 다시 전화해볼까', '부모님께는 뭐라고 해야 하지', '내 인생은 왜 맨날 이렇게 거지 같지...' 대기업 이직을 위해 잠시 스쳐간다고 생각했던 스타트업에서의 야심 찼던 계획이..! 이렇게 무산되는 가 싶었다.
출근해서 뭐 하는 건가 싶은 대기 상태로만 시간을 흘려보내기 어언 한 달이 지났을 때, 담당자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당장 다음 주부터 국내 시중은행의 외주업체 직원으로 si 프로젝트에 참여하라는 핵 당황스러운 통보를 받았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봐도 갑작스러운 소식에 적잖이 놀랐었다. 나는 si 프로젝트의 외주 직원이 되고 싶어서 이직한 게 아니었으니까.
내가 왜 다른 회사 직원의 눈치를 받으며 일을 해야 하나 싶은 반발심이 크게 들었지만,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수긍했다. 당장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외주 직원으로 가느냐, 다시 남아서 그 부장이랑 일을 하느냐 둘 뿐이었으니까..
그래도 '스타트업이니까 이것저것 많이 경험한다고 생각하자'라고 나름의 긍정적인 자기 최면을 걸어봤다. 내가 싫어했던 사람을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공간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업무니까 적응하면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 위로해봤다.
뭐 결론은, 어설픈 자기 최면에 대차게 실패했다. 어떤 생각으로 하루는 시작하느냐에 따라 그날의 기분은 천국을 갈지 지옥을 갈지가 정해졌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나는 회사에서 어떠한 업무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내가 할 수 있는 개발 업무는 단 하나도 없었다.
매번 바뀌는 회의 내용에, 완성된 기획서는 하나도 없고 프로젝트를 위해 모인 은행 TF팀원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말하기 바빴다. 혼란 속에서 교통정리를 해줄 역할인 PM인 우리 회사 담당자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은행 TF팀원들에게 머리를 조아릴 뿐이었다. 아무래도 나이가 너무 어려서 의사결정을 진행하는데 휘둘림 당하는 것으로 보였다. (뻔하지 뭐)
프로젝트에 투입되고 2달 동안 어떤 개발업무도 하지 않았고, 개념도 없는 분야인 금융 상품 서비스를 기획하는 등 강 건너 불구경을 했고, 가끔 그 불똥이 나한테 튀기기도 했다. 너무 황당하고 짜증이 났지만, 덕분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이직 준비를 했다. 내가 이 곳에서 무슨 쓸모가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판단이 내려졌고,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만 했던 지난날과 다르게 실천력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