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내일은 가야지.
왠지 끌렸다. 끌림에 이유가 있던가. 없다. 그냥 끌린다. 끌리는 이유를 구태여 찾아낼 필요도 없다. 끌리니 자꾸만 그쪽으로 눈길이 쏠린다. 헬스장이었다.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주변인들을 보면 살을 빼려고 헬스장에 등록해서 러닝만 한다는 사람이 많았다. 여자여서 그랬을 것이다. 나도 여자고, 나를 둘러싼 많은 주변인도 80%는 여자였다. 20%의 남자가 있긴 했지만, 헬스에 관심 없었다. 헬스뿐만 아니라, 운동과도 담을 쌓은 사람들. 탱탱한 육체가 영원할 거라 자만했다. 몇 년 전 여동생이 헬스장에서 러닝 해서 살 좀 뺐다고 자랑했다. ‘그래.’ 무미건조한 짧은 답변만 했다. 관심이 없으니 더 이상 물을 것도 없다.
남성의 전유물과 같았던 헬스장에서 여자를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여자들도 헬스를 해서 몸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대대적인 선동이 한창이다. ‘여자도 헬스 해야 합니다.’ ‘근육 만들어야 합니다.’ 유명한 헬스 유투버의 말투는 협박조였다. 근육이라니, 싫었다.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여자는 예쁘게 보이지 않았다. 내가 예쁘장한 얼굴이라는 것은 아니다. 살면서 ‘예쁘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머리를 짧게 자를 때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려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소 충격이긴 했지만, 꼬마 아이들이었고, 그러려니 했다. 내 나이가 40줄에 들어섰고, 아이 엄마이기도 해서 젊은 처녀 같은 호들갑은 없었다. 수더분해진 것이다.
팔뚝살의 탄력이 한 해 한 해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원체 물렁살이었다. 힘을 주지 않은 팔뚝살은 출렁였고, 종아리에 붙은 살들을 아이들이 두 손으로 잡아 흔들면서 신기해했다. 내 일부분이 아이들의 장난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나 또한, 어릴 적 내 엄마의 살들을 만지면서 놀았다. 엄마의 살들은 왜 그렇게 물컹거리고, 말캉거리는지. 요즘 아이들이 주물럭거리는 액체 괴물보다 훨~ 재밌었다. 털도 없이 매끈한 피부는 미끄덩거리는 뱀의 피부 같았다. 청소년기의 내 팔과 다리에는 털들이 거뭇하게 자라 있었다. 예민한 때라, 삐죽거리는 검은 털이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 싫어서 제모기로 밀고 다녔다. 남자들은 좋겠다. 털을 깎지 않아도 되니. 여자인 것이 억울했다.
처음부터 물렁살은 아니었다. 나의 살은 탄탄했다. 운동 같은 건 따로 해본 적도 없다. 열심히 밖에서 뛰어놀긴 했다. 하지만 뛰어놀지 않던 다른 여자 친구들의 살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리에 알이 배긴 것 말고는. 종아리에 딱딱하게 뭉친 알을 풀려고 얼마나 애썼던지. 맥주병으로 다리가 빨개지도록 밀고 또 밀었다. 주먹으로 흠씬 종아리의 알을 때리기도 했다. 그러면 왠지 딱딱한 알이 풀어질 것만 같았다. 단단히 자리 잡은 알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 날이 되면 종아리의 알은 남의 일이 된다. 밖으로 나가 또 뛰어놀았다. 집에 돌아와서 맥주병이 아닌 비닐랩을 칭칭 동여맸다. 과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입으로 전해지는 ‘카더라’ 통신이 위력을 발휘하던 때다. 친구들이 분명 알이 빠진다고 했는데. 비닐 랩을 씌운 다리는 피가 통하지 않아 몇 분만 지나도 갑갑했다. 아휴~ 못해, 못해. 성난 헐크처럼 마구잡이로 비닐 랩을 뜯어 버렸다. 남자는 이런 짓 안 하겠지. 여자여서 억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쁜 미모는 아니어도 나도 여자였다. 종아리에 울퉁불퉁 알이 배긴 게 싫고, 매끈하게 빠진 다리를 선망했다.
시대가 변했는지, 내 나이 때문인지, 당당하게 근육질의 몸매를 뽐내는 여성이 예뻐 보인다. 젊을 때는 당연했던 탄탄한 살들이 점점 물러지니, 우울했다. 나도 엄마처럼 되는구나. 체념했다. 나이가 들면 살들은 으레 탄력을 잃고 흐물거리게 되는 것이니. 물렁한 살은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살이 처질수록 몸이 느끼는 피곤함이 심해졌다. 매일 ‘피곤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보약이라도 먹어야 하나. 체력이 예전 같지가 않다. 뭘 잘 먹어야 되나. 검색을 하고 혹한 광고에 휩쓸려 구매를 클릭한다. 냉장고에는 몸에 좋다는 음식재료들이 쌓여간다. 나중에 먹을 거야. 냉동실로 향한다. 기억의 블랙홀, 잊힌다. 건강식품도 먹어볼까. 홍삼이 좋다는데. 아무리 몸에 좋아도 입에 쓰면 먹기 싫다. 먹지 못한 홍삼액이 거실 귀퉁이에 쌓인다.
헬스장에 자꾸 눈길이 갔다. 문만 열면 헬스장이었다. 나에게는 넘사벽처럼 느껴진다. 힘들겠지. 아프겠지. 개인 PT 받아야 하나. 복잡해 보이는 운동 기구는 어떻게 사용하는 거지. 시간은 어떻게 내지. 운동복도 없잖아. 운동화도 없고. 비용은? 운동복은 집에서 입는 티셔츠에 트레이닝복 입으면 되겠지. 깨끗한 운동화가 없으니 구입해야 한다. 귀찮다. 또 운동화를 사야 하나. 몇 날 며칠이 흐른다. 검색을 한다. 헬스장 운동화. 종류도 많다. 뭐가 적당하지. 머리 아파. 내일로 미뤄야겠다. 내일이 한 달이 되었다.
운동화를 사야 할 돈이 괜스레 아깝다. 구매를 클릭하지 못했다. 헬스를 시작해서 하루만 했다느니, 일주일 만에 그만뒀다느니, 재미없어서 못해, 라는 말이 계속 들렸다. 헛돈 들이는 거 아니야. 물어볼 사람이 없다. 만만한 게 유튜브다. 죄다 몸 좋은 사람들 하는 말들이다. 공감이 안 된다. 거기다가 다들 젊어 보인다. 나는 젊지 않아 다치면 큰 일 나는데. 몸뚱이가 전 재산인 사람이야. 헬스장 문을 열지도 못하고 돌아선다. 운동화가 없으니까 안 돼. 두 달, 세 달이 지나간다.
하고 포기하면 덜 후회할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딨어. 포기도 하고, 할 수 있는 거 적당히 하면서 사는 거지. 운동화가 없어서 헬스를 못했다고 말하기엔 좀 우습다. 저렴이로 구입하자. 2만 원이면 괜찮잖아. 포기한다 해도 2만 원이면 덜 아깝겠지. 가벼운 바람이 숭숭 통하는 분홍색 메쉬 운동화를 구입했다. 드디어 택배로 새 운동화가 도착했다. 이제 헬스장 들어갈 채비는 완료되었다. 헬스는 세 달 치를 내면 할인이 더 컸지만, 아직 자신 없다. 한 달만 끊어주세요.
탈의실에서 운동복을 갈아입는다. 티셔츠와 운동복을 즐겨 입는 나로서는 평상복이랑 큰 차이는 없다. 분홍색의 가벼운 새 운동화를 신고 드디어 헬스장 문을 열어 재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