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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Aug 10. 2023

청설모와 놀 수 있나요


까만 자태의 청설모가 발자국 소리도 없이 눈앞으로 지나간다. 어찌 저리 가볍게 폴짝 뛰어 움직일 수 있는지, 순간 넋을 놓고 바라봤다. 청설모는 인간의 시선을 무서워한다. 가까이 가려 할수록 멀리 달아난다. 맘속으로 '해치지 않을게, 잠깐만 기다려'라고 말해봤자, 콧방귀도 뀌지 않고 달아난다.


요리조리 재빠르게 날쌔게 뛰는 듯, 나는 듯하는 청설모가 하루는 눈앞에서 얼쩡거린다.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고, 움직이지만 멀리 내빼지 않은 채 움직인다. 인간의 몸짓을 최소로 만들어 청설모가 두려워하지 않도록 분위기를 조성한다. 최대한 조용히, 최대한 침묵으로.


청설모는 멈칫한다. 부드럽게 춤추는 꼬리는 살짝 흔들리고, 작고 까만 눈동자는 어딘가로 향한다. 시선이 마주치면 이내 또 사라질까 봐, 먼 허공을 바라보며 시야 안에서는 청설모가 있다. 한 공간, 하나의 시간 속에서 청설모와 나는 놀았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존중하면서.


청설모와의 시간을 뒤로하고, 내 가슴은 몽실몽실 구름 같았다.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얼굴빛은 환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청설모와 내가 연결되어 있음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난 청설모와 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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