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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Sep 06. 2023

새끼발가락의 작은 상처도 아프다

상처의 크기를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나에게는 아들이 둘 있다. 첫째 아들은 중학교 3학년으로, 훌쩍 성장해 내 키를 넘어선 지 오래전이다. 똑바로 서 있으면 내 정수리가 아들의 눈 밑에 있다. 둘째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으로, 한참 전에 내 몸무게를 뛰어넘어 어깨가 떡 벌어져 옆에 서 있으면 내가 금세 왜소하게 보이는 마법을 부린다. 큰 장정을 옆에 낀 엄마는 먹이는 게 힘들다며 툴툴거리면서도 듬직하게 자란 아들을 보며 흐뭇함을 숨길 수는 없다. 

 신체적으로 듬직하게 자랐지만, 아직 초등학생인 둘째 아들이 풀 죽은 얼굴로 집으로 들어설 때면, 초조해진다. 몸은 거대한 풍선처럼 커졌지만, 마음은 몸만큼 크지 못해 여전히 ‘아이’ 다운 울상을 짓노라면 걱정이 앞서면서도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뾰로통한 표정이 이질적으로 느껴져 웃음이 먼저 터져 나왔다. 엄마의 웃음에 실망한 둘째 아들은 자신의 상처를 과장스럽게 보여준다. 

 “엄마, 여기 아파.”

 수다스럽지 않은 아들은 단순한 문장을 주로 사용한다. 문장에는 자기가 필요한 말 이외에 상대방에게 필요한 정보는 굳이 말로 하지 않고, 바로 행동으로 나선다. 양말을 벗고 발바닥을 보여주면서 발가락이 접히는 접촉면이 갈라지고 피가 났다는 것을 알린다. 처음 보는 장면은 아니었다. 평소에도 과격하게 움직이는 아들의 특성상, 발가락이 접히는 피부가 성할 날이 없었다. 발바닥이 전반적으로 건조하고, 태권도를 시작하고부터는 피부가 갈라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오늘은 특히 핏자국이 흥건했다. 

 빨간색의 피를 보자, 온몸이 반응했다. 피부가 갈라지기만 할 때는, 그럴 수도 있지 정도였다면 ‘피’ 하나만 추가했을 뿐인데, 머리칼이 쭈뼛하고 몸서리쳐졌다. 몸은 조건반사적으로 움찔했지만, 입으로는 “괜찮아, 금방 나을 거야” 대수롭지 않게 말을 했다. 아들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본다. 아들이 바란 것은 이런 반응이 아니었다. 아들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 다시 한번 “아파!”라고 무뚝뚝하게 뱉어낸다. 

 아차 싶어, 의약품통 속에서 밴드와 후시딘을 꺼냈다. “얼른, 발가락 대봐” 하니 그제야 얼굴 표정이 풀리면서 ‘그래, 이거지’ 하는 눈치다. 엄마의 보살핌, 그걸 받고 싶었던 것을 별거 아닌 상처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던 것이다. 이전에도 쿨 하게 넘겨버렸던 아들의 상처가 얼마나 많았을지, 감히 짐작도 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자연스럽게 치유될 수 있는 작은 상처였다, 고 스스로에게 설명한다. 

 며칠이 지나, 주방에서 맨발로 움직이다가 새끼발가락이 찌릿했다. 뭐지, 새끼발가락을 샅샅이 살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설거지를 하면서 움직거리다가 발가락의 따끔거림이 거슬린다. 눈썹이 치켜떠지면서 신경질이 난다. 애꿎은 설거지를 기다리는 그릇에게 분노를 쏟아낸다. 그릇들이 거칠게 부딪히며 분노를 받아낸다. 불쾌하게 스며드는 통증에 다시 새끼발가락을 들여다본다. 마치 눈의 시력이 돋보기를 갖다 댄 것처럼 확장되어 보인다. 아무 조각도, 흔적도 없다. 살을 찔렀던 조각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조각의 흔적을 찾을 수 없으니 애만 탄다. 발바닥을 내디딜 때마다 느껴지는 불쾌감에 다리가 절룩거린다.  설거지를 의무적으로 마무리하고, 다시 새끼발가락을 치밀하게 살펴보니 미세한 찢김이 얼핏 보인다. 어디에 찢긴 것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럴만한 물건을 찾을 수 없었다. 

 하루 내내 새끼발가락의 미세한 통증에 기분이 가라앉았다. 음울한 회색빛의 기운이 내 온몸을 감싸고 일상을 지배했다. 그날 하루는 즐거운 일이 생길 수 없었다. 저녁이 되어 조심스럽게 새끼발가락을 쓰다듬으며 발바닥에 밀착되지 않도록 두꺼운 양말을 신었다.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음 날이 되어서는 맨발로 걸어 다녀도 통증이 없었다. 그만큼 미세하게 찢긴, 아마도 바닥에 굴러다니는 비닐이나 종이 조각에 살짝 스쳐 벌어진 일이 아닐까 추측할 정도의 상처였다. 불현듯 얼굴이 발그레하게 상기되었다. 부끄러웠다. 갑자기 떠오른 아들의 발가락 상처. 별거 아니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작은’ 상처. 함부로 작은 상처라 부를 수 있었던 무감각. 

 ‘작은’ 상처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비록 남들에게는 티끌만큼 작은 상처로 보일지라도, 내가 당하는 일이라면 그저 상처이다. 아픔의 정도나 치유의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상처로 인해 내가 지금 아프다는 것. 상처는 상처일 뿐, 크고 작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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