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벽 앞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by 소피아절에가다

벽 앞에 서 있는 위대한 나무 한 그루

두 팔은 하늘을 향해 뻗어갔다

길어지고 길어지다 가늘어졌고

가늘어지고 가늘어지다 부러졌다

부러지고 부러지다 흩어졌고

흩어지고 흩어지다 사라졌다


반면 두 다리는 땅속을 향해 뻗어갔고

원형을 알아낼 길 없이 땅속 그 어딘가로

퍼지고 퍼지다 가늘게 가늘어졌고

가늘고 가늘어지다 부러지고 흩어졌다


가을의 영화榮華는 한낱 꿈

열매를 맺은 적 없다

씨앗은 분명 나를 자라게 한 근원이나

씨앗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찾을 수도,

굳이 찾아 나서지도 않았다


벽 앞에 서 있는 위태한 나무 한 그루

어쩌면 원대한 씨앗을 품었을 하지만

뿌리가 땅속으로 깊게 자리 잡았던 만큼

가지 속이 단단히 채워졌던 만큼

열매가 맺히기 직전 스스로를 무너뜨렸다


내 근원을 찾아 나의 열매를 다시 품어볼 수 있을까

흩어지고 사라진 나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영화榮華를 다시 꿈꿔보기 위해

씨앗을 다시 심어보려 한다

열매를 맺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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