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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엄지발톱에게 고하노라

by 소피아절에가다

여름 하늘,

하늘하늘하다 못해 하얗게 타들어가고 있구나

잠시 고개를 들어

타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본다

이에 질세라

내 오른쪽 엄지발톱 하나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어젯밤,

핏빛으로 발갛게 물들어간 그것의 얼굴은

나를 타들어가게 했고

나는 이내 여름 하늘이 되었다


타들어가는 것은 여름 하늘만이 아니었고,

고개를 빼꼼히 내민 발톱을 바라보는 내 마음만도 아니었으니,

아닌 밤 홍두깨는

나를 사랑하는 여럿을 타들어가게 했다


여름은 점점 여느 해 보다 타들어가고 있고

나를 사랑하는 이들도 여느 해 보다…

타들어가지 않길

그대들이여, 더 이상 나로 인해 활활 타오르지 않길


능수능란한 이름 모를 이의 손길로

내 엄지발톱은 더 이상 하늘을 향할 수 없었다


안타깝게 여기지 말길

이 여름,

잠시 잠깐 발갛게 네 고개를 내민 것만으로도

타들어가는 여름 하늘을 만끽했음을 기억해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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